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옛적 천제(天帝)는
태자 해모수(解募漱)를 부여의 고도에 보내어 나라를 세우게 했다.
이때 해모수는 오룡차(五龍車)를 타고
그 종자 백 여명은 백혹을 타고
오색 구름에 싸여 주악 소리도 장엄하게 하강했다고 한다.
머리에는 오우관(烏羽冠)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검(龍光劍)을 찬 해모수는
아침에 그 곳을 내려와 백성들을 다스리고,
밤에는 다시 하늘로 도로 올라가므로
그 곳 사람들은 그를 천왕랑(天王郞)이라고 불렀다.
☞ 그때 북쪽 청하(淸河= 지금의 鴨綠江) 연변에 하백(河伯)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세 딸이 있었는데
큰딸은 유화(柳花),
둘째 딸은 훤화(萱花),
셋째 딸은 위화(葦花)라고 불렀다.
모두 다 신자염려(神姿艶麗)하여
보는 사람마다 침을 삼킬 만한 가인(佳人)이었다.
☆☆☆
하루는 해모수 왕이 사냥을 나왔다가
웅심연(熊心淵)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세 처녀를 보자 첫눈에 몹시 마음이 끌렸다.
"거 참 좋은 처녀들인걸. 만일 비로 삼는다면 훌륭한 왕자를 낳아 줄거야."
좌우를 둘러보고 이렇게 말한 해모수 왕은 서서히 말을 몰아 세 처녀에게로 다가갔다.
낯 설은 남자가 다가오자 세 처녀들은 물 속으로 뛰어들어 몸을 감추었다.
유유히 다가온 해모수 왕은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처녀들이여 어찌하여 나를 피한단 말인고?
나는 바로 천제의 아들 해모수, 이 고장을 다스리는 임금이거늘 어찌하여 나를 피한단 말인고?"
해모수가 연못을 향해서 이렇게 외치니까
수중에서 세 처녀가 고개를 내밀더니 각각 한마디씩 했다.
"천제의 아드님이시며 이 고장을 다스리는 어른이시면 더욱 부끄럽고 황송하와요."
"우리는 몸에 가린 것도 없는 몸..."
"어찌 그대로 뵈울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그렇겠군.
그렇다면 내 당장 이 자리에 집을 지어 줄 것이니 그 속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도록 하라."
이렇게 말하고는 말채찍을 들어 땅에 집 모양을 그리니
당장 그 자리에 장려한 구리 집 한 채가 솟아났다.
그리고 그 구리 집 속에는 세 사람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고 큰 술통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처녀들이어. 어서 들어가 옷을 갈아입어라.
그래도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는다면 그 통의 술을 실컷 마셔라."
해모수의 말을 듣고 세 처녀는 대단히 기뻐하며
그 집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은 다음 서로 권하며 술을 흠뻑 마셨다.
☆☆☆
세 처녀가 되게 취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는데 불쑥 해모수가 들어왔다.
해모수의 두 눈은 술에 취해서 더욱 요염해진 세 처녀를 쏘아보며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세 처녀는 취중에도 위험을 느꼈다.
일제히 일어나서 그 집을 빠져나가려고 애를 써서 훤화와 위화는 빠져나가는데 성공했으나
유화만은 끝내 해모수왕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대는 나의 비가 되는 거야.
늠름하고 강한아들을 낳아 주어야 해."
해모수는 유화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마침내 정을 통하고 말았다.
유화가 해모수에게 붙잡혀서 욕을 당했다는 기별을 듣자 유화의 부친 하백은 크게 노했다.
즉시 사람을 보내어 자기 대신 그 행패를 꾸짖게 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하백의 딸을 잡아 두는가?"
그랬더니 해모수는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하백의 딸과 혼인하고자 했을 뿐이다."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당당히 중매를 놓고 청혼할 것이지 어찌 함부로 남의 딸을 가두어 두는가?
예를 몰라도 분수가 있지 않은가?"
그 말에 해모수는 자기의 경솔한 행동을 뉘우쳤다.
"내 즉시 하백에게 가서 사과하리라."
☆☆☆
그는 하백의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하백의 노여움은 풀리지 않았다.
문을 굳게 닫고 아무리 간청해도 열어 주지 않았다.
해모수는 하는 수 없이 유화를 가두어 둔 구리 집으로 돌아갔다.
"그대의 부친이 그렇듯 노한 걸 보니 나와 그대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라.
즉시 부친 곁으로 돌아가도록 하라."
해모수는 낙심하고 이렇게 권했다.
그러나 유화는 이미 해모수에게 깊이 기울어진 후였다.
"저는 이제 대왕의 곁을 떠날 수 없는 몸이요.
비록 쫓아내신다 하더라도 가지 않겠어요." 하고
유화가 고집을 부리니 해모수는 더욱 난처해졌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좋단 말이냐?
그대 부친의 승낙이 없는 한 그대는 내 비가 될 수 없지 않으냐?"
유화는 잠시 궁리에 잠기더니 바싹 다가앉으며
"대왕께선 용차(龍車)를 타고 하늘을 마음대로 나르실 수 있지 않으시어요?"
"그야 그렇지."
"그렇다면 용차를 타고 공중을 날아가시면
우리 집 문이 아무리 굳게 닫혀 있더라도 담을 넘어 들어가실 수 있지 않습니까?"
"음, 그래서?"
"우리 아버님은 원래 힘과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소중히 여기는 분입니다.
대왕께서 하늘을 나르시는 걸 보시면 마음이 변하실 것이에요."
☆☆☆
해모수는 유화의 말을 옳게 여겼다.
즉시 하늘을 향해서 용차를 부르니 오색 구름에 싸여 오룡차가 내려왔다.
해모수는 오룡차에 유화를 태우고 다시 하백의 집으로 향했다.
찬란한 구름에 싸여 용차를 타고 마당에 내려서는 해모수를 보자 하백은
"과연 천제(天帝)의 아들이시구나!" 감탄을 하고 융숭한 예를 갖추어 맞아 들였다.
▶그러나 따질 것은 잊지 않고 따졌다.
"혼인이란 원래 천하가 다 중히 여기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예를 갖추지 않고 우리 문중을 욕되게 하는 거요?"
해모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슬며시 딴청을 했다.
"내 하늘에서 자라나 지상의 예에 어두운 탓으로 그런 실례를 범했소이다."
"그렇다면 참을 수도 있는 일이오 만
대왕이 과연 천제의 아드님이시라면 신기한 재주를 지니고 있을 것이외다.
어디 그 재주를 보여 줄 수 없으시오?"
"어렵지 않은 일이오.
무슨 재주로나 당신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니 당신이 먼저 재주를 보여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