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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거상 江湖巨商 - 서효원 작 강호거상 제1권 서사(序史) - 대륙(大陸)을 정복(征服)했던 원(元)이 무너지기 십 년 전, 원황실(元皇室)에서는 항차 원 을 수호할 십 인(人)의 수호신(守護神)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그 일을 위해 사해팔황(四海八 荒)에서 천재(天才) 영재(英才)들이 대거 잡혀 왔으며,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십 인의 소년 소녀(少年少女)들만이 남게 되었다. 그들은 초인수업(超人修業)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악마(惡魔)의 자식(子息)들로 길러지게 되 었다. - 초인수업은 대원황실(大元皇室)의 일천 무장(武將)에 의해 실시되었으며, 원이 천하각지 에서 거둬들인 기진이보(奇珍異寶)와 절세신약(絶世神藥)이 무한대로 쓰여졌고, 악마의 자식 들은 열 마리 악마의 잠룡(潛龍)으로 자라나게 되었다. 만에 하나 그들 열 마리 악마의 잠룡 들이 제거되지 않았더라면, 그 뒤의 역사(歷史)는 완전히 고쳐 쓰여졌으리라. 원이 무너지는 그해, 열 마리 잠룡이 길러지던 새북(塞北)의 잠룡궁(潛龍宮)은 깨어졌고… 일천 무장은 시산혈해(屍山血海) 가운데 드러눕게 된다. 그러나 열 마리 악마의 잠룡들 은……? 그리고 그들로 인해 피어나도록 안배되었던 열 송이 악마화(惡魔花)는……?누구도 그들에 대해 알지 못하며, 항차 그들이 대륙천하를 지배하는 십 인(人)이 됨을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들 열 송이 생명의 꽃을 피어나게 한 신(神)이라 하더라도, 당시에는 그 일을 알지 못했을지 모른다. 열 마리 잠룡(潛龍)들. 악(惡)을 위해 피어난 화려하고 찬란한 악마의 꽃술들. 그리고 그들에게 의(義)를 시험한 풍운(風雲)의 계절(季節)과 운명(運命)의 바람(風). 이제 그들을 잊어도 좋다. 그러나 영원히 잊어서는 아니 된다. 그들은 언제고 돌아오는 봄마다 피어나는 꽃송이들처럼 언젠가 한 번은 피어나는 불멸(不 滅)의 꽃송이들이며, 그들이 피어나는 계절은 바로 피와 죽음의 다섯 번째 계절일 테니까. 강호(江湖)여, 그리고 대륙(大陸)이여! 천 년(年)의 세월이 지나더라도 그들을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 진심(眞心)으로……! 그리고 영원(永遠)과 운명(運命)으로! 십대잠룡(十代潛龍). 이제 그들의 이야기는 시작되어야만 한다.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서장(序章) 천 년의 폭풍(暴風)… 그 날 홍무(洪武)의 군대가 원(元)을 무너뜨리고, 중원(中原)에 군림하는 대제왕(大帝王)이 되는 그 해의 봄이었다. 훗날 홍무(洪武) 일 년(年)으로 기록되는 그 해, 새북(塞北)의 한 장소에서 운명(運命)의 폭 풍(暴風)이 불어닥쳤다는 것은 강호계의 명숙(名宿)들만이 아는 엄숙한 비밀로 기록되고 있 었다. 핏빛 투명한 진달래가 새북(塞北) 고원(高原)을 핏빛으로 뒤덮으며, 창궁(蒼穹)에 이르는 붉 은 비단의 길을 내었던 그 봄날. 훗날 대륙천하(大陸天下)의 숙명을 좌지우지하는 폭풍의 비사(秘史)가 기록되고 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초원(草原)이다. 사막(沙漠)을 둘러싸고 있는 대초원 지대. 사람들은 이 곳을 일컬어 일망무제(一邙無際)의 북원(北原)이라고 부르고 있다. 원(元)이 일어난 이 곳, 눈길을 지평선에 둔다면 가물가물거리는 아지랑이 위로 하나의 거대 한 산영(山影)이 웅크리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영산(靈山)이라 불리는 잠룡대산(潛龍大山)! 그 곳은 성지(聖地)이며, 제왕(帝王)의 영역이었다. 