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현대 불교, 기독교의 신리(神理)는, 오랜 역사적인 과정속에서
매몰되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대의 권력이나 종교가들의 지(智)와 의(意)에 의해 해석되어,
학문, 철학으로 변하여,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유리(遊離)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본래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사람들의 마음에서 유리(遊離)된 그런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르침 자체는, 인간의 마음이란, 인간이란 이러한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기쉽게 섦명하고 있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지정의(知情意)의 정(情)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정(情)이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지(知)는 지혜(智慧)로 되고, 의(意)는 대아(大我)로 되는 것입니다.
그 정(情)이 부재하고,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지(智)와 의(意)로 자기마음대로 해석하고,
자기마음대로 고쳐 쓴 것이기 때문에 마침내 민중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져 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오관이나 육근에 좌우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싶다. 훌륭하게 되고 싶다.
돈을 모으고 싶다. 고 하는 자기보존의 염(念)이 사회생활을 영위함에 의해
점점 강해져 갔기 때문입니다.
투쟁과 파괴 - 그 원인을 물으면, 모두 그러한 욕망에 휘둘린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욕망이나 본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생활이 이 세상뿐이라고 스스로 한정하고 만 것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요.
손에 잡히는 것, 눈에 보이는 것, 귀로 듣는 것등
인간은 감각의 세계밖에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은 현세에 집착을 갖도록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죽어도 내세(來世)에 계속 살아간다고 하는 것을 알면,
사람들의 인생관은 바뀌고 말 것입니다.
즉 저 세상은 엄연히 있는 것이고,
저 세상이야말로 진짜 인간이 사는 세계이며,
이 세상은 인간 수행의 장(場)이며,
그렇게 해서 인간은 저 세상과 이 세상의 전생윤회(轉生輪廻)를 반복하는 것에 의해,
혼(魂)의 정화(淨化), 불성(佛性)인 자기 본성에 눈뜨게 되는 것입니다.
괴로움 슬픔의 원인은, 신성(神性) 불성(佛性)인 자기 자신의 < 마음 >에서 벗어난
상념행위의 결과이며,
그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마음을 직시하고,
마음 자체의 실체를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서는 그러한 의미에서,
< 마음 > 이란 무엇인가,
< 정법 > 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 인간 > 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개념적이긴 합니다만,
그 포인트를 좁혀서 쓴 것입니다.
본서를 손에 잡으신 독자는,
본서의 진의(眞意)를 파악하고, 조화된 생활과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마음의 양식으로 될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다카하시 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