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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 이스라엘 성서지리 해설>
가나
예수님께서 혼인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다(요한복음 2:1-11).
이것이 예수님의 첫 이적과 기사였다.
기적은 단순한 초자연적 현상이고
이적과 기사는 그 초자연적 현상에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을 말한다.
나다나엘의 고향이다.
나다나엘은 사도 바돌로매와 동일한 인물로
인정되고 있다.
가다라
데가볼리의 한 마을이며
예수님께서 두 사람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하신 곳이다.
지금은 그 산하에 유황성 온천이 있어
아랍인의 온천장이 되어 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을 보면
가다라가 얼마나 힘이 있던 도시였는지를
보여준다.
BC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 황제에 의하여
정복되었고, 데가볼리의 일원이 되었으며,
자체 동전을 사용할 정도의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다.
BC 31년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에게 승리한 후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되었고
이곳을 헤롯왕에게 제공하였으나
이를 원하지 않았던 이곳의 많은 주민들은
헤롯에게 저항하였다.
가드
골리앗의 고향이다.
블레셋 5개 중요도시 중의 하나이다.
엘리 제사장 때에 블레셋에게 빼앗긴 언약궤가
가드에 머무는 동안 독종이 발생하여
에그론으로 옮겼다.
대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성전제사를 멸시하고 성전에서 수종을 드는 여인과
간음하다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전사했고
엘리 제사장도 한 날에 죽었다.
가드헤벨
여호수아가 스불론 지파에게 준 땅이다.
선지자 요나의 고향이다.
가버나움
‘위로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예수의 제2의 고향이다.
다메섹에서 지중해 방면으로 왕래하는 통로이기에
상업이 번창하여 예수 당시에 가장 번화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마태 다섯 제자를 부르셨다.
예수님은 죽을병에 걸린 백부장의 종,
베드로의 장모, 네 명이 매고 온 중풍병자를
치유하셨다.
장차 이 곳에 화가 있을 것을 예언하셨다.
가사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가
유다 지파에게 주었으나 점령 못하였다가
사사시대에 잠시 취했다.
사사기 16장에 나오는 대로
사사 삼손이 들릴라에게 머리털에서 나오는
힘의 비밀을 토설하여 블레셋족속에게 잡힌 곳이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준 곳이다.
가이사랴
백부장 고넬료와 집사 빌립의 거주지이다.
바울이 예루살렘 소요 중에서
이곳에 이르러 2년간 구금되었다.
헤롯대왕은 이곳에 큰 항구도시를 건설하고
로마황제를 위하여 가이사랴라고 불렀다.
헤롯은 갈멜산으로부터 물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9km에 달하는 도수교를 건설했다.
가이사랴 빌립보
구약시대에는 바알 갓 또는 바알 헤르몬으로 불렸다.
바니아스로 불리기도 한다.
판신을 섬겼던 곳이다.
분봉왕 헤롯 빌립이 화려하게 확장하고
디베료 가이사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가이사랴라 하였고 자기의 이름을 붙여
빌립보를 추가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고백을 했다.
분봉왕은 한 나라를 넷으로 나누어
한 곳을 통치하는 왕을 말한다.
갈릴리 바다
구약에는 긴네렛, 신약에서는 게네사렛으로
불렸다.
갈릴리 바다, 디베랴 바다라고도 불린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풍랑을 잔잔하게 하셨다.
갈릴리에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제자로 부르셨다.
물 위를 걸으시는 이적을 행하셨다.
예수님은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우편에 던지라고 하셨고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예수님이 갈릴리 지방에서 행한 24회의 이적 가운데
18회를 행하셨다.
갈멜산
아셀 지파의 경내에 위치해 있다.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 850명과
대결하여 승리하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왕이
엘리야를 잡으러 50부장과 50명을
두 번 보냈는데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죽었다.
엘리야 승천 후 엘리사가 잠시 이곳에 머물렀다.
사울왕이 아말렉을 이기고 승전비를 세웠다.
악인 나발의 거주지였다.
거라사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시고
그 귀신을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하셨다.
그 돼지들이 갈릴리 바다로 뛰어들어 몰살당했다.
게데스
게데스 납달리, 갈릴리 게데스, 게데스 등으로 불렸다.
정식 재판을 받을 때까지 피신해 있는
도피성 중의 하나였다.
사사 바락의 출생지다.
드보라가 바락을 통하여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물리쳤다.
레위 지파의 게르손 자손에게 주어졌다.
앗수르왕 디글렛 빌레셀에 의하여 함락되었다.
게셀
팔레스타인을 종단하는 간선도로인
[바다의 길]의 요충지였으며,
또한 로마시대 이전에는 팔레스타인 전역에
몇 안 되는 커다란 도시였다.
아얄론 골짜기와 소렉 골짜기 사이
가나안인의 중요 도시였다.
여호수아가 진멸했다.
다윗이 이곳까지 블레셋인을 쫓아갔다.
애굽왕 바로가 솔로몬왕에게 준 후 솔로몬이 건축했다.
일명 벧호론이다.
고라신
화산암지대로 흑색이며,
저주의 분위기를 잘 보여 준다.
요단강 서쪽 갈릴리 해 북쪽에 있는 성읍이다.
성경에 두 번 언급된 곳으로 예수님이 전도하시고
이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믿지 않으므로 책망하신 곳이다.
골란
므낫세의 성읍으로 요단강 동편 3도피성 중의 하나이다.
레위지파 게르손 자손에게 주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즉 6일 전쟁 시
시리아의 영토였던 골란고원 2/3를 점령했다.
그 후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의 영토로 남게 되었다.
시리아는 골란고원을 되찾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으나
끝내 실패하였다.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휴전 이후 유엔 평화유지군이
현지에서 휴전을 감시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1981년 골란고원을 정식으로 합병했지만
유엔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골란고원은 60km 떨어진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관측할 수 있다.
그랄
가사의 남쪽과 지중해 가까이에 있는
가나안의 남쪽 경계선의 서남쪽에 위치한 도시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기근을 피하여 머물기도 하였다.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보증해 주는 아비멜렉과
동맹을 하기도 했다.
그리심산
사마리아인들의 예배 중심지다.
하나님은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의 6지파를 그리심산에 세우고 축복했다.
에발산은 메말라 나무가 없고,
그리심산에는 수목이 울창했다.
기럇여아림
예루살렘 서북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유다 지파에게 준 땅이며
바알레 유다라고도 했다.
블레셋이 하나님의 법궤를
기럇여아림으로 보냈다(사무엘상 6:1-18).
다윗왕은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서
20년간 머물던 법궤를
다윗성으로 가져오려고 한다.
그런데 수송하는 일을 맡았던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소들이 뛰므로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는데
죽임을 당한다.
결국 기럇여아림 오벧에돔의 집에서 법궤를
석 달 모셨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셨다.
(사무엘하 6:10-12 역대상 13:9-14)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를 들여다보다가
70명이 죽자 회개하지 않고
섬기기 어렵다고 하여
다시 아비나답의 집으로 돌려보냈다.
기브아
예루살렘으로부터 벧엘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사울의 고향이다.
옛적에 성소가 있던 곳이므로
하나님의 기브아라 했다.
사사시대에 성별해야 할 레위인이
첩을 두었는데 간음하다가 도망간 첩을
친정에서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기브아에 머물렀다가 불량배들에게
윤간을 당했다.
첩은 죽었고 레위인은 첩의 시체를
12토막 내어서 12지파에 보낸다.
이 일로 베냐민 지파에게
불량배를 내어 놓으라고 했으나
오히려 그들을 옹호하며 거부하게 되고
이 일로 베냐민 지파의 남자 600명만 남고
모두 죽게 된다.
