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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점 36가지와 그 이유
마리아: 기도의 응답자 (Mary: Recipient of Prayer)
카톨릭에서는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우리는 마리아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함으로써
우리가 불쌍한 죄인임을 깨달으며,
또한 지극히 거룩하신 분 즉 '자비의 어머니'께 호소한다.
마리아는 우리가 죽을 때도 함께 계실 것이며,
우리가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시간에
우리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맞아들여
천국에 계신 당신의 아드님 예수께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비는 것이다. (제4편 p.912)
마리아가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가 죽을 때 하나님께 인도 한다는데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다.
이러한 것은 카톨릭이 만든 전통으로
하나님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신다.
예레미아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능력 있는 일들을
네게 보이리라.
기본적으로 기도는 하나님께 직접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이시므로
자식이 부모에게 간청하면 들어 주듯이
하나님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마태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신약시대 이후에는 예수님께 기도해도 동일한 효과를 얻는다.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시므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면
뜻 안에서 시행해 주신다.
20. 마리아: 천지의 여왕(Mary: Queen Over All Things)
카톨릭은 마리아가 죽을 때 예수님이
그녀를 하늘로 끌어 올려 만물의 여왕이란
칭호를 주었다고 주장한다.
마침내 티 없이 깨끗하며,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았던 동정녀 마리아는
지상생활을 마친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을 받아 주님께로부터
천지의 모후(Queen over all things)로 추대받았다. (제1편 p.366)
카톨릭은 드디어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
자리까지 앉히는데, 천국에는 여왕이란 직책 자체가 없다.
예레미아 7/17~18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아스다롯 같은 이방여신을 숭배하며
그녀에게 과자를 만들어 바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사 심판 받은 적이 많다.
카톨릭은 이교도의 우상숭배를 여신의 이름만 바꾸어
그대로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21. 미사 (The Mass)
천주교의 미사는 예배가 아니라 제사의식으로
십자가의 대속을 재현하는 것이다.
십자가 제단 위에서 한 번 당신 자신을 피 흘려 바치신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미사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이 희생제사에
피흘림 없이 계시고, 제헌되신다. (제2편 p.502)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단 한번의 희생제사로
영원토록 효력 있는 속제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히브리서 10/10 그 뜻에 따라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구약시대에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 속제제사를 드렸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단 한 번 자신의 피로
속죄제사를 드려 죄인된 우리를 사셨다.
또한 예수님은 단 한 번 우리를 위해 희생하심으로써
죄인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또 다시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과 같다.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제사와 성찬례
즉 미사라는 희생제사는 유일하고 동일한 제사이다. (제2편 p.502)
천주교는 감히 미사 때 아무 의미 없는
과자 한 조각 먹는 것이 예수님의 거룩한
희생 제사와 같다고 한다.
이는 신성모독적인 의식이며,
예수님의 행적을 평가절하 하는 일이다.
카톨릭은 부와 명예를 거뭐 쥐기 위해
예수님의 영광과 권한을 뺏어
자신들이 차지려는 것이다.
히브리서 9/28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고,
두 번째는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죄 없이 나타나시리라.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한 몸에 받아 멸시와
천대를 받고,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우리 죄에 대한 벌을 대신 받으셨다.
예수님은 처음에는 누추한 인간의 모습으로
어린 속죄 양이 되기 위해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찬란한 본연의 위엄 있는 모습으로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는 자들을 환난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실 것이다.
22. 연옥 (Purgatory)
카톨릭은 사람이 사 후에 영혼이 연옥이라는
곳에 가서 천국 가기 전에 정화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나라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해 죽은 후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제1편 p.389)
성경에 전혀 근거 없는 이러한 교리를 내 세우기 위해
카톨릭은 다음과 같이 변명한다.
교회는 연옥에 관한 신앙 교리를 특히 피렌체 공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정하였다. (제1편p.389)
인간이 모여서 회의로 결정한다고 없는 영계가 갑자기 생기는가?
카톨릭이 이렇게 성경에 근거 없는 교리를
마구 추가하는 이유는 특정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카톨릭 신자가 죽었을 때 신자 가족에게
접근해 연옥에서 정화되어 천국에 이르게 하려면
성당에 많은 기부금을 내 대신 기도하게
해야 한다고 설득해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서다.
로마서 5/9 그러므로 이제 그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더욱 더 우리가 그를 통하여 진노로부터 구원 받게 되리라.
