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다른 국어학 분야와 달리, 국어 순화는 학자들의 학문적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분야이다.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져서 최근 학위 논문에서 순수하게 국어 순화를 주제로 한 것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반면에 국립국어원에서는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한글 주소: 말터, 영문 주소: www.malteo.net)’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열어서 현재 우리나라의 국어 순화를 주도하고 있으며, 통신 언어가 우리말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방송과 언론에서는 국어 순화와 관련된 프로그램과 기사를 많이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주로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정부 기관과 방송 및 언론 등에서 2005년 한 해 동안 국어 순화와 관련하여 어떤 일을 벌였는지를 알아보고,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살펴봄으로써 앞으로의 전망도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국립국어원의 국어 순화 활동 2.1.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의 성과와 한계 국립국어원에서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아래 ‘말터’)를 연 것은 그동안 국가 기관에서 진행해 온 국어 순화 사업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지난 시기 국어 순화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순화어가 일반 국민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전문 용어를 중심으로 말을 다듬다 보니 일반인들의 호응을 얻는 일이 쉽지 않았으며,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국어학자가 중심이 되어 말을 다듬다 보니 해당 분야의 종사자들에게마저도 호응을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일상용어로 쓰이는 외국어들도 이미 널리 퍼진 이후에 다듬는 경우가 태반이어서 아무리 잘 다듬어 놓았어도 그 말이 어색하게 느껴져서 국민들의 외면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 말하면, 그동안의 국어 순화는 성과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립국어원은 지난 2003년에 『국어 순화 자료집 합본』을 발간하였는데, 이 책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02년까지 국립국어원에서 순화한 말은 모두 22,000개가 넘는다. 적지 않은 수의 낱말을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다듬어 온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그때그때 성과를 내는 데에만 급급하여 순화한 말에 대한 사후 관리를 거의 하지 않은 점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말터’의 시도는 일단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도 가지고 있어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도 많이 있다.
첫째로, ‘말터’는 새로 쓰이고 있는 외국어를 순화의 주요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시의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플리 바기닝(plea bargaining)’, ‘엑스파일(X file)’, ‘블루오션(blue ocean)’, ‘그룹 홈(group home)’ 따위가 그 예이다. 해당 외국어가 널리 쓰이기 전에 우리말로 다듬는 일은 국어 순화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신발장에 아무리 많은 신발이 있더라도 늘 신던 신발만 신듯, 우리가 쓰는 말도 이미 익숙해져 버리면 다른 말로 고쳐 쓰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이미 널리 퍼져서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는 외국어를 갑자기 우리말로 다듬어 쓰라고 하면 되레 반발만 사기 십상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외국어를 써도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별다른 제재나 지탄을 받는 일이 없는 사회적 환경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시의 적절하게 순화 대상어를 선정한 것은 긍정적이다. 한편, ‘노미네이트(nominate)’, ‘셀프카메라(self-camera)’, ‘박스 오피스(box office)’, ‘로고송(logo song)’ 따위의 말들도 순화 대상어로 삼았는데, 이런 말들은 이미 수 년 전부터 쓰여서 널리 퍼진 말들이어서 시의성의 측면에서는 부적절해 보인다. 반드시 지금 쓰이기 시작한 말들만 다듬어야 하는 것은 아니나 시의성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들의 순화어에 대한 말터 회원들의 평가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것도 시의성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둘째로, ‘말터’는 학자와 일반인이 함께 국어 순화에 참여하는 틀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좋게 평가할 수 있다. 