십 년 전, 그 산을 중심으로 하여 반경 일천 리(里) 이내는 절대금지로 화하였으며… 제아무 리 신분이 높은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 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절대로 허락되지 않았다. 철목진(鐵木眞)의 야망(野望)이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는 잠룡대산!그 산은 패왕(覇王)의 상 징이었으며, 중원(中原)을 조롱하는 힘의 표상이기도 했다. 지난 이백 년에 걸쳐, 잠룡대산의 신위는 한 번도 조롱당하지 않았다. 또한 무너져 버린 원 이 영원히 대륙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산의 권위만은 천추 내내 이어질지 모른다. 휘리리리링-! 무시무시한 기세로 불어닥치는 대선풍(大旋風). 지형을 뒤바꾸어 버리고 인마(人馬)를 천 길 높이로 말아 올리는 죽음의 바람. 모든 것이 운진(雲塵)에 휘어 감겨 버리고, 드넓은 초원이 말세의 대지로 화하기 시작한다. 마치 무너져 버린 원의 말로를 애통해 하는 듯, 대초원은 벌써 보름에 걸쳐 신음 소리를 토 하고 있는 것이다. 휘리리링-! 가공스러운 기세로 덮쳐 드는 대폭풍! 하나, 그 산(山)만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잠룡대산(潛龍大山). 일컬어 제왕(帝王)의 대지(大地). 지난 십 년 간 아무도 다가서지 못했던 비밀의 성역! 천 명의 무장(武將)과, 천 명의 아해(兒孩)들, 마차(馬車) 일천 대를 가득 채운 기진이보(奇 珍異寶)……. 십 년 전, 실로 웅장한 행렬이 잠룡대산을 향해 이동해 간 바 있었다. 그 날 이후 잠룡대산은 금지로 화하였으며,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했으며, 그 누구도 잠룡대 산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 안에서 대체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거대한 산은 십 년 간 침묵하고 있었다. 휘리리리링-! 악마의 바람이 더욱 강한 기세를 부리고 있다. 잠룡대산은 준엄하기 이를 데 없는 거산으로, 능선의 총연장을 따진다면 가히 이천 리(里)에 달하고 있다. 해일처럼 덮쳐 드는 폭풍을 의연하고 장엄한 기세로 인내해 내는 거인의 산. 우르르르릉-! 산이 허물어지는 듯, 뇌성(雷聲) 비슷한 소리가 일어나고 있다. 포효(咆哮)하는 듯한 굉음 가운데, 잠룡대산 허공의 천기는 실로 기묘하게 변화되어 가고 있 었다. 대체 언제부터 뻗쳐 오는 빛일까? 청홍황(靑紅黃), 남백금(藍白金)……. 찬란하기 이를 데 없는 빛이 허공으로 폭사되어 오르고 있었다. 그 빛은 잠룡대산 깊은 곳에서 치솟아 오르고 있었으며, 폭풍의 기세가 아무리 거대하다 하 더라도 빛의 찬란함은 훼손이 되지 않았다. 도합 열 줄기의 빛! 그 빛은 눈을 따갑게 할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았으되, 차츰차츰 그 강렬함을 더해 가고 있 는 실정이었다. 그 빛이 무시무시하게 강해진다면, 가히 마광(魔光)이라 할 것이다. 묵궁(墨穹)으로 치솟아 오르는 열 줄기 빛깔. 그리고 보름 넘게 몰아닥치는 죽음의 폭풍. 그 날, 그 곳에서 천 리(里) 떨어진 곳에서는 지극히 괴이한 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꾸역꾸역… 언제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모를 기이한 인물들이 모이고 있다. 도합 팔로(八路)에서. 총 인원을 따진다면 팔천(八千)에 가까운 사람들이 초원 어귀로 접어들고 있었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신형을 폭사시키는 인물들. 어떠한 이는 장검(長劍)을 등에 메었으며, 어떠한 자는 도(刀)를 헝겊에 싸서 허리띠에 매달 고 있다. 갑노(匣弩)와 강궁(强弓)을 든 무사도 있으며, 화탄(火彈) 암기(暗器)가 가득 든 주머니를 차 고 있는 자들도 보였다. 