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리(文理)가 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말문이 트이다”와 비슷한 개념으로,
‘한문을 스스로 읽고 쓰기가 가능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제가 처음 한문 공부를 시작했을 때, 대한민국에 꼭 한 분이 계셨으며,
일본에 몇 사람, 대만에도 몇몇 학자들이 문리가 트여서, 한문으로 자신의 글을 지을 줄 아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다들 노학자(老學者)들이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더 이상 계승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30대 중후반 경에 문리가 트였습니다. 비록 유려한 문장은 잘 쓰진 못하지만, 한문 문장으로 어떻게 해서라도 글을 지어낼 수는 있습니다. 아마 전 세계에서 이제는 제가 유일한 사람이지 않나 합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아직도 과거제가 있어 과거 시험을 본다면 열이면 열 번 다 낙방(落榜)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니 그보다 과거에 응시하러 갈 수준도 못되는 정도입니다.
옛날 선비들은 한문 공부를 서너 살 경에 시작하고, 과거에는 20살이 넘어서야 응시가 가능했습니다. 물론 10대 초반에 이미 급제하는 천재적인 어른들도 적지 않았습니다만, 통상적으로 문리가 트이는데, 10년 이상은 걸렸습니다.
지금처럼, 국어니 수학이니, 영어니 하는 과목 없이 오로지 ‘글공부’만 하여서 10년이 더 걸렸으니, 한문에 문리 트이기란 정말 어려운 과정입니다.
또 적지 않은 분들이 결국은 글자만 알지 스스로 문장을 쓰지 못하는 수준에서 글공부가 끝나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김삿갓’입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또 별의별 기벽한 글자들을 다 압니다. 그러니까 문리 자체는 트이지 않은 반대급부로 외울 수 있는 글자의 수가 남다르게 많은 겁니다. (김삿갓이 지은 별의별 기벽한 시들은 많지만, 제대로 된 한문 문장을 지었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아버님 고향, 이른바 ‘시골’에 가면, “한자를 만자나 안다”, “옥편 전체를 다 외운다”라고 칭해지는 할아버지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청나라에서 만난 사람 중에 “사서삼경을 줄줄 다 외우지만, 정작 본인의 글은 쓰지 못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몇몇 대학에는 "한문학과"가 있기는 하지만, 그 어떤 한문학박사도 "한문문장"으로 자신의 글을 서술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다 까막눈들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가르치는 교수도 배우는 학생도 다 "까막눈"인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현실입니다.
저는 공자(孔子)도 “까막눈”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이른바 『논어(論語)』는 공자가 직접 저술한 내용은 하나도 안 나오고, 공자가 읊고 다닌 구절들만 후대의 제자들이 다시 엮었다고 합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배우고 때때로 결을 지라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論語)의 첫 문장입니다. 과연 저런 정도의 말을 공자(孔子) 이전에는 아무도 하지 않았을까요? 그냥 저냥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너무 상식적이지 않습니까?
논어의 전체 문장이 다 저 정도의 수준에 머물고 맙니다. 물론 후편에는 공자와 제자들 간의 문답식의 억지로 짜넣은 내용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혀 문투가 달라서 절대로 한 사람이 쓴 책일 수가 없습니다.
공자 역시 까막눈인 상태로 당시에 여기저기서 떠돌고, 또 그 훨씬 이전부터 전해지고 있던 “배움의 말씀”을 읊조린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까막눈이 아니라면, 제가백가들 중에 오로지 공자만이 직접 서술한 문장이 없는 것을 어떻게 설명이 가능하겠습니까?
다만 춘추전국 시대 제자백가들 중에 공자(孔子)가 유일한 한족(漢族)이었기에 한(漢)나라 이후 공자가 정치적으로 부상되었다는 게 저의 주장입니다. 그럼 공자 이외의 제자백가들은 다 어떤 사람들이었겠습니까?
공자와 주희(朱熹)가 가소로워질 때 쯤, 어느날 문득 갑골문자가 제게로 들어왔습니다. 아니, “들어왔다”기 보다는 속에서 “뿜어져 나왔습니다”.
갑골문자의 조형 원리에는 분명, 배달말의 소릿값이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논증을 하기 위하여, 저는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 목적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아니 이제는 이 홍산옥문자도 제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문자학, 언어학은 지극한 논리학의 한 분야입니다. 무척이나 까다롭고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최대의 욕심은 “완벽한 논증”입니다. 근데, 그렇게 글을 쓰면, 일반인은 읽고 이해하기가 절대 불가능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원리를 아무리 완벽하게 논증하더라도, 물리학자가 아닌 일반인은 제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여,
집요할 수 밖에 없는 논증 과정을 과감하게 빼버리고, 보다 재미난 요소들만 간추려서 고대 동북아 지역에 있었던 문자들을 설명해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리학자로서 우주를 시간과 공간의 개념으로 논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옛날에 있었던 "밤하늘 이야기"하는 식으로 문자들을 설명하려 합니다.
재미난 말씀 많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ps. 이 "동북아 문자 이야기" 메뉴의 근본 목적은
함께 하시는 회원분들이 그냥 막연히 저 고대사는 왠지 우리것 같다는 상태에서 벗어나,
"고대 동북아 문명, 혹은 아시아 전체 고대 문명"의 발상지가 "배달겨레"일 수 밖에 없었다는 확신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 확신에 "재미"를 붙여보겠습니다.
첫댓글 선생님 감사합니다 동북아 우리문자.한자가
한글인 만가지이유.그리고.보다 많은 사람들
이 우리역사의 발자취를 .뒤돌아 보는 게시글
이 되기를 기도 하겠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6.17 22:41
화이팅 입니다 동북아문자.처음 듣지만은 기
분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넵 김원장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기뻐 하셨습니다
소리에도 값이 있다는 표현을 김진식 선생님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선생님의 앎을 우리 모든 국민이 알고 깨달아야 겠다는 절실함이 생겼습니다.
그날까지 열심으로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희망 넘치는 글.좋은날 행복합니다
신설 게시판에 대한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리고 존경의 마음 올립니다.
문자를 연구하시는 열정과 노고가 고단하고 외로울텐데 도움이 되고 싶지만 여력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응원 합니다.
사명을 받으시고
이땅에태어나심을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같은분이 우리 곁에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