活溪先生遺稿
표제/저자사항活溪先生遺稿 / 이대유 이집형
판사항古活字本(後期木活字)
발행사항[刊寫地未詳] : [刊寫者未詳], 1822
형태사항TIFF1冊: 四周單邊 半郭 22.4 x 15.9 cm, 10行20字 註雙行, 內向黑魚尾; 31.7 x 20.9 cm
주기사항附: 東林遺稿 / 李以恂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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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번호/부호UCI G701:B-00047985603
분류기호조선총독부고서부분류표 古朝46
주제명활계선생유고
活溪先生遺稿 / 李大柳 著; 李集馨 編
이대유 이집형
판사항古活字本(後期木活字)
발행사항[刊寫地未詳]: [刊寫者未詳], 1822
형태사항1冊: 四周單邊 半郭 22.4 x 15.9 cm, 10行20字 註雙行, 內向黑魚尾; 31.7 x 20.9 cm
주기사항附: 東林遺稿 / 李以恂 著
序: 崇禎紀元後丁酉(1657)...李頤根
숭정15년.임오(1642,인조20) 숭정17년.갑신(1644,인조22)崩
1영력11년,정유(1657,효종8)
2강희56년.정유(1717,숙종43)
| 증손 李頤根 간행. 서문요청. 서문찬술 1713년 12월. 天默先生遺稿 天默先生遺稿序[權尙夏] 崇禎紀元後八十六年癸巳季冬日。安東權尙夏。謹題。天 |
| 權尙夏 | 1641 | 1721 | | | 安東 | 致道 | 寒水齋, 遂庵, 黃江 | 文純 | |
| 李尙馨 | 1585 | 1645 | | | 全州 | 德先 | 天默齋, 圭峯, 喚醒 | 忠景 | |
| 숙종 | 39 | 1713 | 계사 | 康熙 | 52 | 73 | 史官과 掖庭이 와서 宣諭하고 宣醞하다. ○ 8월, 대사헌에 제수되었으나 상소하여 사직하다. ○ 11월, 〈家禮源流序〉를 지어 尹拯의 背師를 비난하다.寒 |
跋: 崇禎四壬午(1882) 活溪集跋 ...宋穉圭
跋: 崇禎四壬午孟夏恩津宋穉圭識 1759년(영조 35)~1838년(헌종 4)
| 순조 | 22 | 1822 | 임오 | 道光 | 2 | 64 | 4월, 活溪集跋 찬술하다. |
1숭정15년.임오(1642,인조20) 숭정17년.갑신(1644,인조22)崩
2(1702)
3(1762)
4(1822)
四壬午(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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剛齋先生集卷之六 / 跋 / 活溪集跋
活溪先生李公大유<由+己>詩文摠若干篇。附以公狀碣挽誄諸文字及寧川書院上樑文及宣額時賜祭文。爲一冊者。刊印已有年所。而華菴李公爲之序矣。公後孫集馨。復得公之文散逸者數篇而添入。兼付公胤子東林公以恂詩幾首於卷末。將重刊之。來謂余曰。願得一言以重之。余之荒拙。顧非其人。况舊序稱之以鳳凰一毛。並論其世。溯淵源於靜菴而贊歎之。余又何以贅焉。但讀其狀而詳其徽蹟。則殊不勝固陋之幸。仍知其嘉言宜多可傳。而今寂寥如是。則又不覺慨惜之深。後之閱是卷者。亦必有同余懷者矣。若東林詩什聲病華實。非余所敢知。而其擩染於家庭。而深得乎性情之正者。其將舍是而他求哉。李君之合編。甚得其宜。而誠勤之意。可謂無忝。尤可嘉也。
| 헌종 | 4 | 1838 | 무술 | 道光 | 18 | 80 | 1월, 정헌대부로 오르다. ○ 2월 10일, 숙환으로 졸하다. ○ 윤4월, 沃川郡 寧國寺에 부인묘와 합장하다. ○ 家狀(宋欽成 撰)이 완성되다.剛 |
분류기호조선총독부고서부분류표 -> 古朝46
| 李大柳 著;李集馨 編 | 1822 | | 한古朝46-가490 |
目次
表紙 = 0
序 = 1
卷之一 = 5
卷之二 = 63
附 = 115
跋 = 133
