화약의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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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대 4대 발명품 중 하나인 화약은 ‘불을 만드는 약’, ‘불을 만드는 가루’라는 뜻을 지닌다. 옛날 화약은 흔히 ‘흑색화약’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화약이 검은색이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약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염초, 숯, 유황을 넣고 실험하다가 갑자기 폭발하는 것을 보고 우연히 화약이 발명됐다고 전해진다.
화약 제조에 필요한 3요소 – 염초, 유황, 숯
화약의 재료인 염초, 유황, 숯 3가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염초(焰硝)’다. 염초는 초석 또는 질산칼륨이라 불리며 화학식은 KNO₃이다. 화학식에서 알 수 있듯이 염초는 산소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숯이 폭발적으로 탈 수 있도록 산소를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한다. 중국에서는 광산에서 염초를 캐서 불순물을 없애 순도를 높여 사용했다. 광산에서 캔 염초를 물에서 끓였다가 꺼내 말려 불순물을 없앴다.
유황(S)은 낮은 온도에서 화약에 불을 붙여 화학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해주며 숯(C)은 연료 역할을 했다. 중국에서는 자연 상태의 염초와 유황을 쉽게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숯도 오래 전부터 많이 사용됐기 때문에 중국은 화약을 발명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중국에는 기원전부터 몸에 좋은 약이나 오래 살 수 있게 하는 약을 연구하는 학자인 연단술사가 많았다. 이들이 염초, 숯, 유황을 넣고 실험하던 중 갑자기 폭발해 화약을 발명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서기 850년경 중국에서 쓰인 도교경전 진원묘도요략(元妙道要略)에 ‘어떤 사람이 초석, 유황, 계관석, 벌꿀 등을 섞고 가열했더니 연기와 불길이 일어나 화상을 입고 집을 태웠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화약에 대한 첫 번째 기록으로 보고 있다. 또한 송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송사(宋史)에 서기 1000년 8월 당복(唐福)이라는 장수가 화전(火箭), 화구(火毬), 화질려(火藜)와 같은 화약무기로 진격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본격적으로 화약이 무기에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화약에 대한 첫 기록을 담은 무경총요
화약이라는 명칭과 조성에 대한 첫 기록은 1044년에 편찬된 무경총요(武經總要)에 나타나 있다. 이 책은 3가지 종류의 화약에 대해 소개하는데 그 중 한가지 화약 조성이 염초 61.5%, 유황 30.8%, 숯 7.7% 이다. 불순물이 많이 포함된 옛날 화약의 조성과 지금의 흑색화약을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현대의 조성과 비슷한 것이 흥미롭다.
그림 1 흑색화약 ⓒ 위키피디아 무경총요에는 처음으로 나타난 초보적인 화약무기도 그림과 함께 설명돼 있다. 1232년에는 첫 로켓형 화기인 비화창(飛火槍)이 등장한다. 비화창은 길이 280cm의 화살대와 앞부분에 길이 40cm의 종이 약통으로 이루어졌는데 종이 약통에 화약을 넣고 발사하면 적진을 불태우는 로켓무기였다. 그리고 이즈음 금속으로 만든 총과 포가 등장했다. 현재 중국에 남은 총포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282년 몽고에서 제작한 것으로 몽고의 유럽 정벌을 따라 중국의 각종 화약무기들도 유럽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림 2 화약의 명칭과 조성의 첫 기록이 있는 무경총요와 화약무기(비화창, 총포)
ⓒ 한국과학창의재단 / 작가 김화연
최무선 장군에 의해 화약·화약무기 발전
우리나라에서는 1375년경 최무선(崔茂宣, 1325~1395)에 의해 처음으로 국내에서 화약이 제작됐다. 그 전에도 중국에서 화약 재료와 화약무기를 수입해 사용했으나 필요할 때마다 사올 수 없었고 중국과 관계가 좋지 않을 경우에는 더욱 힘들었다. 고려 말, 왜구들의 노략질이 심해져 바닷가 농민들이 피해를 입자 최무선은 왜구들을 무찌르기 위해 화약을 국산화 했다. 화약의 국산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염초를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이었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최무선은 고생 끝에 중국 상인 이원(李元)으로부터 염초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익혀 화약을 국산화 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후 조정에 건의해 1377년 화약을 생산하고 화약 무기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화통도감을 세웠다.
그림 3 신기전과 신기전기(화차) ⓒ 위키피디아
최무선은 화통도감에서 지금의 총, 포, 폭탄, 로켓화기인 18 종류의 화약무기를 만들었다. 1380년 8월 왜구가 500 여 척의 전선을 이끌고 서해로 쳐들어 왔을 때 화약무기를 이용해 진포에서 모두 격침시켰다. 고려의 화약무기는 최무선의 아들인 최해산(崔海山, 1380-1443)에 의해 조선시대에도 계승되고 세종(世宗, 1397~1450) 때는 세계 최고 성능의 독자적인 화약무기 체계를 갖추게 됐다. 세종 때 개발된 우리의 화약무기 종류는 대형포로는 장군화통, 총통완구, 일층통 등이 있고 소형포로는 이총통, 삼총통, 사전총통, 사전장총통, 8전총통, 일총통 등이 있다. 또 신호용으로 사용된 철신포도 있다. 로켓무기로는 귀신 같은 기계화살이라는 뜻의 신기전(神機箭)이 있었다. 영화 등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기전은 고려 때 최무선이 만든 주화(走火)를 개량해 만들어졌다.
세종 때 폭탄 종류로는 발화통, 진려포통 등까지 있어 아주 완벽한 무기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이 강력한 화약무기를 이용해 압록강과 두만강의 우리 옛 영토를 되찾기도 하고 임진왜란 때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에 더욱 발전한 화약무기를 장착해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화약무기가 발명된 이후 화약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차이는 극명히 갈렸다. 칭기즈칸(Chingiz Khan, 1155~1227)의 몽골원정군은 1219년부터 1260년까지 중동은 물론 키에프, 폴란드, 헝가리까지 동부유럽을 정벌했다. 몽골원정군은 유럽정벌에 로켓무기인 비화창과 폭발물인 진천뢰와 같은 화약무기를 최대한 이용했기 때문에 화약무기가 없었던 동유럽보다 유리했을 것이다. 또한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까지 아메리카 대륙에는 화약과 화약무기가 없었다.
스페인의 페르난도 코르테스(Fernando Cortes, 1485~1547)는 병사 500명과 총, 포와 말 16마리를 11척의 배에 싣고 유카탄 반도에 상륙해 3년 만에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켰다. 인구 2억 명의 아즈텍 제국은 지금의 멕시코 지역에 수백 년에 걸쳐 아즈텍 문명을 꽃피웠었다. 코르테스는 현지에서 화약과 포를 직접 제작해 사용했다. 이 후 프란시스 피사로(Francisco Pisaro, 1471~1541)는 1532년 잉카 제국을 2년 만에 정복했으며 얼마 후 프랑스와 영국도 북아메리카를 점령했다.
14~16 세기 화약과 화약무기는 나라를 지킬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를 정복 할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도구였다. 우리나라 역시 그 시대 나라를 무사히 지키는데 고려 말 최무선에 의해 갖춰진 화약과 화약무기의 역할이 컸다.
[교육과정]
– 초등학교 6학년 과학, 연소와 소화
– 중학교 3학년 과학, 물질의 변화에서의 규칙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