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엽 민중교육연구소 소장
2일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5.2% 올랐다. 전월보다 상승률이 0.2%포인트 높아졌고 물가 상승률이 9개월째 5% 이상을 기록 중이다. 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전기, 가스 및 기타 연료 물가는 작년 같은 달보다 31.7%나 올랐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4월(38.2%) 이후 24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전기료와 도시가스비가 크게 상승했다. 전기료는 전월보다는 9.2%, 1년 전보다는 29.5% 올랐다. 이는 1981년 1월(36.6%) 이후 42년 만에 최고치다. 도시가스비도 전년보다 36.2% 올라 1998년 4월(51.1%)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역 난방비 상승률은 34%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5년 이후 최고치다.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은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서민 연료 등유는 1년 전보다 37.7% 상승했다.
먹거리 물가도 가파르게 치솟았다. 가공식품 물가 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10.3% 상승했다. 이는 2009년 4월(11.1%) 이후 13년 9개월 만의 최대 상승률이다. 식료품·비주류 음료 물가는 1년 전보다 5.8% 올라 전월(5.2%)보다 상승 폭이 커졌다. 1일부터 서울 택시요금이 올랐고 지하철·버스 등 교통요금과 대학 등록금 인상도 예정돼 있다. 민생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새해 첫 달 무역수지는 사상 최악을 나타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무역수지는 126억9000만 달러 적자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 기록이다. 지난해 연간 적자액(474억6700만 달러)의 26.7%에 달한다. 무역수지 적자는 작년 3월 1400만 달러 적자 이후 11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무역수지가 11개월 이상 연속 적자 흐름을 보인 것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5년 1월~1997년 5월 이후 26년 만이다.
반도체 수출이 60억 달러에 머물러 작년 같은 달보다 44.5%나 줄어들었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10월(-17.4%), 11월(-29.9%), 12월(-29.1%)에 이어 올해 들어 하락률이 더 가팔라졌다. 감소액은 1월 전체 수출 감소분의 52%에 해당해 반도체 수출 부진이 전체 수출 감소로 이어졌다. 반도체 수출 감소 영향을 크게 받은 중국(-31.4%) 수출이 큰 폭으로 줄었다. 1월 대중 반도체 수출은 46.6%(1~25일 기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경제 둔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윤석열 정부의 ‘탈중국’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반도체 수출의 중국 비중-2022년 기준 40.3%)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올 1분기에도 역성장이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7% 급감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은 302조2314억 원으로 전년 대비 8%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43조3766억 원으로 16% 감소했다. 특히 4분기 영업이익은 4조3061억 원으로 69% 줄었고,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부문은 97% 감소한 2700억 원에 그쳤다. 올 1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첫 적자를 기록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한국 제조업 전체 매출의 10% 이상, 수출의 약 30%를 차지해 삼성전자의 실적 악화 전망은 한국 경제의 적신호를 예고한다.)
경제가 총체적 위기에 빠졌고 민생이 피폐해지고 있다. ‘난방비 폭탄’을 맞은 시민들은 집에서 내복과 패딩을 껴입고, 서민층 노인들은 경로당으로 피신하고 있다. 1월 한파 때의 가스 사용량이 반영된 2월 난방비는, 걱정했던 대로 1월과 비교 불가의 ‘폭탄’이다. 대부분 1월 요금의 1.5배 이상, 많게는 2배 넘게 오른 고지서를 받아든 시민들은 망연자실한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1월에 전기요금이 9.5% 인상됐는데 전기장판이나 온열기 등 전기 난방용품의 이용료가 2월 전기요금에 반영된다. 전기요금 폭탄까지 터지면, 분노한 민심이 어떻게 폭발할지 예측 불허다.
