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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라포션 이름 (파라샤트) | 모세오경 (토라) | 예언서 (하프타라) | 신약 (브리트하다샤) |
| 베레쉬트 / 태초에 | 창 1:1-6:8 | 사 42:5-43:10 | 요 1:1-18 |
<단락 1> 1.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히 :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마임, 베에트, 하아레츠 : 7단어)
성경의 첫 단어 ‘태초에’의 히브리어는 ‘베레쉬트’이며, 히브리어 ‘베트’와 ‘레쉬트’의 합성어입니다. 히브리어 ’베트‘의 뜻은 아버지의 집이며, 히브리어 ’레쉬트‘의 뜻은 처음, 시작 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당신이 거하시는 집을 짓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 ’베트‘의 또 다른 뜻은 아들이며, ’레쉬트‘의 또 다른 뜻은 ’머리‘ 입니다. 그래서 ’태초에 (히 : 베레쉬트)‘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1장 1절 (히브리어 직역) ’하나님은 이 땅에 당신이 거할 집에서 당신의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슈아를 우리의 머리로 인정해 드려야 합니다‘ 입니다. 그리고 이번 주 토라포션과 연결되는 신약 성경은 요한복음 1장입니다.
1)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예슈아는 창조 이전 영원부터 존재하신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의 헬라어는 ’프로스 톤 테온‘이며, 헬라어 ’프로스‘의 뜻은 ’~향하여‘이며, ’톤 테온‘의 의미는 목적격 형태인 ’하나님‘ 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헬라어 ’프로스‘는 예배의 헬라어인 ’프로스 퀴네오‘에 사용되었으며,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입맞춤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얻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께 입맞춤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입맞춤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우선, 하나님은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며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입맞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7장 46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말씀합니다. 예슈아는 창조 이전 영원부터 존재하신 하나님과 단 한 번도 관계가 끊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죄로 인해 십자가 위에서 잠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즉,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받음을 예슈아께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던 우리가 예슈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친밀함 안으로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슈아는 시편 22편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시편 22편 1절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말씀합니다. 예슈아는 시편 22편에 예언되어진 메시아임을 선포하시며, 이 고난을 통해 구원의 승리가 이루어질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2)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이미 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땅의 상태는 혼돈스럽고 (히 : 토후), 공허하며 (히 : 보후), 흑암 (히 : 호쉐크)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혼돈스러운 것을 경험합니까? 질서가 없을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 공허합니까? 생명을 잃어버렸을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 흑암 가운데 있습니까? 빛을 잃어버렸을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어두움과 빛을 구별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우리의 상태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 가운데 사로 잡혀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빛되신 예슈아를 우리의 머리로 영접한 이는 더 이상 어둠의 자녀처럼 옛 자아와 이 세상 환경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빛의 자녀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1)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세상에는 거짓된 빛이 있고, 참 빛이 있습니다. 거짓된 빛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4절 ’...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말씀합니다. 거짓된 빛은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 (태양, 달, 재물, 권력, 이성 등등) 자체를 빛으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 내가 주인 되어서 만든 세상의 성공과 인정과 스스로의 의로움 등이 거짓된 빛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빛은 겉으로는 화려하고 능력이 있어 보이지만, 그 내면은 창조주의 질서와 사랑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 3절의 빛은 예슈아 안에 있는 쉐키나 영광의 빛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어두운 이 땅을 당신의 쉐키나 영광의 빛으로 창조하셨듯이, 예슈아께서 죄와 죽음의 어둠에 갇힌 우리에게 참 빛으로 오셔서 우릴 영적으로 다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참 빛이신 예슈아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빛을 비추실 때에 우리의 영적 무지와 어두움은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릴 창조하신 목적에 대해 알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릴 당신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거룩한 신부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빛추는 예슈아의 쉐키나 영광의 빛은 온 세상 가운데 가득 임할 것입니다.
