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함께’ 걸어갑시다.
늘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우리 인생의 동반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올 한해 우리 신천 노동자 성 요셉 성당 공동체 모든 분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혼란에서 회복되는 지난 한 해를 살아내며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지배당한 몇 년간 타인에 대한 과도한 경계와 내 자신으로의 과도한 집중이 우리 삶에 자리 잡았음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보게 됩니다. 곧 타인을 향한 배타성과 개인 및 집단 이기주의가 전반적으로 퍼져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가르침인 일치와 평화가 아닌 분열과 갈등을 일으킴을 봅니다.
이 가운데 우리 보편 교회는 이 시대의 징표를 읽고 우리 교회 안에 필요한 것이 바로 ‘시노달리타스 (Synodalitas)“임을 제시하였습니다. 우리말인 한글로는 한 단어로 정확하게 번역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몇 년 동안 들어왔어도 여전히 생소하지만, 이 말은 교회의 본질을 뜻하는 중요한 말입니다. 이 말은 ‘함께 가는 여정’ 혹은 ‘동반’, ‘동행’ 등의 여러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노달리타스’라는 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정확히 ‘이것’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시노달리타스’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두리뭉실한 느낌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뜻을 따르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말은 넓은 의미에서 교회의 본질 전반에 대한 통찰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공동체는 몇 년 전부터 계속 미사를 앞두고 ‘본당 신축을 위한 기도’를 바쳐왔습니다. 우리가 지어야 할 성당은 과연 무엇을 말함입니까? 땅에 기초를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두르고 지붕으로 덮은 뒤, 제대를 둔 건물만을 뜻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떠올립시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요한2,19) 이어지는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르신 성전이 터를 닦고 그 위에 장엄하게 세워진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우리 공동체가 지어야 할 성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기서 ‘시노달리타스’라는 의미는 그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합니다. 인간의 손으로 지어진 고정된 건축물을 넘어 예수님과 동반하는 끊임없이 역동적인 공동체, 그 자체가 성전임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사실 이것은 여러모로 모자란 제가 나름대로 생각해본 ‘시노달리타스’의 개념입니다만, 부연하자면 ‘시노달리타스’는 어쩌면 교회의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받아들인 복음, 그 기쁜 소식은 우리를 끊임없는 동행의 삶으로 이끕니다. 예언자는 말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이사 52,7) 이 말씀 그대로, 성모님께서는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님과 동반하여 산 위의 마을로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루카 1,39 참조)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머무름이 없이 끊임없이 다니셨습니다.(마르 1, 38-39 참조) 십자가 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을 정하신 뒤에도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루카 13,33ㄱ) 우리가 받아들인 복음은 우리를 끊임없는 동행, 그리고 멈출 수 없는 여정으로 초대합니다. 살아 있는 말씀은 우리와 함께 합니다. 갈릴래아로부터 시작하여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갈릴래아에 이르도록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여정을 함께함이 곧 우리 그리스도인의 ‘시노달리타스’입니다.
이는 우리가 세례 성사를 통하여 구원된 백성의 무리를 이루게 된 순간부터 시작되었으며 마침내 주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에 이르기까지 멈출 수 없는 여정입니다. 이 모든 여정에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두고도 “일어나 가자”(마르14,42)며 제자들을 독려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걸어 나갈 의욕과 힘조차 잃어 버렸을 때라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시어 생명의 말씀을 들려 주시고,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십니다.
제자들에게 엠마오로 가는 여정에서 일어났던 현존의 체험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이야기입니다. 미사가 바로 그 현존 체험의 반복된 “지금, 그리고 여기”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루카 24,33)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예수님과의 동행은 우리를 피하고 싶은 현실로 나아가게 합니다. 다시금 형제 자매들과 연대하여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골고타’로 기꺼이 나아가게 합니다. 이 모든 여정을 통틀어 ‘시노달리타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이 ‘시노달리타스’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맨 먼저 필요한 것은 우리 공동체 전체의 ‘치유’와 ‘회복’입니다. 당연하게도 서로가 서로에게 동반이 되어 같이 걸어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이르셨습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느냐?” 함께 걸어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회복을 진심으로 원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요한 5,6) 그러나 여기에 즉각적으로 ‘예, 건강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응답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구체적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 제가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건강해지기를 원하는, 그래서 함께 나아가기를 원하는 우리를 위한 선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주신 두 가지의 선물, 그것은 ‘고해성사’와 ‘병자성사’입니다.
솔직히 고해성사를 드리는 데 있어서, ‘뭐, 고해소 들어오는 신자도 얼마 없는데.’라며 해이해진 제 자신을 고백합니다. 저도 느슨해진 마음을 다시 붙들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더 많은 본당 공동체의 교우 분들이 고해성사를 통해 치유되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풍요로운 고해성사의 경험을 더 많은 분들이 함께 누리기를 바라며, 매달 정기적으로 여러 사제들을 통해 고해성사를 드릴 수 있도록 상설 고해 시간을 마련할 것입니다.
또한 많은 교우들이 삶에 만연한 질병 고통 가운데 하느님의 위로를 체험할 수 있는 병자성사를 독려 하고자 합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병자성사를 종부성사, 곧 임종 전에나 받는 성사로만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병자성사는 여정의 성사입니다. 우리가 함께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아프고 힘든 일이란 마치 ‘일상다반사’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다시 힘내서 함께 가자며 내미시는 주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것이 병자성사입니다. 병자성사를 위해 언제나 열려 있는 기회가 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 공동체 에서 지난해부터 매달 셋째 주 토요일에 드린 ‘공동체의 모든 아픈 이들을 위한 기원 미사’에 이어 미사 후에 병자 성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오해를 막고자 다시 한 번 확인하자면 ‘언제든’ 병자성사는 가능합니다. 이렇게 성사를 통한 신앙적 개인의 회복이 점점 더 큰 단위의 회복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 준성사와 신심행위를 통한 회복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치유된 개인과 개인이 모여 공동체 안에서 동행하고 있음을 확신하는 시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주일 교중 미사에 이어서 구역별 배정하여 가정 축복의 시간을 통해 가정 공동체의 회복을 확인하며, 성시간과 피정 등을 통하여 우리 공동체가 함께 주님 안에 나아가고 있음을 재차 확인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우리들 각자가 동행하시는 주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표징인 소중한 성물들을 다시 한 번 축복하며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재확인하는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로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주님을 개인 안에서, 또 서로에게서, 이 본당 공동체를 통해서 확인하는 시간들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러니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인 신천 본당 공동체 교우 여러분, 주님과 함께 걸어갑시다. 우리를 돌보시고 고쳐주시는 주님의 은총을 공동체를 통하여 확인하며 건강하게 되어 주님을 따라 나섭시다. 기도와 축복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복음이 되어 주님 나라를 ‘함께’ 살아갑시다. 주님의 동반자인 여러분을 우리의 벗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노동자 성 요셉 신천성당 공동체
동반 사목자
이병찬 아우구스티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