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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독 텍스트 요약분 / 우리가 걷는 이 길의 끝 / 575개 영상 1개로 압축 /
즉각 해탈하든 공포를 만끽하든 / 개똥 같은 칸트 철학 (feat. 물자체) / 도마복음 28 /
고요한 묵상 2 / 2024.03.02
https://www.youtube.com/watch?v=L98jZx6swyM
강독 텍스트 요약분:
1. 메시지 전달 미흡한 영상은 기회 될 때 마다 보완 예정
- 3월 1일자 올린 영상은 강독의식의 컨디션 저하 관계로 메시지 전달이 원활하고 효율적이지 않았음
- 따라서 다음에 기회 있을 때 마다 보완을 이어나갈 예정임
2. 현대적 단순화 시도
- 우리의 고통과 공포의 문제, 자유와 해탈의 문제, 삶과 죽음의 문제 관련.
다양한 측면에서 다양한 말이 가능하나 이어지는 강독에서는 아주 쉽게 현대적으로
단순화 시도하려 함
- 우리가 고통과 공포를 경험하는 이유는 바로 컵과 의식이 서로 다른 것이라는
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임
- 물론 이 한 생각은 그 역사가 수만년, 수십만 년의 시간 동안 이어져 온 한 생각이기에
그저 한 생각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강력.
- 이 컵과 의식이 서로 다른 것이다. 이 컵과 의식이 서로 같은 것이다,
두 가지 물건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이 고통과 공포로부터의 해방이랄까? 해탈이랄까? 생사 문제 해결이랄까?
하나님과 붓다의 발견이랄까?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음
- 그래서 이렇게 말로만 해서는, 이 단순화가 쉽게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수십만 년을 거쳐 각인되어 있기에 각인 평탄작업이 상당히 어렵다.
- 쉬우면서도 무척 어려운 일임
- 첫째, 수십만 년 동안 이어져온 우리의 생각이다.
컵이 있다, 컵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컵이라는 의식도 분명히 있다.
자 이 둘이 다르다.
이것이 수십만 년 동안 이어져온 최면이면서 문명이고, 고통과 공포이고, 생사문제다.
- 하나님 붓다 깨달음은 무엇이냐? 컵과 의식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깨닫는 사람 없는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늘 항존하는 깨달음 이다.
오직 깨달음 밖에 없다.
- 왜냐하면 의식은 다른 말로 자기 각성, 깨달음, 자각이라 한다.
- 그래서 동서양의 모든 경전과 어록이 제 1분기든 제 2분기든 제대로 다루는 문서든
그렇지 않은 문서든 단순화시키면 이 두 가지 길 밖에 없다.
- 첫 번째로 제시된 것이 동서양 제 2분기의 길이고,
컵 의식 이것이 이스트 웨스트 제 1분기의 길이다.
- 그래서 대승기신론 유식삼십송 수심결 반야심경 도마복음 등등은 바로 이 컵 = 의식,
제 1분기의 길에 속한다.
3. 컵과 의식의 보다 명확한 고찰
- 의식이 컵을 의식한다. 왜냐면 컵과 의식은 다른 것이므로.
- 의식은 인식 주체로서, 인식 대상인 컵과 완전히 떨어져 있다.
철학적으로 컵과 의식은 서로가 소외되어 있다.
- 그래서 제 2분기 안에서는 사람만 소외된 것이 아니고, 모든 물체도 각각 소외(Isolated) 되어 있다.
- 즉 인식 주체인 의식이 인식 대상인 물질세계를 의식한다.
의식이 컵을 의식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수십만 년간 이어져온 우리의 상식이다.
- 인식 주체 결국 ‘나’이므로, 나는 컵을 의식한다가 된다.
이것이 당연하다 여기고 이 사실에 준해 말과 생각과 행동을 해 왔는데, 웬지 속박되고
고통과 공포가 발생하더라.
- 알고보니 본래 아무 일도 없던 깨달음, 진리, 천국 안에 있었는데
이것을 우리 스스로, 이렇게 컵과 의식은 다르다라고 둘로 갈라 놓고 수10만년을 지내왔다.
- 이렇게 스스로 고의로 갈라 놓고는 고통과 공포를 원망하고만 있었다.
4. 진실을 거짓으로 덮어놓고 진실을 찾는 아이러니
- 고통과 공포의 바탕이 되는 제 2분기 의식이 컵을 의식한다
- 여기에 내가 있다, 그 다음 여기에 너가 있다.
