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지킴이 물재공 안의(安義, 1529~1596)에 대한 정보
기본 정보:
• 본관: 탐진(耽津, 현재 전라남도 강진)
• 자(字): 의숙(宜叔)
• 호(號): 물재(勿齋)
• 출생지: 전라북도 태인
• 생몰년: 1529년(중종 24) ~ 1596년(선조 29), 향년 68세
• 가계: 병조판서 안사종(安士宗)의 후손
• 스승: 이항(李恒)의 문인
[안의(安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임진왜란 당시 공적:1592년 임진왜란 발발 당시 64세의 고령이었던 안의는 손홍록(56세)과 함께 의곡계운장(義穀繼運將)이 되어 곡식과 포목을 행재소로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같은 해 6월, 일본군이 금산에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전 참봉 오희길의 요청으로 사재를 털어 말과 인부를 동원해 전주로 달려갔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아무도 눈치 못챈 세종대왕의 업적을 지켜낸 사람들 +2}
6월 22일부터 태조의 어진, 태조부터 명종까지 13대 180년간의 조선왕조실록 804권(또는 830책), 고려사 등 기타 전적 538책을 총 50여 바리(궤짝)에 담아 정읍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겼다. [Aju News Encykorea]
수직(守直) 기록:안의는 『수직상체일기(守直相遞日記)』라는 일기를 남겼다. 이 일기에는 실록과 어진을 지키며 교대로 수직을 선 370여 일간의 기록이 담겨 있다. 안의와 손홍록이 함께 수직한 날이 52~53일, 안의 혼자 수직한 날이 174일, 손홍록 혼자 수직한 날이 143일이었다. 수직상체일기 [ 나무위키]
이후 행적:1593년 안의는 행재소에 나아가 중흥의 6책(策)을 아뢰고 별제(別提)를 제수받았다. 7월에는 정읍 현감 유탁의 주도 아래 실록을 충청도 아산까지 배송하여 의정부에 인계했다. 이후 실록은 해주, 강화도 마니산, 묘향산으로 차례로 옮겨지며 보존되었다. [Encykorea Aju News]
안의는 실록을 지키던 중 1596년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당시 68세)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수직상체일기』와 『임계기사(臨溪記事)』는 안의 선생가에서 400여 년간 보관되어 오다가 2012년 6월 후손 안성하가 정읍시에 기탁했다. [수직상체일기 - 나무위키]
추모: 안의는 태인의 남천사(藍川祠)에 제향되었다. 남천사는 숙종 2년(1676년) 안의, 손홍록, 김후진 등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기 위해 처음 세워졌으나, 고종 5년(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가 1926년에 다시 세워졌다. 남천사는 2000년 6월 23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Wikipedia Aks]
역사적 의미: 안의와 손홍록이 지켜낸 전주사고본은 임진왜란으로 춘추관·충주사고·성주사고의 실록이 모두 불타버린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전쟁 후 1603년부터 1606년까지 실록을 재출판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안의와 손홍록은 조선의 역사를 지켜낸 진정한 은인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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