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행1 [일본 스케치]-도쿄의 노숙자들
일본 노숙자 돌보는 한국인들
도쿄의 신주쿠 지역은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그 때 나는 세미나 참석차 근처의 저렴한 비즈니스 호텔에 묶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신주쿠 골목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일본의 노숙자들을 돌보는 한국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 자정 무렵 텅빈 어느 신주쿠의 뒷골목 -
마음 놓고 걸어다닐 수 있는 일본의 밤거리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일본만큼 치안이 안전한 나라도 드문 것 같다.
물론 우리 나라도 일본 못지 않게밤거리가 안전한 나라다.
그러나 유럽의 일부 나라에선 심야에 텅빈 이런 골목길을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나는 신쭈쿠의 큰 길에서 벗어나 이렇게 한적한 골목길을 걷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좁은 뒷골목 길가에 한글 아크릴 교회 간판을 발견하게 되었다.
좀처럼 일본에서는 교회 간판을 찾아 보기가 쉽지 않은 터라
호기심이 나서 그 좁은 교회 골목길로 들어가 보았다.
- 2층 개인집에 매달려 있는 작은 교회 간판 -
비좁은 골목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작은 2층집 위에 한글 교회 간판이 이렇게 매달려 있었다.
우리 나라 교회 같이 지붕위에 커다란 철탑과 번쩍이는 십자가도 없었다.
교회 간판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 때 2층 창가에 어떤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 혹시 한국에서 여행 온 분이셔요? 그렇다면 늦은 밤이지만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세요..."
뜻밖이었다.
자정 넘은 늦은 밤이었고,더구나 난 교회 다니는 신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근처 나의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서울 구룡마을에서 목회 활동 하던 분
- 안방에 마련된 예배실로 쓰이는 좁은 공간-
초면에 차 한 잔을 마주 하고 그 분의 일본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이렇게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는 이 작은 교회를 이끌어가는 목사였다.
서울 구룡마을 천막촌에서 목회활동을 하다가 10 여년 전에 일본으로 건너와
낯선 땅에서 어렵게 선교 활동을 한다고 했다.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사는 분이셨다.
그는 겨우 열 평도 안되는 좁은 2층짜리 집을 얻어 살림을 겸해 교회로 쓰고 있었는데,
예배실로 쓰는 안방을 보았더니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현재 신도수는 20명도 안된다고 한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신도를 늘리기가 무척 어렵다고 했다.
- 신주쿠 레인보우 임마누엘 교회 입구 -
조그만 교회 간판만 달았을 뿐이지
여느 작은 개인집 문 앞 모습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일본의 집세는 엄청나다.
이 허름한 작은 집도 월세가 우리 돈으로 400만원이라는데 월세 내기 힘들어서
닥치는대로 허드렛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 밤 목사 아주머니의 딱한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나는
근처에 묶고 있던 비즈니스 호텔에서 나와 이 집으로 짐을 옮겼다.
비즈니스 호텔 숙박료를 이 집에 주고 잠시 머무른다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해서였다.
비좁은데서 며칠 함께 생활하는 게 불편하겠지만 감수하기로 했다.
일본 노숙자들에게 밥퍼주는 한국인들
- 일본인 노숙자들을 상대로 아침 예배 드리는 한국인 -
그런데 나는 뜻밖에도 이국땅에서 자신도 살아가기 어려운 형편인데,
목사 아주머니가 일본 노숙자들을 불러 모아 밥을 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일본의 노숙자들에게 수요일에 아침 식사를 제공 해주고 있었다.
물론 집세도 내기 어려운 형편인데 수십명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주변의 식당마다 찾아 다니며 구걸하듯 남는 부식을 얻어오고,
빵집에 가서는 팔다 남은 빵을 얻어오고 하면서 아침 밥 한끼를 제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매일 한다는 것은 혼자 힘으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수요일 아침에만 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숙자들에게 그냥 밥을 주는 건 아니었다.
- 가운데 서 있는 아주머니 임마누엘 교회 이성숙 목사님 -
처음에는 10 여명 노숙자들에게 밥을 해주기 시작했는데,
소문을 듣고 계속해서 많은 노숙자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새로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한다.
노숙자들에게는 그냥 밥만 제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침 6시까지 잡앞에 노숙자들이 모이면 간단한 예배를 본다.
독교가 뿌리내리기 어려운 곳이지만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아침 밥 한끼 얻어먹기 위해서 그런지
지루할 것같은 예배시간을 잘도 참으며 조용히 듣는 것이었다. 물론 예배는 일본말로 했다.
한국인 아주머니들의 따뜻한 손
- 일본인 노숙자들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모습 -
예배가 끝나면 드디어 그들이 기다리는 식사 시간이 된다.
몇 분 한국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예배 시간
동안에 주방에서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그리고 집 앞 길거리로 식판을 내 놓고 배식을 시작한다.
일본이라고 다 잘사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도 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 아침 밥 한끼 얻어 먹기 위해
어떤 이는 새벽 4시부터 이곳에 나와 서성거리는 이도 있다.
아침 5시경이 되면 대부분 노숙자들은 집앞에 거의 다 모여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하루 아침에 노숙자 신세가 되어
이곳에 오신 분도 있고, 저마다 사연 많은 힘든 인생의 시련을 겪고 있는 분들이 찾아 오는 곳이라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인 노숙자가 찾아 온 적은 한번도 없다고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란히 줄지어 서서 국밥 먹는 노숙자들
- 이른 새벽 하꼬네에서 1시간을 기차로 달려와 도와 주시는 한국인 목사님(오른쪽) -
남을 돕는 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임마누엘 이성숙 목사님 하는 일을 도와 주기 위해
멀리 하꼬네에서 수요일마다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이곳으로 달려와
노숙자들을 위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아침밥을 챙겨 주신다.