인간은 오직 예수의 보혈로 죄사함 받아 의롭게 된다.
아무리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는 것같이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죽음 뒤에는
그 사람의 믿음과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이이루어 질 것이다.
23. 성인들에게 드리는 기도 (Praying to Saints)
천주교는 천주교가 인정한 성인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우리보다 앞서 하늘나라에 간 증인들 특별히
교회가 '성인'으로 인정하는 이들은 그들의 모범적인 삶과
전해 오는그들의 글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통해서
오늘도 살아 있는 기도의 전통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지상에 남아 있는 이들을 끊임 없이 돌보아 준다.
그들은 주님의 기쁨에 동참함으로써 많은 일을 맡게 되었다.
그들의 중보기도는 하나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그들의 봉사 중 가장 고귀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온 세상을 위해 간구해 주도록
그들에게 기도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한다. (제4편 p.914)
카톨릭은 살아 있을 때 선한 일을 한 사람에 대해
심사를 거쳐 성인(Saint)으로 봉한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을 성도(Saint)라고 한다.
로마서 1/7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Saints)로 부르심을 받은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에베소서 4/11~12 그(그리스도)가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Saint)들을 온전케하며, 섬기는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여
하나님 앞에는 구원 받은 성도와 구원 받지 못한
이방인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 앞에 인간은 모두 미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정한 직분은 큰 의미가 없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모두 귀한 자다.
구원 받은 성도는 자기 기질과 사명에 따라 다른 직분을 맡는데,
이를 통해 스스로 온전해지며, 서로 섬겨주고,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인데
카톨릭은 마리아에 이어 성인도 중보자가 된다고 한다.
또한 마리아에게 하듯이 성인에게도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침이다.
카톨릭은 여신숭배에 이어 다신숭배까지 함으로써
바빌론 종교의 전통을 이어 받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지
절대로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24.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Praying For The Dead)
카톨릭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면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한다.
죽은 이들과의 일치,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의 이 같은
교류를 명백히 인식한 지상 여정의 교회는 그리스도교의 초기부터
대단한 신심으로 죽은 이들을 기억하였다.
죽은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도록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은
장하고도 경건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그들을 도울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한 그들의 중보기도를 효과 있게 할 수도 있다.(제1편 p.364)
여기서 말하는 세가지 사항은 성경과 모순되는데 하나씩 살펴보겠다.
1. 죽은 자가 죄사함을 받도록 간구하는 것은 경건한 생각이다.
성경에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한 예는 한 번도 없다.
죽고 나면 바로 심판이 이루어 지고, 지옥에 간 영혼은
영원히 그 곳에서 나올 수 없는데, 지상에서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 없는 일이다.
기도는 살아 있는 형제의 평안과 구원을 위해 하는 것이다.
2.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이 죄에서 해방되도록 도울 수 있다.
죄에서 해방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받는 길 뿐이다.
법정에서 판결이 내려진 후에는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 없듯이,
심판 후에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 없다.
3. 그들을 위한 기도는 우리를 위한
그들의 중보기도를 효과 있게 할 수 있다.
마리아, 성인에 이어 이제는 죽은 영혼까지
중보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해도 해도 정말 너무 하는 것 아닌가?
여신숭배, 다신숭배에 이어 무당들이나 하는
귀신숭배까지 한가?
지옥에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영혼이 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있겠는가?
마태 28/18 그 후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나에게 주셨도다."
하나님은 구원에 관한 모든 권세를 예수님에게 위임하셨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중보자이며,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에게 충성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다.
어느 누구도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역할을 대신 할 수는 없다.
25. 성상들 (Statues)
카톨릭은 신자들이 마리아나 성인들의 성상(조각)이나
성화(그림)를 공경하도록 명하고 있다.
성당과 집에 있는 성화상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고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 분의 구원사업에 관한 성화상을 우리가
소중히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어머니와 천사와 성인들의 성화상을
소중히 하면서 그 분들을 공경한다. (제2편 p.448)
성당이나 집에 있는 성상이나 성화를 소중히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니!
그럼 창조주 하나님이 성모 마리아의 아들이란 말인가?
여기서 카톨릭이 성모 마리아를 하나님이나 예수님보다 더 높히고 숭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애굽기20/4~5 너는 어떤 새긴 형상도 네게 만들지 말고
또한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너는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지니라.
