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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딛고
누가복음 13:6-9 / 송구영신예배
눅 13:6-9 / 예수께서 또 비유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러고는 그 나무에 열매가 열렸나 하고 여러 번 가보았지만 그때마다 실망을 했다. 7) 마침내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그 나무를 베어버리라고 말하였다. ‘내가 3년 동안이나 기다려 왔는데도 단 한 개의 무화과도 열리지 않는구나! 무엇 때문에 더 이상 참겠는가? 그것을 뽑아 버리면 그 땅을 다른 것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8) 포도원지기가 대답하였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한 해만 그냥 두시면 제가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 비료를 듬뿍 주겠습니다. 9) 이렇게 해서 내년에 무화과가 열리면 좋고, 열리지 않으면 그때 베어버리겠습니다.’
영어 속담에 ‘모든 성인(聖人)은 과거가 있고, 모든 죄인(罪人)은 미래가 있다.’(Every saint has a past, and every sinner has a future.)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과거가 없는 성인(聖人)이 없듯이 미래가 없는 죄인도 없다. 따라서 성인(聖人)이라고 해서 교만하거나 자랑할 것이 없으며, 죄인이라고 해서 낙심하거나 포기할 것이 없다. 사도 베드로의 경우가 실례가 된다.
과거가 있는 성인(聖人)에게는 감사가 있고, 겸손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래가 있는 죄인에게는 희망이 있고, 용기도 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 실패도 마찬가지이다. 과거가 없는 성공이 없고, 미래가 없는 실패도 없다. 모든 실패에는 미래가 있고 희망도 있다. 실패는 새로운 출발의 기회이다. 실패는 결코 수치가 아니다. 실패는 절망도 아니다. 오히려 실패는 인간의 한계를 깨닫는 자기각성의 기회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는 신앙체험의 기회이다. 오늘의 말씀을 상고하면서 미래와 희망이 없는 실패는 없다는 사실을 보면서 미래와 희망이 없는 죄인도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같은 확인과 확신을 가지고 미래와 희망이 넘치는 새해가 되기를 ….
1.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장에 있지 않고 결실에 있다.
본문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비유이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그는 와서 열매를 얻고자 하였다. 그런데 열매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그가 열매를 얻을까 하여 삼 년을 와 보았는데 열매가 하나도 없으니 이 나무를 찍어버리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라고 했다.
여기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을 상징한다. 무화과나무는 유대인을, 열매는 참된 회개를 상징한다. 그리고 참된 회개란 심령의 변화와 행동의 변화를 동반하는 전인적인 삶의 변화를 뜻한다.
포도원에 심겨진 무화과나무는 주인이 특별한 기대를 갖고 있는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무화과나무는 관상용이 아니다. 목재용이나 땔감용도 아니다. 무화과나무는 꽃도 없고 향기도 없다. 다만 무화과나무는 잘 성장한다. 그 잎이 크고 무성하다. 외형상으로는 아주 좋은 나무이다. 그러나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는 것이 특징이다. 포도원주인이 무화과나무를 심은 목적은 오직 열매를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화과나무가 주인의 기대에 어긋나게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주인의 특혜를 받았지만 주인의 기대에 어긋난 무화과나무는 땅만 버리게 하는 나무로써 찍어버림을 당할 수밖에 없는 무익한 나무에 불과하다. 이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장에 있지 않고 결실에 있다는 진리를 깨우쳐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특혜를 주셨다. 그것은 값없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다. 특혜를 받은 사람은 기뻐하며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잎만 무성한 성장에 있지 않으며 특혜를 누리는 자기 행복에 있지 않다. 진정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열매를 맺어 특혜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결실에 있다.
❚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 양궁경기의 여자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2관왕을 차지한 장혜진(29) 궁사 / 그녀는 4년 전 런던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4위로 탈락하였다. 좌절과 절망의 벽에 부딪혔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모든 과정을 감사하게 받아들인다’며 더욱 훈련에 매진하였다. 그녀는 브라질로 떠나기 직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는 요한일서 5장 4절의 말씀을 남겼다. 그녀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수첩에 성경 구절을 적어 놓았으며, 활시위를 당길 때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는 말씀을 머릿속에서 되뇌였다고 한다.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확정 짓는 순간 정혜진 양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그녀는 시상식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눈물을 흘리며 애국가를 불렀다. 또한 그녀는 시상식 후 가진 인터뷰에서 첫 일성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린다’라고 했다. SNS를 통해 자신을 응원해 준 국민과 팬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면서도 맨 앞에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을 똑같이 썼다. 사선에 섰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녀는 “하나님을 부르면서 ‘믿고 쏘자’는 마음으로 임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녀를 통해 ‘미래와 희망이 없는 실패는 없다’는 사실과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장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결실에 있다는 진리를 보고 듣게 되었다.