앞서 지적했듯 지난 시기의 국어 순화는 학자 중심이어서 일반인들의 언어 감각이나 언어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반인들이 직접 순화어들을 제안하고, 그 중에서 전문가가 고른 후보 낱말들을 다시 투표에 부쳐 최종적으로 순화어를 결정하는 방식을 들여옴으로써 일반인들의 참여 폭을 넓힌 것은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학자들의 역할이 일반인들이 제안한 말 가운데 후보 낱말을 고르는 일에 국한되고, 후보 낱말에 대한 투표가 인기투표의 경향을 띠어 더 좋은 말이 선정되지 못하기도 하는 경우가 발생한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할 만하다. 이를 위해서는 투표 이후에 최종적으로 전문가들의 심의를 거치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여전히 국어학이 아닌 다른 전문 분야의 종사자는 참여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지난 시기의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여러 이용자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투표 결과를 왜곡한 듯한 경우가 눈에 띄는바, 이에 대한 기술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1,000명 안팎의 투표 인원으로 순화어를 결정하는 것은 정당성에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투표 참여자 수를 늘리는 일에 더 힘을 쏟아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로, ‘말터’는 국어 순화 사업을 널리 알리는 일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시작할 때부터 언론사와 제휴함으로써 새롭게 순화어를 정할 때마다 꼬박꼬박 기사가 나가게 되었고, 국어 순화에 무관심했던 여론의 관심을 돌려세운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말터’가 초창기에 다듬은 ‘참살이(웰빙[well-being])’와 ‘누리꾼(네티즌[netizen])’은 언론과 여론의 높은 관심을 이끌어 국어 순화 사업이 새롭게 조명 받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런 관심이 지속되지 못한 채 일회적으로 그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국립국어원이 끊임없이 언론과 여론이 관심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특별히 하지 않는 것 같아 유감스럽다. 최근 ‘말터’에 대한 관심이 부쩍 줄어들고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도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인 듯하다. 이왕 시작한 일이니만큼 예전처럼 말을 다듬어 놓지만 말고 널리 알리는 일에도 적극 나서길 바란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말터’에는 아직도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는 좀 더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한다. 좀 더 보기 좋고 이용하기 편리하게 사이트를 개편하고, 알찬 내용들을 계속 새롭게 올림으로써 일반인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2005년 한 해 동안 ‘말터’에서 다듬은 말은 모두 47개이다. 이들을 표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앞으로 이 말들이 널리 쓰이길 바란다.
덧붙여, 국립국어원에서는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말터’에서 다듬은 말들을 정리하여 『우리말 다듬기 자료집』(담당 연구원: 박용찬 학예연구관)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펴내었다. 이 보고서는 각각의 순화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확정되었는지 자세하게 소개하였으므로 좋은 참고 자료가 될 만하다. 박용찬은 국어 순화와 관련하여 평소에 써 놓은 글들과 ‘말터’를 운영하며 모은 자료를 책으로 엮어서 『우리말이 아파요』라는 책을 펴내었으며, 광복 6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일본어투 용어 순화 자료집』을 발간하는 등 2005년 한 해 동안 국어 순화와 관련하여 많은 일을 하였다.
2.2.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국어 순화 관련 글 국립국어원에서는 『새국어생활』(제15권 제1호)에서 특집으로 ‘국어 순화’를 다루었다. 여기에 쓰인 논문들은 유재원의 「국어 순화, 왜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나」, 김하수의 「국어 순화의 문제점과 극복의 길」, 박용찬의 「‘우리말 다듬기’ 사이트의 운영 내용 및 성과」, 김석향의 「북한의 우리말 다듬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송기형의 「프랑스의 자국어 순화-전문 용어 개발을 중심으로-」, 이남호의 「국어 순화는 국어 풍요가 되어야 한다」 등이고, “국어 순화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각계의 전문가들이 벌인 좌담 내용도 함께 실려 있다. 이 가운데 김하수의 「국어 순화의 문제점과 극복의 길」은 국어 순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이 글은 그동안 국어 순화가 목적과 의미를 분명히 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해 온 점을 비판하고, 국어 순화의 이상과 방향성부터 새롭게 점검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토착어’에 대한 지나친 감성적 접근만으로는 국어 순화가 성공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산물인 언어를 자연적인 것으로 치부하여 국어 순화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도 경계하면서, “한국어의 순화 운동은 넓은 틀에서 언어 발전의 한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순화 작업은 순수 토착어냐의 여부보다는 우리의 사회와 역사가 발전하는 데에 언어가 어떤 