그러자 베냐민 지파의 씨를 말리지 않기 위해
야베스 길르앗 족속을 침략하여
처녀를 구해 온다.
기브온
히위 족속의 성읍이다.
언덕 위의 북쪽은 현재의 마을이고
남쪽은 고대의 유적이다.
솔로몬은 즉위 후에
기브온의 성소에서 봉헌하고.
꿈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열왕기상 3:4-15).
석회암층이 아름다운 단구 위에 마을이 있다.
(1) 여호수아가 아모리 족속과 싸울 때
이 성 위에서 해를 머물게 하고
싸워 이겼다(여호수아 10:12-14,
이사야 28:)
(2) 사울이 이 성 사람을 많이 죽인 까닭에
3년간 기근이 있으므로 기브온 사람들이
다윗왕의 허락을 받아 사울의 자손 7명을
죽였다(사무엘하 21:1-6).
(3) 다윗이 제사장 사독으로 이곳 성막에서
매일 번제를 드리게 했다(역대상 16:39).
(4) 솔로몬이 이곳에서 번제를 드릴 때
하나님이 지혜, 부귀, 장수함을 주셨다
(열왕기상 3:4-10).
기손강
다볼산에서 발원하여 지중해로 흘러가는
길이 40km 정도의 강이다.
이곳에서 시스라가 바락에게 패배했다.
바알의 선지자가 엘리야에게 죽었다.
겨울 강우기에는 물이 범람하여
여행인의 통행이 불편했다.
길르앗 라못
도피성 중의 한 곳이다.
솔로몬의 대관 장소였다.
이스라엘과 수리아의 싸움은
이 도시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솔로몬왕에 의해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열왕기상 4:13).
이후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200여 년이 넘도록
전투가 벌어졌다.
아합의 부친 오므리가
아람왕 벤하닷 1세에게 빼앗겼었다.
그러나 이곳은 아합이
벤하닷 2세와의 2차 전투에서 승리한 후
되돌려 받기로 약속받았었다.
하지만 아람왕 벤하닷 2세가
이곳을 반환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었기 때문에 아합이 무력으로
정복하기로 결심했다.
아합이 이곳 정복에 집착했던 이유는
이곳이 평상시에는 무역의 중심지로,
전시에는 전략적 요충지로
매우 중요한 성읍이었기 때문이다(열왕기하 9:14).
아합 왕은 이곳을 점령하기 위하여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연합하여
전투를 하다가 전사하였다(열왕기상 22:1-12,
역대하 18:2-27).
길보아
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 있다.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했다.
깁브돈
본래 단 지파의 영토(여호수아 19:44)로
레위 자손에게 주었으나(여호수아 21:23)
후에 블레셋에게 빼앗긴 것을
나답이 탈환하였다.
신하의 모반으로
재차 블레셋의 소유가 되었고
25년 후에 오므리가
재탈환하였다(열왕기상 16:17).
깃다임
‘두 포도즙틀’이라는 뜻이다.
브에롯 사람들이 사울왕의 박해를 피해 도망친
베냐민지파의 마을(사무엘하 4:3)이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베냐민지파 사람들이
정착한 성읍 중 하나였다(느헤미야 11:31-33).
나사렛
나사렛은 갈릴리 산간 지방에 속하며
산들이 둘러 서 있는 산간의 분지로
해발 약 375m이다.
현재는 아랍인이 사는 동네로
기독교인과 이슬람교인들이 섞여 살고 있으며,
유대인은 산등성이에 새로이 정착하여
천사 가브리엘이 수태고지한 곳에서 살고 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를 미워하여
절벽에 떨어뜨리려고 했다.
예수님은 30년간 나사렛에서 거주했다.
오랫동안 복음을 전파했으나
도리어 두 차례나 배척 당하셨다.
오늘날에는 기독교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 되었다.
나인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곳이다.
느보
느보성은 르우벤지파가 건설했다.
해발 835m의 느보산은 모세가 죽은 곳이다.
느보산은 높이 805m로서
모세는 자신이 죽기 전에
이 산에 올라가서 가나안을
내려다보았다.
다메섹
현재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이다.
다메섹은 3면이 산악으로 둘러싸인
685m 높이의 평지에 위치해 있다.
아모리족속이 살았다.
바울이 아나니아를 만나 눈을 뜬
직가 거리가 있다.
본래는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아람의 수도였지만,
BC 732년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당했다가
BC 64년부터는 로마제국이 지배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240km나
떨어져 있다.
그러나 오래 전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어온 까닭에
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했다.
다메섹은 바울이 회심한 곳이다.
동문 근처에 아나니아의 집터가 있다.
다볼
이스르엘 골짜기 가운데 북동쪽 산에
위치해 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이 길로 돌아갔다.
일명 변화산이라고 하는 이곳은
이스라엘의 사사들 및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선지자 드보라와 바락은
이곳에서 가나안 야빈왕의 군대를
물리쳤다.
단
북쪽 경계지방에 있던 성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할 초기에
단 지파가 점령했다.
여로보암이 이곳에 금송아지 제단을 세웠다.
데가볼리
한 지역이 아니라 팔레스틴에 나뉘어 있는
그리스식의 10개 도시가 연합한 것을 의미한다.
갈릴리 동방 요단강 좌우에 있는 지방으로
10성읍이었던 것이 지금은 다메섹만 존재한다.
도단
야곱의 아들들이 양을 치던 곳으로
요셉이 형제들에게 붙잡혀 팔렸다.
엘리사가 살던 곳이다.
돌
지중해 해변항구 갈멜산 남쪽의 요새화된
성이다.
가나안의 한 성읍으로 12왕의 연합군이
여호수아를 대적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도우심으로 전멸되었다.
아셀 지파에 속하였다가 므낫세 지파에게 주었다.
두로
여호수아가 아셀 지파에게 나누어 주었으나
방비가 견고함으로 취하지 못했다.
공업과 학술이 발달된 곳으로
다윗과 솔로몬 궁전을 지을 때
건축 재료와 기술자를 여기서 구해 왔다.
예수님이 그 성에 가셨을 때 가나안 여인의
독실한 신앙을 보시고 그 딸을 치유하셨다.
바울이 7일간 유하며 전도하는 중에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권고하였으나
작별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
드빌
현재 두 곳 모두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위치로
추측하고 있다.
1)갓 족속의 성읍이었다.
2)유다 산지에 있던 성읍이었다.
3)아낙 사람이 살고 있었다.
4)애굽왕 시삭에게 파괴되었고(B.C.918년),
앗수르의 산헤립에게도 침공을
받았다(B.C.701년).
최후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파괴되었다(B.C.587년).
5)염색공업의 중심지였다.
디본
사해 동쪽 21km 지점에 있다.
모압의 성읍인데 시혼에게 점령당하였고
후에 갓 지파에게 분급되었으므로
디본 갓이라 불렀으나(민수기 33:45)
후에 다시 모압에게 귀속되었다.
이스라엘 왕 오므리는
디본을 처음으로 점령하였으나
모압 왕 메사에게 다시 빼앗겼다.
이러한 사정은 1868년 디본에서 발굴된
메사의 비문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메사는 자기를 디본 사람이라고 칭하고 있다.
디베랴
갈릴리 호수 서안에 있는 도시로
현재는 티베리아스로 불린다.
주후 20년경에 헤롯 안티파스가 세운 곳인데
당시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디베랴라는 이름을 붙였고
호수도 디베랴 호수라 불린다.
딤나
유대 산지의 성읍이다(여호수아 15:57).