요 15:8, 16 /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그동안 우리는 교회성장, 경제성장 … 성장을 추구하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성장은 성숙과 결실의 과정임을 간과했다. 결실이 없는 성장은 땅만 버리게 하는 무화과나무처럼 찍어버림을 당하게 된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잎만 무성한 성장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결실에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제자가 되고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다 응답도 받게 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세례 요한, 예수님, 제자들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복음을 외쳤던 것이다.
2. 예수님의 궁극적인 관심은 심판에 있지 않고 구원에 있다.
무화과나무는 일 년에 세 번 곧 이른 봄과 여름과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 따라서 삼 년이면 아홉 번이나 열매를 맺을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주인은 삼 년 동안이나 열매를 얻고자 기대하고 기다려 주었다. 그러나 주인의 기대와 기다림은 번번이 빗나가 버리고 말았다. 과실수가 과실을 맺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없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햇빛을 가로 막으며 땅만 버리게 하는 백해무익한 나무에 불과하다.
삼 년 동안이나 열매를 기대하였으나 얻지 못한 주인의 실망이 결코 적지 않았다. 잎만 무성할 뿐 햇빛을 가리고 땅만 버리게 하는 무화과나무는 더 이상 두고 볼 여지가 없이 당장이라도 찍어버려야 할 심판의 대상이다. 그런데 포도원지기가 주인의 선처를 구하며 사정을 하였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 때문에 가장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이는 포도원지기이다. 그렇지만 그는 찍어버릴 수밖에 없는 무화과나무를 위해 주인에게 한 해만 더 그대로 두도록 중재하였다. 그리고 그는 열매를 맺도록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다고 했다. 이는 주님의 궁극적인 관심은 심판에 있지 않고 구원에 있다는 진리를 깨우쳐 주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수 없이 실망시켜 드리곤 하였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땅만 버리게 하는 무화과나무처럼 찍어버림의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포기하거나 단념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부정적으로나 비관적으로 보지 않으시고 먼저 긍휼히 어기시며 도와주어야 할 존재로 보신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지 않게 하시고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해 주신다.
❚ 시카고의 역사상 잊을 수 없는 복음전도자 멜 트라더 목사 / 미국 시카고에 있는 어느 한 교외에서 세 살짜리 여자 아이의 장례식이 있었다. 먹지 못해 굶어 죽은 아이였다. 그런데 이 불쌍한 여자 아이의 장례식에 남루한 옷을 입고 충혈된 눈으로 찾아온 알코올 중독자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틈을 타 죽은 아이의 신발을 벗겨 달아났다. 그리고 그 신발을 35센트에 팔아 술을 마셨다. 그는 다름 아닌 바로 죽은 그 아이의 아버지였다. 20년 후에, 시카고제일장로교회 부흥회에서 수천 명의 성도들 앞에서 한 사람이 외치고 있었다. 그의 외침은 찌꺼기 같았던 자기 인생을 구원해 주시고 변화시켜 주신 주님의 은혜에 대한 신앙 간증이었다. ‘죽은 딸의 장례식에서 기도하는 틈을 타 다른 사람 몰래 신발을 훔쳐 술을 마신 파렴치범은 바로 저였습니다. 그러나 만물의 찌꺼기 같은 나를 다시 살려 주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분은 바로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바로 멜 트라더 목사였다. 그의 복음 전도와 신앙 간증으로 약 천명의 알코올 중독자들이 구원받은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자기 자신에게서 조차 버림받아 폐인으로 살았던 사람들도 주님께서는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여 주셨던 것이다(겔 33:11).
예수님의 궁극적인 관심은 심판에 있지 않고 구원 즉 열매를 맺게 하는데 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악인이 심판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은혜이다(요 3:14-18).