구실을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것의 형태와 의미가 시대적 조건에 맞게 변화해야 하며, 또한 한국어화(Koranization)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지금 국어학적으로 순화 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낡은 시각은, 언어 변화는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잘못된 의식과 어휘의 내적 구조는 기본적으로 형태소에서 출발한다는 고정관념, 그리고 어휘의 정당성을 ‘어원’에 지나치게 기대려 하는 자세 등”이라고 지적하면서 진정 국어 순화를 제대로 하고자 한다면 “순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해 온 사람들의 자기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남호의 「국어 순화는 국어 풍요가 되어야 한다」는 지난 시기의 국어 순화는 국어를 풍요롭게 하는 데에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앞으로 국어 순화 사업이 지향해야 할 점을 두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는 “우리 것의 순수성에 매이지 말고 더 과감하게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이를 ‘포용의 원리’라고 하였다. 둘째는 “외래어나 외국어를 함부로 사용하는 일보다 어법에 맞지 않거나 너저분한 글을 쓰는 일이 훨씬 부끄러운 일이며, 좋은 글을 쓰는 것이 곧 국어 발전에 이바지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널리 확산시키는 국어 순화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국어 순화의 시야를 “단어 차원에서 문장, 단락, 글의 차원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국립국어원에서는 『좋은 글의 요건-실용문을 중심으로-』(담당 연구원: 김문오 학예연구사)라는 보고서를 펴내었다. 이 보고서는 국어 순화를 직접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지만 좋은 글이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 ‘어휘 선택의 적절성’과 ‘문법과 어문 규범의 준수’ 등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국어 순화의 시야를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라 판단하여 함께 소개하는 것이다.
김석향의 「북한의 우리말 다듬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는 많은 실증적 자료를 이용하여 북한의 말 다듬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다. 이 글은 “우리는 앞으로 통일을 향하는 길에서 북한 주민은 물론 새터민과 함께 우리말과 글을 어떻게 가꾸고 다듬어 갈 것인지 큰 방향을 정립해야 한다. 단순히 단어와 어휘, 표기법의 차이 수준을 벗어나 이들이 일상생활에서 남북한의 말 다듬기 운동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또 과거의 우리 역사에서 말과 글을 다듬어 온 조상들의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앞으로 우리말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함께 논의하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주장하였다.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말 다듬기 사업은 남한의 국어 순화 운동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의 한국어 연구에서도 주요한 참고 대상이 된다. 남과 북이 함께하는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도 추진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이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점에서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제5차 남북 국제 학술회의 논문집-민족어 어휘 구성의 변화와 통일적 발전-』(담당 연구원: 이승재 학예연구관)에 실린 박상훈(북한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연구사)의 「어휘정리와 민족어 어휘구성의 변화발전」을 참고할 만하다. 이 글은 북한에서 이뤄지고 있는 어휘 정리 사업의 취지와 결과물을 개략적으로 소개하고, “북과 남이 다 같이 하나의 원칙, 즉 고유조선말을 기준으로 삼고 언어의 기본대를 세우며 어렵고 까다로운 한자말과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어휘정리사업을 적극적으로 벌린다면 비록 언어교류가 없는 조건에서도 북과 남의 말이 이질화되여가는 현실태를 바로잡고 우리 민족어의 통일적 발전을 이룩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국립국어원을 통해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노명희의 「북한의 다듬은 말의 단어 구조와 의미 관계」(『한국어학』 제26호)도 북한의 말 다듬기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연구 업적이다. 이 글은 북한어의 다듬은 말에서 보이는 단어 형성상의 특징적인 현상을 형태론적 특성과 의미론적 특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 글은 북한의 다듬은 말은 첫째, 구를 형성하는 예가 많으며 둘째, 비통사적 합성어를 형성하는 예가 많고 셋째, 접미사 ‘-개’가 많이 쓰이며 넷째, 접미사 ‘-성(性)’에 붙는 어기의 범위가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남한의 다듬은 말과는 다른 형태론적 특징을 보인다고 하였다. 그리고 북한의 다듬은 말의 의미론적 특성은 단어 전체의 의미가 축소 또는 확대된 경우와 동음이의가 발생하는 경우 등으로 나누어 해당 예를 분석하였다. 이 글은 북한의 다듬은 말을 형태론적, 의미론적 기준으로 잘 정리하여 후속 연구에 좋은 참고가 될 만하다.
