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들메길 *참가인원 :7명
*걷기시간 10시10분~19시40분 약9시간 30여분 *약44,897보 거리약33.63km 약9시간 30여분
*코스:홍지문~인왕산~창의문~북악산(백악산)~숙정문~성북동(점심식사)~혜화문~낙산~흥인지문 (동대문)~광희문~남소문터~남산(목멱산)~숭례문~
소덕문터(서소문)~돈의문터~(삼성서울병원정문)
서울 한양도성[사적 제10호]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태조 5년(1396),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숙정문 · 흥인지문 · 숭례문 · 돈의문이며 4소문은 서북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창의문 · 혜화문 · 광희문 · 소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남쪽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한양도성은 순성길을 따라 하루에 돌아볼 수 있지만, 내사산을 중심으로 한
백악·낙산·남산(목멱산)·인왕산 구간과 도성이 멸실된 흥인지문·숭례문 구간 등
6구간으로 나누어 걷기를 추천한다. (한양도성 안내에서 옮김)
길 건너 상명대학교.가 있는 세검정삼거리.쾌청하게 맑은 가을 날씨 산오르기 딱~좋은날씨
위 사진의 조형물 있고
이곳에서 7명이서로인사를 나누고 어라연님의 안내에따라 즐거운마음으로
홍지문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3호.이 성은 1719년 (숙종45년)에 쌓은 것으로 ,한양의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
홍는동과 북악터널로 이어지는도로옆 위치에 홍지문은 도로의 먼지에 숨이막힐걷
같아보이며 훼손되나 되지 않는지 관리는 잘되고있는지 또 비가많이내려 홍수가나면~~
괜한 걱정을
1921년 홍수로인해 홍지문과 오간수 대간문이 무너져 복원되었다고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성벽을 따라 산길로접어든다
성벽을 따라 오르며 뒤돌아본 구기동 평창동 일대와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보수공사중인 성벽계단을 오르고
인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쪽 풍경 : 바로 앞에 인왕산 기차바위, 그 너머 세검정, 평창동,
맨뒤 흐릿한 능선이 북한산 비봉능선이고,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윤동주시인의 언덕 정자앞
창의문(자하문) = 북소문
자하문 이라고도 하며 서울의 4대 소문에 속한다고 하여서 북소문 이라고도 한다.
2015년 12월 2일 문화재청이 보물 1881호로 지정하였다. 북문 으로도 불린다.
1396년(태조 5) 서울 성곽을 쌓을 때 세운 사소문 의 하나로 창건되어 창의문이란
문명 을 얻었고. 북한·양주 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였으나 1416년(태종 16) 풍수지리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이 곳의 통행이 왕조에 불리하다 하여 폐문한 채 일반의 통행이
금지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다시 열어놓았다. 1623년 인조반정 때는 능양군을 비롯한
의군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에 들어가 반정에 성공한 유서 깊은 곳~
군사지역이라 입구부터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는데 뭐 이상한물건 이나 그런 거 안 갖여오면
신경 필요 없습니다.
아래에서 신청서 작성 후 바로 앞에 보이는 안내소로 들어가 신분증 확인 후 패찰을 받아
목에 걸고 입장하면 됩니다. 패찰 목걸이 색이 입장 안내소에 따라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주민증 제시는 그냥형식적인듯 기록하는 주소가틀려도 아무런 제지도 없이 통과 시간낭비에
주민증이 없어 패찰을 받을수없어 함께오르지못하는 님들도 있었으니
밤나무에 밤은 짤아도 붉게 익어가는 밤이 벌어져있었으니 성벽애 철조망에걸려 그림에 떡
이제 저 돌고래 쉼터를 지나면 본격 급경사가 시작되는데 북한산깔딱고개 와 비슷한 경사가
계속 이어지니 서두를필요없이 천천히 올라가시는 게 좋을듯
다만 경사는 급해도 보시다시피 제법 부드러운 재질의 계단으로 쭉 이어져 서두르지않고
천천히 오른다면 무름관절에 무리는 없을듯싶기도
할딱거렸던 모습은 온데간데 반갑다 백악산아 밝은 모습으로 정상 등극 !!해발 342m
백악산 정상 표지석) 경복궁의 주산인 백악산 정상입니다. 바로 아래에 청와대와
경복궁이 내려다 보입니다.지금은 북악산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1968년 1.21일 북한의 124부대 김신조외 무장공비30명과치열한 전투끝에 이 소나무에
5발의 총탄자국이 남아1.21사태 소나무 ~~~
숙정문~조선 시대 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의 닫혀 있었고 이름도 다른 사대문들은
인의예지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여기만 쓰지 않는 약간 외톨이 같은 문이에요.