- 여기에 나와 너 사이에 컵이 있다(이론, 과학, 종교, 신비주의 아닌 실제 상황임).
- 여기서 인식 주체의식인 나는 개인, 개인의식, 개인영혼이며 이것은 몸 안에, 두뇌 안에 들어 있다.
- 그러면 제 2분기 안에서 우리는 이 컵의 위치를 어디서 찾아야 돠나?
이 컵은 어디에 들어 있나? 공식(컵 ≠ 의식)에 입각해서.
- 개별 개인의식과 영혼이 몸 안에, 개인은 당연히 몸을 전제로 하니까,
이 피지컬 바디를 전제로 하니까, 몸 안에 들어 있는데, 이렇게 말풍선처럼 두뇌 안에 컵이 이미지로 펼쳐짐
- 물질 세계의 컵은 내가 실제 내가 의식으로 경험하는 컵과 일치하지 않음.
- 내부 의식이 외부 컵을 의식하기 때문에, 외부 물질세계의 컵과 비슷할지언정
전혀 다른 이 컵(의식 된 컵)을 지금 의식하고 있는 것임
- 외부의 컵(물질세계의 컵)과 의식된 컵(인식 경험 된 컵)은 동일하지 않다.
- 공식(컵 ≠ 의식)에 따르면 컵과 의식이 다르다 라는 제 2분기 수십만 년
호모사피엔스의 공식에 따르면 컵과 의식은 다른게 된다.
5. 너와 내가 보는 컵의 의식이 칸트의 물자체와 같다
- 자, 이번엔 내가 아닌 너는 어떻게 컵을 의식하고 있느냐?를 살펴본다.
- 너는 너 안에 있는 너의 개인의식(인식 주체)이다.
일단 두뇌라 할 때, 너의 컵이 너의 두뇌에 있다.
- 이때 나는 나의 컵을 의식하고, 너는 너의 컵을 의식하는데 너와 내가 대화를 통해 소통 불가능하다.
- 지금 내가 컵을 어떻게 보는지를 너는 절대 알 수 없다.
네가 이 컵을 어떻게 보는지, 어떻게 의식하는지를 나는 도저히 알 수 없다(소통 불가능)
그냥 소통하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이지 완벽하게 불가능하다,
- 자, 이렇게 되면, 이것이 바로 칸트의 물자체가 된다
- 이렇게 되면 우리는 외부 물질 세계, 컵 뿐만 아니라 외부 객관 세계를 영원히 모른다.
- 우리가 의식하는 것은 오직 개인의식, 개인 영혼 안으로 들어온 이미지만을,
즉 객관 물자체에서 투사된 이미지, 혹은 소여라고 하는 주어진 것.
- 우리에게 던져진 그 무엇을 우리는 의식할 뿐이지. 실제 외부 객관 물질세계인
이 컵은 도저히 나도 알 수 없고, 너도 알 수 없고, 그 어떤 인류 구성원도 이것을 알 수 없다.
이것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칸트의 물자체다.
- 어떻게 생긴 지 여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시공간 감수 형식과 12가지 카테고리로,
붕어빵 찍어내듯 뭔가를 우리가 찍어내서 의식하기 때문에, 실제 물자체는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는 것.
- 실제 컵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절대 알 수 없다
- 내가 의식하는 컵과 네가 의식하는 컵도 물론 다르지만, 그래도 비슷한 이유는
인간의 감성 형식과 오성 형식, 즉 붕어빵 틀이 비슷하기 때문임.
6. 감성 틀, 지각 틀, 12 범주 5성 이론: 감각과 지각 설명
- 이 컵을 의식하는 것은 시공간 감성 틀과 또 원인 결과 등등의 12 범주 오성 틀이라 함
- 즉 감성틀이라는 것은 우리가 감각하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붕어빵 틀과 같다.