이 밖에도 『새국어생활』(제15권 제1호)에는 심재기의 「전문 용어(특히 정보 통신 분야) 순화에 대하여」라는 글이 실려 있고, 『새국어생활』(제15권 제2호)에는 시정곤의 「말 다듬기와 조어법」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위에서 소개한 논문들은 저마다 국어 순화의 새로운 지향점과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글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국어 순화 연구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나라 밖의 언어 순화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우리나라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도 유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송기형의 「프랑스의 자국어 순화-전문 용어를 중심으로-」와 같은 연구 논문이 많이 쏟아져 나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통일 이후의 한국어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연구도 더욱 폭넓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3. 다른 정부 기관의 국어 순화 활동 국립국어원 말고도 몇몇 정부 기관에서도 국어 순화와 관련된 일을 벌인 바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국립국어원, 정보통신윤리위원회,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등과 공동으로 『인터넷 언어 순화, 생활 속의 언어 예절』이라는 교사용 지도 자료집을 발간하여 2005년 3월에 각급 학교와 교육청 등에 배부하고 교육부 누리집에도 실었다. 이 자료집은 날로 심각해지는 청소년들의 인터넷상의 언어 파괴 현상에 대해 교사가 효율적으로 지도할 수 있도록 학생 단계별로 실질적인 지도안을 수록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법제처는 2005년부터 ‘알기 쉬운 법률 만들기’라는 주제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사업은 어려운 법률 용어를 쉽게 다듬고 어색한 법률 문장을 자연스럽게 바꾸어 일반인들도 쉽게 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일본어의 찌꺼기가 가장 많이 남아 있던 법문을 진정한 우리말로 고치게 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산림청은 산림 행정 용어 중 ‘일본 잔재 용어’, ‘어려운 한자 용어’, ‘강압적인 용어’ 등을 알기 쉬운 우리말로 순화하기 위해 임업 용어 표준화를 기획하여 국립국어원의 검토와 국어순화 분과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2005년 2월에 『산림 행정 순화 용어집』을 발간하였다. 이 용어집에는 ‘수근(鬚根)→실뿌리’, ‘갑충(甲蟲)→딱정벌레’, ‘유충포살(幼蟲捕殺)→애벌레 잡기’, ‘삽목(揷木)→꺾꽂이’, ‘택벌(擇伐)→골라베기’ 등과 같은 산림 용어와, 우리에게 익숙한 ‘산간오지(山間奧地)→두메산골’, ‘시방서(示方書)→설명서’, ‘수렵지(狩獵地)→사냥터’ 등과 같은 용어도 포함되어 있다. 환경부는 대한화학회와 국립국어원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환경 용어 순화 추진 협의회’를 만들어 어려운 환경 용어를 알기 쉬운 우리말로 고치는 일을 벌이고 있다. 환경부는 북한 용어와 자체 발굴 용어 등을 참고해서 2005년 5월말까지 용어 개선 작업을 끝낸 뒤 6월에 표준 용어집을 만들어 환경 백서나 관계 법령에 반영할 계획이다. 4. 방송과 언론의 국어 순화에 대한 관심 국어 순화가 성공하기 위해선 방송과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각 방송국이나 언론사마다 바른 우리말을 널리 알리는 일을 기획하는 경우가 많은데, 2005년도에는 어떤 일들을 벌였는지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4.1. 방송의 국어 순화에 대한 관심 한국방송의 ‘세대 공감 올드 앤드 뉴’는 청소년이 잘 모르는 순우리말과 어른들이 잘 모르는 통신 언어를 소개하여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 큰 공헌을 한 프로그램이다. ‘설레발’이나 ‘휘뚜루마뚜루’와 같은 말은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 다만, 프로그램의 제목만은 세대가 공감하기 어렵다는 점이 아쉽다. 그리고 한국방송의 ‘우리말 겨루기’와 교육방송의 ‘우리말 우리글’은 우리말의 바른 쓰임새를 알아보는 문답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일반인들이 우리말을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그 밖에 한국방송에서는 ‘바른말 고운말’이, 문화방송에서는 ‘우리말 나들이’가, 서울방송에서는 ‘사랑해요 우리말’이 오래 전부터 방송되고 있는바, 이들도 국민들의 바른 국어 생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우리말 전문 프로그램 밖의 프로그램들에서는 오히려 바른 국어 생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출연자들이 내뱉은 상스러운 말이나 외국어가 그대로 방영되는가 하면, 어법에 어긋나는 자막을 마구 내보내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열심히 우리말을 바루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반드시 개선해야 할 사항이다.