유다는 양털을 깎을 때 이곳을 방문했다.
그때 며느리 다말이 창녀로 변장하고
있다가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하여 동침하니
베레스와 세라 쌍둥이를 낳았다(창세기 38:12-14).
이것이 계대결혼이다.
다말은 이스라엘 집을 세운 어미라는
칭찬과 영광을 얻은 여인이 되었고,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다.
라기스
쉐펠라(평지)에 위치한
다섯 개의 골짜기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해 있다.
드넓은 남방지역과 해안 평야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라기스 골짜기는
완만한 경사지를 이루며
산악지역으로 올라간다.
가나안의 한 성읍으로 여호수아가 점령하여
유다지파에게 주었다.
다윗이나 솔로몬 시대에는 언급이 없다.
르호보암이 견고한 요새로 지켰다.
유다의 아마샤왕이 피살된 곳이다.
앗수르왕 산헤립이 포위하여
히스기야에게 조공 받을 것을 조약했고
느부갓네살이 점령하여 불살랐다.
라마
베냐민 북쪽 성읍이다.
요셉과 베냐민의 어머니 라헬이 자식을 위하여
애통해 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는 상황을 예레미야가 표현한 것이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잡혀 가다가 풀려난 후
묵시를 받은 곳이다.
여사사 드보라와 사무엘의 고향이다.
사무엘의 무덤이 있다.
랍바
암몬족속의 도시로 오늘날의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과 동일시되는 곳이다.
다윗이 정복하고 암몬족속을 지배했다.
헬레니즘 때는 빌라델비아로,
로마시대 이후부터는 암만으로 불렸다.
다윗의 용사 우리야가 이 성을 공격하다가 죽었다.
룻다
욥바에서 동남쪽 약 18km 지점으로
구약에는 롯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베냐민의 성읍이다.
베드로가 애니아의 중풍병을 고쳤다.
마레사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할 때
마레사를 유다지파에게
할당했다(여호수아 15:44).
마레사는 솔로몬의 아들이며
분열왕국 남 유다의 초대 왕 르호보암이
요새화한 성읍 중 하나이다(역대하 11:8).
유다 왕 아사 때 구스(오늘날의 에티오피아)의
세라가 군사 백만 명과 병거 300대를 이끌고
마레사로 쳐들어왔다.
아사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도움을 청하자
하나님은 구스 사람을 치셨다(역대하 4:9-12).
마레사 출신 선지자 엘리에셀은
남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사악한 북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동맹을 맺은 것에 대해서
비난했다(역대하 20:37).
또한 선지자 미가는 마레사의 파멸을
예언했다(미가 1:15).
결국 기원전 6세기
바벨론 느부갓네살의 공격으로
마레사는 종말을 고했다.
마하나임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도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으로 오던 도중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던 곳이다.
레위인의 성읍이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왕국의 도성이다.
압살롬 반란 시 다윗의 근거지였다.
막달라
막달라는 갈릴리호수 서안에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의 고향이다.
메롬
여호수아가 북부 가나안 연합군을 격파한 곳이다.
모압
모압계곡 사해 동쪽이며
요단 동편에 있는 고원지대이다.
전체적으로는 롯의 아들 모압 후손의 거주지였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당시에는 큰 세력을 이루었다.
모세는 모압을 치지 않았으나 모압왕은 발람을
이스라엘 진중에 보내어 저주했다.
모압인은 10대 후손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회중에
드는 것이 금지되었다.
요단을 건너기 전 마지막 진 쳤던 곳이
모압 평지에 있는 싯딤이었는데
모압과 미디안 사람들의 딸들이
이스라엘을 타락하게 했다.
사사 시대에 모압왕 에글론이 침입하여
18년간 다스리다가 왼손잡이 에훗에게 죽었다.
모압 여인 룻의 고향이다.
므깃도
애굽에서 다메섹으로 통하는 통로로서
나사렛으로부터 18km 지점에 있으며
많은 전쟁을 치른 지역이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으로부터 빼앗아
므낫세에게 주었다.
가나안이 차지하고 있다가 솔로몬시대에
이스라엘 영토가 되었다.
동서남북을 서로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으므로 중요한 곳이다.
제국들의 군대는 이곳을 통과하여 지나갔고,
가나안 땅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전투가
가장 많이 벌어졌던 곳이다.
솔로몬왕은 므깃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곳을 강화시켰고, 이 지역의 행정적 중심지로 만들었다.
BC 923년경 애굽의 시삭이 므깃도를 파괴하였고
아합왕 때 재건되었다.
요시아왕은 북진하는 애굽 군대와 싸우다가 전사했다.
미스바
베냐민 지파에 속한 곳이었다.
사무엘도 여러 차례 이곳에 들렀고
미스바 성회를 개최했다.
아사왕이 성의 방위를 튼튼히 했다.
믹마스
요나단이 책략을 써서 블레셋 군대를 패주시킨 곳이다.
사울이 진을 쳤으나 블레셋 사람에게 패전했다.
학자들은 믹마스 전투를 가장 생동적이고
역동적인 전쟁으로 꼽는다.
바산
땅이 비옥하여 목축에 알 맞는 곳이다.
바산왕 옥이 모세의 백성과 싸워 패했다.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베다니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의 동네로
나사로를 살리신 곳이다.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대접을 받으실 때
어떤 여인이 향유를 부었다.
베들레헴
집이란 뜻의 "벧트"와 떡이란 뜻의 "레헴"이 합해져
"떡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예루살렘 남서쪽 약 10km 지점에 있다.
예수의 탄생지이다.
사사시대에는 미가의 집으로
미가서에는 '에브라다'라고 불렸다.
룻의 시아버지와 보아스의 고향이다.
르호보암이 예루살렘 방어를 위해
이곳을 요새화했다.
미가 선지자는 이곳에서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베레아
‘요단 저편’이란 뜻이다.
헤롯 대왕이 통치한 왕국의 일부인
트랜스 요르단 지역의 땅을 말한다.
트렌스 요르단은 ‘요단 동편’을 의미한다.
BC 4년 헤롯 대왕이 죽자
그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헤롯 안디바)가
이곳과 갈릴리를 물려받았다.
요한이 베레아의 한 성읍인 베다니에서
세례를 베풀었다(요한복음 1:28).
베레아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마지막으로 가셨던 길에
위치해 있어서 그 중요성을 갖는다.
벧산
블레셋 사람들은 길보아 전투 후에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신을
이곳에서 성벽에 못 박았다
벧세메스
아이셈스(태양의 샘). 사마슈(태양신) 숭배가
팔레스틴에서 행하여진 곳이다.
블레셋인들은 눈물을 흘리는 암소 두 마리에
법궤를 실어 보냈고 번제물로 바쳐졌다.
블레셋이 기럇여아림에 돌려보낸 법궤를
벧세메스 사람들이 들여다보다가
70명이 죽었다.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이 유다왕 아마샤를
사로잡은 곳이다.
벧엘
라기스보다 먼저 이스라엘에게 점령되었으며
본래 이름은 루스다.
야곱이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의 집’이라 명명했다.
야곱의 가정이 환난을 겪고
세겜을 떠나 벧엘에서 제단을 쌓으며
엘 벧엘이라 하고 돌기둥을 세웠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과 함께 있던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축복을 확증 받았다.
아브라함이 여기에서 천막을 치고
첫 제단을 쌓았다.
길갈에 있던 법궤를 여기로 옮기고
성소로 삼았다.
여사사 드보라가 살며 재판했다.
늙은 선지자 사무엘이 해마다 순행을 했다.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 대항하여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제단을 세웠다.
