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내게 새롭고 조금은 무섭기도한 존재이다.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인만큼 내가 이걸 잘 해낼 수 있을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어떠한 일을 새롭게 시도해보기 위해서는 처음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처음은 내게 많은 영향을 준다.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내가 얻었던 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고 내 뇌 깊숙한 곳에 저장된다. 그리고 그 인상은 앞으로 내가 하는 모든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첫인상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열네살의 해를 마무리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수많은 처음을 이겨내고 나아가던 순간 중 몇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초등학교 시절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중학생이 된지 한달이 채 안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야구장에 갔다. 아빠도, 엄마도, 게다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도 모두 야구를 좋아하는 집안에서의 신기록이다. 가족 모두가 야구를 함께 보러가려면 시간을 맞추어야 하는데 영 시간이 나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밴드의 한 분이 롯데자이언츠 시구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그 분을 보고싶다는 생각 하나로 부모님과 가족들을 설득해 야구장에 갔다. 직관은 처음이지만 어렸을 적 부터 야구를 좋아하던 아버지 어깨 너머로 본 게 있어서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오로지 시구를 보기 위해 갔던 직관이지만 오히려 경기가 너무 즐거웠다.
좋아하던 선수가 만루홈런을 내자 사직구장 내에 울려퍼졌던 응원가를 들었을 때의 울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단순히 재밌다, 신난다의 감정을 넘어섰다. 사직구장에 울리는 소리의 진동이 마음까지 진동시킨 기분이었다. 같은 팀을 응원한다는 하나의 공통점만으로 모두가 같은 마음이 되는 모습이 조금은 새롭게 다가왔다. 중학생이 된 이래로 여럿이 하나가 되어 어울리기란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첫 야구 직관은 ‘진동’이라는 단어로 뇌 깊은 곳에 저장되었다.
야구 직관과는 결이 많이 다르지만 같은 단어로 저장된 기억이 있다. 바로 악기를 처음 접했을때의 기억이다. 어느 날, 나의 키의 두 배 정도 되어 보이는 피아노가 집에 들어왔다. 고모께서 안쓰시는 피아노를 내게 선물 해 주신 것이다. 소리가 나는게 마냥 신기해서 아무거나 누르며 놀았다.
그러던 나를 엄마가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음악이 주는 진동을 느꼈다. 악보를 읽고, 상상하던 음들을 내가 만들어내는 순간 심장이 뛰었던 느낌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5살부터 꾸준히 배워온 피아노가 마냥 좋기만 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연습이 싫기도 했고, 점점 다가오는 콩쿨이 마냥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했다. 연주회에서는 혹여나 틀릴까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러나 참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나를 다시 피아노 앞에 앉게 했던 건 그냥 ‘피아노’ 하나였다. 앉으면 다시 그 때의 진동을 느낄 수 있었기에 나는 늘 피아노 위에 앉았다. 우연히 내게 처음 다가온 음악이라는 진동이 너무나 좋아서, 악기를 다루는 걸 정말 좋아했다.
초등학생이 되자 방과후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방과후를 다니던 언니가 바이올린을 매고 다니는 걸 보고선 그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엄마를 무작정 졸랐다. 바이올린은 한 번 시작하면 갖추어야 할 것이 많아 참 귀찮은 악기다. 근데 엄마는 그런 나에게 며칠만에 악기를 쥐어주었다. 처음에는 활털이 아닌 활대로 소리를 내는 거라는 생각에 활을 반대로 잡기도 했다. 심지어는 선생님이 매 시간마다 해주시는 튜닝이 하나의 곡인 줄 알았던 적도 있다. 선생님께서 그 곡을 정말 좋아하신다는 생각에 제목을 물어보았다가 대답 대신 웃음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바이올린은 언제나 내게 미지의 대상이었다. 배우기 어렵기로 유명한 만큼 나는 연습날이 다가올 때 마다 모든게 처음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처음’을 3년 정도 하다 보니 들어줄 만 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주회에도 참석하고, 중학생이 된 지금은 웬만한 곡은 바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내게는 ‘진동’이었다. 악기를 연주하며 내게 전해지는 소리의 떨림과,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설렘이 내게는 진동으로 다가왔던 것이 아닐까.
처음의 기억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늘 나의 ‘처음’을 좋게 남겨두고 싶다. 앞으로 내가 맞이할 수많은 처음도 시간이 지나 돌아보았을 때 좋은 기억이 되어 저장되어 있기를 바란다.
첫댓글 '처음'이라는 단어를 주제로 다양한 경험을 드러내서 인상깊었습니다! 처음을 사전적인 의미만으로 해석하지 않고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서 완성도 높은 글이 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