世系 =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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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헌집(晩軒集) 정염(丁焰)생년1524년(중종 19)몰년1609년(광해군 1)자군회(君晦)호만헌(晩軒)본관창원(昌原)특기사항노진(盧禛), 기대승(奇大升), 박광옥(朴光玉) 등과 교유
晩軒先生文集卷之四 / 附錄 / 奉安文[諮議李頤根]
天佑我東。亦眷南疆。儒賢代作。鄒魯斯鄕。游翁檜老。二程於洛。淵源旣深。惟靜菴學。仰惟先生。早襲其緖。質厚氣淸。德備才巨。忠孝內根。謙恭外著。河海弘量。稷禹心期。循循下學。敬義夾持。軌範訓謨。循蹈矩規。負笈海島。風雨美境。不顧世網。伊洛夜詠。亹亹孜孜。玩意潛心。有踐其實。有詣其深。儒林喬岳。學海盟宗。一源流出。萬善皆從。文章灝噩。乃其餘事。列郡謳歌。特其糠粃。直道不撓。世路臲卼。妖僧助桀。義急沐浴。誰幻譸張。謂焚崐岡。內省無疚。外謗何傷。介石貞吉。縮朒名塲。浩然南歸。衡泌洋洋。龍頭勝區。玉山別業。闢齋知今。有莘來學。於焉講劘。活爺天翁。鄕邦有師。衿紳知宗。維天有斗。靡遠不瞻。相彼河潤。近者先沾。沒世愈久。盛德難忘。胡不俎豆。多士共相。乃建新宇。維梓之鄕。寧川在左。先師所侑。一水東西。兩祠新舊。陟降相隨。不昧有靈。依然函丈。響像平生。誰與共腏。侍中李公。異世同調。宅相遺風。大德不孤。歿亦有隣。永垂顧歆。啓佑後人。
春秋享祀祝文
淵源靜菴。私淑游翁。履玆實地。不欺是宗。移孝以忠。寔學之施。遺韻未泯。無斁人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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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집(遜齋集) 박광일(朴光一)생년1655년(효종 6)몰년1723년(경종 3)자사원(士元)호손재(遜齋)본관순천(順天)특기사항송시열(宋時烈)의 문인. 권상하(權尙夏) 등과 교유
遜齋先生文集卷之七 / 雜著 / 夢說贈李生 天嘿齋曾孫
愚甞夢至一處。其地凈如淸氷。明如水晶。而衆星昭布森列。開目爽然。不覺神淸而骨冷。余曰此是紫微垣。何緣到此。蘧然魂悸而覺。乃自私語曰。此非牽情夢。無乃此心走作不定。淵淪天飛之致歟。叩諸靈棋而玩占。則其詩曰
採薇餐松絶世塵。白雲流水萬年春。九重丹詔非吾願。成性存存獨養眞。
愚乃次其韵曰。
遠尋方丈避囂塵。三見瑤花爛熳春。自顧此身仙分薄。紫微淸夢恨非眞。
以示朋友而笑之矣。今於天嘿齋集中有夢入紫微垣事。而有詩云
此身曾是玉京仙。謫下猶來方丈邊。夢乘黃鶴南溟去。八萬神峯花接天。
仍竊自幸以爲神安氣定之君子。猶有是夢。愚者疇昔之夢。或者非心病歟。又敬次仙韵曰。
夢入淸都身是仙。紫微垣裡廣漢邊。遨遊一下人間世。星斗迢迢九萬天。
惟吾友一笑而勿掛人眼也。
손재집 제7권 / 잡저(雜著) / 이생 천묵재의 증손 에게 준 몽설〔夢說贈李生 天默齋曾孫〕
내가 일찍이 꿈에서 어느 곳에 이르렀는데, 그 땅은 깨끗하기가 맑은 얼음 같고 밝기가 수정 같았으며, 뭇별들이 밝게 펼쳐지고 삼엄이 벌여 있어 눈을 뜨면 상쾌하여 나도 모르게 정신이 맑아지고 뼛속까지 서늘하였다. 나는 “이곳이 자미원(紫微垣)인데, 내가 어떻게 여기에 왔을까?”라고 말하고는 갑자기 놀라 깨어났다. 그러고는 혼자서 말하기를 “이는 정(情)에 이끌린 꿈이 아니라, 이 마음이 정처 없이 내달리다 연못에 빠지고 하늘을 난 소치가 아닐까?”라고 하면서, 《영기점법경(靈棋占法經)》으로 점을 쳐 보니, 그 시에 이르기를 “고사리를 뜯고 솔잎 먹으며 속세 먼지 벗어나니, 흰 구름에 물 흐르는 만년 세월이 봄이로다. 구중궁궐의 붉은 조서(詔書)는 내 소원이 아니요, 성성(成性)에 항상 마음을 두어 홀로 참된 성(性)을 기르리라.”라고 하였다. 나는 곧 차운하여 “멀리 방장산(方丈山 지리산(智異山))을 찾아와 시끄러운 세상 먼지 피하여, 백옥 같은 꽃이 흐드러진 봄날을 세 번이나 보았도다. 돌아보면 이 몸은 신선의 인연 박하기에, 자미원의 맑은 꿈이 사실 아니라서 한스럽다네.”라고 지은 뒤 친구들에게 보여 주고 웃었다.
