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우리는 졸업했다. 1961년 3월..진산중학교 120명 신입생의 입학식이 거행되었다. 선택받은 학생들..진산면과 복수면 두곳에서 중학교를 입학한 학생은 고작 120명이다. 여학생은 15명 내외다. 심리길, 무려 삼십리 길에서 통학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것도 걸어서...그 고향의 친구들이 함께 뭉친 것은 몇 년전부터다. 그 동안 삶의 무대에서 열심히 일한 후, 옛 정들이 그리워서일까? 몇 십년을 기다려 왔다는 듯이 시도 때도 없이 연락들이 오가며 만났다.
5.9~10일 1박2일 일정으로 고향의 깊은 산골 펜션에서 보낸지가 엊그제인데 채 한 달도 되지않아 5.31~6,1일 여수에서 만나는 파격을 저질렀다. '건강할 때 만나야 돼' 그럴싸한 명분으로 재촉하는 한 친구의 제안으로 여수행이다. 여수는 원기 친구가 10여년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사업을 하는 친구가 30여년을 사는 곳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나와함께 읍내로 나와 자취를 한 친구다. 그 친구의 초청으로 여수는 자주가는데도 여수만큼 좋은 곳은 없다며 여수로 정했다.
대전 안영동 하나로마트 주차장에서 5.9일 09:00분 출발이다. 서울에서 2명, 대전에서 4명이 여수를 향해 따로 출발이다. 여수시청 주차장에서 12:00분 미팅이다.
졸업 당시 100여명 정도가 졸업을 했고, 그동안 많은 친구들이 세상을 떠났다. 졸업후 소식을 모르는 친구들도 있다. 대전의 친구들은 그 동안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우의를 다진지 꽤 오래지만, 멀리서 직장 생활을 해야 했던 나는 가끔 한 번씩 초청받아 가는 정도였다. 퇴임하자마자 나의 근황을 아는 친구들의 부름이 잦아졌고 그렇게 7명의 친구들이 자주 만나게 된 것이다.
고향의 친구, 언제 들어도 고향이라는 이름 하나로도 정겨운 그곳에서 3년동안 함께 학교를 다닌 동기동창.. 인연설에 의하면 전생에 칠천겁의 선근을 심은자가 동갑나기 친한 친구가 된다고 했으니.. 보통사이는 아닌 것이다.
원규, 전국을 무대로 사업을 하여 자리잡은 친구다. 부지런하며 정이 많고 포용력과 리더십이 있어 모임을 앞장서 추진한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횟감을 비롯하여 먹거리를 책임지고 여수에서 수송해 온다. 서산에도 사업차 자주 들린다. 친구들이 원규 신세를 너무 많이 졌다. 나는 말할 것도 없이...
갑덕이, 동방여고 선생님으로 퇴직을 한 중후한 사나이다. 다정다감하고 친화력괴 리더십이 있어 중학교때 반장 등을 도맡아 했다. 자기관리도 으뜸이며 겸손함과 따듯함으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순영이, 과묵하고 인정이 넘친다. 몇 년째 우리들 총무를 맡고 있는데 빈틈이 없다. 어려운 내색하지 않는다. 우리들 뒤치닥거리를 짜증한 번 내지 않고 한다. 내가 늘 하는 말 '순영이 친구가 없으면 우리 모임은 끝나' 그래도 웃기만 한다. 금산에서 사업을 한다.
생균이, 서울에 산다. 이 친구가 우리 모임의 주범이다. 한약건재상을 하며 종횡무진했던 친구다. 지금은 아들에게 물려주고 소일거리로 주문 받아 제공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산다. 중국으로, 러시아로 번쩍번쩍 떠나는 친구다. 모일때마다 녹용 인삼을 가져와 닳인다. 친구들을 어떻게 하면 자주 만날까를 궁리하며 사건을 만든다.
석환이 수원에 자리잡았다. 멋진 신사다. 회계사무실을 아직도 운영한다. 깔끔하고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어머니를 오래 모셨던 효자다. 이 번에도 일정이 있어 어려운 발걸음을 했고, 아침 일찍 서둘어 출발해야 함에도 함께했다.