2026년 새해에는 땅만 버리게 하는 무익한 인생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유익한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미국의 어느 정신의학자가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설교를 분석해서 발표 / 그의 평가에 의하면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설교 안에서 (단순하다는 것 외에는) 전혀 특별하거나 탁월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놀라운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곧 그의 모든 설교가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위대한 미래를 준비해 두셨습니다.’라는 선언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미래와 희망이 없는 죄인은 없으며 미래와 희망이 없는 실패도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 위대한 미래를 준비해 두셨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잎만 무성한 외형적인 성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결실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은 죄인의 죽음 곧 심판에 있지 않고 죄인의 회개 곧 구원에 있음도 기억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두신 위대한 미래와 희망이 가득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결 론(읽으면 유익한 글들)
❚ 이 천 작사ㆍ작곡 나로부터 시작 / 한 크리스천 사회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95%는 벤치워머(교회에 와서 한 시간 예배 드리면서 자기가 앉아있던 의자만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나가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부흥은 나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 ♬ 저 높은 하늘 위로 밝은 태양 떠 오르듯이 난 주저앉지 않으리 / 어떤 어려움에도 주의 길을 선택하리 빛 가운데로 걸으리 주님을 크게 보는 믿음 가지고 세상에 나타내리라 / 놀라운 주의 사랑을, 주의 꿈을 안고 일어나리라 선한 능력으로 일어나리라 이 땅의 부흥과 회복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리 / 주의 꿈을 안고 일어나리라 선한 능력으로 일어나리라 이땅의 부흥과 회복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리 / 주의 꿈을 안고 일어나리라 선한 능력으로 일어 나리라 이땅의 부흥과 회복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리 주의 꿈을 안고 일어나리라 선한 능력으로 일어나리라 이땅의 부흥과 회복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리.
❚ 탈무드에 있는 말 /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 서 있는 땅은 가장 훌륭한 랍비가 서 있는 땅보다 더 고결하다.’ 그렇다.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위대함 가운데 하나는 반성할 줄 안다는 것이다. 반성이라는 것은 그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만이 아니라, 왜 우리가 그런 삶을 살아왔는지를 깊이 생각하여 깨닫고 그 깨달음을 얻은 대로 나부터 바꾸어가는 것이다. 내가 먼저 바뀌지 않는 것은 결코 반성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은 비판이고, 왜 바꾸지 못하느냐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비난이다. 비판이나 비난을 통해서는 결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도 없을 뿐더러, 누군가의 삶이나 행동을 결코 바꿀 수 없다. 내가 내 삶을 돌아보며 나의 모습을 하나하나 바꿔갈 때 세상은 조금씩 변화되어가기 시작한다.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 이 찬송은 해밀톤이 무디의 간증을 듣고 감동을 받아 쓰게 된 찬송가이다. 무디의 간증은 이러했다. 【 여러 해 전, 나는(무디) 스코틀랜드의 대도시에서 부흥집회를 하고 있었다. 이때 참석한 어느 소녀가 구원에 관한 간절한 소망을 안고 자기 교회에 돌아가, 구원받는 길을 자세히 알려달라고 담임목사에게 물었다. “아가씨, 걱정하지 말아요. 간단해요.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리세요. 그러면 구원받아요.” 담임목사는 쉽게 대답하였다. 그러자 가엾은 소녀는 울면서 부르짖었다. “목사님, 저는 글을 몰라요. 기도할 줄도 몰라요!” 목사는 그를 위해 기도한 후 기도를 가르쳐주었다. 그러자 소녀가 이렇게 기도를 하였다. “주 예수님, 제 모습 이대로 받아주세요.” 이렇게 하여 그 소녀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 】 이 소녀의 얘기를 들은 해밀톤은 감동하여 이 찬송을 썼다. 이후에 조지 스테빈스(George Stebbins) 목사가 이 시를 발견하고 작곡하여 지금의 찬송가를 만들게 되었다. - 후에 어느 영국 목사가 편지로 무디에게 그 소녀에 대한 소식을 전해 왔다. 그 소녀는, 불신자로서 자기 집에 하숙하고 있는, 구둣방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여자는 남자를 교회에 가자고 권했으나 듣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좀 읽어보라고 마루에 놓아두었던 그의 성경을 찢어 놓기까지 하였다. 착한 그 여자는 화도 안 내고 정성 드려 도로 붙여서 제 자리에 두며, ‘제발 좀 읽어보세요’, 하고 권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소설이나 신문만 읽을 뿐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세월이 흘렀다. 어느 봄날, 그 남자는 심한 기관지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였다. 그 착한 여자는 혈혈단신인 그 남자를 정성껏 간호하였다. 그리고 기회만 있으면 영혼구원에 대해 얘기해주고, 성경을 읽어주며 친절하게 설명하였다. 어느 날, 그 착한 여자는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찬송을 읽어주었다. 그가 후렴을 읽자 그 늙은이가 소리쳤다. “그런 말은 책에 없잖아!” “왜 없어요?” 그 착한 여자는 대답하며 찬송을 보여주었다. 그 남자는 그 절을 읽고는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날 위해 돌아가신 주라니…!” 그는 찬송을 읽고 또 읽었다.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오! 날 받으옵소서…. ” 몇 주 후 아침, 그 남자가 말하였다. “여보, 나 퇴원할래. 난 이제 정말 행복하오. 정말 ….” 집에 돌아온 지 두 시간이 채 못 되어 그는 세상을 떠났다.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라고 계속 중얼거리면서 ….