이는 나 주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
나를 미워하는 자들의 삼사대까지,
그 조상들의 죄악을 그 자손들에게 미치게 하고
하나님은 어떤 형상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명하셨고,
어떤 동식물이나 사람의 형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고하셨다.
이는 다 마귀나 귀신을 섬기는 일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아니니,
사랑의 하나님은 이러한 배은망덕한 행위에대해 질투하시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당대는 물론 후손에까지 미치게 하신다고 하셨다.
요한 4/24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 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in spirit)과 진리(in truth)로 경배드려야 하리라." 고 하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육적으로 형상을 만들어 절하거나,
떡과 고기를 차려 놓는다고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는 영적인 행위(기도, 찬양)와 진리(성경 말씀)로써만
경배드리고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다.
에베소서 5/5 너희가 이것을 알지니 음행하는 자나 욕심 많은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누구든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상속 받을 것이 없노라
사도 바울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이 만든 교리를 중시하고,
우상(마리아, 교황)을 섬기는 카톨릭에서는 구원 받을 수없다.
우상은 단지 형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 위에 있는 너희의 지체를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색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요한 17/10 나의 모든 것은 아버지의 것이오며
또 아버지의 것은 나의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내가 그들 안에서 영화롭게 되었나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믿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면 돈이 우상이요,
하나님보다 애인을 더 사랑하면 애인이 우상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이라 말씀하셨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있으므로
오히려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26. 견진성사 (Confirmation)
천주교는 견진성사가 구원에 필요한 요소이고,
여러 유익을 준다고 한다.
견진성사는 세례성사의 은총을 완성한다.
견진성사는 하나님의 양자로서 더 깊히 뿌리내리게 하고,
그리스도와 더 굳게 결합하며, 교회와 유대를 더욱 튼튼하게 하고,
교회의 사명에 더욱 깊히 참여케 하며,
말과 실천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거하도록 돕는 성사이다. (제2편 p.485)
천주교에서는 세례 받은 후 7년이 지나면
견진성사를 받을 수 있는데,
세례를 통해 맺어진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견진성사를 통해 확고해진다고 믿는다.
견진성사는 주교가 집전해 신자에게 안수하고,
성유를 바르며,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믿게 한다.
그러나 성경에 근거 없이 머리에 기름 바른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확고해지지 않는다.
로마서 8/38 이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능히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할 것이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는 오직 주 예수를 믿고 하나됨으로써
주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확고해 진다.
그 어떤 사탄, 마귀, 권세라 할지라도 온전한
사랑으로 다져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떼어 놓을 수 없다.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져 버리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기 때문이다.
세례성사와 마찬가지로 견진성사도
그리스도인의 영혼에 영적인 표지 즉
지워지지 않는 인호를 새겨 준다. (제2편 p.486)
견진성사로 신자들(세례 받는 자들)은
더욱 완전히 교회에 결합되며 (제2편 p.475)
카톨릭은 견진성사를 받으면 영혼에 구원을
보증하는 표식이 새겨진다고 한다.
그러나 어떠한 행위나 의식도 인간을 의롭게 하지 못하고,
오로지 믿음과 죄사함으로 인한 하나님의 은혜로 의로와 진다.
결국 카톨릭은 견진성사를 통해 신자를 성당 안에
영원히 가둘려는 속셈을 가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27. 고해성사 (Confessing Sins to Priest)
카톨릭은 사제에게 죄를 고백해 죄사함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과 교회와 화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진지하게 양심을 성찰해서 기억해 낸,
아직 고백하지 않은 모든 대죄를 사제에게 고백해야 한다. (제2편 p.544)
교회의 권위자에게 사죄권을 받은 신부들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다. (제2편 p.544)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 직접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가르친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 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우리의 친아버지와 같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보살펴 주시고,
언제든지 주님을 믿고 구원 받기를 원하신다.
그런 하나님 아버지에게 직접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고해성사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가진 죄사함의 권한을
침해하는 월권행위다.
히브리서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로 인하여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나니
우리가 사 후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내가 죄를 짓지 않음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내 죄가 눈보다 더 희게 씻김을 받았기 때문이다.
즉, 죄사함의 주체는 하나님과 예수님이고,
죄사함의 수단은 예수의 보혈이다.
카톨릭의 고해성사는 신자들을 조종하고
재산을 헌납 받기 위해 죄사함의 권한을 하나님으로부터
가로채 자신들이 소유한 것처럼 꾸민 일이다.