아무런 말도 없이 잠룡대산을 향해 나아가는 무사들. 이들은 하나같이 가공할 무공을 지니 고 있으며, 사농공상(士農工商) 각기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묵묵히… 마치 신(神)을 암살하는 죄인(罪人)의 길인 양, 그들 무림기인(武林奇人)들은 착잡 한 표정 가운데 움직여 가고 있었다. '모두… 죽여야 한다.' '비록 어린 나이들이기는 하나, 단 하나라도 살려 두어서는 아니 된다. 원은 무너졌으되, 원 의 마지막 저력(底力)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잠룡대산에서 길러지고 있는 열 마리 악마(惡魔)의 잠룡(潛龍)들이다. 그들을 죽여야 한다.'휘휙-! 화살이 쏘아진 듯 가공할 속도로 움직여 가는 사람들. 이들은 잠룡대산을 향해 이동해 가고 있었다. 진령(秦嶺)에서 하남(河南)에서, 멀리는 동악(東嶽)에서 온 인물도 있다. 폭풍 속으로 뚫고 들어가는 무림기인들. 삼산오악(三山五嶽) 구천십지(九天十地)에서 모여드는 군협검호(群俠 劍豪)들은 침묵 가운데 나아가고 있었다. 열 송이 악마(惡魔)의 꽃송이를 꺾기 위해, 열 마리 잠룡을 죽이기 위해……. 이들은 벌써 한 달째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서장(序章)2 운명의 선택(選擇) 잠룡대산(潛龍大山) 깊은 곳이다. 언제부터인가 하늘은 검은 구름에 유린되고 있으며, 이끼마저도 배척해 버린 유리의 절벽은 천 장 넘게 수직으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호로병처럼 생긴 분지(盆地). 그 곳으로 접어들 수 있는 길은 아예 없었다. 가히 절대절지(絶對絶地)라 할 수 있는 곳. 한데, 분지 한가운데에는 언제 세워졌는지 모를 환상(幻像)의 건축물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아름드리 대리석 기둥이 쭈욱쭉 뻗어 올라갔으며, 핏빛의 기와는 달빛이 떠오를 때마다 선 혈(鮮血)이 돋는 듯한 혈채(血彩)를 흘러내리고 있다. 그리고 하루 십이 시진 내내 자욱한 흑무(黑霧)가 흐르며, 마치 시공(時空)이 정지되어 있는 듯 침묵만이 흐르고 있다. 아름답다. 전각(殿閣) 둘레의 야화(野花) 무리는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 흐드러지고 있었다. 핏빛의 영 산홍(映山紅)이 붉은 비단을 펼치어 놓은 듯 드넓게 펼치어져 있었으며, 흐드러진 야화 무더 기에서부터 안개가 자욱히 피어 오르고 있었다. 꽃은 아름답되 향기(香氣)가 느끼어지지 않고, 의당 있어야 할 봉접(蜂蝶)이 보이지를 않는 다. 흐드러진 영산홍 가운데 희끗희끗 보이는 것은 부토(腐土)가 되어 가기 시작하는 촉루(壻 樓)와 부러진 병장기(兵仗器)들, 썩어 버린 전포(戰袍)와 부서진 상자 뚜껑……. 폐허(廢墟)! 너무나도 아름다운 전각 일대는 죽음의 폐허를 이룩하고 있었다. 십 년 전, 오백(五百) 소년소녀(少年少女)가 여기에 왔고… 그 날부터 너무나도 고결하고 아 름다운 꽃송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하나하나 떨어지기 시작했었다. 독(毒)에 썩어 죽고, 철편(鐵鞭)을 전신에 맞는 고행(苦行)을 이기지 못하고 육골(肉骨)이 떡 처럼 뭉개어져서 죽어 버리고, 절진(絶陣)을 통과하던 가운데 쓰러지고……. 첫 해에는 삼백(三百)이 죽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죽은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바로 자살(自殺)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극한을 초월하는 고행 가운데 죽어 간 소년소녀들의 수효는 오히려 적다 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엄청난 극한수련(克限修練)을 이기지 못하고 미쳐서 자결한 소년소녀들이 오히려 많았다. 둘째 해에도 꽤 많은 희생자가 났다. 초인(超人)이 되지 못한 수재(秀才)들. 