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형령주 火刑令主
서효원 작
■ 화형령주 제1권 서장(序章) ━━━━━━━━━━━━━━━━━━━━━━━━━━━━━━━━━━━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중원천하(中原天下).
이름(地名)을 갖고 있는 곳은 무수무한(無數無限)하다.
오악(五嶽)과 사해(四海), 구주(九州)같이 천하에 혁혁(赫赫)한 이름들이 있는가 하면,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사라진 이름들도 허다하다.
남아 있는 이름과 바뀌어지는 이름들.
대소림(大小林)과 무당을 위시한 구파일방의 이름마냥 혜성같이 빛나는 이름들. 한순간 타 버리는 유성처럼 지금은 한 줌 재도 남 기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 무수한 방파들…….
이름 모를 야산에 피어난 들풀 속에, 깨어진 기왓장 속에 그 옛날 어느 찬란했던 시절의 영화(榮華)가 서려 있음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모든 것들은 남으려 하지만 결국 사라지고야 만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만고불변의 이치일 것이다.
그런 이치는 강호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 더욱 확연 히 드러난다. 칼 끝에 목숨을 거는 자들, 명예와 부귀에 목숨을 거는 자들, 야망을 위해 생명을 초개와도 같이 버리는 자들…….
승부의 대지 위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세월이 지나도 자신의 이름 이 남기를 바란다.
하나, 세월은 무상하다.
천추(千秋)에 길이 남는 인물들.
단 한 명의 타인에게조차도 기억되지 않고 스러져 간 무수한 목숨 (生命)들…….
장엄천하(莊嚴天下).
인간이 변하고 지명이 변화해도 천하는 유구(悠久)하다.
그리고… 저 먼 하늘 위에 떠서 빛나는 북두성(北斗星)같이 혁혁 한 세 이름이 있다.
고금삼전(古今三殿).
인간보다는 신(神)이나 마(魔)에 한층 더 가까웠던 사람들의 이야 기.
一
고승(高僧) 하나가 있었다.
무진법(無盡法).
그는 선사(禪師)를 뛰어넘어 신승(神僧)이라 불리워졌다. 그는 모 든 사람들의 숭배를 받았다. 천자(天子)라 해도 무진법 앞에서는 절을 해야만 했다.
뇌리 속에 고금의 모든 경전(經典)이 들어 있다는 고승.
그는 백 년간을 좌정(座定)으로, 다시 백 년간을 면벽(面壁)과 벽 곡(僻穀) 가운데 보냈다고 하는 활불(活佛)이었다.
그가 기거하는 곳에서 일백 리 안에는 어떤 마의 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사악(邪惡)한 것은 그의 대자대비(大慈大悲) 한 미소 앞에 봄 눈 녹듯 스러졌다고도 했다.
그는 만악(萬惡)을 자비로 용서했었다.
부모를 죽인 자,
남의 아내를 훔친 자,
주인의 물건을 훔치고 그의 딸을 능욕한 자…….
세상 모든 사람에게 용서 받지 못할 죄악이라 해도 그는 자비로써 용서했다.
살아 있는 부처!
그의 이름은 불도(佛道)가 존재하는 한 명월(明月)같이 빛나리라 …….
무진법이 불가에 들기 일백칠십여 성상(星霜).
어느 날, 그는 모든 것을 불태웠다.
수백만 권의 장서(臧書)와, 선실(禪室)이 일만 개인 무진법사(無 盡法寺)가 불타오르는 대화(大火). 그 불은 수십 리에 걸쳐 하늘 과 땅을 붉게 물들였다.
그리고… 무진법의 몸도 그 불과 함께 뜨겁게 타올랐다.
열흘간 계속된 불길 속에서 그의 몸뚱이는 재가 되어야 마땅했다.
오오……!
그러나 그는 재가 되지 못했고 거대한 불덩이로 화하고 말았다.
그의 생명(生命)은 불로도 끊어지지 않은 것이다.
활활 타는 불덩이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하늘과 땅을 함 께 뒤흔들어 놓았다.
- 오오! 세존(世尊)의 자비(慈悲)로써 천하를 화평(和平)하게 만 드는 것에 실패했음을 후회하며 불에 타서 죽으려 했거늘…….
그의 목소리는 부들부들 떨렸다고 했다.
- 오오, 어이해 나도 모르는 사이 금강불괴(金剛不壞)가 되어 죽 음에도 들지 못한단 말이오. 나의 몸뚱이를 태워(燒身)… 불법(佛 法)을 밝히려 하는 것을 막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이오까?
그는 석가세존(釋迦世尊)을 향해 외치며 백 장을 날아올랐다.
어떤 무가고수(武家高手)도 시전치 못하는 승극도허(昇極渡虛)의 신법으로 그는 하늘과 땅을 붉게 물들이며 서천(西天)을 향해 신 형을 폭사시켰다. 하나의 혜성(彗星)이 하늘을 가르듯…….