12 범주 오성 틀이라는 것은 지각 형식을 이야기하며 시공간을 통해서 받아들이고
물자체가 뭔지는 몰라도 이것을 변형시킴
- 물자체를 알 수 없는 물자체를 시공간 틀에 의해서 받아들이고,
즉 쇠로 된 붕어빵 틀의 틀 안으로 밀가루를 받아들이고,
그 다음 12 범주 5성 틀이라는 것은 아는 틀로 개인의식 안에서의 의식함을 이야기 함
- 즉 쇠로 된 붕어빵 틀 안에 밀가루를 넣어서, 그 안에 계란도 넣고 물도 넣고 팥앙금도 넣고
이렇게 하는 것을 12 범주 5성 틀이라 하는데. 시공간과 원인 결과 등등의 12 범주에 의해서
우리는 죽었다 깨나도 알 수 없는 외부 물질세계, 물자체를 우리의 개인의식 안에서 이렇게 의식한다.
- 그러나 이것도 다 다르다. 컵도 뉘앙스가 개인마다 다르긴 해도 비숫하 것이란 추측만 할 뿐.
- 시공간은 감각 형식이고, 12 범주는 원인 결과 부분 전체 우연 필연 이런 걸 이야기 하며 지각 형식임
- 즉 감각하고 생각하고 아는 인간 고유의 빵틀, 그럴듯한 얘기 같은데. 이게 진짜 엉터리
- 이것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플라톤에서 시작해서 칸트로 흘러 들어가서,
칸트에서 다시 근현대 철학이 나와서 온갖 묘한 소리를 하지만 밥통 스피커 제 1분기 지혜를
단 한 번 이라도 들은 사람이 볼 때는 어이없는 엉터리 이야기를 멋진듯 포장해 놓은 것밖엔 안됨
7. 의식과 컵이 있는 실제적 위치 점검
- 그럴 듯 하지만 엉터리임을 밝혀보자
- 첫째는 지금 컵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말은 동시에 컵이 어디서 의식 됩니까? 라는 말
- 그런데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구에게나 지금 컵이 어디 있습니까? 물으면
전부 하나같이 이렇게 외부의 컵을 가리킨다.
- 일단 컵이 각자의 머리나 영혼이나 영계나 아카식 레코드나 어디 천상에 있지 않고,
너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컵을 가리킨다.
- 따라서 첫째 질문의 답은 이렇다
컵은 머리나 개인의식이나 개인 영혼 안에 들어 있지 않고, 지금 몸 밖에 있는 그 곳에서 의식된다.
- 즉, 컵과 의식이 다른 것이라면 '컵이 어디 있습니까?' 하면
지금이 머리를 가리키거나 심장을 가리키거나 각자 이렇게 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지금 마치 하나의 의식이 그냥 여러 의식 수단을 통해서. 동시에 의식하는 것처럼 이렇게 가리킨다.
8. 의식 위치가 머리 속이라는 엉터리즘 때문에 우리의 실제경험과 차질 발생
-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라이프니찌의 단자론처럼, 이렇게 반론한다.
- 실은 지금 각자 가리키고 있는 이것 자체도 다 머릿속에 들어 있다라고 말함
- 자, 실제 지금 이 의식경험은 외부 경험이 아니고, 각자의 머리 안에 다시
나의 복제품과 너의 복제품이 요렇게 들어 있다,
그래서 요 머리 안에서 요렇게 가리키고 있고, 또 요쪽 머리 안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함.
- 내 머리 안에 나의 복제품과 너의 복제품이 들어 있고,
또 너의 머리 안에도 너의 복제품과 나의 복제품과 또 외부 컵의 복제품이 들어 있어서,
내 머리 속에서도 나의 복제품과 너의 복제품이 요렇게 가리키고,
네 머리 속에도 나의 복제품과 너의 복제품이 요렇게 가리키고 있다고 말함
- 자, 그러면 설사 이게 엉터리 같은 얘기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가르쳐야 했다.
- 왜냐하면, 이 이야기의 전제 역시도 너든 나든 컵이든 다 내 머리 속에 한 세트 들어 있고,
네 머리 속에도 한 세트 들어 있고, 인구가 80억이면 80억 세트가 다 들어 있는 거라고 말해야.
- 그렇게 이야기 했다고 해도 역시 머리 속이 되므로 이렇게 가리키면 안 된다.
- 만약에 이렇게 알고 있고 믿고 있다면, 머리 속이든 머리 밖이든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가르쳐야 되고, 그러면 나든 너든, 이 인간이란 몸이니까.
- 우리 몸도 물자체로 돌아가고 보면 인간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상상 속의 어떤 존재가 되어버린다.