지금 천묵재(天黙齋)의 문집 가운데 꿈에서 자미원에 들어간 일이 실려 있는데, 시에서 이르기를 “이 몸이 일찍이 옥경(玉京)의 신선이었다가, 방장산 곁으로 유배되어 내려왔도다. 꿈에 황학을 타고 남명(南溟)으로 가 보니, 팔만의 신선 봉우리에 꽃들은 하늘에 닿았다오.”라고 하였기에, 은근히 정신이 편안하고 기운이 안정된 군자도 오히려 이런 꿈을 꾸었음을 스스로 다행으로 여겼으니, 나의 지난번 꿈은 혹시라도 마음의 병 아니었던가. 또한 선(仙) 자 운을 공경히 빌려 “꿈에 청도로 들어가 신선이 되어, 자미원 안의 광한루 옆에 있었는데, 즐겁게 놀다 한번 인간 세상 내려오니, 북극성이 구만리 하늘에 아득하여라.”라고 지었으니, 오직 그대나 한번 웃어넘기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 주지 마시게.
[주-D001] 이생(李生)에게 준 몽설 : 이생은 천묵재(天黙齋)의 증손(曾孫) 이이근(李頤根)을 가리킨다. 천묵재는 이상형(李尙馨)의 호이다.[주-D002] 마음이 …… 아닐까 : 《장자(莊子)》 〈재유(在宥)〉에 “그 멈추어 있으면 깊은 못처럼 고요하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하늘에 매달려 있게 된다. 성을 냈다 뽐냈다 하여 잡아매어 둘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其居也, 淵而靜; 其動也, 懸而天. 僨驕而不可係者, 其惟人心乎.]”라고 하였다.[주-D003] 영기점법경(靈棊占法經) : 《주역》을 모방하여 만든 고대의 점법으로, 저자에 대해서는 장량(張良), 동방삭(東方朔),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등 설이 많다. 12개의 윷말을 던져 125개의 괘(卦)를 만들고, 상(象)을 얻어 점을 친다.[주-D004] 성성(成性)에 …… 두어 : 성성은 이루어진 성(性), 즉 타고난 성을 뜻한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천지가 자리를 베풀거든 주역이 그 가운데 행해지나니, 이루어진 성에 마음을 항상 두는 것이 도의의 문이다.[天地設位, 而易行乎其中矣, 成性存存, 道義之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주-D005] 이 몸이 …… 닿았다오 : 《천묵유고(天默遺稿)》 권1 〈서울에서 병으로 누웠다가……청구(淸臞) 임재숙(林載叔)에게 부치다.[卧病京邸……因寄林淸臞載叔]에 있다.[주-D006] 꿈에 …… 아득하여라 : 청도(淸都)는 옥황상제가 산다는 천상(天上)의 궁전을 가리킨다. 《楚辭 遠遊》 자미원(紫微垣)은 북두성(北斗星)의 북쪽에 있는 성좌(星座)이며, 광한루(廣寒樓)는 달 속의 선궁(仙宮)인 광한궁(廣寒宮)의 누각으로, 둘 다 선계(仙界)를 가리킨다. 이 시는 《손재집》 권1에 〈천묵재의 꿈결에 자미원에 들어가다를 차운하다[次天默齋, 夢入紫微垣韵.]〉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오항녕 황교은 유영봉 (공역)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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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탄집(桃灘集) / 附錄上
도탄집(桃灘集) 조선 선조 때의 의병장 변사정(邊士貞, 1529~1596)의 시문집.
