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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이야기.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어린왕자를 추천해주셨었다. 그 때 해주신 말씀이 인간의 나이별로 어린왕자를 읽었을 때 느낌이 다르다고 했다. 담임선생님은 어린왕자를 유치원 때 읽은 것과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읽은 것은 그다지 와닿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약간 그 의미를 알기 시작하고 대학교 때 조금 더 깊이 있게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고, 30-40대 때 읽었을 때 정말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읽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몇 년 뒤에 중학생 때 한 번 어린왕자를 읽어보았다. 오묘하고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그 이후로 한 3년이 지난 것 같다. 지금은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전부는 아니어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늘어났다고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하나하나 의미를 찾느랴 반정도 밖에 못 읽었다. 그래서 더 읽으면서 추가하고 싶은 감상은 더 추가해보려고 한다!
1. "그 책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보아구렁이는 먹이를 씹지 않고 통째로 집어삼킨다. 그 후 먹이가 소화되는 6개월 동안은 꼼짝 안하고 잠만 잔다."
나는 이 부분에서 사람이 인생에 겪는 갈등의 방법과 같다고 느꼈다. 어쩌면 희생일 수도 있겠다. 어떤 사람은 갈등을 통째로 집어삼키지 않고 나누어서 씹어 먹는다. 또 어떤 사람은 보아구렁이가 먹이를 먹는 것처럼 통째로 집어삼킬 수 있겠다. 심지어 씹지 않고! 나는 사람도 같다고 느꼈다. 먹이를 통째로 삼키는 사람은 6개월동안 꼼짝하지 않고 잠만 잔다. 내 안에서 이 것이 의미하는 것은 혼자서 끙끙 앓는 것이나 또는 통째로 삼켜버렸기 때문에 버거워서 그 충격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내가 추구해야 할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큰 먹이를 통째로 삼켜버리더라도(갈등, 고난, 희생과 같은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잘 소화시킬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6개월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방법일 수 있겠다. 또 내가 추천하는 방법으로는 대화이다. 갈등을 가장 건강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대화다. 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하는 대화보다 더 비중을 두어야 할 점은 '나의 이야기를 그리고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보아구렁이가 먹이를 충분히 씹지 않고 통째로 넘기는 모습처럼 나도 인생 어느 순간에서 버거운 일을 통째로 삼킬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6개월동안 꼼짝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조금씩 나누어서 소화시킬 것인가. 상황마다 행동하는 것이 모두 다르겠지만 나는 방법이 어찌 되었든 결국 그 힘듦을 딛고 일어설 것이다. 나는 보아구렁이 이야기를 읽으며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2.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그 친구의 목소리는 어떠니? 무슨 장난을 제일 좋아하니? 나비를 수집하니?" 이렇게 묻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몸 무게가 얼마냐? 그 애 아버지의 수입은 어느 정도지?" 어른들은 이런 것에만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 어른들은 그렇게 단순하다. 그렇다고 그분들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는 어른들에 대해서 아주 너그러워야한다.