이제 저 위의 사진을 찍은 지점에서 뒤돌면 아래와 같이 하산 코스가 나오는데
숙정문 안내소로 이어집니다.
성벽을 따라 계속땀흘리며 걷다보니 말바위 안내소 실내에 비치된 스템프에 도장을찍고
와룡공원 정자 성벽을 따라 갑니다 산수유가 붉게 익어가고 있네요
성벽이 끊겨있고 도로에 붉은 색으로 성벽표시로 되어있는데 연결되어있었으면 참 좋을텐데
서울왕 돈까스
돈까스 로 다소늦은 점심식사를마치고 골목길로 들어선다 혜화문으로의 가는길세수대야만한 접시세수대야만한 접시에 큼직한 고기가 나와 성벽을 오르기전 몸보신하기에 좋다.에 큼직한 고기가 나와 성벽을 오르기전 몸보신하기에 좋다.
경신고등학교 뒷길에서 혜화문까지 이어지는 골목길.다양한꽃길이 눈요깃거리로 좋았지만
성벽이 심하게 훼손되어 군데군데 흔적만 남은 길이다. 경신고등학교 뒷길 초입에서는
성벽이 학교 담장으로 쓰인다. 경신중 · 고등학교를 지나면 ‘ㄱ자’ 모양으로 꺾인 주택 담장
아래에서 축대로 사용된 성돌들을 볼 수 있다. 이어지는 혜성교회 계단 길 양쪽에도 성벽의
일부가 남아있다. 끊어지고 이어지기를 반복하던 한양도성의 흔적은 100m 정도
자취를 완전히 감추었다가 두산빌라 건물 앞에서 다시 나타난다. 여기에서부터 구 서울시
장공관 담장까지 150m 가량 성벽이 이어진다.
동소문의 원래 이름은 혜화문으로 1992년 복원되었습니다.
혜화문 (동소문)
1397년(태조 5) 도성을 에워싸는 성곽을 쌓을 때 도성의 북동방에 설치한 문으로
동소문이라고도 한다. 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이 설치되었는데, 이 문은
동문과 북문 사이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이라 하였다가 1483년
(성종 4)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라고 정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년(중종 6) 혜화로 고쳤다.
낙산공원가는길은 혜화문을 내려와 큰 도로를 건너야 한다건너편에서 바라본 혜화문
장수마을
낙산공원 동남쪽 성벽을 끼고 있는 작은 마을로 한국전쟁 후에 형성된 판자촌에서 .
60세 이상의 노인 거주 인구가 많아 장수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뉴타운 예정지였으나
주민투표로 뉴타운 재개발을 중단하고 마을재생 사업을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그 후 주민들이
직접 집을 단장하고 골목길을 정비하여 지금처럼 산뜻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변하였고.
주민 참여형 마을재생사업으로 유지되고있다고
낙산공원에서 성곽을 끼고 내리막으로 가면 흥인문으로 연결되고 창신동으로 내려가는길에
이화벽화마을이있다 골목길시리즈로 점 찍어둔 곳인데
웬 횡재!!오늘은 성곽길 이니 벽화마을사진은
북산3
드뎌 흥인지문 도착
옛날엔 놀이를할때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열두 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
어릴쩍 불러보았음직한 ㅎㅎ~~
사대문과 사소문은 모두 세 글자로 되어 있는데왜 이 문만 네 글자인 흥인지문이라
이름 지었을까?이 문을 네 글자로 지은 것은 풍수지리에 따르면 남, 서, 북 모두
지(地)의 기세가 있는데 유독 동쪽만 지(地)의 기세가 부족하단다.까닭에 지(地)의 음을
따서'지'(之)자를 덧붙였다는 것.잊지말자 !!!흥인문 아니다
흥인지문 ^
오간수문 터와 이간수문
<사적 제461호(오간수문 터)> 흥인지문과 광희문 사이에는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이 있었다
. 이 부근은 서울에서 가장 지대가 낮아서 내사산에서 내려온 물이 모두 이곳을 거쳐 도성
밖으로 흘러나갔다. 성벽이 청계천을 만나는 위치에는 수문들이 이어져 있었다.