그들 꽃다운 넋은 밤하늘을 일순 밝히며 낙하해 내리 는 유성(流星)처럼 떨어져 내렸으며, 그 숫자는 백에 달했다. 세 번째 해에도 오십여 아해들이 죽었고, 그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그리고 구 년이 지나던 그 해, 그러니까 지난해부터는 죽어 나가는 소년소녀들이 하나도 없 게 되었다. 이제 천하에서 가장 끈질긴 목숨을 가진 녀석들만이 살아남았다. 악마(惡魔)가 되기 위해, 십 년에 걸쳐 극한에 가까운 초인수업을 전수받은 원(元) 최후의 무사(武士)들만이……. <잠룡비전(潛龍秘殿)> 아아, 이 곳은 바로 운명의 그 곳이었다. 일반 병전(兵戰)을 위해서가 아니라, 천외대전(天外大戰)을 위해 길러진 대륙제일(大陸第一) 의 용사(勇士)들!이들이 길러지는 곳이 바로 잠룡비전이었다. 십 년 전. 원황(元皇)은 백련(白蓮)의 반란 가운데 국조의 붕괴를 느끼게 되었으며, 대왕조(大王朝)를 수호(守護)할 마지막 안배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 일을 전담한 인물은 악마무후(惡魔武侯) 사엽풍(史葉風)! 그는 황실무장(皇室武將)들을 이끌고 떠나갔으며, 그 일로 인해 이루어진 장소가 바로 잠룡비전이었다. 지난 십 년 간, 죽지 않고 살아나간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는 완벽한 금지!그 곳은 이 밤에 다시 떠오른 달빛 아래 금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대리석전(大理石殿). 이 곳은 지하이되, 대낮처럼 환하게 밝은 상태였다. 용안(龍眼)만한 야광주(夜光珠)들이 오 장 높이의 돌천장에 무려 백 개나 박히어 있었기에, 야광주의 광채만으로도 상당히 넓은 대리석전은 환하게 밝은 것이다. 그 곳, 언제부터인가 백 명(名)의 괴걸(怪傑)들이 원형(圓型)으로 모여 있었다. "……!" "……." 모두 말이 없다. 하나같이 강철상처럼 단단하게 경직된 표정으로 자신들의 건장한 신체에 걸치어진 흰 옷자 락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일컬어 백색마병(白色魔兵)들! 이들은 이백 년 전 철목진(鐵木眞) 징기스칸과 더불어 원을 이룩한 백마신장(百魔神將)의 후예들이 아니던가. 원황실(元皇室)에서 가장 강하다고 불린 사람들. 이들이 있기에, 천하전사(天下戰史)에서 가장 포악하고 처절한 원(元)의 정복(征服)이 이룩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가운데에는 하나의 원탁(圓卓)이 놓여 있었다. 그 곳, 세 장의 밀지(密紙)들이 나뒹굴고 있지 아니한가. 구겨진 서찰들, 그것은 잠룡비전 허공의 독무(毒霧)를 뚫고 내려오는 가운데 썩어 문드러진 전서구(傳書鳩)의 다리에 묶인 철통 안에서 끄집어내어진 것이었다. <팔대무세(八大武勢)가 잠룡(潛龍)의 비밀을 알고 다가서고 있다. 비전을 수호하는 구백흑마 군(九百黑魔軍) 대사막(大沙漠)에서 몰살했다. 중과부적이다. 이제는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선혈로 쓴 밀지였다. 피는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었으나, 선혈이 종이에 발려지는 그 순간의 처절함만은 여전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 밀지는 닷새 전에 날아든 전서구에 다리를 묶여 있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밀지, 그것은 사흘 전에 날아들었다. 그것은 잠룡비전을 수호하기 위해 대초원에 세워진 다섯 개의 가짜 잠룡비전 가운데 하나에 서 날아올랐던 비둘기로 인해 이 곳으로 전달이 되었다. <잠룡비전의 진실된 장소가 노출되었음! 팔대무세의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은 절대적인 무위 를 지니고 있는지라 막을 수 없었음. 구백흑마군에 이어 일천(一千) 혈황검대(血荒劍隊) 모두 몰살함!이제는 버틸 수 없음. 그대 들의 건투를 빌 뿐. 