무진법이 천하제일고수(天下第一高手)라는 사실은 그 때서야 밝혀 졌는데… 그가 사라진 후에 벌어진 일이 바로 대경악(大驚愕)이었 다.
화형광불(火刑狂佛).
불로 죽음을 주는 미친 부처.
그의 전신은 타오르는 불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화마지옥에서 뛰 쳐나온 화귀(火鬼)인 양 그는 이글거리는 불꽃으로 세상 모든 것 을 불살라 버렸다.
그가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오직 재뿐이라는 화형광불. 그는 미친 듯이 천하를 질주했고, 세상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일 년간 마도고수(魔道高手) 삼천 명을 태워 죽인 거대한 불의 인 간, 그가 바로 신승 무진법의 화신(化身)임은 훗날에야 밝혀진 일 이었다.
광불화형전(狂佛火刑殿)
천하마도(天下魔道), 아니 천하무림계는 그 이름 앞에 복종할 수 밖에 없으리라!
무진법이 숨을 거둔 곳, 그리고 그의 모든 것이 비장(秘藏)되어 있다는 전설의 장소.
그 문(門)이 열리는 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것은 한 줌의 재 로 화할 수밖에 없으리라.
二
한 여인이 있었다.
너무도 아름다웠던 여인. 그녀가 미소 지을 때는 백화가 만발한 듯 세상이 향기로워졌고, 그녀가 슬픈 표정을 지을 때면 월광마저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듯했다.
그녀는 미색만으로도 세상을 지배(支配)할 정도였다.
하나, 그녀의 미모는 그녀의 모든 것을 망치고 말았다.
그녀의 정혼자(定婚者)가 그녀의 몸을 노리는 고관(高官)의 아들 에게 죽었다.
그녀의 부모(父母)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죽임을 당했고, 그녀는 열다섯 살이 되기도 전에 일천 번이나 능욕을 당해야만 했다.
결국, 그녀는 아름다움을 죄악으로 여기며 머리를 깎았다. 그러나 그녀의 미모는 비구니(比丘尼)가 되어 한결 더 빛이 났다.
이번에는 그녀가 머물던 산사(山寺)의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 심 지어 금수(禽獸)조차 그녀를 범하려 했다.
- 오오! 나를 탄생시킨 조물주를 증오한다.
결국 견디다 못한 여인은 자신의 얼굴을 난도질하고야 말았다. 자 신을 탄생시킨 조화옹을 저주하며… 자신의 미모를 탐했던 모든 것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면서…….
자신을 파괴시키는 것. 그것이 그녀가 세상을 향해 할 수 있는 유 일한 복수였다.
그리고 그녀는 머나먼 천산(天山)으로 떠나갔다.
눈(雪)… 바람(風)…….
그녀는 거기서 마녀(魔女)가 될 수 있었다.
빙극신전(氷極神殿)
만 년간 잠자고 있던 빙극신전이 그녀를 위해 문을 활짝 열어 놓 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천하는 혈세(血洗)당해야 했다.
너무도 처참하게…….
三
마도고수(魔道高手)들의 꿈의 장소가 있다.
천외마전(天外魔殿)
그곳은 마도의 거성(巨星)들이 스러져 가는 곳이다.
마도의 영광, 마도의 장래가 거기에 있다고 했다.
일세(一世)의 패자(覇者)들, 효웅(梟雄)들…….
천외마전은 그들이 최후의 순간에 도달하는 장소였다. 천외마전에 가서 최후를 마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일이기 도 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죽음과 명예를 얻는다.
그리고… 그들은 천외마전에 자신들의 관(棺)을 놓는 대가로 자신 들의 모든 절기를 천외마전의 벽(壁)에 새겨 놓았다.
천외마벽(天外魔壁).
마도의 거성들이 자신의 진산절예를 자랑스럽게 새겨 넣었다는 천 외마벽은 하나의 거대한 장경고였다.
그곳에는 고금의 절기들이 허다했다.
지금껏 전해져 내려오는 것도 있지만 실전된 절기들도 무수하다 했다.
천외마벽!
거기에 자신의 절학을 적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무공이 당 세제일이라 해도 지나친 말을 아닐 것이다.
천외마전에 들어갔다는 사실 하나만로도 그의 무공을 인증(認證) 받는 것이니까!
영광(榮光)!
천외마전은 바로 영광을 상징한다.
비록,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될 것이나…….
거기서 죽는 사람이라면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슬퍼하지 는 않을 것이다.
이미 무적(無敵)이 되어 세상에 뜻을 잃었기에… 최후의 상대로 천외마전의 돌파(突破)를 찾은 사람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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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잼 납니다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