(2) 계 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예슈아의 재림을 통하여 임하게 되는 빛은 천지 창조의 첫째 날 ‘빛이 있으라’고 하신 그 빛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새 예루샬라임 성전이 내려오게 되면, 여호와의 영광을 통하여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실 것이며, 하나님은 그 영광 안으로 우릴 초청하실 것입니다 (합 2:14). 그러나 우리는 부활하여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샬라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지만, 부활의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하나님의 쉐키나 영광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고 그 영광에 대해서 묵상할수록 그 영광은 우리에게 실제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1절에 나온 ’천지‘의 히브리어가 ’하샤마임 하아레츠‘ 이며, 그 뜻은 ’하늘들과 땅‘입니다. 우선, 히브리어 ’하샤마임‘은 ’그곳에 물이 있다‘ 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절에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생명수가 존재하여, 이 물을 통해 죽어 있는 사해가 에덴동산과 같이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어 ‘하아레츠’는 ‘열방 가운데 한 부분’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장소가 하나가 되는 곳을 에덴동산으로 지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이 확장되어진 모습으로 이 땅에 새 예루샬라임 성전이 내려오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그곳에서 온 열방과 민족과 백성들을 통치하시고 다스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을 히브리어로 ‘하아레쯔’ 라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3절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말씀합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킨 자 (회개)를 뜻합니다. 이들은 예슈아의 재림을 통하여 회복되어진 에덴동산과 생명나무로 나아갈 권세를 얻게 될 것입니다.
<단락 2> 2.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
형상의 히브리어는 ‘쩰렘’ 이며, 히브리어 ‘쩰’ 은 그림자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형상을 닮길 원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 (히 : 아파르)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흙의 먼지 (히 : 아파르)로 사람을 만드셨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호흡 (히 : 니쉬마트 하임 : 생명의 영)을 불어 넣으셔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 가운데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기를 통하여 만들어진 아담은 왕이신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나게 됩니다. 이 날이 나팔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팔절에 부활하여 공중에서 우리의 신랑 예슈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말씀합니다. 정복의 히브리어는 ‘카바쉬’이며, 그 뜻은 ‘전쟁’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슈아를 믿는 순간부터 사단과 영적 전쟁이 시작된 것을 알고 계시기에 전신갑주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육체의 문제를 단순히 돈과 사람과 사람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그 뒤에서 역사하고 있는 죄와 사단과 싸울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가 이를 행하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1) 창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나님은 에덴 동산 중앙에 있는 각종 나무의 열매는 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열매를 먹는 즉시 영이 죽게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 그렇다면, 이 나무의 열매는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과 자기 기준과 판단 등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4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육신대로 (흙대로) 살아간다면, 사단 (뱀)의 먹이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 (히 : 에쯔 하임)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함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잠언 3장 18절 ’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필요한 생명나무는 토라와 예슈아입니다. 우리는 예슈아와 토라에 대한 순종을 훈련해서 생명나무로 돌아가는 예행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왕 노릇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이성적 판단과 스스로 취득한 지식에 따라 사는 삶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에만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1) 창 3:6 ... 그들의 눈이 밝아져 ...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범죄하기 전 아담과 하와는 단순히 알몸의 상태로 걸어 다닌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쉐키나 영광의 빛으로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빛의 옷). 그런데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게 된 순간, 그 영광의 빛이 그들 몸에서 벗겨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영의 눈이 닫히고, 육체의 눈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육체의 눈이 밝아져서 가장 먼저 본 것은 자기들이 벗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며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벗었다는 사실에 집중하자, 그들에게 수치심이 밀려왔고, 두려움이 밀려왔고,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남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2) 창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셔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창 3:8). 아담이 있어야 할 자리는 하나님과 멀어진 곳에서 숨어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리 (보좌)에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죄가운데 있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하며, 하나님의 음성보다는 육신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롬 1:28), 심령에 생긴 빈 공간에 세월과 고난의 찬바람이 불어 절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요?
(3) 엡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자신만 바라보며 불안해하던 육의 눈을 닫고, 우릴 위해 가죽옷을 입히시고 십자가에서 영광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영의 눈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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