팔대무세의 우두머리는 소림(少林)의 초의(草衣),그 외의 거물(巨物)로는 중원인자문(中原忍 者門) 마접(魔蝶),곤륜(崑崙)의 종대선생(鐘大先生),무산신녀곡(巫山神女谷)의 천예낭낭(千藝 娘娘),아미(峨嵋) 복호사(伏虎寺) 강룡선사(强龍禪師),거의(巨醫) 생사천수(生死天手) 사공천 기(司空天奇),마의(魔醫) 소수성자(素手聖者)……. 동영(東瀛) 신풍(神風)의 부풍십일랑(扶風十一郞)도 끼여 있음!도저히 막을 수 없음. 멸망 은… 시간 문제일 뿐임. 먼저 죽는 것을 용서해 주기 바람.> 모두 침묵이었다. 백색마병들, 이들은 악마의 꽃송이들을 십 년째 맡아서 기르는 악마교두(惡魔敎頭)들이라 할 수 있었다. 본시 일천이 왔으되, 지난 십 년 사이 구백이 죽고 백 명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잠룡비전은 내외부의 연락이 철저하게 두절된 장소인지라, 전서구를 통하지 않는다면 외부 사정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원탁 위, 마지막 밀지가 뒹굴고 있었다. 기실 그것으로 인해 지금의 회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꺼져 가는 잿더미에서 돌연 불길이 치솟듯, 완전히 절망 가운데 한 줄기 서광을 가져다 준 운명의 서찰 안에는 이러한 글이 적혀 있었다. <열 마리 잠룡(潛龍)을 모조리 포기할 수는 없다! 비록 중원(中原)을 잃었다 하되, 황(皇)의 저력(底力)은 여전하다. 열 마리 잠룡이 모두 다 절대자로 화신한다면, 능히 중원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그것은 삼 년이 더 지나야 가능한 일. 지금으로서는 그들을 거의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두 포기할 수는 없다. 단 하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살아나야만 한다. 가장 강(强)하며 뛰어나며, 완벽한 인물은 살 수 있다. 철사자(鐵獅子)를 보내겠다. 철목진(鐵木眞) 태상황(太上皇)의 애수(愛獸)인 사막의 푸른 늑 대를!단 하나만이 철사자를 타고 그 곳을 탈출할 수 있으며, 그 곳으로 갈 수 있다!항차, 그 로 인해 그대들의 복수(復讐)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를 선택하라. 그리고… 이 곳으로 보내라!> 마지막 밀지. 그것은 머나먼 북천(北天)을 가르며 날아든 비응(飛應)의 다리에 묶인 악마전서(惡魔傳書)였 다. 악마전서는 잠룡비전의 건축자라 할 수 있는 사엽풍이 지난 십 년 사이 이룩한, 악마동맹 (惡魔同盟)에서 날아온 것이다. - 단 하나만이 살 수 있다. 오직 일 인(人)만이……. 가장 뛰어나며, 가장 강한 자만이 살아갈 수가 있다. 그리고 그는 악마동맹의 후계자가 될 것이며, 죽음이 확정된 모든 이들의 복수를 장차 이룩 하게 될 것이다. 침묵의 평의회(評議會)! 이 자리는 바로 그를 선택하기 위한 자리였다. 누가 먼저 손을 입술 사이로 갖고 갔을까? 이빨이 질끈 물렸으며, 손가락 끝에서 시뻘건 핏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원탁 위에 세워진 긴 향이 다 탈 즈음 해서, 백 명의 교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손가락 끝 을 물어뜯고 있었다. 보라! 부욱-! 무(武)와 용(勇)의 상징이며, 적(敵)의 병기에 한 번도 찢어진 바 없었다는 백마전포(百魔戰 袍) 자락이 길게 찢어지는 것을!그리고 흰 천에는 글씨가 쓰이기 시작했다. 선혈(鮮血)로 쓰이는 글씨들, 그것은 바로 죽음과 운명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거기 이름이 적힌 인물은 지옥을 벗어날 수 있다. 교두들은 십 년 간 기른 영재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인물을 선택하 여 그 이름을 피로 적는 것이다. 