벧호론
에브라임의 딸 세에라가 세운 곳이다.
솔로몬이 요새를 만들었다.
애굽왕 시삭이 이 길로 침입했고
마카비 시대에는 수리아 대장의 군대를
격파하기도 했다.
5년 후에는 로마 군대를 대파했다.
베냐민 에브라임 경계이다.
벳새다
‘고기잡이의 집’이라는 뜻이다.
제자 빌립, 안드레, 베드로의 출신지이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셨다.
이곳에서 맹인을 고치셨다.
화가 있을 것을 예언하셨다.
브누엘
얍복강 상류 숙곳 동쪽이다.
군사상 중요한 지점으로 나루터이므로
수비하는 망대가 있었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이 성 사람에게 떡을 구하였다가
거절을 당하고 이기고 돌아 올 때에
그 망대를 헐고 그 성 사람들을 죽였다.
브니엘
브니엘(Peniel)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다' 는 뜻이다.
성경에 야곱이 천사에게 축복을 받기 위해
밤이 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하고,
축복해 주지 않으면
가지 못 하게 하겠다고 매달려
결국 천사를 이겨 축복을 받아낸 곳이
브니엘이다.
브솔
팔레스틴 남단에 있는 시내로서
가사 남쪽을 거쳐 지중해로 들어간다.
사울이 아멜렉을 칠 때 건넌 곳이다.
아멜렉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다윗의 두 처를 잡아 갔으므로
다윗이 용사 4백 명을 거느리고 추격을 할 때에
이 시내를 건너가 모든 것을 다시 찾고
돌아와서 피곤하여 남겨 두었던 2백 명을 만났다.
아멜렉은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가
그의 첩 딤나를 통해 얻은 아들이다.
브엘세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이 상당기간 체류한 곳이며
아비멜렉왕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보증한다는 맹세를 한 곳이다.
후에 이삭이 살았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14살 차이다.
이삭이 우물을 파고 세바라고 부른 곳이다.
중요한 성소로 하갈, 이삭, 야곱,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신 곳이다.
사론
지중해 동쪽 연안 욥바로부터 갈멜산까지
이르는 사이에 펼쳐진 평야로서 농업,
특히 오렌지 등의 감귤류 농사에 최적지다.
북부 지방은 상수리나무 숲이 우거진 곳이다.
남부 지방은 비옥한 농경지. 다윗의 목장이 있었다.
사마리아성
세겜 즉 나블러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15Km 지점에 있는 곳으로
히브리어로 숄론(Shomron)이라 하고
아랍인들은 세바스티예라고 한다.
고대 북 이스라엘의 수도로 사방이
계곡으로 둘러싸인 해발 440m의 완만한 산이다.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BC 876년에 북이스라엘의 오므리왕은
디르사에서 수도를 이곳으로 옮겼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왕이 발전시켰으나
앗수르의 침입으로 사마리아성은 함락되었다.
앗수르왕은 많은 사마리아인들을
다른 곳으로 추방하고
시리아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이민족들을 데려와 정착시켰다.
이후 사마리아인들은 이민족들과 피가 섞여
혼합인종이 되었고 그들의 종교 역시 이민족들이 들여온
이방신들 때문에 혼합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사마리아는 앗수르에 뒤이어 차례로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세겜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처음으로 멈춘 곳이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귀환하던 중 하나님과 약속한 대로
벧엘로 가서 거주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세겜성 앞에서 장막을 쳤고 단을 쌓았다.
야곱의 딸 디나가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유괴되어
강간당했다.
도피성 중의 하나이다.
북쪽 10지파들이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여
분열왕조를 만든 곳이다.
현재 750명의 사마리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요셉의 무덤이 있다.
쉐펠라
히브리어 쉐펠라는 ‘낮은 땅’ 이라는 뜻이다.
유다 산지와 블레셋 평야 사이에 위치해 있다.
43km X 16km 넓이다.
쉐펠라 구릉지대는 서부평야와
동부 산간지 사이의 중간지대로서
산지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블레셋인에 대한 최전방 방어선이었다.
역시 블레셋인들은 이곳이 유다의 정복에 대한
방어의 제일선이었다.
이 지대에는 계곡이 45개에 달한다.
그중 중요한 계곡은 척추의 갈비뼈 모양의 능선이
형성되어 북으로부터 아얄론 골짜기, 소렉 골짜기,
엘라 골짜기, 구부린 골짜기, 라기스 골짜기의
다섯 골짜기가 있다.
소고
‘가시 많은 곳’이라는 뜻을 가졌다.
아둘람과 아세가 사이 유다의 한 성읍이다.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먼저 이곳에 모여 에베스담엠에
진을 치고 싸우다가 그 대장 골리앗이
다윗의 물맷돌에 맞아 죽었다.
솔로몬 왕궁에 식물을 공급하는 곳으로
베헤셋이 주관하였다.
르호보암 시대에 국방성으로 삼았다.
아하스왕 때 블레셋이 다시 취하였다.
소알
요단평지에 있는 도시로서 원명은 벨라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롯이 잠시 피난한 곳이다.
롯의 동굴이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비스가산 위에 올라오게 하여
가나안 사방을 보이실 때 마지막으로 이 성까지 보이셨다.
수넴
길보아 전쟁 전에 블레셋 군대의 진지다.
다윗왕의 말년에 시중을 든 여자 아비삭의 고향이다.
엘리사를 위한 방과 물품을 준비한 여인이
아들을 낳았다.
그 후 죽었던 아이를 다시 살리고
7년간 흉년으로 인해
블레셋에 가서 있는 동안에 잃었던 재산을
회복하여 주었다.
숙곳
헤스본왕 시혼의 영토였으나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온 후에는 갓 자손의 땅이 되었다.
기드온이 적군을 추격하여 이곳까지 이르렀다.
부근에 솔로몬의 주조소(주물공장)가 존재했다.
시글락
네게브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시므온 지파에게 준 땅인데 후에 유다지파에 속했다.
사울왕 시대에는 블레셋 군대에게 점령되어 있었다.
사울의 손을 피해 달아난 다윗이 거기 피신했다.
실로
BC 12~11세기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지파 동맹의
중요 성지였던 가나안의 도시였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한 뒤
성막과 언약궤를 보관하는 곳이었으나
에벤에셀(위치를 알 수 없음)에서
블레셋인들과 싸울 때
언약궤를 빼앗긴 BC 1,050년경 이후
곧 파괴되었다.
실로암
옛 이름은 실로아 또는 셀라이다.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는 못으로서
히스기야왕이 앗수르의 산헤립의 공격에 대비하여
기혼의 샘으로부터 성내에 있는 실로암못까지
지하도를 뚫어서 물을 끌어왔다.
예수님이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눈에 진흙과
침을 뱉어 발라준 후 가서 씻으라고 했다.
아다마
‘붉은 땅’이라는 뜻으로 갈릴리바다 북서쪽 5km지점이다.
납달리지파에게 속한 성읍중의 하나이다.
아둘람
가나안 31개의 성 중의 하나로 유다지파의 소유였다.
부근에 회석벽의 굴이 많아 다윗이 사울왕을 피하여
이 굴에 숨었을 때 그의 친구와 가족들이 찾아왔다.
다윗의 용사 3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베들레헴 우물물을 길어왔다.
아랏
헤브론 남쪽 27km 지점에 있는 네겝 지방의 성읍이다.
가나안의 31왕국 중의 하나였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네겝에 있는
가나안 족속 아랏 왕의 공격을 받았으며,
1차 전투 때 패배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간구하였을 때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셨으며,
그 결과로 이스라엘은 2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
아랏 성읍을 멸하고 호르마라 불렀다(민수기 21:1-3; 33:40).
