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2월 12일(목) 예레미야 1:1-10 찬송 38장
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3.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시드기야의
십일년 말까지 곧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혀 가기까지 임하니라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개역 개정)
- 표제(表題)와 예레미야의 소명 과정과 사역의 특징 -
예레미야서는 남유다의 멸망 시기가 급박하게 다가오는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남유다의 범죄에 대한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동시에 새로운 구원의 소망을 전파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눈물에 찬 선지 사역을 기록하고 있다.
1장은 이러한 예레미야서의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예레미야서 전체의 표제와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소명받는 장면을 보도한다.
그중 1-3절은 표제(表題)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본서의 저자인 예레미야 선지자의 개인적 출신 배경(1절)과
예레미야가 전하는 메시지의 신적 기원 및 그가 활동할 당시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그의 사역 기간(2-3절) 등을 보도하고 있다.
여기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제사장 가문 출신이라는 것과
그이 소명 시기가 남유다 역사상 가장 경건하고 개혁적인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요시야 왕(B.C.640-609년)의 재위 때 라는 것,
그리고 그의 활동 기간이 요시야 왕을 제외하고는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악한 왕들의 통치 기간인
남유다 말기(B.C.627-586년)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예레미야의 선지 활동은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뒤로도 수년간 더 계속된다.(40-44장)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예레미야의 선지 사역이
조금도 굴절없이 수행되었다는 것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투철한 소명의식을
보여줌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극한 상황속에서도
전파되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그리고 4-10절은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소명 받은 장면을 보도하는
1:4-19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는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소명받는 과정(4-9절)과
그의 사역의 특성(10절)을 보도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예레미야가 그의 연약함을 이유로
소명을 거부한 사실이다.(5-6절)
이러한 그의 소명 거부는 모세(출4장), 기드온(삿6장)의 경우와 유사한 것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하다는 철저한 자기 부인(自己否認)의 결과이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보호 약속을 받고 소명에 부응한 사실로 분명히 알 수 있다.
한편 본문에서 이런 소명에의 초청과 거부,
그리고 소명에의 부응이라는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 것은
예레미야의 소명이 자기 주관적인 확신이나
불건전한 신비주의자의 착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즉 예레미야는 자신의 선지자직의 신적 기원을 분명하게, 객관적으로 기술함으로써
그의 메시지가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것이다.
이는 바울이 자신의 사도성을 부인함으로써 그가 전한 복음까지도 부인하려는
갈라디아 교회의 악한 무리들과 이에 미혹된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서두에서
자신의 사도성의 신적 기원을 강조한(갈1:1) 이유와 유사하다고 하겠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소명은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이루어가심에 있어서
당신의 종들과 함께 하시기를 즐겨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도록 부름받은 자들이다.(마28:18-20)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적극 부응하여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 전파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딤후4:2)
5절)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라는 말씀은
우리를 모태에서 지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는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라고 했던
다윗의 찬양(시139:13)과 같은 맥락의 말씀이다.
그리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성별하다’라는 말은 원어로 ‘카다쉬’로써 그 뜻은 ‘거룩하다’라는 의미와 함께
‘어떤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따로 분리해내다’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NIV와 같은 성경은 이를 ‘따로 떼어 놓다(set apart)’라고 번역하였다.
즉 제사장이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위해
흠 없는 소나 양들을 일반 가축과 구별하여 분리해내듯
하나님께서도 예레미야를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분해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별하신 특별한 목적이 나와 있다.
곧 예레미야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기 위함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에서 선지자로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같은 말씀은 사도 바울의 경우의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갈1:15)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의 고백 가운데는
우리를 지으실 뿐 아니라 태어난 이후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란 분명한 확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5절의 말씀은 우리 인간을 지으실 뿐 아니라
이후의 모든 인생의 방향과 내용까지 계획하시고 디자인하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심을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진흙과 같은 존재요
하나님은 이를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빚으시는 토기장이로써
인생에 대한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롬9:21)
그러므로 성경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의 교리를 우리는 믿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는 것이 왜 중요한가?
같은 흙이라도 이를 빚는 자의 솜씨에 따라 극상품의 도자기가 되기도 하고
일반용도로 밖에 쓸 수 없는 막사발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아무짝에도 쓸 수 없어 깨뜨려버릴 수밖에 없는 실패작이 되기도 한다.
또 보석의 경우에도 같은 원석일지라도 세공하는 자의 솜씨에 따라
그 가치가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성경의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인생의 주인인 줄 알고
자기 마음대로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고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살아간다.
이는 그야말로 인생의 본말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고 무책임한 삶을 사는 것이며
이러한 삶의 열매는 탄식과 후회로 귀정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토대로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들은 인생의 주인을 누구로 알고 있는가?
나를 지으시고 나의 인생을 디자인하시고 계획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있는가?
나의 몸과 마음과 인생의 모든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께 순복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같은 물음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할 때 우리는 지혜로우신 하나님, 온전하신 하나님,
선하시고 복되신 하나님께 붙들린 바 될 것이다.
전능하시며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또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빚어주실 것이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3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