28. 대사: 면죄부 (Indulgence)
카톨릭은 신자와 지옥에 있는 자들이 대사(大赦)
즉 면죄부에 의해서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신자들은 대사(大赦)로써 자신들과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죄의 결과인 잠벌 즉 일시적인 벌을 면제 받을 수 있다.(제2편 p.545)
대사란 이미 용서되어 소멸된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일시적인 벌(잠벌)을 하나님 앞에서
면제해 주는 것인데 선한 지향을 가진 신자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교회의 행위를
통해 얻는 것이다. 교회는 구원의 분배자로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보속의 보물을
자신의 권한으로 나누어 주고 적용한다.(제2편 p.539)
카톨릭은 죄에 대한 벌을 자신들이 면제해 줄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막대한 기부금 등을 내었을 때 시행할 것이다.
마치 재판에서 실형을 받았으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과 정죄를 성당에 돈 몇 푼 낸다고 막을 수는 없다.
야고보서 1/15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
로마서 6/23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정은 변호사도 필요 없고,
3심제도 없으며, 죄에 따른 형량도 정해져 있지 않는다.
그 사람의 죄가 있으면 사망이고, 죄가 없으면 생명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크던 작던 몸에 죄가 남아 있으면
영원한 고통인 지옥행이고, 예수의 보혈로 죄사함 받아
몸에 죄가 남아 있지 않으면 영원한 영화와 축복인 천국행을 보장받는다.
에베소서 2/8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선물이고,
그 어떤 행위도 구원을 보장할 수 없다.
또한 인간은 살면서 죄 짓지 않고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스스로 의로울 수 없다.
그럼 죄사함만 받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구원 받는건가?
야고보서 4/17 그러므로 선을 알면서도 행치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 죄가 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시키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이 세상에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마귀 사탄과 싸워 이기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거하고 찬양하며,
전도하고 가르쳐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선한 일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공무원의 직무유기 같은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구원 받은 자의 의로운 행실은 구원을 보장하는 일이 아니라,
의당 해야 할 도리입니다.
29. 성경 해석 (Interpreting God's Word)
카톨릭은 오직 교황과 주교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강요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권위 있게 해석하는 책무는
오직 교회의 교도권 즉 교황과 그의 일치하는
주교들에게만 주어졌다. (제1편 p.46)
천주교는 오직 교회 지도자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으므로,
신자들은 성경을 해석해서는 안되며,
주어진 교리만 신봉해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1229년 발렌시아 공회 때 성경이 평신도들에게 금지되고,
금서 목록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교황청이 신자들이 성경을 읽는 것을 싫어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거짓말이 들통나, 통솔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7/11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고상하여서 전심으로 말씀을 받아 드리고,
그 말들이그런가 하여 매일 성경을 상고하므로
베뢰아 사람들은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매일 성경을 보며 말씀의 진위를 확인하였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매일 보고 익혀서
하나님의 심정과 뜻을 이해해야 한다.
그 어떤 권위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데
걸림돌이 될 수 없다.
요한 16/13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 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그 분은 스스로를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
또 너희에게 다가올 일들을 알려 주시리라.
성경을 읽다 보면 크게 깨우치고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성령이 내게 감동을 주시기 때문이다.
진리의 성령님은 나의 스승이요,
내게 성경을 해석해 주시는 분이다.
구원은 영원한 고통과 저주냐,
영원한 영화와 측복이냐를 가르는 중대한 문제다.
구원은 다시 물를 수도 없는 너무도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누구나 성경을 통해 진리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30. 카톨릭의 기도 (Catholic Prayer)
카톨릭은 자발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금하고
카톨릭의 전통과 형식에 따라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기도는 내적인 충동이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되어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곧 기도하려면 먼저 기도하려는 원의가 있어야 한다. 성서가 기도에 대해서 알려 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니
기도하는 방식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살아 있는 전승인 성전(聖傳)을 통해서
믿고 기도하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신다. (제4편 p903)
천주교는 기도가 자연발생적으로 분출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시편 3/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주께 부르짖으매
그 분께서 자신의 거룩한 산에서 내 말을 들으셨도다. 셀라
다윗은 자신의 의지와 목소리고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응답 받다.
그러나 천주교는 묵주를 가지고 이미 주어진
기도문을 끊임 없이 반복하라고 가르친다.
마태 6/7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헛된 반복을 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로 생각함이라.
예수님이 기도에 대해 가르치면서 이교도들처럼 주문하듯이
헛된 말을 되풀이 하지 말라고 하셨다.
