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과 서영준
염증(inflammation)이란 생체조직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같은 세균에 의한 감염이나 조직이 손상 받을 때, 유해인자를 제거하고 손상 부위를 정상상태로 회복시키려는 우리 몸의 중요한 면역 방어기전이다. 이러한 생리적 염증반응은 조직 손상이 복구되고 세포의 항상성 (homeostasis)이 회복되면 소멸되어야 한다. 통상, 초기 염증에 의한 조직 손상은 해소(resolution)라는 과정을 통해 정상화되지만, 염증 해소가 방해받으면 선천적 면역반응이 지속적으로 활성화되어 염증성 전달 물질들이 과도하게 생성되어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을 초래한다. 해소되지 않고 지속되는 만성 염증은 암의 발생이나 진행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염증을 한자로 표기하면 ‘炎症’인데 첫 글자에 불(fire)을 의미하는 火가 두 개 겹쳐있다. 우리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에 감염되면 이에 대응하려는 면역반응에 의해 열이 나면서 온몸이 쿡쿡 쑤시는데, 염증으로 인한 이러한 증세를 서양 사람들도 ‘Fire Within’이라 ‘불’과 관련된 말로 표현한다. 하지만 우리 몸의 방어기전에 필요한 작은 불이 그 역할을 다한 후에 제때 꺼지지 않으면 큰 불로 번져 암을 비롯한 여러 퇴행성 질환이라는 재앙을 부를 수 있다.
염증반응은 발암 가능성이 있는 감염성 물질을 무력화시키거나 제거하는 데 중요하지만, 염증 과정이 암세포가 자리 잡고 있는 종양 미세환경(tumor microenvironment)에서 시작되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이는 대식세포(macrophage)를 비롯한 주요 면역세포가 종양 미세환경 내에서는 그 기능이 저하되어 있거나 달리 발휘되기 때문이다. 염증을 해소하지 못하면 암세포의 증식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게 되어 악성 종양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종양 미세환경 내 면역세포의 저하된 염증 해소(resolution of inflammation) 능력을 복원하거나 강화함으로써 암의 예방이나 치료를 기대할 수 있다.
염증 해소에는 일련의 내인성 지질 매개체들(lipid mediators)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염증 해소 물질들의 상당수가 DHA (docosahexaenoic acid)나 EPA(eicosapentaenoic acid)와 같은 오메가-3 불포화지방산으로부터 생성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DHA나 EPA는 우리 몸에서 거의 만들어지지 못하므로 이들 불포화 지방산이 많이 함유된 고등어, 꽁치, 참치와 같은 등푸른생선이나 이들 생선의 기름을 농축한 보충제 섭취를 통해 공급받는 수밖에 없다.
현재 암 치료에 사용되는 표준 옵션은 방사선요법, 고전적 세포독성 화학요법, 암세포의 특성을 고려한 표적치료제와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면역요법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항암치료 과정에서도 일부 암세포는 필연적으로 살아남기 마련이다. 이는 죽거나 죽어가는 암세포 파편이 종양 미세환경에 쌓이면서 이로 따라 대식세포가 방출한 항염증성 및 종양성 사이토카인이 살아남은 암세포가 더욱 잘 자라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치료 과정에서 생성된 암세포 파편의 종양 성장 자극 활성은 종양 재발 및 항암제 내성에 기여할 수 있으며, 이는 항암치료 실패의 주요 원인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통적인 암 치료는 본질적으로 양날의 검(double-edged sword)이며 따라서 환자치료에 대한 딜레마(dilemma)를 초래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암세포를 죽여야 하지만, 치료 중에 불가피하게 부산물로 생성되는 종양 파편은 종양 재성장과 진행을 자극할 수 있다. 따라서 길가의 쓰레기와 같은 종양 파편은 깨끗이 치워야 한다. 따라서 내인성 염증 해소 물질들(또는 이들의 합성 유도체를)에 의한 암세포 잔해의 청소를 촉진하는 것은 정상세포에 대한 독성이나 면역 억제와 같은 부작용 없이 종양 성장과 재발을 막아줌으로써 기존의 항암 치료법을 보완할 수 있는 혁신적 접근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내인성 염증 해소 물질을 암 예방이나 치료에 사용하는 것에 관한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이다. 앞으로 표준 화학요법이나 방사선요법과 염증 해소성 지질 매개체를 병용하는 더 많은 전임상 및 임상 시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