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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월삭 예배 (로쉬 호다쉬)
<단락 1> 1. 시 69:13 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릴 반겨주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시간인 샤밧과 월삭과 절기이며, 이는 하나님의 예언적 스케줄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반기시는 때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게끔 기도와 경배를 주께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원하는 뜻대로 기도의 응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 (히 : 헤세드 : 자격 없는 자에게 임하는 은혜)와 구원의 진리 (히 : 에메드 : 변함없는 하나님의 약속)로 응답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뜻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Ⅱ. 티쉬리 (Tishri) 월 : 7번째 달
<단락 2> 우리는 5787년도 새해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특별히 가을 절기에는 한 해 동안 추수한 것을 가지고 가득 안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2. 신 16:16 ... 오순절과 장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오순절은 밀의 추수하는 시기이며, 장막절은 포도, 석류, 무화과, 올리브 등 과일을 추수하는 시기입니다. 하나님은 오순절과 장막절에 빈 손으로 나오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 힘을 다하여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빈손은 돈의 액수와 양을 의미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정성이 담긴 마음을 의미합니다. 즉, 여호와의 절기이기 때문에 종교적 형식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절기를 통하여 우리와 특별한 만남 가운데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이번 달 히브리어 알파벳은 ‘라메드 <ל>’ 이며, 뜻은 ‘지팡이, 배우다, 가르치다’ 입니다. 참고로 히브리어 글자 중에 가장 키가 크고 높이 솟아 있는 글자가 ‘라메드’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번 뿐인 소중한 인생을 누구에게 배워야 하겠습니까? 시편 23편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지금의 상황이 부족하더라도 어제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셨던 분이 하나님이시며,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오늘과 내일을 공급할 것을 믿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보살핌에 온전히 맡기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하나님께 삶을 맡겨드리는 일이 두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 속에 두려운 마음들이 있었으며, 아브라함의 순종 뒤에는 인간적인 주저함과 두려움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오늘 하루 우리 의지와 삶을 하나님의 보살핌에 맡기기로 결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보다 위대하며 우릴 넉넉히 회복하실 수 있다는 것을 토대로 행동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하루에 한 번씩 내리면서 점차 늘려가면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우릴 보살피기로 하시면, 우리의 일은 점점 잘 풀리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의 힘으로 자신을 보살폈다면, 상황은 더 나빠지게 될 것입니다.
Ⅲ. 하나님께서 이 번달 쓰시는 지파 : 에브라임 지파의 달
<단락 3> 3. 창 41:52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요셉에게 있어서 애굽은 노예로 팔려간 곳이며, 감옥에서 12년의 세월 동안 깊은 절망과 외로움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고향 집과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으로 밤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셔서 애굽의 기근을 해결하시며, 이스라엘 민족을 살려내는 통로로 사용하셨으며, 애굽 땅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둘째 아들의 이름을 ‘에브라임’으로 지었으며, 그 뜻은 ‘번성하다, 열매를 맺다’ 입니다. 에브라임은 이름처럼 많은 자손들을 낳았고, 훗날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가 됩니다. 세상은 환란과 어려움은 피하는 것이 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 고난의 장소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과 기도가 심겨지는 거름이 되며,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가 수고한 그 땅에서 갑절의 열매 (에브라임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에스겔 37장 22절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에브라임 지파를 열방을 대표하는 지파로 부르셨고, 예슈아를 통하여 유다의 집과 하나되게 할 계획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릴 이스라엘과 하나가 되게 하는 에브라임 지파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한 나라 (하나님 나라)의 한 임금 예슈아 한 분만을 섬길 것입니다.
Ⅳ. 성경에 나오는 이번달 사건들 : 가을절기 (나팔절, 대속죄일, 장막절)
<단락 4> 이번 달 하나님의 절기인 나팔절, 대속죄일, 장막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을 절기는 마지막 종말론적인 예표와 관점들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올해 5787년도에 히브리 숫자 ‘7 (히 : 자인, 검)’은 두 번 나옵니다.
4. 시 149:6 그 입에는 하나님의 찬양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시편 기자는 마지막 때 성도들은 양 날의 검을 소유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양날의 검 (히 : 헤레브 피피요트)에서 히브리어 ’헤레브‘의 뜻은 ’검‘이며, 히브리어 ’피피요트‘의 뜻은 ’입들‘ 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입은 2개가 있다‘ 라고 합니다.
