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15 이우인(李友仁)[生]
>16 이상의(李尙毅)[文] 의정부 좌찬성 配해평인 윤현(尹晛)[文]의 딸
>17 ①이지완(李志完,1575~1617)[文1597] 配고성인 이결(李潔)[進]의 딸
>17 ②이지선(李志宣,1588~1650)
>17 ③이지굉(李志宏,1584~)[진1605][文1618]
>17 ④이지정(李志定,1588~1650)[진1612][文1616] 字정오(靜吾), 號청선(聽蟬). 목사
配이응심(李應深)의 딸
>18 이숭진(李崇鎭)
>19 이영(李泳,1634~) [진1657] 配동래인 정만화(鄭萬和)[文1652]의 딸
>20 이진휴(李震休,1657~1710)[진1677][문1686] 字백기(伯起), 號성재(省齋). 병조참판.
配함양인 오상주(吳相胄)[진1660]의 딸.
>21 이중환 (李重煥,1690~1756) [문1713] 字휘조(輝祖), 號청담(淸潭), 靑華山人. *이익의문인
1配사천인 목임일(睦林一)[文1678], 2配문화인 유의익(柳義益)
*목호룡의 고변사건(1721)에 이중환의 장인인 목임일(睦林一)이 목호룡과 동족이라 하여 사위인 이중환까지 화를 입고 삭탈관직되어 절도(絶島)로 유배
<성호집> 「騎省佐郞李公墓碣銘 幷序」 年二十四(1713)及第出身。由槐院正字。出補金泉察訪。金泉有去思碑。己亥(1719)薦授政院注書。
>18 이숭진(李崇鎭)
>19 이영(李泳,1634~) [진1657] 配동래인 정만화(鄭萬和)[文1652]의 딸
>17 ⑤이지인(李志寅,1592~)[進1610]
>17 ⑥이지유(李志裕,1595~)[進1615]
>17 ⑦이지안(李志安,1601~1657)[진1633][文1651] 사헌부 지평. 配영제군(寧堤君) 이석령(李錫齡)의 딸
>18 이하진(李夏鎭) [진1654][문1666아장] 도승지, 대사헌
>19 ①이해(李瀣)
>19 ②이잠(李潛,1660~1706)도승지, 대사헌
>19 ①이익(李瀷,1681~1763) *경기도 안산 첨성리에 칩거. 바다에 가까운 첨성리에 성호(星湖)가 있음.
>20 이맹휴(李孟休)
>21 이구환(李九煥)
1717년경 김천찰방 이중환에게 답한 시 이익(李瀷,1681~1763)
> 고전번역서 > 성호전집 > 성호전집 제1권 > 시 > 최종정보
族孫輝祖 重煥 有惠物。以詩答寄。
족손(族孫) 휘조(輝祖) 중환(重煥) 가 선물을 보내왔기에 답례로 시를 부쳐 보내다
이익(李瀷,1681~1763)
金泉驛路杳逶迤(김천역로묘위이) 김천의 역로가 구불구불 아스라이 먼데 / 김천의 역로는 구불구불 아스라한데
千里書回說別離(천리서회설별리) 천리 밖에서 서신이 돌아와 이별을 말하네 / 천리 밖에서 답장으로 이별을 말하네.
蕭寺月明曾共賞(소사월명증공상) 쓸쓸한 절에서 달 밝을 제 함께 구경했고 / 쓸슬한 절에 달 밝을 때 함께 구경하면서
海山春滿重留期(해산춘만중유기) 해산에 봄기운 가득할 때 거듭 만나자 했지 / 해산에 봄이 되면 다시 머물자 기약했었네.
人皆畫地應羞廢(인개화지응수폐) 사람들은 다 땅에 선 그으니 그만둠이 부끄럽겠지만 / 사람들 땅에 선 그으며 자신을 한계 짓지만
道自如天合致思(도자여천합치사) 도는 본래 하늘과 같으니 깊이 사색해야 하리라 / 도는 본래 하늘과 같으니 합치하여 생각하게
珍重歸荑增悅豫(진중귀제증열예) 진중한 귀이에 마음 더욱 기쁘고 즐거워 / 보배로운 귀재(선물)에 기쁨이 더해지고
一言端作有心知(일언단작유심지) 한마디 말에서 마음이 통함을 알겠도다 / 한마디 말에서 마음을 알겠네.
*이중환(李重煥,1690~1752) [문1713] 으로, 자가 휘조이고, 호는 청담(淸潭)ㆍ청화산인(靑華山人)이다. 1717~1718년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을 역임하였다. 영조 즉위 후 목호룡(睦虎龍)의 당여(黨與)로 구금되어 장기간 유배 생활을 하였고, 유배기간 동안 성호의 학풍을 이어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를 남겼다. *해산(해산) : 이익은 경기도 안산 첨성리에 칩거했는데 이곳은 바다에 가까우며 성호(星湖)가 있었음. *응수폐(應羞廢) : 스스로 한계를 그어서 학문에의 진전을 포기하는 것이다. 염구(冉求)가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이 부족합니다.” 하니, 공자가 “힘이 부족한 자는 중도에 그만두나니, 지금 너는 선을 긋는구나.” 하였는데, 주자(朱子)의 주(注)에 “땅에 선을 그어서 자신을 한계 지우는 것과 같다.” 하였다. 《論語 雍也》 *도여천(道如天) :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성인(聖人)의 도는 하늘과 같아서 일반 사람들의 지식과는 현격히 다르다. 聖人之道如天然 與衆人之識 甚殊邈也” 라는 구절이 있다. 《近思錄 卷11》 *귀제(歸荑) : 선물을 뜻한다. 《시경》〈패풍(邶風) 정녀(靜女)〉에 “야외에서 삐비를 선물하니 진실로 아름답고 특이하여라.〔自牧歸荑 洵美且異〕” 하였다. *일언(一言) : 백거이(白居易)의 〈대서시일백운기미지(代書詩一百韻寄微之)〉에 “심사를 한마디 말에서 안다.〔心事一言知〕” 하였다.
<성호집> 「騎省佐郞李公墓碣銘 幷序」
年二十四(1713)及第出身。由槐院正字。出補金泉察訪。金泉有去思碑。己亥(1719)薦授政院注書。
>경종 3년 계묘(1723) 6월 6일(계축)
헌부(獻府) 【장령(掌令) 서종하(徐宗廈)이다.】 에서 전계(前啓)를 거듭 아뢰고, 또 논하기를,
“전(前) 정랑(正郞) 이중환(李重煥)은 일찍이 김천 찰방(金泉察訪)으로 있을 때에 남에게 역마(驛馬)를 빌려 주었다가 해가 지난 뒤에 흉역(凶逆)의 집에서 돌려 받았습니다. 일이 국옥(鞫獄)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잡아다가 엄하게 핵실(覈實)하여 실정을 캐내게 하소서. 김유경(金有慶)ㆍ윤정주(尹廷舟) 등은 죄명(罪名)이 매우 중하니, 청컨대 양이(量移)하라는 명령를 환수하소서. 광흥 봉사(廣興奉事) 유진정(柳晉禎)은 본디 얼신(孽臣)의 서얼(庶孽)로서 그의 외조(外祖)의 이름을 고쳐서 시권(試券)에 써 넣었습니다. 그리고 세도 있는 집안과 관계를 맺어 사적(仕籍)에 함부로 통하였으니, 청컨대 사판(仕版)에서 삭거(削去)하소서.”
하니, 임금이 단지 이중환ㆍ유진정의 일만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