4.2. 언론의 국어 순화에 대한 관심 언론이 국어 순화에 관심을 보이는 때는 주로 한글날을 앞둔 시점이다. 그 어떤 직업보다 말과 관련이 깊은 일이 언론이므로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꾸준히 우리말 바로 쓰기에 힘써온 기사들을 소개한다. ‘동아일보’는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의 운영을 지원하면서 2004년 7월부터 ‘우리말 다듬기’라는 고정란을 만들어 매주 순화한 말을 소개하는 기사를 싣고 있다. ‘참살이’, ‘누리꾼’ 등이 어엿한 우리말로 자리를 잡은 데에는 동아일보의 공이 크다. ‘중앙일보’는 2003년 3월부터 여러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매일 ‘우리말 바루기’라는 제목으로 우리말의 바른 용법에 대한 기사를 싣고 있으며, 이 글들을 책으로 묶어서 2005년 3월에는 『한국어가 있다 1』을, 같은 해 5월에는 『한국어가 있다 2』를, 같은 해 6월에는 『한국어가 있다 3』을 펴내었다. ‘한겨레’는 2002년 5월부터 2005년 5월까지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라는 기고란을 만들어 여러 국어 전문가가 돌아가면서 우리말의 바른 사용법에 대해 쓴 글을 실었으며, 이 글들을 두 권의 책으로 묶어서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라는 제목으로 펴내었다. 그리고 2005년 5월부터는 ‘말글 찻집’이라는 제목의 기고란을 만들어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한국 경제’는 2005년 6월부터 ‘홍상수 기자의 말짱 글짱’이라는 기사를 고정적으로 실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더러 국어 순화와 관련된 내용도 눈에 띈다.
5. 나오며 지금까지 2005년도 각계의 국어 순화 관련 활동과 논문들을 살펴보았다. 국어 순화는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국어학 분야와 달리 학술적 연구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학문적인 발전이 더딘 편이다. 이는 김하수의 「국어 순화의 문제점과 극복의 길」에서도 지적했듯이 국어 순화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성찰하지 않은 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집중해 왔기 때문이다. 막연히 우리는 우리말을 써야 한다는 당위론에 머물면 더 이상 학문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한 매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런 당위론의 토대 위에서 논의되는 순화 방법론은 더 이상 우리말을 풍요롭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국어 순화를 하는 이유와 목적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문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어 순화 이론의 발전을 위해서는, 우선 국어 순화가 역사적으로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를 객관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지난 시기의 국어 순화 운동이 정말 우리말의 순수성 그 자체를 지키는 것이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해 반성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는 그동안 국어 순화를 순수하게만 생각해 온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고찰과 더불어 국어 순화가 어떤 합목적성을 가지고 우리말과 사회의 발전에 기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비로소 더욱 세련된 국어 순화 방법론이 개발되고, 한국어의 미래도 밝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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