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변신술’
이 옛이야기의 소년은 적극적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자기 삶을 개척해보려고 애쓰는 아이다. 아마도 거짓말을 못하고 살려고 애쓰는 착한 부모를 답답해하기도 하며 성장했으리라 미루어 짐작 해본다.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하였을 것이다. 수염 많이 난 사람을 만나자 그에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밥벌이를 하려 한다. 기회가 오니 놓치지 않고 눈치껏 요술 부리는 법을 몰래몰래 배운다. 소년은 과연 이 요술을 어떻게 써먹게 될까? 사뭇 궁금했다.
소년은 몰래 배운 요술을 이용해 인심 사나운 욕심쟁이 부자를 속여 재산을 빼앗는다. 원래 옛이야기가 이 쯤 되면 통쾌한 느낌이 드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부자가 비록 욕심쟁이라 해도 소년에게 직접적인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기 때문에 소년의 행동이 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부터 얘기가 재미있게 흘러간다. 소년은 요술을 이용해 남의 말 훔치는 것에 재미를 느껴 이웃의 말을 또 한 번 훔치게 된다. 남 속이는 것도 재밌고 쉽게 번 돈에 욕심도 생긴 듯하다. 분해서 쫒아온 마귀와의 한판 요술내기를 통해 드디어 방해꾼을 죽이고 요술을 내 맘대로 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소년은 거기서 딱 일절 요술을 멈춘다.
소년이 이 재주로 인심 사나운 욕심쟁이들 것을 취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면 어땠을까? 홍길동이나 로빈 훗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소년은 더 이상의 욕심도 더 이상의 공명심도 없이 딱 좋을 만큼의 내 것만 취해서 어여쁜 색시에게 장가가서 잘 살게 된다. 좀 얄미울 만치 어쩜 이리 절제를 잘하나. 죽고 사는 경험을 해서 그런가. 사실 사람이 치고 빠지는 걸 잘해야 잘 사는데 그 부분에서 소년은 자기다운 결정을 한다. 옛이야기 중에는 모진풍상 다 겪어야 행복해지는 이야기도 많은데 변신이 능한 소년은 태세전환에도 빠르다. 앞으로 살면서도 주인공이 인생의 구렁텅이는 안 빠질 것 같은 적당함이 있는 유쾌한 이야기다.
이번 주인공은 지난번 이야기 ‘황금 거위’ 주인공 막내와는 참 다르다. 황금거위 막내는 약고 똑똑하지도 못하고 남보다 느리게 살다가 조력자를 만나 삶이 변한다. 요술내기 소년은 오직 자기 힘으로 앞길을 헤쳐 나가며 적극적으로 살다가 자기 꾀에도 빠지지만 재주껏 헤쳐 나간다. 결국 둘 다 잘 살아나가는 이야기다. 옛이야기의 대조되는 성격의 두 주인공을 보니 사람에게는 다 각자 자기에게 맞는 삶의 리듬이 있는 것 같다. 삶의 리듬은 달라도 둘 다 자기답게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나는 어떤 아이였고 내 삶의 리듬은 뭐였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리듬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천천히 가도 될 것을 남들 따라 성큼성큼 가려고 스스로를 많이 채찍질 했다. 아직도 신해철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뜨끔 하는 게 있다. ‘그 나이 퍼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라고 질러대는 가사를 들으면서 ‘나’를 잘 알고 ‘내가 원하는 것’을 잘 알아야 내 삶의 리듬을 잘 타면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부분보다도 엎치락뒤치락 변신하는 뒷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변신 장면에서는 손오공이나 전우치처럼 장난기와 호기심이 많은 소년의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생각난다. 소년이 욕심이나 장난에만 빠졌었다면 변신에 취해서 살다가 자기 자신을 잃고 돌아오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변하고 변하고 변하여서 결국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라 생각된다. 소년에게는 변신의 과정이 성장이기도 할 것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마귀까지는 아니어도 이유 없이 나를 괴롭힌 상사도 만나 봤고 믿었던 친구가 갑자기 살쾡이처럼 변신하여 나를 할퀼 때도 있었다. 어느 때는 내가 솔개가 되어 비둘기를 쫒기도 하고 비둘기가 되어 쫒기기도 하고, 쌀알이 되었다가 닭이 되기도 하고 살기 위해선 살쾡이가 되어 닭의 목을 물기도 했다. 그 과정 안에서 내 안에 순한 비둘기도 있고, 매서운 살쾡이도 있고, 예쁜 반지 같은 모습도 있고, 소심하고 작은 쌀알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부끄러운 내 모습도 괜찮은 내 모습도 모두 나였다. 그런 내 안의 여러 모습들을 인정하면서 이제는 상대에 따라 적절히 솔개가 되기도 비둘기가 되기도 하며 잘 살고 있다. 예전에는 많이 빡빡하고 뻣뻣하게 살았는데 이런저런 풍파를 겪으며 나름 삶의 변신술을 잘 익혔다.
앞으로도 때로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나와 상대의 변신에 놀라기도 하겠지만, 내 안의 많은 ‘나’들을 다독거리면서 남들 안의 수많은 ‘그대’들을 이해하면서 어쨌든 잘 살아보리라. 굽이굽이 돌다보면 어느덧 머리가 하얗게 센 어떤 ‘나’로 남게 될 것이다. 아마 그 때는 요행어린 요술 따위는 일절 필요도 없는 오롯한 ‘나’일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은 예쁜 반지처럼 위해주던 사람들과 변신도 잘하면서 오순도순 살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