- 인류라는 감성과 오성, 즉 감각 지각 틀을 통해서 아는 사람이지,
진짜 사람은 뭔지 모르는 게 되어 버린다.
- 의식이 컵과 다르니까. 의식은 절대 컵 그 자체는 알 수가 없다는 미궁에 빠진다.
- 첫째는 머리를 가리키지 않고 외부를 가리킨다는 것,
둘째는 인간 자체도 물자체가 되어서 인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상식(지혜)
세번째는 인간 자체도 물자체가 되어서 인류가 뭔지 모르게 되기 때문에 감각 지각
인간의 감각 형식 지각 형식 이야기 자체가 바로 개인의식 안에서의 상상이고 엉터리.
9. 오컴 법칙의 위배에 따른 무한 소급 현상 고찰
- 세 번째는 이게 오컴의 법칙에 위배 됨
- 오컴의 법칙 위배되는 이유?
- 지금 현재 우리 각자의 머리 속에서 각자가 상상해 낸 자기와 타인. 그러면 원본 머리에는 우리가 없다.
원본 머리가 없어지는 것은 원본 물자체 머리가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며 이것은 오컴의 법칙에 위배 된다
- 왜냐하면 본래의 어디 안에서 머리, 영혼, 개인이 상상되는지 모르게 된다
- 왜냐하면 머리가 물자체가 되기에. 도대체 원본 머리가 원본 의식이 원본 영혼이 뭔지 모르게 된다.
- 느닷없이 주어진 이일이 각자의 의식, 영혼 안에서 벌어지는데 무한 소급된다.
- 그러면 요 안에서 또 지금 각자의 머리 안에서 또 지금 하나의 머리,
너와 나의 세상이 벌어지고. 그러면 요 안에서 다시 요런.
여기서 요거는 원본 물자체라고 하는 외부세계는 전혀 알 수가 없음.
- 요게 제 1, 제 1 의식 세계라면, 다시 제 1 의식 세계 안에 있는 너와 나의 머리 안에
다시 제 2 의식 세계가 펼쳐지고, 그러면 제 1 의식, 제 2 의식에
다시 제 3 의식 세계가 다시 펼쳐지면서, 이게 끝도 없이 영원히 이어진다.
-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일어나는 현상과도 같다.
최초 이게 어디서 시작됐고, 원본 머리, 원본 영혼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고.
오로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전부 어디서 벌어지는지 모르는 머리 속인지,
영혼 속인지 모르지만, 이런 동일한 구조가 끝없이 순환 반복되는,
마치 거울로 된 방 속에 들어와서, 도대체 진짜 내가 누구지?라고 찾고 있는 그런 형국이 된다.
- 이것을 상분(相分) 견분(見分) 자증분(自證分) 증자증분(證自證分) 고자증분(高自證分)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지게 되니까 자증분, 증자증분에서 억지로 끝내야 되니 결국 엉터리다.
- 엉터리임을 알았으니 돌아보면,
1)컵을 가리킬 때 몸 밖을 가리켜야 하고.
2) 인간 자체도 물자체로 돌아가서 인간이 뭔지 알 수 없게 됨을 알아야하고.
3)오컴의 법칙에 위배 되어서 원본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우리는 도저히 알수 없으며,
4) 제 1, 제 2, 제 3, 제 100억 의식 세계까지 무한 반복되어 오리무중인 것을 알게 된다.
10. 거울 방속의 수많은 나중 진정한 나는 어디에?
- 거울 방에 들어가서 수 많은 내가 나타날 때 진짜 나는 어떻게 찾나?
끝없이 이어지는 그 상을 상 속에서 찾는 게 아니고, 진짜 나는 무엇인가 하는
바로 이게 진짜 ‘나’다. 진짜 ‘나’는 찾을 필요가 없었다.
- 진짜 나를 찾는 이것 만이 진짜지. 무한반복되는 무수한 모습은 거울에 비친 상일 뿐이다.
- 오컴의 법칙으로 보더라도 모든 엉터리를 일소하고 그저 내가 어디 있지?라고 하는
이것 만이 진실이다, 이것이 의식이며 이것이 진정한 ‘나’다
11. 개인의식에 기반한 엉터리 조작과 현실기반의 직관 탐구 과정 속에서
발견되는 제 2 분기적 오류
- 살펴본 엉터리는 너무 개인 영혼 개인의식 자아의 생존과 번식에 집착한 나머지
조작의 냄새를 풍기며 발생한 결과임을 직관할 수 있다
- 이제는 단순하게 컵이 여기 있고, 이것은 내 컵도 네 컵도 아니고,
이 하나의 의식 안에서 지금 의식 된다고 하자.
