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사람
여기 심령이 가난한 사람 즉 영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말은 그 사람의 인간성이 빈곤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지성이 빈곤하거나 의지가 빈약하다는 것도 아니고 또 아무 욕심도 없이 지낸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너무 큰 욕심을 가져서 현재 있는 것을 이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부인해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 자기 주장이라는 것은 항상 쓸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해서 누가 거기에 대해서 강하게 반대하면 그 주장에 대해서 끝까지 버티지도 못하고 신념으로 그것을 뚫고 나가려는 힘도 없이 ‘나는 기와 아무것도 아니니까’ 하고서 뒤로 물러서면 가장 겸손한 것 같지만 그러면 그것이 마음이 가난한 것이냐 하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이 보이신 가난한 상태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사 42:3)는 심정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셨다:(벧전 2:23)는 것이 예수님의 심정입니다.
이런 심정을 가진 다윗으로서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판단해 주시기만 바라고 자기가 스스로 그것을 심판할 자로 여기지 않았고, 자기가 그것을 넉넉히 처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을 거기 표시하지 아니했습니다. 자기가 받은 그 모욕을 설분할 수 있지만 자기가 설분하려고 하지 않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다 맡기는 심정, 그러고 자기는 그런 일을 다시 돌아보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맡기신 일로 충실히 나아가는 이러한 심정이 심령이 가난한 상태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행복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가 자기를 의식해야 할 막다른 골목에 이른 때 혹은 평상시 이하로 모욕을 받았을 때, 즉 부당한 처사를 당했을 때 ㄱ로 말미암아 분개하고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를 내세워서 상대를 공격해서 상대를 괴멸시키고 싶은 심정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일을 당했을 때에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는 심정을 가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저를 여기다가 두어두셨으니 하나님이여, 당신께서 심판하소서. 저는 하나님의 손에 맡깁니다. 저는 제 길을 가겠습니다.’ 하는 것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심정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