동대문운동장 관중석 밑에 매몰되어 있다가 발굴된 이간수문은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오간수문은 추정 재현되어 있다. 다만 오간수문이 있던 자리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광희문(시구문) 예전에 도성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이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답니다.
신당동쪽이 공동묘지??? 그래서 무당집이 많았는지도....
광희문 성벽을 따라 장충동 주택가로 들어서면 한양도성은 다시 자취를 감춘다.
1930년대에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이 일대에 문화주택 단지를 조성하면서 한양도성의 상당
부분을 훼손했으며, 해방 후 1960~70년대에 신축된 주택들도 성벽을 파괴하였다.
현재 성돌은 주택의 담장이나 축대로 사용되고 대부분흔적이없다
장충체육관
이 현대식 건물로 말끔하게 새단장을 했군요. 장충체육관 입니다. 1963년 개관된
장충체육관은 2015년 1월 리모델링으로 그역사가 아름답다 동대입구역으로서 이곳에서
뒷편으로 이동 성곽길을 걷기시작합니다
약수동 성곽마루 정자... 한강 관악산 쪽으로도 북한산 쪽으로도 남북으로 전망이 다 좋습니다.
1973년 7월 완공 신축한 국립극장, 1974년 815경축사에 육영수여사 저격사건이 있었던 장소
해오름극장(대극장), 달오름극장(소극장), 별오름극장, 하늘극장
(원형 야외무대) 등이 있다.국립극장 정문앞을 지나 갑니다.
남산으로 올라가는 성벽 600계단이 넘는 남산 성곽길 출발점 입니다. 계단을오르면서
앞~~뒤로남산 동쪽 나무계단길
태조 시기의 성벽은 축성된 지 이미 600여 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초축 당시의 모습을
유지한 성벽이 상당 부분 남아 있다. 특히 남산의 동쪽 능선을 따라 조성된 나무계단길
옆에 태조 때 성벽이 길게 이어져 있다.
후대로 오면서 계속 정비하고 새로 보수하고 쌓았기 때문에 성돌크기와 축조방식이 다르다고...
N서울타워
남산 정상에 우뚝 솟은 전망 탑으로 해발 480m 높이에서 360도 회전하면서 서울시 전역을
조망할 수 있는 명소이다. 1969년 수도권에 TV와 라디오 전파를 송출하는 종합 전파탑으로
세워졌다가 1980년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이후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 2005년
복합문화공간인 N서울타워로 재탄생하였다. 2층에서는 한양도성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숭례문(崇禮門)
< 국보 제1호> 한양도성의 남대문이자 정문이다. 1395년에 짓기 시작하여 1398년
완공하였고, 1448년에 개축하였다. 1907년 교통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좌우
성벽이 헐린 뒤에는 문화재로만 남았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으나 2008년
2월 화재로 목조인 1층 약 10%, 2층 문루 약 90%가 소실되었다가 2013년 5월
복구되었다. 이때 숭례문 서쪽 16m, 동쪽 53m의 성벽을 연결하였다.
* 숭례문 현판 : 현판의 글씨를 세로로 내려 쓴 이유는 숭례문을 마주하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한 방책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달리 숭례문의 예(禮)가 사람을
바로 세우는 덕목이라서 그랬다는 설도 있다.
소의문(서소문)터 (현 중앙일보 사옥 야외주차장 부근 추정)
강북삼성병원 정문 : 바로 앞 돈의문 터에 돈의문터 스탬프 찍는 것을 여기 설치해 놓았다.
(창문 옆에 있는 나무로 만든 집형태의 시설물로 한양도성길에는 네군데가 있다.
남대문, 돈의문터, 숙정문, 동대문)
일시:2018년 10월9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