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설교를 준비하는데 있어 그때까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던 것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듣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설교가 무엇인지 미리 생각하기보다는 주님께 먼저 내가 가르쳐야 할 주제와 설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달라고 간구하였다. 어떤 때는 내가 주님께 물어보기 전에 내 마음 속에 어떤 주제나 구절이 떠오르는 때도 있었는데, 일단 기도해본 후 여전히 그 주제에 대해 설교해야 되겠다고 생각되면 그 주제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 경우에도 주님이 원하시면 그 주제를 바꿀 수 있도록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었다.
그러나 종종 내가 기도하기 전까지 내 마음 속에 아무런 주제도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런 경우 나는 무릎을 꿇고 나를 인도하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나서 어떤 구절이 마음에 떠오르면 나는 주님께 그것이 주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다시 물어보았다. 특히 그 주제나 구절이 어려운 것이면 주님께 반복해서 여러 번 물어보았다. 기도한 후에 내 마음이 평안해지면 그것을 주제로 삼았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내가 실수했거나, 혹은 주님이 그것을 바꾸기를 원하시는 경우에 대비해 항상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르려고 하였다. 때때로 기도한 후에도 주제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경우 당황하였지만, 이럴 때는 기도하면서 내가 평소 읽던 성경구절을 계속 읽어나가면서 설교 주제를 찾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주님께서 나에게 그 설교 주제를 주실 때까지 성경을 다섯 장, 열 장, 혹은 스무 장까지도 읽은 적이 있었다. 심지어 아무런 주제 없이 설교하러 간 적도 많이 있었다. 어떤 경우, 설교하기 불과 몇 분 전에 설교 주제를 얻는 경우도 있었지만, 하여튼 나는 항상 설교 주제를 얻을 수 있었다.
주님께서는 내가 개인적으로 그분을 진지하게 찾는 경우, 설교할 때 항상 나를 도와주셨다. 설교하는 사람은 회중들 각자가 가진 마음과 그들에게 무슨 설교를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주님은 그것을 알고 계시며 만일 설교자가 자기 자신의 지혜로 하기를 포기한다면 그는 주님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설교자가 스스로의 지혜로 설교 주제를 선택한다면, 열매가 없다 해도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방법으로 설교 주제를 얻은 후 그것이 한 구절이건 한 장 전체 이건 혹은 그 이상 이건 간에, 그 구절에 대해 묵상할 때 성령님께서 나를 가르쳐주시도록 주님께 간구하였다. 내가 얼마나 그 구절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볼 목적으로 말씀을 읽고 깨닫는 대로 노트에 필기를 하였는데, 후에 내가 적은 것을 참조해보면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성경과 권위있는 외국 성경 몇 권을 제외하고는 다른 참고서적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나는 주로 기도로 도움을 얻는다. 영적인 진리의 한 부분을 공부할 때 언제나 그것에 관해 기도하고 묵상하고 나면 반드시 빛과도 같이 반짝 떠오르는 깨달음이 있었다. 우리는 참을성이 부족하다든지, 육체가 연약하다든지, 혹은 바쁜 일정 때문에 오랫동안 기도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기도와 묵상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나서 나는 주님께 내가 개인 기도방에서 깨달은 것들이 설교할 때 생각날 수 있도록 간구하며 나 자신을 온전히 주님의 손에 맡긴다. 그러면 신실하신 주님께서는 내가 간구한 대로 응답하시며 종종 설교 중에 그 이상의 것들을 가르쳐주신다.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이 설교를 하는 그 자체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일이다. 주님과 끊임없이 교제하며 그 진리의 말씀에 대해 규칙적으로 여러 번 묵상하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어느 복음서나 서신서 전체를 공부하는 경우, 성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이 듣는 회중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다. 즉 매 구절 마다 그 구절의 의미를 자세히 다룬다든가, 아니면 전체의 요점을 제시해주고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반적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성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방법을 통하여 교인들이 각자 자기 성경을 교회에 가지고 오도록 유도할 수 있는데, 여하튼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간에 믿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이 전체를 자세히 설명해주는 설교 방법은 일부분에 대해서만 설교하는 것보다 듣는 사람들에게 훨씬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성경에 대해 몇 시간 동안 계속 묵상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따라서 성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줌으로써 듣는 사람들에게 성경말씀을 소개시켜주며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성경에 대해 묵상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유도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이미 설명해준 말씀에 관해 다시 읽게 되면 이전에 들은 말들을 기억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의 마음에 더욱 영속적인 인상을 남길 수가 있다.
복음서나 서신서의 어느 한 권을 총괄하는 것과 같이 성경의 큰 덩어리를 상술하는 경우, 가르치는 사람은 그가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간과하기 쉬운 부분들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방법은 설교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주제에 관해 너무 많이 설교한다든지, 진리의 특정한 부분에 너무 많이 의지하는 경향 (이런 경우 결국 설교자 자신과 회중들 모두가 해를 입게 됨)에서 탈피할 수 있게해준다.
표현의 단순성이 가장 중요하다. 설교자는 아이들이나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그가 말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교해야 한다. 모든 교인들이 각기 다른 교육 수준과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를 설교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영생에 관해 이야기할 때 쉬운 말로 하지 않으면 듣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없다.
만일 설교자가 이 세상의 방법으로 설교하고자 한다면 그는 많은 사람들 특히 문학에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죄인들의 회개나 성도들의 믿음을 세우는 일을 하는데 있어 하나님 손에 붙잡힌 그분의 도구가 되기는 어렵다. 진정으로 위대한 설교자가 되게 하는 것은 웅변술도 아니요, 지식의 깊이도 아니고, 단지 기도와 묵상의 생활만이 주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데 쓰여질 수 있는 도구가 되게 하며 죄인들을 회개시키며 성도들을 교화하는 데 쓰여질 수 있는 것이다.
설교할 때 성령께서 나를 도우신다. 절대로 내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언젠가 타인모우스에서 설교하기 전에 보통 때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날 저녁집회 설교준비를 위해 여섯 시간을 기도와 묵상으로 보냈는데, 설교를 시작하자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의 힘으로 설교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형제들에게 내가 성령의 능력으로 설교하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으며 그들에게 기도해주도록 부탁하였다. 그리고 다시 설교를 시작하자 또 같은 느낌을 받게 되었다. 결국 설교를 중단하고 기도회를 갖자고 제안하였다. 우리는 기도회를 가졌고 그런 다음에 설교했을 때 나는 성령의 특별하신 도움을 받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목회를 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배워서 기쁘다. 주님을 통해서만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그분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죠지 뮬러 『죠지 뮬러의 일기』 박준언, 성현모 옮김. 서울: 도서출판 두란노, 1991. pp. 2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