너무나도 조용한 회합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능공섭물(凌空攝物)의 수법을 발휘해 이름이 적힌 흰 천을 원탁 위 로 날려 보냈다. 원탁 가에는 비전주(秘殿主)가 단아한 자세로 머물러 있었고, 그는 핏빛 반점의 날개를 가진 백접(白蝶) 떼처럼 쌓이는 흰 천들을 하나하나 집어 그 위에 적힌 이름을 보기 시작했다. "……." "……." 모두 익숙한 얼굴이다. 어쩌면 생사(生死)란 휴지 마냥 값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이미 죽음의 공포 따위는 검(劍)을 들며 흔쾌하게 묻어 버린 패도(覇道)의 영웅(英 雄)들이기에……. 제일교두(第一敎頭)의 콧등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또한 그의 입매에는 야릇한 미소가 머금어지고 있었다. 웃다니……? 어이해 번뇌의 선택 가운데에서 그렇듯 미소짓는 것일까?그는 제이교두가 흰 천을 자신에게 받아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는 눈길을 중인 쪽으로 돌렸다. 이어 그의 입술이 가볍게 벌어졌으며, 폐부를 으스러뜨릴 듯 무거운 침묵은 묘한 어감을 가 진 목소리로 인해 깨어지기 시작했다. "선택되었소!" "으음……!" "……." 백색마병들은 탄성을 발하기 시작했다. 모든 교두들은 각기 하나씩의 이름을 적었을 뿐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뛰어난 인물의 이름을. 자신이 쓴 이름이 어느 누구의 이름인지는 아나, 다른 사람이 누구를 적어 놓았는지는 모르 는 일이었다. 한데, 드디어 하나의 이름이 선택이 된 것이다. 지옥(地獄)을 살아 나갈 행운아가……! 항차 열 송이 악마화(惡魔花)를 다스린 악마동맹의 진정한 후계자가!제일교두는 좌중을 쓰 윽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백 명의 이름을 적었으나, 적힌 이름은 단 둘이었소. 그 이름은… 잠룡일호(潛龍一號)와 잠 룡오백호(潛龍五百號)였소."일호와 오백호. 이 곳 사람이 아니면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이 곳은 초인을 기르기 위한 연무장. 여기에 들어선 오백 영재들은 본래의 이름 말고, 숫자로써 자신을 표시하도록 안배된 바 있 었다. 잠룡일호. 그는 가장 빼어난 천재(天才)로 인정받은 인물이며, 그의 가문(家門)은 원황가(元皇家)의 일 맥(一脈)이다. 잠룡오백호. 그는 원황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초야(草野) 출신이며, 오백 명의 영재들 가운데에서 가장 늦게 선발이 된 바 있었다. 사실 그가 십 년의 연무 가운데 가공한 재질을 발휘할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 다. 제일교두의 미소는 보다 짙어졌다. "대륙마가(大陸魔家)의 서열을 따진다면 의당 잠룡일호가 선택되어야 할 것이오. 그는 실로 빼어난 신분이니까! 그러나 우리들이 선택한 인물은 그가 아니라, 잠룡오백호였소. 우리 일 백 인 가운데 오직 십 인(人)만이 잠룡일호를 택했고, 나머지 구십 명은… 오백호를 택했 소!""아아……!" "역시… 그 녀석이……." "으음, 그 놈은 환우제일룡이 될 놈이다. 그 놈이라면… 혼자서 대륙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 다."장내가 약간 소란스러워졌다. "능조운(凌照雲)… 그만이 살아 나갈 것이오. 그는 이틀 후, 당도할 철사자(鐵獅子)를 타고 이 곳을 탈출할 자격이 있으며… 항차 백마대법(百魔大法)을 제수받고, 대륙제일인(大陸第一 人)이 될 것이오! 그리고 이틀 후, 이 곳은 붕괴될 것이오. 철저하게! 이 곳을 향해 오는 자 들은 어떠한 것도 발견하지 못하게 될 것이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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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