나는 사실 숫자를 좋아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숫자를 좋아하더라도 참는 어른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기에 항상 참고 인내하고 절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가 어른이 되면 내 삶의 뿌리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서 독립을 하고 내 삶을 가꾸어나가겠지만 어렸을 때 내가 영향받은 모든 요소들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그 가치관 안에서 크게 흔들리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 가꾸어진 습관이나 행동방식은 시간이 갈수록 변하지 않게 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헷갈려하던 안녕히 계세요와 안녕히 가세요를 아직까지도 잘 구분이 안된다. 엄마가 아빠가 끊임없이 알려줘도 결국에는 내 무의식에 지배된다. 결국 내 인생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더라도 그 행동 방식은 내 행동범위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숫자로 판단하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럴 때 나는 나의 삶을 되돌아볼 것이다. 과연 사람의 삶이 단지 숫자로 판단될 수 있는가? 숫자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항상 한계점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을 숫자로 바라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바오밥 나무는 아무래도 우리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들을 의미하는 듯 싶다. 책에 나와있는 별을 덮어버린 바오밥나무를 보면서 떠올랐다. 아주 작은 생각이 씨앗이 되었고 그 생각이 너무 우리의 생각을 많이 차지해서 결국에는 우리 무의식을 지배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가벼운 일들을 넘겨버리는 지혜도 필요하다. 너무 나를 힘들게 한다면 과감하게 내쳐야할 때도 있다. 인생에는 찬란과 빛만 있는게 아니다. 어둠과 탐욕이 존재한다. 나는 이것을 너무 오랫동안 내 안에 묶어 둔다면 내가 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근거는, "그런데 어린 왕자의 별에는 무서운 씨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바오밥나무 씨였다. 그 별의 땅이 바오밥나무 씨 투성이었다. 그런데 바오밥나무는 자칫 늦게 손을 대면 영 없애 버릴 수가 없게 된다. 그 놈은 별 전체를 휩싸 버리고 뿌리로 구멍을 파 놓는다. 그리고 별이 너무 작고 바오밥나무가 너무 많으면 별이 터지고 만다."
계속 읽다보니 나는 아직 생각이 다 자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양이 꽃을 먹는 일이 이해가 되지 않고 어린왕자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왕자가 장미꽃을 떠올리면서 그 당시에는 약이 올랐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속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나는 그때 아무것도 이해를 못했어! 그 꽃이 하는 말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하는 일을 보고 판단해야할 걸 그랬어...(생략) 꽃들은 마음에 없는 말을 무척 잘 하거든. 그렇지만 나는 너무 어려서 그 꽃을 사랑할 줄 몰랐어."
이 부분을 읽고 공감했다. 왜냐하면 나도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좁은 시선으로 바라보아서 그 순간에는 감정에 휩쓸리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잘못 짚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대화할 때 내가 포커스를 두어야할 점은 그 부분이 아니었지만, 내가 듣고 싶은 부분만 들으면서 편협한 대화를 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 오해와 예민함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건 최근에 깨달은 건데 나는 이전엔 아주 편견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에 다시 돌이켜보니깐 나는 그런 사람이 못되고, 정말 교만한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듣기에 있어서 좁은 부분에 집중하는 것과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말은 듣기 거북해하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판단하면 기분이 나빴고 그 기분이 태도가 되기도 했다. 물론 앞으로 지금 18살인 나에게 내가 스스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말하는 것은 현재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경청하는 자세도 가져야겠다. 그렇다면 생각의 틀이 끊임없이 확장될 것이다.
정말 감사한 점은 내가 성장하면서 나의 고칠 점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나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부족이 보일 때 고칠 점도 보이고 행동하고 의식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 그래서 사랑을 아직 모르고 나는 인내심을 기를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은 무슨 이유와 사연으로 그런 말을 나에게 했을까?' 를 생각해보는 것이 나에게 주는 미션이다! ----> 생각을 충분히 해보고 정 모르겠다면 그 때 물어보자 '왜 그런 말을 했니? 너의 진솔한 생각이 궁금해' 물어보기 전까지는 깊은 생각의 구덩이가 빠질 뿐이다. 또 이 흐름은 나를 더 괴롭게 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대 자신을 판단하라. 이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로다. 남을 판단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것이니라. 그대가 그대 자신을 잘 판단하게 되면 그대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인 까닭이로다."