또한 말을 많이 한다고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이 아니니,
필요한 말만 하라고 하셨고, 주 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만약 애인이 옆에서
매일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면 좋겠는가?
하나님도 우리의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어 하지,
녹음기 틀 듯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카톨릭은 또한 성서가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못하니
카톨릭의 전통적인 기도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햐다.
마태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의 구하는 것들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알려지게 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이시므로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다.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장난감 사 달라고 자꾸 조르면 사 주듯이,
하나님도 우리의 간곡한 기도를 들어 주신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알리고 부탁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식을 돌보듯이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것이다.
31. 보속 (Penance)
카톨릭은 죄를 완전히 씻고 벌을 받지 않기 위해
돈을 내고 보속을 받으라고 권장한다.
용서는 죄를 없애 주지만 죄의 결과로 생긴
모든 폐해를 고쳐주지는 못한다.
죄에서 다시 일어선 사람은 완전한 영적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죄를 갚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더 실행해야 한다.
적절한 방법으로 죄를 보상하거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갚음을 보속이라고 부른다. (제2편 p.534)
카톨릭 교인들은 자신의 죄값을 치루고,
완전한 영적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보속을 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성경에 근거 없고,
면죄부와 같이 카톨릭의 또 다른 돈 벌이 수단일 뿐이다.
또한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 죄를
대신한 대속(代贖, expiation)과, 죄인된
우리를 십자가 보혈로 사신 구속(球贖, redemption)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다.
히브리서 10/17~18 또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음이라.
이제 이것들을 용서하신 곳에는 더 이상 속죄제가 없느니라.
성령께서는 십자가 보혈로 우리 죄를 사한 후에는
우리의 크고 작은 죄를 다시는 기억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죄를 완전히 용서받았으므로 더 이상
속죄제나 다른 형식이 필요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카톨릭은 보속을 받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묘사한다.
보속은 기도일 수도 있고, 헌금 자선행위,
자발적인 절제, 희생이 될 수도 있으며,
특히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인내로 받아들이는 일일 수도 있다.
보속을 헌금을 통해 받을 수 있다고 하면
너무 속 보이니까 기도,
선행, 절제, 희생, 고난 등도 함께 제시한다.
그러나 어떠한 선한 행위로도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없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될 수 없음이라.
사도 바울은 사람이 율법이나 의식적인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워진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과 구속을 믿는 것이기도 한다.
어떠한 행위로도 하나님 기준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없으나,
오직 예수님을 믿는 것 하나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으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32. 그리스도를 자칭하는 천주교인 (Catholics represent themselves christ)
카톨릭은 신자가 스스로 구세주 그리스도임을 밝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된 것 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자신이 된 것을 기뻐하고 감사드립니다.(제1편 p.309)
그리스도인이 신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맞으나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그리스도 자체가 되지는 않는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는 뉴에이지적 사고방식이다.
마태 24/5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며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고린도전서 8/6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 분께로부터 났고,
우리도 그 분 안에 있으며, 또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만물이 그 분을 통하여 있고, 우리도 그 분을 통하여 있느니라.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전권을 위임 받은)
그리스도는 오직 한 분 예수님밖에 없다.
예수님은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구원의 문이 되시며,
지옥과 무저갱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
자신도 구원 못하고 늙어 죽게 되어 있는 인간은
감히 그리스도의 자리를 넘볼 수 없다.
스스로 그리스도라 함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일이요,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33. 세례 - 천국의 보증수표
카톨릭은 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면 천국행이 보장된다고 한다.
교회는 영원한 행복에 들기 위한 확실한 보증으로
세례 이외의 다른 방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세례라는 형식을 통해 천국행이 보장된다고
유혹하지만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다.
마가 7/9 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자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쉬버리는도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명보다 자신들이 만든 유전과 전통을
더 따르는 유대 지도자를 비판했다.
세례는 구원 받은 다음 행하는 기념식이지,
구원의 보증이 될 수 없다.
요한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시니라.
고린도후서 13/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
요한 1/12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마태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그 사람이 나의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시니라.
구원을 보증하는 것은 '거듭남'이다.
온전히 거듭나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으면 언제 죽어도
천국행이 보장된다.
거듭나서 주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고,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다.
거듭나 주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요,
주님의 형제가 되었으니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34. 화해 (Reconciliation)
하나님과 화해하게 된 카톨릭 신자는 동시에
카톨릭 교회와도 화해하게 된다고 교리문답서는 주장한다.