家乘後叙
桃灘先生之殁百有餘年玄孫鈗圖所以不朽於知言者顯刻墓道或慮家狀之關略以余戚屬之忝而世好之敦宜有所講於家庭來討遺聞余惟先生行迹胤孫奉事公之狀晩軒丁先生之誌已得該盡固無所容贅焉抑亦狀誌已成後儒先長老之所公誦者余幸有聞嘗尤庵先生錄癸未章疏以當時上公車誦兩先生誣者不一而激勵明直無如先生之疏置之卷首且曰因其疏可見所學之純正鄕黨先輩言及先生事每以先生之學之忠合有崇褒易名之典而殁後掌令之贈不如生時僉正之品公議之抑鬱久矣誰能陳達四聰使國家顯忠遂良之意得有所施哉我祖考石洞公嘗曰有可以爼豆之者宜莫如先生每嘆祭社之不擧頃年湖嶺章甫建祠於先生捿息之鄕圃隱鄭先生位其北以先生及懷齋朴公配侑之圃隱卽先生外先也懷齋乃先生道交也時有所待並時同享事非偶然而亦可記也余嘗遊頭流山過先生桃灘之居眞可謂蒼蒼泱泱先生之風與之高長者也却憶曺南冥頭流記高山大川非無所得而比韓鄭趙三君子於高山大川更於十層峯頭冠一玉也千頃波面生一月也韓公惟漢一蠹鄭先生艄公之瑞皆隱於頭流者故南冥之言如是若使南冥後先生而遊此山則不曰三君子而謂之四也明矣此實余之所感於前者玆敢並叙而歸
完山李頤根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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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28 / 시(詩) / 봉암 채공주 424)의 묘소를 지나며
강문의 팔학사주 425)로 높은 이름 날렸으니 江門八學擅高名
성을 논하던 당년에 강론하여 밝히려 했네 論性當年要講明
어찌 알았으랴 인물성동이 호락의 설주 426)이 詎料異同湖洛說
점차 천고의 커다란 논쟁을 이룰 줄을 轉成千古大啁爭
주석 424)봉암(鳳巖) 채공(蔡公)채지홍(蔡之洪, 1683~1741)으로,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범(君範), 호는 봉암이다.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 중 한 사람이며, 한원진(韓元震)ㆍ현상벽(玄尙璧) 등과 함께 호론(湖論)의 중심인물이 되어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하였다. 저서에 《봉암집》이 있다.주석 425)강문(江門)의 팔학사(八學士)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배출된 윤봉구(尹鳳九)ㆍ한원진(韓元震)ㆍ이간(李柬)ㆍ채지홍(蔡之洪)ㆍ이이근(李頤根)ㆍ현상벽(玄尙璧)ㆍ최징후(崔徵厚)ㆍ성만징(成晚徵) 등 8명의 학자를 가리키는 말이다.주석 426)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호락(湖洛)의 설조선 후기에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야기된 이른바 호락논쟁(湖洛論爭)을 말한다. 이 논쟁은 한원진(韓元震)과 이간(李柬) 사이에서 시작되었는데, 한원진은 인물성상이론(人物性相異論)과 미발심체유선악론(未發心體有善惡論)을, 이간은 인물성구동론(人物性俱同論)과 미발심체본선론(未發心體本善論)을 주장하였다. 한원진의 주장에 동조하는 학자들이 대부분 호서(湖西) 출신이었기 때문에 호론(湖論) 또는 호학이라 부르고, 이간의 주장에 동조하는 학자들이 대부분 낙하(洛下), 즉 서울 출신이었기 때문에 낙론(洛論) 또는 낙학이라 불렀다.
過鳳巖蔡公墓
江門八學擅高名, 論性當年要講明.
詎料異同湖洛說, 轉成千古大啁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