이것은 우리의 직관에 의한 경험이기도 하고, 어릴 적의 누구나의 생각이기도 하다
- 크면서 학습된 주관 객관, 정신 물질, 깨달음 못깨달음, 하나님 피조물, 중생 부처,
아리한 깨달은 사람, 성자 종교 이런 개념을 믿다보니 본래 있던 진실과 지혜를 버리게 된 것.
- 좋게 이야기 하면 연극을 메소드 연극에 몰입 되어 있었던 것.
- 제 2 분기의 개인몰입 현상을 우리가 철저히 숙고 하다보면 자연스레 제 1 분기로 가게 된다.
- 결국은 개인적 동기로 인해 둘로 나뉘었던 것이 실은 하나로 같다는 이야기다.
- 우리의 직관은 같은 얘기를 바보처럼 되풀이하고 있음을 보게 됨
12. 제 1 분기의 지혜와 깨달음은 우리의 실제 일상 경험과 일치.
- 그래서 제 2 분기에서 이 컵과 의식은 다르다.
다르다 라는 사실을 관철하면, 제 1분기의 지혜로 저절로 인도 된다
- 유일지혜인 제 1 분기에서 ‘컵이 의식이다’.
이것이 진짜 깨달음, 유일한 깨달음, 하나님이고 붓다다
- 컵이 의식이다 라고 하면, 곧바로 생사 문제가 해결 되어 버린다
내부 의식이 외부 컵을 의식한다 고 해서 풀리지도 않는 물자체쇼를 할 필요성도 단숨에 사라진다.
- 더구나 우리의 실제 일상 경험과 일치하게 된다.
13. 객관 세계는 모르고 의식은 진실이라는 칸트의 물자체는
여전히 수십만 년 동안의 최면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컵이 의식이라고 하면 ‘의식이 의식을 의식하다‘가 된다
- 의식이 의식을 의식한다, 컵이 컵을 의식한다, 컵이 컵을 컵한다 이렇게 된다
이때 ‘컵이 컵을 컵 한다’는 공식(컵 = 의식)에 대입하면 의식이 의식을 의식한다와 같은 말이 됨
- 그러면 실제 우리의 경험이이 진실로 회복된다
- 개인적 동기(제 2 분기)가 빠져 버려 (컵 = 의식)이 되어 버리니 그 복잡다단한 문제가
명백히 심플하게 되면서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하고도 일치하게 되었다.
- 실제 우리 경험은 제 2분기에 속하는 칸트를 위시한 ‘컵과 의식이 다르다’라는 사실에 의거해도
지금 물자체는 모름으로, 객관 세계는 모르고 의식은 진실이라고 말한다.
- 제 2분기에도 결국은 아무리 유물론을 이야기해도 물질이 아닌 의식인 것이다
- 의식인 물질을 물질이라고만 주장해려 했으나, 결국은 알 수 없는 물자체를 아는 듯
상정함으로서 엉터리임이 밝혀졌고, 제 1 분기 지혜에 의해 물자체라 한 것도 결국 의식임이 드러났다.
- 컵=의식 임을 제대로 보는 일은 결국 수십만 년에 최면을 지워내는 일이다.
지금 당장 우리는 완전히 깨어나고, 동시에 같이 깨어나고, 단일 의식의 자기 자각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 이것이 진정한 있는 그대로 이며 개인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네가 있고 컵이 있는데, 나도 똑같은 컵을 몸 밖에서 의식하고, 너도 똑같은 컵을 몸 밖에서 의식하는 것이다.
14. 의식과 영혼이 머리 밖으로 나오면 칸트의 물자체도 오컴의 법칙오류 내용들도
말끔히 해결된다. 심플하지만 핵심을 보게 된다.
- 우리가 알고 있던 의식과 영혼은 개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의식과 영혼은 지금 몸 밖으로 나와야 된다.
- 지금 컵을 의식하는 곳은 몸 안이 아니니까.
- 그러면 누가 어떻게 의식하고 있느냐?
컵이 의식이니까, 의식이 의식을 의식한다. 이렇게 되며 테두리가 없슴
단일 의식이 단일의 자기 수단을 통해서 자기와 컵을 동시에 의식한다.