명옥이, 대전에 산다. 아직도 사업을 한다. 늘 여유롭고 즐기며 인생을 살자고 하는 친구다. 마이크를 잡으면 그 노래소리에 흥이 절로 난다. 따듯하고 정도 많아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많다. 서산에서 출발하여 혼자 가기 어려우니 대전으로 와서 우리와 함께 가자며 제안을 하듯이 배려심이 깊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만난 친구들,, 대전의 출발팀은 오수휴게소에서 커피 한잔의 휴식후에 여수 시청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원규 친구가 반갑게 맞이했다. 서울 친구들이 도착할 시각은 12:30분이란다. 근처 선소로 이동하여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서 배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는 추억을 더듬었다. 서울 친구들이 도착하여 점심식사 자리로 옮겼다. 남해생선구이.. 반은 갈치조림, 반은 생선구이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은 식당이란다. 여수의 먹거리는 올때마다 감동이다.
고흥으로 향한다. 여수. 고흥간 연륙. 연도교가 금년 개통되었다고 한다. 여수 화양∼적금 구간 도로는 총연장 17㎞로 여수시 4개 섬(조발도·낭도·둔병도·적금도)을 연결한다. 총 사업비 3908억원이 투입된 연결로다. 섬과 섬, 섬과 육지가 연결되어 구분이 없어졌다. 편리함은 있지만 낭만은 사라졌다. 섬은 섬일 때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정체성이 사라졌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욕심이다. 몇 개의 연결된 다리를 건너 순식간에 고흥에 도착했다. 휴게소에서 차 한잔 나누며 고흥 앞바다를 바라본다. 어릴적 육지에 태어나 바다를 동경하며 살았던 친구들이기에 바다는 더욱 그리움이었을터..그렇게 한 동안 바다를 보며 옛시절을 추억하고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여수행이다.
계동횟집.. 이 집은 여러 번 왔다. 친구의 단골이다. 완전 자연산회에다 단골 손님에게 베푸는 덤까지 합하여 차려낸 음식에 반한다. 술 한잔 나누며 먹는 회는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아루 오래전부터 단골로 다녔다는 친구는 우리들이 올 때마다 이곳으로 안내한다.
어스름.. 여수의 저녁 밤.. 케이블카를 타고 밤의 야경을 즐기자는 계획이었으나. 케이블카는 여러번 탔으니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공원산책을 한다. 여수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시원한 전망... 여수가 아름다운 이유다. 그 후 술 한잔에 한바탕 여흥이 신바람이다. 그렇게 여수의 밤은 무르익는다.
숙소에 도착하면 둘로 나뉜다. 한 편은 고스톱.. 한 편은 꿈나라다. 낖은 잠에 빠지다.
6.1일 새벽 5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수의 새벽 산책에 나선다. 갑덕, 생균 친구도 따라 나선다. 한옥펜션에서 가깝게 내려다 보이는 엑스포 역과 주제관 등 엑스포 행사 주변을 잇는 바닷가를 향하여 새벽 산책에 나선다. 새벽을 사랑하는 친구들이다. 엑스포 행사를 위해 지어진 건물들이 활용되지 못한채 썰렁하다. 안타깝다. 새벽 산책은 한가하다. 초여름이지만 아직도 쌀쌀함이 감도는 새벽일텐데 여수는 따뜻해선지 반바지 차림에 안성맞춤이다. 걷다보니 오동도가 지척에 있다. 오동도까지 가면 어떤가라는 생균이 친구의 제안에 아침식사후 가기로 되어 있으니 지금은 여기까지 산책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산책에서 돌아오니 친구들도 잠에서 깨어나 새 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침 식사는 상아식당의 자어탕이다. 여기도 아침 단골이다. 상아식당의 장어탕의 맛을 본 사람만이 이 맛을 안다. 그 깊은 맛이란.. 팔뚝만한 장어에서 우러난 그 깊은 맛은 별미중의 별미다.
오동도로 향한다. 입구에서 난 생 처음 보트로 오동도를 한 바퀴 돌아 내린후 오동도 산책 코스를 택했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흩날린다. 상쾌하고 시원하다. 통쾌하다. 오동도 산책길엔 시인들의 남긴 시가 새겨져 있다. 시가 외롭다. 거들떠 보는 이도 드물다. 시 따로, 사람 따로다. 왜, 시가 그렇게 멀리 있을까? 우리 생활 속에 늘 시가 있어야 하는데..
마침 고등학교 후배이며 아내의 동창인 이은봉의 동백꽃이란 시를 음미한다. 이밖에 숱한 시인의 이름으로 새겨진 시들...
점심은 남경식당.. 전복, 보리굴비 특식이다. 헤어짐의 식단이다. 볼거리 먹을거리 거기에 죽마고우까지 최고의 만남이, 그 역사적인 만남이 끝났다. 7월달엔 여수의 별미 하모(아나고 샤브)를 위하여 만나자나?
시골에 돌아오니, 1박2일의 꿈같은 친구들의 모습이 다시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