남을 정죄해서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의 만족감? 쾌감? 그런 것은 일시적일 뿐이고 시간이 지날 수록 나를 아프게 만든다. 그래서 가장 조심해야할 것은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없을 때 그 사람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나에게 모두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적용할 점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그 판단기준에 나를 올려놓아야한다. 하지만 헷갈리지 않아야할 점은 아무리 내가 그 기준을 충족한다고 해도 다른사람을 판단할 자격은 없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다른 사람이 나를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이다. 나는 담대히 행할 뿐이다. 하지만 피드백에 있어서는 기분이 상하고 좋다기 보다는 감사하고 받아들이는 수용의 자세를 갖자! 또 다른 사람이 나의 행함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상심하지 말 것은 그 것이 내가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물론이지. 내게는 네가 아직 몇천, 몇만 명의 어린이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사내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 네게는 나라는 것이 몇천, 몇만 마리의 평범한 여우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아쉬워질 거야. 내게는 네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될 것이고, 네게는 내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거야."
모든 사람에게 진심을 다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과 일대일로 만날 때 진심을 다한다면 주체와 주체의 만남이 되겠지만 사실 사람은 그 것이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과 주체와 주체의 만남이 되지는 못한다. 나와 나의 만남이 아닌 나와 스쳐지나가는 그 것의 관계일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모든 순간 진정을 담아 이야기 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이 책에 나와 있듯이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다. 사람은 감정에 휘말리기 때문에 나는 모든 순간 진심을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나는 기분이 좋지 않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건성으로 해결하려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도 내 온전한 감정이고 나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이 부분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마음과 마음을 다해 만난다면 서로에게 하나 뿐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상대방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나를 먼저 표현하고 보여주지 않으면 상대방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나치고 싶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말을 할 때도 격려의 말과 북돋는 말 등 사랑의 한 마디를 위해 힘쓸것이다. 물론 내 힘으로 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주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배우는 점도 있고 깨닫는 점도 있는 것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친구가 갖고 싶거든 나를 길들여!" "어떻게 해야 되니?" "아주 참을성이 많아야 해. 처음에는 내게서 좀 떨어져서 그렇게 풀 위에 앉아 있어. 내가 곁눈으로 너를 볼테니 너는 아무말도 하지마. 말은 오해가 생기는 근원이니까. 그러나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앉아도 돼......"
오연준이 위키드에서 부른 바람의 빛깔이라는 포카혼타스 ost를 듣다가 이 가사가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이 부분을 듣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를 사귈 때에 넓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 있을까? 위에 구절에서 나오는 것처럼 '참을성'이 많아야 한다. 사랑은 오래참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한다면 시간을 두고 아무 말 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사람은 오래봐야 비로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그 사람을 처음볼 때와 시간을 오래두고 인내심을 가지며 바라볼 때 똑같이 한결같은 사람은 보기 드물다.
말은 오해가 생기는 근원이다. 내 진심이 아닌 말도 가끔 툭툭 나올 때가 있다. 내가 하려는 말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괜한 소리를 하게 된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 내 말이 어떤 영향을 줄지 따져가면서 말하는 것은 어렵다. 말은 뱉고 나서야 그 사람에게 닿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말을 하지 않으면 내 정확한 뜻을 전달하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오해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마음에 있는 말을 진솔하게 전달하면 된다. 내 상황과 그 때 느낀 감정들을 급하지 않게 말하면 그 사람도 '그럴 수 밖에 없었겠구나' 할 것이다. 그래서 진솔하게 말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세상 사람들은 (나 포함) 자기만 생각하느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거나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빠져산다. 그래서 여유를 갖기 힘들다. 안타깝다!
"잘 가라. 내 비밀을 일러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눈으로 보이는 것을 곧이곧대로 바라보기보다는 마음으로,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서 사람을 믿는 마음을 가져보자~ 누군가는 사람을 믿을 것이 못된다고 한다.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믿을 수 있다. 그 사람이 겉으로 드러내는 행동을 믿으면 오해와 다툼 그리고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심이 생긴다. 하지만 진솔하게 대화를 나눌 때는 그 사람을 믿어보자. 상대방에게 마음은 열어두지만 나 자신은 항상 의심하자.
첫댓글 너무 즐거운 글읽기를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많이 읽고 싶어요. 빨리 2부 써줘요ㅋ
네 ㅎㅎ 점점 올리고 있습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