아로엘
사해 동쪽 약 22km 지점 아르논강변에 있는 지역인데
아몰왕 시혼이 치리하는 곳이었다.
후에 르우벤 지파의 거주지가 되었으며
지금은 폐허가 되었으나 옛 우물이 남아 있다.
시혼의 아모리 왕국의 남쪽 한계 지점을 가리켰는데
이후 모세에게 점령되었다.
브엘세바 동남쪽 약 19km 지점의
네겝 지방의 성읍으로 현재 길벳 아라레로 알려졌다.
다윗은 전리품의 일부를 아로엘 족속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로엘 사람 호담의 두 아들이 다윗의 용사이다.
아르논강
아라비아산에서 발원하여
모압과 아몰 사이를 흘러 사해로 들어가는
현재의 모압강이다.
중동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한다.
모압왕 발락이 이 강가에까지 가서
거짓선지자 발람을 영접했다.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 달라고 하는
발락의 요청을 받았으나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을 막아서는 것을 나귀가 보고
사람의 말로 책망한다.
그러나 발람 자신은 여호와의 사자를 보지 못한다.
아벡
이스라엘 군사가 블레셋과 전투를 벌이다가
4천 명이 죽었다.
헤스론에 가까운 곳으로 가나안 왕이 살던 땅이다.
예루살렘 서북 50km 지점으로 블레셋 사람이
진을 쳤던 곳이다.
아벨므홀라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선지자 엘리사의 고향이다.
아세가
유대 서남부에 있는 성읍으로 베들레헴에서
27km 지점에 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에서 가나안족속을
이곳까지 추격하였다.
다윗이 이곳에서 블레셋의 골리앗을 죽였다.
소고, 엘라 골짜기다.
르호보암이 이 성을 굳게 하여 요새지로 삼았다.
바벨론 군대와 치열한 접전 끝에 함락되었다.
바벨론에서 귀환 후 다시 이곳에 거주하였다.
아셀
아셀 지파의 거주지다.
이스라엘의 서북편 지중해변 기름진 곳이다.
토지가 비옥하고 경치가 아름다우며
남방에는 갈멜산이 있고 지중해 변에는 두로항이 있다.
아스글론
고대 가나안족속의 성읍이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고,
유다지파에게 분배했으며,
BC 12세기경 해양민족 블레셋인이 몰려와 정착하고
이스라엘군과 빈번히 충돌을 일으켰다.
블레셋인이 번영함에 따라
지중해 연안에 가사, 아스돗, 에글론, 가드,
아스글론의 5대 성읍이 형성되었는데,
그 중에서 이곳이 상업도시로 가장 번창했다.
삼손이 30명을 쳐 죽인 도시다.
헤롯왕의 고향이기도 하다.
아스돗
신약시대 이름은 아소도이다.
유다 지파가 여호수아에게서 분배받았다.
엘리 제사장 때 아스돗은 완전히 블레셋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는데 블레셋 군대는 이스라엘 군대를
쳐부수고 그들의 언약궤를 가져다가 놓았다.
아얄론
여호수아의 승리의 노래 중에
달이 아얄론 골짜기 위에 머물렀다.
나중에 유다지파에 속하여 있는 중에
르호보암이 요새지로 삼았다.
여호수아가 점령한 후에도 아모리 족속이 거주했다.
사울시대에는 요나단이 블레셋인을 이곳까지 추격했다.
아하스 시대에는 블레셋에게 빼앗겼다.
기브온의 산당에서 내려 다 보인다.
아이
벧엘의 동남 3km 지점에 있어 가나안의 요새였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들어가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장막을 쳤다.
아간의 범죄로 아이성 전투에서 실패했다.
이사야 시대에 재건하였고
후에 앗수르 군대의 침입을 당했다.
악고
베니게의 항구로서 갈멜산 북쪽 6km 지점
지중해에 붙어 있다.
신약시대에는 돌레마이라 하여
바울이 최후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이곳에서 하루 유숙했다.
여호수아가 점령하지 못한 도시였다.
본래 이 도시는 페니키아의 도시로서
두로, 시돈과 더불어 해상 활동의 중심지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이 도시는
그의 후계자인 프톨레미에 의해 통치되면서
프톨레미(돌레마이)라 부르게 되었다.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성도들과 교제한 곳이다.
안디바드리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의 군용도로였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자
로마병사들이 바울을 데리고
밤에 가이사랴로 갈 때에 이곳을 통과했다.
암몬
랍바는 옛 암몬족속의 도시로
오늘날의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과 동일시했다.
다윗도 랍바를 정복하고
암몬족속을 지배하였었다.
산지는 주로 해발 900m 이상 되는데,
이러한 고산 지대는 겨울철에 풍부한 습기로 인해
포도와 농사에도 적절할 뿐만 아니라,
좋은 목초지를 형성하여 목축에도 적합하다.
야르뭇
비람이 통치하던 성읍으로
기브온을 치기 위한 동맹에 가담한 곳이다.
여호수아가 이 곳 왕을 살해했다.
정복 후 유다지파에 할당했다.
얍복강
갈릴리와 사해 사이의 요단 건너편의 강으로
130km의 길이의 강이며 야르묵강 다음으로
가장 잘 배수되는 지역을 내포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건넌 강이다.
야곱이 밧단아람을 떠나 세겜으로 갈 때에
천사와 씨름한 곳이다.
브니엘, 마하나임이 있다.
얍복강과 요단강이 만나는 곳이 숙곳이다.
에글론
블레셋의 5대 도시 중 하나인데
지중해 연안에서 동쪽 14km 지점이다.
여호수아는 유다 지파에게 주었으나
후에 단 지파의 소유가 되었다.
스바냐는 에글론이 뽑혀버리리라고 예언했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에돔
에서의 자손이다.
후에 호리족속이 입주하는 것을
주전 13세기에 에돔인이 그들을 멸하고
나라를 세웠다는 사실이
최근에 고고학적 발견으로 밝혀졌다.
이스라엘과는 혈통관계가 있으나
출애굽 시에 통과를 불허했다.
다윗 때에 한 번 정복되었고
다시 반역할 때 아마샤가 정복했다.
예루살렘 멸망 시에는 적에게 가담하여
유다의 성읍들을 점령했다.
에발산
‘저주산’으로 알려진 이 산은 높이 920m이다.
에발산은 벗은 산이다,
반면에 그리심산은 수목이 무성했다.
여호수아는 율법을 거역한 자에게 저주를 하게하고
여호와께 큰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다.
그리심산과 에발산 가운데에 세겜이 위치했다.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했다.
에브라임
에브라임 산지로 바알 하솔 남쪽,
예루살렘 북쪽 20km 지점에 있다.
에브라임은 애굽에서 출생한 요셉의
차자이지만 12지파에 참예시키기 위하여
축복할 때 조부 야곱은 그의 형 므낫세보다
앞세우려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왼손을 므낫세의 머리에 얹고 축복했다.
여호수아, 드보라, 압돈, 사무엘 출신 지파가 거주했다.
엔게디
주위에 종려나무와 포도원의 고벨화가 유명했다.
고벨화는 엔게디에서만 발견된다.
모압인과 암몬인이 여호사밧을 치려다가
세일산인을 친 후 피차 살육하여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세일산은 에서자손이 500년간 산 곳이다.
엠마오
‘따뜻한 샘’이라는 뜻이다.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32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마을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셨다.
여리고
구약시대의 여리고
여리고에서 2km 지점에 길갈이 있다.
여리고는 출애굽시의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첫 번째 함락시킨 비옥한 도시였다.