죄를 용서받음으로써 하나님과 화해할 뿐아니라
교회와도 화해한다. (제2편 p.535)
이러한 주장은 역으로 교회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좋지 않게 됨을 암시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과의 화해만 강조하지
교회와의 화해는 언급한 적이 없다.
고린도후서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그 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스스로 우리와 화해하셨고,
화해의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골로새서 1/20 그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화평을 이루고,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그에 의하여 모든 것이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라.
화해란 안 좋았던 관계를 좋게하는 것을 말한다.
구약시대에는 화목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좋게 하였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가까워 질 수 있다. 또한 십자가 보혈로 죄를 깨끗이
사함 받음으로써 죄로써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이어져 화해하게 된다.
에베소서 4/15~16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우리가 모든 일에 성장하여 그에게 이르리니 그는 머리시며
곧 그리스도시라. 그로부터 온 몸이 각 부분의 분량 안에서의
효과적인 역사를 따라 각 마디를 통하여 공급을 받아
알맞게 결합되고 체격이 형성되어 몸을 성장시키며
사랑 안에서 몸 자체를 세워 가느니라.
에베소서2/19~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귀중한 모퉁이 돌이되셨고
그분 안에서 건물 전체가 함께 알맞게 맞추어져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 가며 또한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니라.
성경에서 구원과 관련해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한 구절은 없다.
교회는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거듭난 성도의 연합이자,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입니다. 신앙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고, 예수님이 나의 유일한 중보자이며,
성령님은 나의 조력자이십니다. 구원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믿음과 죄사함과 거듭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35. 독신생활 (Celibacy)
카톨릭은 사제와 수녀의 독신생활을 강요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카톨릭의 전통일까?
종신부제들을 제외하고 라틴 교회의 서품 받은
모든 봉사 직무자는 원칙적으로 독신으로 살고,
또 하늘 나라 때문에 독신생활을 계속할 의지를 가진
남성 신자들 가운데서 선발한다.
독신생활은 교회의 봉사 직무자가 봉사하도록
축성된 새로운 삶의 표징이다.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 독신생활은 하나님 나라를
찬란하게 선포하는 것이다. (제3편 p.573)
카톨릭은 사제의 독신생활을 의무요, 축복이니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지도자 중 독신이 의무화된 직분은 없었다.
딤전 3/2 그러므로 감독은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깨어 있으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행실이 바르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는 재능이 있으며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의 직분 중 하나인 감독(Bishops)이
한 아내의 남편이라고 한 점으로 보아
당시 결혼을 금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딤전 3/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을 잘 다스릴지니라.
집사(Deacons) 또한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가정에 충실하라고 권고한다.
히브리서 13/4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것이요.
사도 바울은 결혼이 천하지 않고 존귀한 하나님의 축복이라 한다.
물론 성직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만 섬기고 사랑하기 위해
결혼을 안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이지 강요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사제의 독신 생활을 강요함으로써
미국에서는 사제의 어린이 성추문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스페인과 멕시코의 수녀원에서는 사제들과의 관계로
태어난 아기가 버려져 유기된 지하무덤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순리를 억지로 거스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이다.
마가 1/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었으므로
사람들이 곧 그녀에 관하여 그 분께 아뢰매
천주교가 초대교황이라고 주장하는 사도 베드로는
결혼한 사람으로 성경에 장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전통을 따르면
결국은 폐해를 드러내게 되 있다.
36 마지막 의례: 노자성사 (Last Rites)
마지막으로 살펴 볼 천주교의 교리는 죽기 전 천주교인이
행하는 노자성사다.
그리스도의 파스카 성사로서 성체는
언제나 지상 순례 길의 마지막 성사,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기 위한 노자(路資)성사가
되어야 한다. (제2편 p.552)
마지막 의식은 죽어 가는 사람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이다.
카톨릭은 노자성사가 생명의 씨앗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사람의 전통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들 중 한사람도
노자성사를 받지 않았다.
마태 15/9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니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유대인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이 만든 교리를
중시하는 것을 한탄하셨다.
그리고 사람이 만든 전통대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헛되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내 버리고,
사람이 만든 교리와 의식과 전통을 아무리
열심히 지켜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이상으로 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른 36가지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이 글을 통해 기독교의 교리를 더 확실히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며, 에큐메니컬 운동의 미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천주교에 계신 분은
교리나 전통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시하여 온전한 구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