첫 번째 입은 ’우리 육체의 생각을 무찌르는 내적인 입‘ 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말씀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으로 구분 질 수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내 생각과 내 감정과 내 뜻이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뜻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사고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9절에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의 계획 사이에서 계속 머뭇거리고 있다면, 우리의 영적인 성장은 더디게 이루어지며 매일의 삶은 실망과 좌절 가운데 있게 됩니다 (계 18:7-13). 그래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는 결정을 즉시 내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견고한 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속한 자는 내 생각, 내 감정, 내 뜻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말하며 살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이 미리 앞서 행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샬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샬롬은 단순히 문제가 해결되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환경과 상황이라도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샬롬이 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입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외적인 입‘ 입니다. 찬양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친밀함을 누리는 내면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세상과 공중 권세 잡은 자를 향해 선포하는 외적인 입입니다. 시편 150편 6절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말씀합니다. 호흡의 히브리어 ’네샤마‘는 찬양의 히브리어 어원과 뿌리가 같습니다. 즉, 우리는 들숨과 날숨을 쉴 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호흡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찬양은 거대한 기적을 경험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호흡하는 것 자체가 찬양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이 고백을 오늘 하루 하루 하다보면, 우리의 찬양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시편 22편 3절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찬양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이 땅에 거할 보좌를 만드십니다. 세상은 강력한 권력과 돈과 인맥과 지식이라는 칼을 휘두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맞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할 때, 우리의 찬양은 양날의 검이 되어 어둠의 견고한 진을 파쇄할 것입니다. 이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를 드리는 종교적인 칼 (입)은 가지고 있지만 삶으로 살아내는 행함의 칼이 없다면, 우리의 검은 거룩한 능력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훈련받지 않은 입술은 이웃과 자신을 동시에 밸 수 있는 위험한 두 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년도 온유한 자로 훈련받아야 합니다. 온유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들여진 상태를 말합니다. 온유한 자는 자신이 원하는 말과 생각을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부터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어지면 깨어질수록 우리는 더욱 더 예슈아의 형상을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어 질 것입니다.
1) 계 2: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예슈아께서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고 계십니다. 좌우의 날선 검의 헬라어는 '디스토모스'이며, 그 뜻은 '2개의 입' 입니다. 그렇다면, 예슈아께서 2개의 입을 가지고 계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입은 구원의 입니다. 예슈아는 버가모 교회가 회개하여 구원을 얻길 원하십니다. 둘째 입은 심판의 입입니다. 예슈아는 버가모 교회에서 신앙의 타협을 하게 되면, 그 결론은 심판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당시, 전 세계 사람들은 로마의 검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검이라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힘의 상징‘ 이었습니다. 마치 사람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로마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진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세상은 만들어졌고, 지배받고 있습니다. 이 때, 우리에게 힘이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 (히 : 바라크, 복)이 되어야 합니다.
창세기 27장 22절 ’22. ...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40.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 말씀합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칼을 믿고 살아가게 될 것이며,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게 될 것을 예언하게 됩니다. 이 때, 에서가 조심해야 할 것은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야곱처럼 하나님의 말씀 (검)에 의해 살아가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9절에 ‘9. ...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말씀합니다.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장막들에 앉아, 하나님 나라의 장자권에 대한 소중함과 이 땅에 회복되어질 에덴동산의 모습 (새 예루샬라임)에 대해서 ‘쉐마’ 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스라엘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게 되며, 이스라엘 나라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상으로 나타날 것을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계보를 위해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믿음의 조상의 계보를 위해 살아갈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1) 계 2:13 ...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충성된 증인 안디바의 헬라어 이름은 ’안티파스‘이며, 그 뜻은 ’세상의 모든 것을 반대하다‘ 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예슈아를 믿으면, 사업이 잘 되고 세상적으로 유명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되는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예슈아를 믿는 사람은 예슈아를 믿어서 축복받고 천국가려고 받으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예슈아처럼 살겠다고 결정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충성된 증인 안디바는 예슈아의 이름을 버리지 않은 죄로 인해, 끓는 구리 가마솥에 들어가 순교하게 됩니다. 순교란?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아무도 안 알아줄 것 같지만, 예슈아께서 안디바의 이름을 부르셨듯이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불러 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의 칭찬이 중요하겠습니까? 사람의 칭찬입니까? 아니면 예슈아의 칭찬입니까? 이렇게 사는 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예슈아는 버가모 교회에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다른 것도 사랑하는 것 (발람의 가르침)과 예슈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살아도 천국에 갈 수 있다라는 가르침 (니골라의 가르침)을 회개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신앙의 타협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6절에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신앙의 타협을 회개한 자에게 하나님은 감추어진 만나 (영원한 생명)와 흰돌 (예슈아)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번 년도 우리에게 영적 전쟁하라고 양날의 검을 주신 이유는 패배하기 위함이 아니라 승리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세상에 나아가 승리의 전리품을 취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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