후에 베냐민 족속의 소유지가 되었다.
사사시대에 모압왕 에글론은 이곳을 점령했다.
유다 최후의 왕인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에게 쫓겨
이곳까지 왔었으나 여기서 잡혀 바벨론으로 연행되었다.
신약시대의 여리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러 번 이곳을 지나셨고 삭개오를 만나셨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무대다.
현재의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암만에 이르는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염해(사해)
이스라엘 내륙의 중남부 지역에 있는 호수다.
성경의 인물들은 염해, 아라바의 바다, 동해,
바다라고 불렀다.
해저 392m이다.
염분 함유량은 25%로서 보통 다른 바다의 5배가
넘는다.
현재 아라비아 말로는 ‘롯의 바다’라고 불리며
사해라는 이름은 2세기경 헬라인들이 만든 이름이다.
요르단과 이스라엘 국경에 걸쳐 있으며,
북쪽으로부터 요르단 강이 흘러든다.
지구에서 가장 낮은 수역을 형성한다.
사막 한가운데 있어 강우량이 적고 불규칙하며,
겨울에는 기후가 온화하고 쾌적하다.
황화수소와 고농도 마그네슘, 칼륨, 염소, 브롬 등이
함유되어 있으며 보다 깊은 곳에서는
염화나트륨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바닥으로 침전된다.
사해의 짠물은 밀도가 높아 사람의 몸이
위로 쉽게 떠오른다.
고농도 염분 때문에 세균을 제외하고는
어떤 생물도 살지 못한다.
예루살렘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의 경계선상에 있으며
지중해 헤브론 요단강 사마리아로 접경을 삼고 있다.
여부스 별명으로 오홀리바라 하고
시온성, 다윗성, 하나님의 성, 거룩한 성,
아리엘이라 불린다.
고대 가나안 사람의 수도였으나 다윗이 점령했다.
아모스와 호세아를 제외한 모든 선지자들의
활동무대였으며 구약성경 대부분이 여기서
기록되었다.
AD 70년 타이러스가 예루살렘을 함락시켰고
AD 136년 하드리안 황제 때 재건되었었다가
AD 637년 칼리프 오말에게 점령되었고
이슬람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AD 1099년 십자군이 점령하였고
AD 1517년 영국 알렌비 장군의 연합군이
터키군을 물리치고 점령하기까지
터키 수중에 있었다.
AD 1920년 국제 연맹의 결의에 따라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다가
제2차 대전 이후에 독립했다.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구시가지와 동예루살렘은 트란스요르단에,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 분할되었다가
1967년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이후,
예루살렘을 수도라고 주장하는 이스라엘과
인근 아랍계 국가 사이에 분쟁이 지속되어 왔다.
왕의 대로
왕이 다닌 길이 아니라 왕이 통치하던 길이라는 뜻이다.
에시온게벨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모압을 통과하고
거기서 시혼왕의 아모리 땅을 지나
암몬 왕국의 변경과 접하고 옥(바산) 왕국을 지나
아람 혹은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커스까지
군사의 이동과 무역의 통로로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이용되고 있다.
요단강
북쪽 레바논산 헐몬산을 수원으로 하여
팔레스틴을 세로로 갈라 남쪽 사해로 흐른다.
시발점에서 사해까지 약 900미터나 낮아지므로
중간에 급류가 많아 폭포 비슷한 급류가 27개소가 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건넜다.
엘리야 엘리사의 사건이 있었다.
나아만이 나병을 고친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욕느암
가나안의 한 성읍이었는데 여호수아가 취하여
스불론 지파에게 주었고 레위인의 거주지가 되었다.
욥바
솔로몬이 성전 건축에 사용한 레바논의 백향목을
뗏목으로 이 항구에 운반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사방으로 퍼지자
욥바는 기독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베드로가 이곳에서 이방인 전도를 시작하여
도르가를 살렸다.
베드로가 피장이 시몬의 집에 있을 때
고넬료의 하인들이 찾아왔다.
이블르암
‘백성의 멸망’이라는 뜻이다.
므낫세 지파에게 분배하였으나
원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동거했다.
아하시야가 예후를 피하여 병거를 타고 도망하다가
칼에 맞아 상처를 입고 므깃도에서 죽었다.
이스르엘
다윗의 아내들 중에서 아히노암이
이곳 출신이다.
잇사갈 지파의 경계선이 있던
길보아산 근처의 도성이다.
이스르엘 도성에서 이스르엘 계곡과
요르단 계곡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아합의 궁전이 여기에 있었고,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났다(열왕기상 21장).
예후의 추종자들은 이세벨은 물론 아합의 통치에 관여했던
모든 사람들을 이곳에서 죽였다.
므깃도는 이스르엘 골짜기의 한 성읍이다.
이곳에서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16:16)
하로셋
하로셋은 ‘이방인의 직공’을 의미한다.
가나안왕 야빈의 휘하 장수 시스라의 거주지로써
에스드라 엘론 평원의 서단에 있어
전략상 중요한 땅이다.
하롯
기드온이 미디안을 야습하기 전에
진 쳤던 곳이다.
부근에 있는 우물의 이름이다.
바위틈에서 솟아나와
직경 20미터의 못을 이루고
동으로 흘러 요단강으로 들어간다.
하솔
팔레스틴 북쪽에 있던 가나안 사람의 왕
야빈의 수도였다.
납달리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
사사시대에 이르러 다시 가나안 사람들 손에 들어갔다가
여사사 드보라와 사사 바락에 의하여 멸망했다.
후에 솔로몬이 여기에 요새를 만들었으나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에게 빼앗겼으며
백성들은 앗수르로 끌려갔다.
하솔은 갈릴리 북쪽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여호수아 시대에 “모든 왕국들의 우두머리”역할을 했다.
하솔은 이스라엘 최대의 텔(Tell)로서
200에이커에 달하며 21개의 층이 쌓여있다.
이스라엘이 거주한 후에 하솔은 요새화된 도시였다.
사사시대에 하솔의 가나안 왕 야빈이 도읍하여
2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다(사사기 4:2-3).
헤르몬산
레바논과 시리아의 국경지대에 놓여 있다.
팔레스틴의 북방 안지레바논 산맥의 남단에 있는
최고봉으로 높이 2,850m이다.
팔레스틴 전토를 내려다 볼 수 있고 만년설이 있다.
요단강의 여러 지류는 이 산에서 발원한다.
시돈인은 이 산을 시론이라 하고
아모리인은 스닐이라고 불렀다.
예수님이 변화하신 산을 높은 산이라 하였으므로
이 산으로 추측하여 변화산이라 불렀다.
헤브론
세계에서 제일 먼저 건설한 도시 중의 하나이며
애굽의 유명한 소안보다도 7년이나 먼저 건설되었고
당시의 주민은 아낙 자손이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30km 거리에 있으며
해발 930m에 달한다.
6도피성 중의 하나이다.
유대인의 거룩한 성이며 옛 이름은 기럇아르바이다.
이곳에 있는 막벨라굴은 사라,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
레아, 야곱 등을 장사한 곳이다.
여호수아가 이 성을 취하여 일부는 갈렙에게
일부는 레위지파의 아들 아론에게 주었다.
다윗은 즉위하여 이곳을 수도로 정하고 통치했다.
모세가 보낸 정탐꾼이 헤브론에 있는 에스골 골짜기에서
포도를 따서 돌아왔다.
헤스본
아모리왕 시혼 나라의 수도이다.
요단강 하류의 동편 25km, 높이 895m에 있어
하부 요단 평원을 잘 내려다 볼 수 있다.