♬ 214장 ➊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 하시사 날 받아주소서 <후렴>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아멘 ➋ 큰 죄에 빠져 영 죽을 날 위해 피 흘리셨으니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아주소서 ➌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아주소서 ➍ 내 주님 서신 발 앞에 나 꿇어 엎드렸으니 그 크신 역사 이루게 날 받아주소서
❚ 행 16:6-34 / [바울이 본 환상]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1) [루디아의 개종]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16)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 에이브러햄 링컨의 위대함 / 링컨은 대통령이라서가 아니다. 노예 해방 문서에 서명하였기 때문도 아니다. 그가 유명한 까닭은 실패를 딛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 링컨은 1809년 2월 12일 켄터키주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1816년 토지 소유권의 문제가 잘못되어 모든 땅을 잃어버렸다. 1818년에 어머니가 독초를 먹은 소의 우유를 마시고 34살에 돌아가셨다. 1831년에 사업에 실패하였으며 1832년 주의회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1833년에 사업을 재개하였나 실패하였다. 1834년 약혼녀가 사망하였다. 1836년에 신경쇠약증으로 병원에 입원하였다. 1843년, 1848년에 하원의원에 두 차례나 낙선하였다. 1854년, 1858년에는 상원의원에 두 차례 낙선하였다. 그러나 링컨은 이러한 실패에도 굴복하지 않고 일어나 1860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링컨은 말한다. “내가 걷는 길은 험하고 미끄러웠다. 나는 자꾸만 미끄러져 길바닥 위에 넘어지곤 했다. 그러나 곧 기운을 차리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괜찮아, 길이 약간 미끄럽긴 해도 낭떠러지는 아니야.’” 절망하지 않고 도전하였을 때 링컨은 목표를 이루었다. 다시 일어서는 일이 중요하다.
❚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모든 더러운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을 갈아 입는 것으로 비유하였다(골 3:12-17). 8절에서는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고 하였다. 무엇을 벗어 버리라는 말인가? ‘분함, 노여움, 악의, 비방, 입의 부끄러운 말, 거짓 말’을 벗어 버리라고 했다. 5절에 보면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우상 숭배 땅에 속한 지체로 여겨 죽이라’라고 했다.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경고하였다. / 그리고 나서 12절에서는 새로운 옷을 입으라고 했다. 그 새 옷이란 ‘긍휼(고난에 처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과 너그러운 마음), 자비(부드럽고 친절한 성품), 겸손(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모습), 온유(회개하는 마음을 통한 부드러운 마음 상태), 오래 참음(앙갚음하거나 복수하지 않고 오래도록 참고 견디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이다.
❚ 주님 안에 거하였나? /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는 영국이 낳은 위대한 선교사요, 중국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중국 사람처럼 옷을 입고 머리를 뒤로 늘어뜨리고 시골에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자신들과 같이 먹고 자는 모습을 본 중국 사람들이 감명을 받고 그가 전하는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 그러나 테일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시련들이 있었다. 8살 난 딸이 갑자기 병으로 죽었다. 3년 후에 5살 난 아들이 결핵성 장염으로 죽었다. 그해 7월에 둘째 아들이 태어났는데, 20일 만에 죽었다. 그로부터 13일 후 아내가 죽었다. 그는 너무도 괴로워 절규하였다. ‘하나님, 중국에 선교하러 왔는데 딸도 데려가시고 첫째 아들, 둘째 아들도 데려가시고 아내까지 데려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 그때 동료 매카시가 보낸 편지에 나오는 요한복음 15장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믿음은 애쓴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께 의지함으로 얻기에 주 안에 거하기만 하라는 내용이다. 테일러는 고백하였다. ‘예수께서 나를 결코 떠나지 않으실 뿐 아니라 내가 그분의 몸, 육신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 진리를 보는 기쁨이여! 고통의 순간에도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절망의 순간에도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주님이 나를 붙드시고 나를 통해 위대한 역사를 이루신다.’ 그는 주 안에 거하기로 작정하였다. / 그 후 테일러의 헌신으로 1,134명의 선교사, 6,171명의 중국인 사역자들이 탄생하였다. 말할 수 없는 절망에 처했지만, 그는 예수 안에 거함으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열매를 맺게 되었다.
