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돌이라고요? 하마터면 먹을 뻔"
이돈삼2024. 9. 1. 11:33
수라상과 제사상 돌로 차린 순천 세계수석박물관
[이돈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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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로 푸짐하게 차린 수라상. 순천 세계수석박물관에서 만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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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진짜 음식인 줄 알았어요. 집어 먹을 참이었습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네요."
"세상에, 이게 다 돌이라고요? 돌로 진수성찬을 차렸다고요?"
돌로 차린 수라상을 본 관람객들의 반응이다. 누구라도, 하나같이 감탄사를 토해낸다. 벌어진 입도 다물 줄 모른다. 뒤이어 들어온 관람객도 탄성을 지른다.
"와! 정말 잘 만들었다. 어떻게 만들었지?"
"만든 거 아니라는데요. 자연산 돌이라고 합니다."
"정말요? 이게 진짜 돌이라고요?"
전시된 수라상을 쳐다보는 눈매가 더욱 빛난다. 인공의 흔적을 하나라도 찾아보겠다는 심산이다. 자연산이라는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하긴, 나부터도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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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로 차린 수라상의 일부. 순천 세계수석박물관에서 만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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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로 이뤄진 소갈비. 순천 세계수석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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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만큼 큰 상에 갖가지 음식이 다 차려져 있다. 산해진미가 다 모인 것 같다. 후식으로 먹을 포도도 놓여있다. 진짜 포도 같다. 수라상 옆에 따로 전시된 소갈비와 돼지고기 삼겹살 덩어리도 돌이란다.
"이건, 대통령실 수석들이 먹는 고기인가요?"
"하하,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네요. 국내산은 아닙니다. 중국산입니다."
"외국 돌이 많은가요?"
"국내산과 외국산이 섞여 있어요. 화려하면서도 큰 돌이 주로 외국산입니다."
박병선 관장과 주고받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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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선 관장이 돌로 차린 수라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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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세계수석박물관 전시실. 진귀하면서도 다양한 수석이 전시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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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세계수석박물관이다. 지난해 말 문을 연 박물관은 12개 주제별 수석전시관과 3개 성(性) 예술 특별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규모는 10만㎡(3만여 평) 남짓. 전시된 수석은 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8000여 점 가운데 4분의 1 가량 된다.
수석은 하나같이 진귀하면서도 오묘한 삼라만상을 품고 있다. 태극기, 무궁화, 한반도 모양 작품도 있다. 사군자, 아라비아숫자, 하늘을 나는 새 등이 새겨진 돌도 있다. 김대중, 노무현, 박정희 등 역대 대통령과 맥아더 등을 닮은 수석도 흥미를 더한다.
야외에도 조각작품 300여 점이 설치돼 있다. 호랑이, 코끼리 조각상이 있는 동물조각정원을 비롯 12지신 정원, 쥬라기 정원, 비너스 정원이 설치됐다. 수목 정원, 민속마을 정원, 성예술 정원, 폭포 정원, 호수 정원, 미래 정원도 있다. 나무도 우거져 숲을 이룬다.
박물관은 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포라이즌CC(옛 승주골프장) 가는 길목이다. 순천만국가정원과 순천만생태공원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다. 낙안읍성민속마을에서도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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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세계수석박물관 야외 정원. 갖가지 모형의 조각작품이 전시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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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세계수석박물관 야외 정원. 갖가지 동물 모형 조각작품이 세워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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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박물관을 꾸민 주인공은 박병선(75) 관장이다. 박 관장은 공무원 출신이다. 지난 2002년 순천시청 사무관으로 명예퇴직했다. 순천시의원도 지냈다. 박물관 건립은 공무원을 그만둔 20여 년 전부터 구상했다. 수석을 모으기 시작한 건 50년 다 됐다.
"군대에 들어가기 전, 남한강변에서 돌 하나 주운 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모았고, 구입도 많이 했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모으고, 샀습니다. 외국에서도 많이 샀어요. 수석을 살 돈은 아끼지 않았습니다. 수석 산지인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에도 많이 드나들었어요. 미쳤죠. 미쳐서 살았습니다."
박 관장의 말이다.
주변에선 '연구대상'이라며 핀잔 겸 격려도 했다. 하지만 "'미쳤다'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게 박 관장의 말이다. 작품을 구입하느라 물려받은 재산도, 개발부지 편입에 따른 토지 보상금도 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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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선 관장이 전시된 수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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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은 형(形)과 질(質), 색(色)이 좋아야 합니다. 삼라만상의 어떤 모양을 닮았는지, 그 형태가 가장 중요합니다. 질감은 단단하고 견고해야죠. 색감은 밝음과 어두움, 짙고 연함에 따른 느낌이 확실해야 합니다."
박 관장이 밝힌 좋은 수석의 3요소다.
박물관에 전시된 수석은 대체로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문양을 하고 있다. 은은한 동양화 같은 느낌의 돌도 있고, 화려한 수채화 느낌을 주는 것도 있다. 화가가 돌에다 그림이라도 그린 것 같다.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어서 더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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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과 설악산, 금강산 풍경을 닮은 수석. 순천 세계수석박물관 전시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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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세계수석박물관 내 '성인관'. 19금 전시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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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쁘지요? 이쁘기만 한가요? 한결같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이 없어요. 돌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변함이 없습니다. 항상 묵직하죠. 언제라도 변함없이, 그게 매력이에요."
박 관장의 수석 예찬이다.
전시 작품은 각양각색이다. 일반적인 수석에서부터 수만 년 된 종유석도 있다. 종유석은 중국 동굴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은 구할 수도 없다. 외부 반출이 금지된 탓이다. 성인에만 개방되는 '19금' 수석도 300여 점에 이른다.
"중간에, 팔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안 팔았어요. 박물관 지으려고. 다른 도시에서 지원하겠다면서 박물관 건립을 제안했지만, 거절했어요. 내 고향에다, 이렇게 내 손으로 박물관 만들려고요."
박 관장이 활짝 웃는다. 그의 어깨에도 힘이 들어가면서 으스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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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에 새겨진 한반도와 태극 문양. 순천 세계수석박물관 전시실에서 만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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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열사 그리고 소녀상. 순천 세계수석박물관에서 만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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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박물관이지, 아무라도 와서 편히 쉬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쉬면서 수석도 감상하고, 조각작품과 조경수도 보고요. 제가 무슨 욕심이 더 있겠습니까? 박물관 하나 반듯하게 만들어서, 우리 지역의 자랑으로 키우겠다는 생각뿐입니다."
큰 수석처럼 묵직한 박 관장의 바람이다.
박물관을 뒤로하고 나오면서도 경외감이 다시 한번 든다. 가족과, 지인과 함께 다시 찾고 싶은 수석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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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들의 망중한. 순천 세계수석박물관에서 만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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