모세가 이 성을 취하여 르우벤 지파에게 주니
북방 갓 지파와의 경계의 요새지로 삼았다가
레위 자손에게 빼앗겼다.
이 옛터 동편계곡에 있는 못이 아가서 노래에
올라 있다.
<사도바울의 전도여행 성서지리 해설>
갈라디아
소아시아 중앙의 고원에 있는 도시다.
바울이 1,2,3차 전도여행을 할 때
매번 들러 전도한 곳이다.
베드로도 이곳 교회에 서신을 보냈다.
갈라디아 지방은 옛 지명으로
아시아 지역과 갑바도기아 지역 사이에 위치하던
터키 중부 지방을 가리킨다.
고린도
그리스 반도와 대륙을 연결하는 지협 남단이다.
겐그레아 항구와 로마의 레기온 항구를
연결하고 지중해의 동서를 연결하는
지형으로 상업과 물질적 번영을 누린 도시요,
잡다한 인종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어
동서 문화와 종교가 혼합되어 있었다.
바울이 2년을 전도하여 교회를 설립했다.
골로새
소아시아 남서부 라오디게아 동쪽
부루기아도리고 강변에 위치해 있다.
골로새교회는 에바브라가 설립하고
교인 중에는 빌레몬, 오네시모, 아킵보 등이 있다.
구레네
아프리카 북쪽 연안 그리스 도시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위치는 미상이다.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간 시몬의 고향이다.
구브로(키프로스)
바울의 제1차 선교 여행의 첫 기착지다.
바울과 바나바, 그의 조카 마가 요한은
실루기아로 내려가 거기서 배를 타고
구브로(Cyprus)를 향해 떠났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었다(사도행전 4:36).
구브로는 길이가 225km, 폭이 100km에 달하는
섬이다.
유럽최초의 문명 발상지다.
지금은 터키령과 그리스령으로 나뉘어 있다.
겐그레아
고린도에서 동편으로 11.2km에 있는 항구의 이름이다.
바울이 서원이 있어 단발한 후 에베소로 건너갔다.
바울이 이곳 일꾼 뵈뵈를 추천했다.
니고볼리
아가야 서북 해안 마게도냐에 있는 성이었다.
바울이 헬라인 헌신자 디도에게 만나고자 한 곳이며
겨울을 보낸 곳이다.
다소
사도 바울의 고향이다.
로마시대에는 유명한 키케로가
총독으로 지낼 만큼 로마의 중요한 도시이자
상당히 큰 문화도시였다.
키드누스강 옆의 길리기아 평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내륙으로 약 16km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데살로니가
아테네 다음으로 큰 그리스 제2의 도시이다.
자유시로서 시장이 모든 일을 처리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얼마동안 전도하였고
빌립보교우들이 몇 차례 비용을 보내 왔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핍박함으로
베뢰아로 피난했다.
바울의 동역자요 평신도인 아리스다고의 고향이다.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충동으로
원형극장에 끌려가 많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전승에 의하면 그림자처럼 바울을 따라다니던
아리스다고는 로마감옥에서 바울보다
먼저 순교했다고 한다.
두아디라
빌립보의 여성도 옷감 자주장사 루디아의 고향이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의 하나다.
음행, 간음, 사탄의 깊은 것이라 하여
심하게 책망을 받았다.
타락한 여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드로아
사도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남쪽으로 40km떨어진 앗소까지 걸어갔다.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2차 전도여행 중
아시아로 가려했으나 꿈에 마케도니아 사람의 호소를 듣고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 지역으로 행선지를 돌렸다.
사도바울의 강론 중에 죽은 유두고라는 청년을
살린 곳이다.
더베
소아시아 루가오니아의 도성이다.
제1차 전도여행 시 더베까지 왔다가 되돌아갔다.
라오디게아
소아시아 부루기아의 수도이며
골로새에서 서쪽으로 16마일,
에베소에서180km 떨어진 지점이다.
근처의 히에라볼리에서 흘러내리는 온천물이
이곳에서 만나기 때문에 질병치료에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귓병을 치료하는 특효약과 콜로니온이라 불리는
안약의 산지로 유명하여 의료도시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요한이 묵시를 받아 근방 여섯 교회와 같이 권면했다.
로도
‘장미꽃’이라는 뜻이다.
수리아나 애굽에서 로마로 항해하는 도중에
들리는 중요한 도시였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드로아에서 가이사랴로 여행하는 도중에
이 항구에 들렀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거상이 있었다.
루스드라
이고니온 남서쪽 32km 지점에 있었다.
1차 전도여행 때, 바나바와 바울이
발을 못 쓰는 사람을 일으키자
사람들이 바울은 헤르메스신,
바나바는 제우스신으로 여겨 제사를 드리려 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선동하여 바울을 돌로 쳐 성 밖에 내쳤다.
2차 전도여행 때 바울은 디모데를 얻었다.
디모데의 모친과 외조모가 예수를 영접했을 때
함께 예수를 믿게 되었다.
무라
소아시아 남쪽에 있었던 루기아 지역이다.
대도시로 알려졌고 고대 저술가들은
무라를 '가장 훌륭하고 찬란한 도시'라고 묘사했다.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에 들렀던 곳이다.
신약시대의 몇 개의 교회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밀레도
바울은 밀레도의 장로들에게 약탈하는 무리들인
이리떼로부터 그들의 양을 지키는 목자들처럼
신자들을 돌보라고 했다.
옛날 아니오니아국의 수도였는데
에베소 다음으로 번화한 곳이었다.
바보
구브로 서남쪽에 있는 항구 도시의 이름으로
역사적으로 구(舊)바보와 신(神)바보로 구분되었다.
구바보는 로마시대에 구브로섬의 수도였던
신바보 동남방 약 16km 지점에 있다.
신바보는 로마가 BC 58년에 구브로를 병합한 후에
바보의 항구도시로 성장했다.
BC 15년 지진으로 도시는 붕괴되었으며
황제가 보내준 기금으로 재건했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
바 예수를 꾸짖고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전도했다.
밧모
로마제국시대에 이 밧모 섬은
종교, 정치범을 귀양 보냈던 유배지였다.
사도 요한은 도미티아누스황제 때
유배 와서 약 18개월 동안 살다가
네르바 황제 때에 풀려나 에베소로 갔다.
밧모 섬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밤빌리아
소아시아 남쪽 해안 지방이다.
루기아와 길리기아 사이에 있다.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전도여행을
구브로에서 버가로 다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갔다.
밤빌리아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
오순절에 참예했다.
버가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당시 들렀던 곳이다.
이곳에서 전도여행에 함께 하던 마가가 돌아갔다.
버가모
소아시아 7교회의 하나가 있는 곳이었다.
로마지배 하에 아시아 전체를 통치하기 위하여
설치된 총독부가 있을 만큼 정치, 행정의 중심지였다.
20만 권의 장서를 가진 대규모 도서관이 있는
문화의 도시였다.
우상숭배 신전들이 가득했다.
베뢰아
데살로니가 서편 18마일 지점 마게도냐의 남서쪽 도시다.
제2차 전도여행 때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가르쳤다.
베뢰아 교인들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
후에 바울의 동반자가 된 소바더의 고향이다.
보디올
‘작은 우물’ ‘광물 샘’이라는 뜻이다.
나폴리 서쪽 11km 지점이다.
원래는 희랍의 식민지였고
이름도 디케알키아라 불렀는데
로마인들이 개칭했다.
열방 제국과의 교통 주요도시였다.
이탈리아의 항구로 바울은 이곳에 상륙했다.
본도
소아시아 북부 흑해에 연한 험준한 지방이었다.