❚ 18세기경 구두 만드는 직공이었던 죤 워(John Warr)가 예수 믿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로 작정하였다. 그의 밑에 실습생이 고용되었다. 죤은 그에게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실습생은 그의 말 듣는 것을 귀찮아했다. 어느 날 실습생이 위조 화폐 1실링을 진짜와 바꾸려다가 발각이 되었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그가 어쩔 줄 몰라했다. 그때 죤 워는 그를 위해 기도해주었고 사랑으로 도왔다. 실습생은 그 사랑에 감복되어 예수를 믿고 제자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 실습생이 바로 인도의 선교사가 되어 놀라운 열매를 맺은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이다. 캐리의 선교는 세계 복음화 전도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존 워가 베푼 사랑은 열매를 맺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사랑에 거할 때 비로소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 코리 텐 붐 여사가 2차 대전 독일의 나치 치하 수용소에서 말할 수 없는 잔인한 핍박과 학대를 받았다. 코리텐 붐 여사의 언니는 독일의 수용소에서 나치들의 고문에 못 이겨 그만 먼저 세상을 떠났다. 전쟁이 끝났을 때 코리 여사는 얼마나 독일 사람들이 미웠는지 모른다. 히틀러나 그의 잔당들이나 자기를 고문하던 그 대상들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코리 텐 붐 여사의 마음속에 주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하도록 명령하셨다. 코리 여사는 전쟁이 끝난 후 독일의 마을 찾아다니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을 전했다. 어느 날 독일의 한 마을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설교가 끝나고 많은 사람이 이 코리 여사와 인사하기 위해 기다렸다.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얼굴 가운데 뜻밖에도 독일의 그 나치 감옥에서 자기를 고문하고 자기 언니의 목숨을 앗아갔던 간수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원수를 만났다. 코리여사는 일기장(자서전)에 이렇게 기록했다. ‘그 순간 내 심장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나는 한마디로 『하나님, 저 인간만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코리 여사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용서와 사랑을 외치고 있던 이 코리 여사의 앞을 향해서, 자기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입혔던 쳐 죽이고 싶었던 그 사람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하나님은 계속 이 코리 여사의 마음속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코리야! 용서하거라.’, ‘하나님, 저 인간만은 용서할 수 없어요’, ‘용서하거라’, ‘못해요.’ 이렇게 내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에 그 원수 같은 사람은 벌써 코리 여사의 눈앞에까지 왔다. 그런데 그 순간 코리 여사의 마음속에 번개같이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나는 네가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겠느냐 안 하겠느냐를 묻고 있는 것이다. 용서하라는 것은 나의 명령인데, 내 명령 앞에 순종하겠느냐, 안하겠느냐?’ 코리여사는 자기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나는 그때 그 사람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지만, 용서해야만 한다는 주님의 명령이 내 마음 속에 깨달아지는 순간 ‘하나님 명령이라면 할 수 없지요. 그러면 용서해야지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과 느낌이 없이 다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내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손을 내밀어 그를 안는 순간 주께서 내 마음속에 그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 마음을 부어주셨다.』 그러면서 코리여사는 그 일기장의 마지막에 이런 인상 깊은 글을 썼다.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성령님에 의지한 순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 윌리엄 캐리 (William Carey)의 전기를 쓴 작가는 ‘어떻게 윌리엄 캐리가 열정을 가지고 인도의 사역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를 조사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캐리에게는 몸이 약한 누나가 있었다. 누나는 캐리가 인도로 선교를 떠날 때 이렇게 말했다. ‘캐리야, 너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구나. 누나는 병상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몸이라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밖에 없구나.’ 작가는 윌리엄 캐리의 사역 배후에 기도밖에 할 수 없는 한 여인,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여인, 기도 외에는 자기 존재를 발견할 수 없는 여인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누나의 기도 속에 윌리엄 캐리가 사역을 이루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음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캐리의 누나는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잘 몰랐지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왜 나약한 모습으로 평생 누워 지내야 하는지 깨달았다.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헛되이 사라지지 않는다. 위대한 일과 위대한 사람 배후에는 반드시 보이지 않는 기도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