그런데 자기 수단은 참으로 많다
- 단일 의식의 인간 세계는 인간 필터링을 통해서 물질세계가 아니고,
제 1 수단이 되고, 이 컵은 제 2 수단이 된다.
- 다시 컵의 입장에서는 컵이 컵을 컵한다.
컵이 컵을 의식한다니까. 단일 의식은 컵을 통해서 인간을 의식하고 있는 것
그런데 어떻게 컵이 인간을 의식해? 라고 반문한다면 아직도 의식이 몸 속에 갖혀 있다는 반증(즉 제 2분기)임.
- 공식(컵 ≠ 의식)이 맞다고 느끼는 동안은 의식이 몸 안에 갇히게 된다.
- 생명체는 의식체이므로, 사람만 생명체가 아니고, 컵도 동일한 생명체가 되었다.
- 이제는 컵이 사람을 의식한다고 할지라도 생명체가 생명체를 의식하는 것이므로 이상한 일이 아님이 드러났다.
- 컵이 사람을 의식할 때는 컵 자신이 제 1 수단이 되고, 인간은 제 2 수단이 된다
- 단일 의식의 자기 자각, 자기 생명 축제라는 이 장엄한 사랑의 경험을 위해서.
이렇게 진짜 거짓도 없이, 아무런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의 우리 일상경험이
이렇게 밝혀지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더구나 이것은 우리의 실제 일상 현실 경험과 더욱 부합되므로,
억지로 논리를 비약시키거나 새로은 가정을 할 필요도 없게 되었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해해야 할 필요성도 눈 녹듯 사라졌다.
제 1분기 지혜를 거치면 이렇게 단순하지만 정확한 핵심을 보여주고 있음에 놀랍다
- 제 1 분기 지혜에 다가서려면 우리는 가슴을 열고 솔직해지며 마음이 가난해져야 한다.
15. 지혜를 알고보니, 삶과 죽음 안에 내가 있는 게 아니고,
내 안에 삶과 죽음이 있다는 생명축제의 복된 소식
- 의식이 의식을 의식한다. 컵이 컵을 컵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수단이자 목적이 된다.
- 우리는 컵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컵이 나와 같은 생명체이니까
아니, 같은 생명체가 아니고, 그냥 하나다. 하나다.
- 그러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언급할 필요도 없다.
길가의 고양이와 개를 어찌 해하며, 심지어는 한 폭의 풀 조차도 짓 밟을 수 없다.
어떻게 타인을 해하며 나의 생존과 번식 유리함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하라 해도 하지 못한다.
- 제 1분기 지혜를 처음에 접하게 되면, 풀한 포기도 밟기다 어려워지고,
마치 자이나 교도처럼 개미를 밟을까봐 조심할지도 모른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것은 고통과 공포가 아니고,
가벼움과 속박과 자유를 떠난 자유고 유쾌함이고 임팔라처럼 경쾌함이다.
- 이렇게 되면 삶과 죽음이 다 의식안의 일이 된다.
- 몸 안에 의식이 있는 줄 알 때는(컵 ≠ 의식) 이 삶과 죽음 안에 내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의식이 몸 밖에 있다는 지혜를 듣고 났더니(컵 = 의식), 내 안에 삶과 죽음이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 즉, 삶과 죽음에 내가 속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삶과 죽음을 창조하고
연극하고 연기하고 있었음을 보게 된다.
- 삶에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Don't care, I Don't care, We don't care,
- 죽음의 어떤 상황 조차도, We don't care. 가 되며,
전부 하나로서 바늘구멍 하나 틈새 없이 엄청나게 자유로운 사랑의 생명 축제임을 알게 된다.
- 고통과 공포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매순간 이 지혜를 듣고 가슴에 간직함으로써
우리가 자주 개인적 동기에 매몰 되더라도,
순간적으로 우리는 다시 이 생명 축제를 기억해내고,
100%, 1000%, 즐기는 단일 의식의 자기 깨달음으로 항상 돌아올 수 있다.
- 컵이 의식임을 아는 일 하나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 이 점을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제 1 전승 지혜의 공식은 너무도 심플합니다.
[컵 = 의식] (o), [컵 ≠ 의식] (x)
그러나 너무도 중요하고 소중한 앎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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