본래는 독립국이었으나
오랫동안 로마 제국과의 항쟁 끝에
BC 66년 로마 대장 봄베에게
정복을 당하였고 그 후 터키의 영토가 되었다.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오순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가
성령강림을 목격하고 돌아가서 교회를 설립하였는데
그중에는 바울의 동역자인 브리스길라의 남편
아굴라가 있다.
베드로가 이 지방에 헤어져 있는 유대인에게
서신을 보냈다.
비두니아
부르기아 북쪽에 있는 지방이다.
베드로가 서신을 보낸 곳이다.
AD 325년에 감독 장로 318인이
공의회로 모여 신경을 작성했다.
바울이 이곳에서 전도하려 하였으나
성령이 허락지 않으셔서 마게도냐로 건너갔다.
빌라델비아
사데에서 4km 동쪽의 소아시아 루디아 성읍이다.
소아시아 고원지대와 서머나 사이의
중요한 산업도시였다.
BC 138년 이전에 버가모왕 아탈저스빌라델버스가 세웠고
언제 교회가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계시록에는 일곱 교회의 하나로 나타난다.
일찍이 순교자가 생겼고 AD 1,300년 이후
대감독 구역이 되었다.
빌립보
바울과 실라의 2차 전도여행 시 유럽의 첫 전도지였다.
자주장사 루디아가 살았다.
바울과 실라가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냈다.
주인의 고소로 매를 맞고 옥에 갇혔으나
기도하고 찬송할 때 지진이 나고
자결하려는 간수를 전도했다.
이곳 교인들은 바울을 대단히 존경하였으며
바울에게 받은 신앙을 감사하면서
마게도냐를 떠날 때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여러 차례 도왔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에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위문품을 보냈으므로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감사의 서신을 보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교회 성도로서 심부름을 하다가
풍토병에 걸려 죽어가다가 다시 살아났다.
주후 117년 안디옥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로마로 순교하러 가는 길에 빌립보에서 후대를 받았다.
사데
험준한 산을 배경으로 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부유한 상업도시로 직물, 귀금속 생산 및
사금이 유명하였으며 인류 최초로 금화를 만든 곳이다.
다산과 풍요의 여신 아데미 신전이 있었고
부도덕한 제사의식을 거행했다.
서머나
서머나는 에베소 다음 가는 부유하고 번영한
항구 도시였다.
일찍부터 많은 유대인들이 정착하고 살았는데
로마정부와 결탁하여 기독교를 핍박했다.
서머나 교회는 콘스탄틴 황제가
최초로 종교의 자유를 합법적으로 공인한
밀란 칙령을 반포한 A.D.313년까지
혹독한 핍박을 받았다.
빌라델비아교회와 함께 책망을 받지 않고,
위로와 권고를 받았다.
살라미
지중해 동부에 있는 구브로섬 동쪽 끝에 위치한 항구이며
구브로섬의 수도로서 상업 도시였다.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 당시
이곳 유대인 거리에서 전도했다.
이곳에 첫 발을 디딘 이유는
(1) 유대인이 많음 (2) 바나바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헤롯왕이 이곳에서 구리를 채광했기 때문에
유대인이 이곳에 많이 정착했다.
전설에 의하면 바나바가 이곳에서 전도하다가
유대인의 폭동으로 순교하였다고 한다.
수라구사
시칠리아 섬 동부 해안에 있는 항구 도시이다.
지금의 이탈리아 지명은 시라쿠사이다.
시라쿠사의 카타콤에 바울이 사흘 머무르는 동안
제단을 쌓고 복음을 전파했다는 장소와 돌 제단이 있다.
바울이 로마로 호송되는 항해 중에 들렸던 항구다.
시실리섬의 항구도시로서 BC 8세기경부터 개항했다.
실루기아
지중해에 들어가는 아론드강 북안에 있는 항구다.
바울과 바나바가 제2차 전도여행 시에
이곳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갔다.
지금은 옛터만 남아 있는데 두 돌기둥이 있어
하나는 바울의 기둥, 하나는 바나바의 기둥이라 전해진다.
구브로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고
유대인의 회당도 있었다.
아가야
현재 그리스의 암반부로 예수 당시에는
로마가 점령하여 고린도를 수도로 삼고
갈리오 총독이 치리했다.
스데바나의 고향이다.
그는 첫 회심자였고, 바울에게 충성하여
위로와 기쁨이 되었다.
고린도교회에서 칭찬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이곳 성도들이 마게도냐인과 연보하여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구제했다.
아드라뭇데노
서해안 앗소에서 동쪽으로
24마일 되는 곳에 있는 항구였다.
‘죽음의 계곡’이라는 뜻이다.
바울이 로마 여행 시에 가이사랴에서
이곳 배를 타고 출발했다.
아드라못데노의 배는
주로 해변을 중심으로 항해했다.
백부장 율리오를 비롯하여 276명이 승선했다.
아볼로니아
마게도냐의 마을이다.
엑나티아 가도에 인접해 있고 암비볼리에서 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이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시 이곳을 통과했다.
바울이 설교한 바위가 있다.
아테네
옛적부터 헬라국의 제일 유명한 성이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시에 우상숭배가 심하여
알지 못하는 신의 단까지 있었다.
매일 거리에서 유대인 헬라인을 막론하여
변론하고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쟁론하고 아레오바고에서 부활의 진리를 전하매
관원인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자들이 믿었다.
안디옥
AD 47-55년에 사도 바울이 전도했다.
바울과 바나바가 회당에서 말씀을 강론하며 전도했지만,
유대인의 심한 반대에 직면했다.
예수 당시에는 로마 제3의 도시였고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에
성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이곳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이방 교회의 시초가 된 곳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했다.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구제사역을 시작했다.
글라우디오황제 때의 기근에서 예루살렘 교회에
구호금을 보낼 만큼 성장했다.
AD 110년경에 요한의 제자로 유명한 익나시우스가
40년간 복음운동에 충성하다가 순교했다.
알렉산드리아
BC 332년에 알렉산더대왕이 세운 희랍의 도시였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는 희랍어를 쓰는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었으며 또한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가
여기서 초기의 신약 본문을 편집했다.
고린도에서 전도 받은 아볼로의 출신지였다.
바울과는 깊은 교제를 나누었다.
통상의 요지였고 여기서 로마로 곡물이 수출되었다.
에베소
로마의 행정, 교통의 중심지이며
아시아 7교회 중의 하나가 있었던 곳이다.
밧모 섬으로 가는 항구가 있는 도시였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시 이 성에서 전도했다.
3차 전도여행 때는 마술을 행하던 자들의 책
은 5만 어치를 소각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과 사냥, 야생동물, 처녀성의 여신이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디아나와 동일 시 된다.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난 아폴로와는 남매지간이다.
올림포스의 12신의 두 번째 세대에 속한다.
AD 64년 사도바울이 순교하자,
요한이 에베소의 지도자가 되었다.
디모데, 아굴라, 브리스길라, 아볼로, 두기고 등이
이곳 교회의 교역자였다.
세례 요한의 제자 오네시모, 알렉산더,
에베드리오, 스게와의 아들 후메내오,
부겔로, 허머네게 등의 고향이다.
후메내오와 부겔로는
잘못된 가르침을 따른
바울의 배반자들이다.
이고니온
바울이 1차 전도여행 시 많은 성도를 얻고
이적과 기사를 많이 행하였으나
완악한 유대인들이 관원과 이방인을 선동하여
능욕하고 돌로 치려하여 루가오니아 지방으로 피신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시 이 성과 루스드라에서
칭찬을 듣는 디모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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