민생 악화로 서민들은 아우성치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는 태평하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정부 9개월간의 10대 성과를 정리한 영상 콘텐츠를 2월 한 달간 전국 146개 옥외 전광판에 송출할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실은 2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통령실과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대국민 접점을 늘려나가고자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기가 막힌다. 도대체 누구 보라고 이런 영상을 한 달 동안 내보내겠다는 건가? 국민 혈세로 이런 홍보를 하고 있을 땐가? 염장을 지르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뿐 아니다. 집권 여당 국민의힘의 행태도 가관이다. 국힘 3·8 전당대회가 2일 시작됐다. 국힘 당권 경쟁에서 민심은 온데간데없다. 오직 ‘윤심’뿐이다. ‘윤심’을 둘러싸고 낯뜨거운 추태가 속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눈 밖에 난 ‘반윤’ 유승민 전 의원과 ‘멀윤’(멀어진 친윤) 나경원 전 의원이 불출마한 가운데 전당대회는 ‘김기현 대 안철수’의 양강 구도다. 그런데, 두 사람은 누가 더 대통령과 가깝냐를 따지는 ‘윤심’ 논쟁으로 날을 세우더니 급기야 ‘친윤’도 모자라 ‘진윤’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2016년 4‧13 총선 당시 박근혜 정부의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친박’을 넘어 ‘진박’(진짜 친박), ‘가박’(가짜 친박) 논란이 기승을 부린 적이 있다. 작금에 국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친윤’, ‘진윤’ 논란은 7년 전 새누리당의 양상과 판박이처럼 똑같다. 옛말에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하였다. 당명은 국힘으로 바뀌었지만 과연 새누리당의 후신답게 어쩌면 하는 짓이 그렇게도 똑같은지….
최근 ‘윤핵관’은 안철수 의원을 향해 ‘종북 세력’ 프레임까지 동원해 공격했다. ‘윤핵관’의 한 관계자는 <채널A>에 “민주당이나 종북좌파, 민노총 같은 반윤 세력이 전당대회에 개입해 안 의원을 띄우고 있다”며 “대통령과 당의 화합을 깨기 위해 안 의원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핵관’들이 하도 막돼먹은지라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살다가 별 개소리를 다 듣는다. 지나가는 개가 비웃을 일이다.
‘진윤’ 논란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다. 윤 대통령이 안 의원을 향해 “실체도 없는 ‘윤핵관’ 표현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사람은 앞으로 국정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5일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윤핵관은) 당의 책임 있는 정치인이 쓸 말은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이날 보도했다.
같은 날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안 의원을 공개 비판했다. 그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안윤연대’라는 표현, 누가 썼나. 그건 정말 잘못된 표현”이라며 “대통령과 후보가 어떻게 동격이라고 얘기하는 건가”라고 직격했다. 이 수석은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대통령실의 (당 대표) 선거 개입’이라고 한 안 후보의 이날 SNS 발언에 대해서도 “(안 후보가) 먼저 끌어들였지 않나. 그런 거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노골적으로 당무에 개입하여 ‘윤심 대표’를 세우려고 정당 민주주의를 짓밟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를 야멸차게 쫓아내더니, 이제 허수아비 대표 세워놓고 당을 섭정하려는 속셈인가 보다. 그럴 거면 그냥 윤 대통령이 당 대표를 지명하지, 뭐 하러 전당대회를 여는가? 제왕적 권력놀음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다.
경제와 민생이 어렵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와 국힘에게 민생은 남의 일이고 민심은 관심 밖이다. 정부는 민생이 파탄 지경이고 서민들이 죽겠다고 난리가 났는데도 치적 홍보와 당무 개입에 다걸기하고 있다. 국힘 당권 주자들에게 민생은 뒷전이다. 국힘 전당대회는 ‘친윤’이니 ‘진윤’이니 충성경쟁의 낯뜨거운 추태 판이다. 민생을 내팽개치고 오직 권력 투쟁에만 진심인 자들이 당권을 잡아봐야 그게 국민에게 무슨 힘이 되는가? 그런데 당명이 ‘국민의힘’이다. 괴상망측하다. (2023년 2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