일본인 노숙자들은 배식을 받으면 좁은 골목길 사람들 통행에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쪽 벽에 일렬로 나란히, 나란히 줄지어 서서 밥을 먹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런 데서까지 그들의 질서 의식은 살아 있었다.
지난번 일본 동부 쓰나미 대지진 때도 그들의 질서 의식에 세계인들이 모두 놀라지 않았던가!
그들의 질서 의식에는 하이칼라와 블루칼라가 따로 없다.
- 새벽에 멀리 하꼬네에서 달려와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들 -
식사라고 해야 별 것도 없다.
자장면 그릇에다 밥과 국과 짠지 김치를 그릇 하나에 넣어 주고 젓가락 하나 건네주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그들은 젓가락 하나로 정말 맛있게 밥 한 톨 남김없이 깨끗이 잘 먹는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인간의 서러움 중에 가장 서러운 것 중의 하나가
배고픈 서러움이라고 했다던가 ?
배가 고파 눈물나 보지 않는 사람은
그 배고픈 서러움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으리라....
- 일본인 노숙자들이 식사하며 옷을 고른다. -
노숙자들에게 아침 식사만 제공하는 건 아니다.
일주일 동안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얻어 온 중고 옷들을 노숙자들 앞에 내 놓은다.
그러면 노숙자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옷을 골라 가져가 입는다.
빨리 밥을 먹고 나서 누가 먼저 가져 가기 전에 옷을 골라야할 덴데....마음이 급했던 걸까?
어떤 노숙자는 밥을 먹다말고 밥그릇을 든 채 다가선다.
일본인들의 아름다운 청결성
- 옷을 고르는 일본인 노숙자들 -
부지런히 헌옷을 골라본다.
먹은 밥그릇은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을까?
국물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하다. 마치 금방 설겆이 끝낸 그릇처럼 깨끗하기만 하다.
일본인들은 대개 청결해 보인다. 식당에 가 보아도 음식이나 부식을 남기는 경우가 드물다.
물론 워낙 소량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의식구조라고 생각되어진다.
근면, 소박, 절약, 질서, 배려, 청결 정신을.........
일본 노숙자들은 질서도 있었다.
- 옷을 고르는 일본인 노숙자들 -
한 쪽 담벽에서는 아직도 계속해서 한 줄로 쭈욱 서서 질서있게 국밥을 먹고 있고
먼저 밥을 먹은 사람들은 이것 저것 옷들을 골라 본다.
노숙자들에게 매일 식사를 제공해 주면 좋으련만
15명도 안되는 작은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님으로서는
자꾸만 늘어나는 노숙자 식구들 때문에 겁이 난다고 했다.
이런 일을 하고자하니 도와 달라고 일본인 식당에 가서 사정했을 때
처음에는 문전박대를 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이런 선행이 인근에 조금 알려지면서 주변의 일본인 식당에서도
남는 부식거리등을 조금씩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먹었던 그릇도 어쩌면 이렇게 가지런히 놓고 갈까?
- 마지막으로 옷을 고르는 일본인 노숙자 -
일본의 노숙자들은 먹고 난 그릇도 예쁘게 쌓아 놓았다.
모르긴 해도 우리 나라 노숙자 같으면
먹고 난 그릇을 아무렇게나 너저분하게 놔두고 떠나지 않았을까?
노숙자들이 가고 난 뒤 그릇을 세어 보았다.
왼쪽이 41개 오른쪽이 36개 그러니까 오늘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한 노숙자는 77명이라는 증거다.
많은 노숙자들이 옷을 가져가고 이제 몇 가지 옷만 남았다.
마지막으로 옷을 가져가기 위해 골라 보는 일본인 노숙자...
노숙자 과제 체크하는 한국인 목사
- 숙제 검사 받는 노숙자들 -
목사님은 노숙자들에게 특별한 과제를 내주고 있었다.
그들을 상대로 아침 예배를 본 후 성경말씀 과제를 내 주신다.
그리고 다음 주 예배 시간에 과제를 해 온 일부 노숙자들은 목사님에게 다가가 과제 검사를 받는다.
그리고 성실하게 잘 해 온 사람들은 저기 오른 쪽 의자 위에 준비해 놓은 조그만 선물을 받게 된다.
그렇게 하면서 자연스레 그들을 하나님 곁으로 다가서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노숙자들은 밥을 먹고 옷을 챙기고 나면 그냥 떠나가고 있었다.
아직 신앙심으로 다가서는 노숙자들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 진지하게 과제를 체크해 주는 목사님 -
일주일 동안 성경 말씀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목사님과 대화를 주고 받는다.
'.......과제를 잘 해 왔을까? '
가운데 도우미 한명숙 전도사님은 이 분에게 선물을 주려고 들고 서 있다.
그렇다. 모든 교육에는 보상처럼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것은 없다고 했던가...
- 뒷 정리 하는 전도사님 -
수요일....
오늘 하루의 아침 일과는 이렇게 마무리 된다. 아주머니가 노숙자들이 가져가다 남은 옷들을 정리한다.
또 누구에겐가는 필요한 물건이 될 수 있으므로.....
오늘 아침 노숙자 70 여명 중에 여자는 딱 한 분이었다. 바로 저기 빨간 티를 입은 여자다.
얼핏 보니 20대 같기도 하고 30대 초반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노숙자들이 거의 다 돌아가고 난 뒤에야 목사님한데로 다가서는 것이었다.
두어 시간 아침 일을 진행 하느라 목사님도 다리가 아파 그냥 주저 앉는다.
이럴 때는 목사님도 로보캅이 아닌 그냥 인간이었다.
일본 노숙자 70 여명 중에 여자 하나
- 과제를 부여 받는 노숙자 처녀 -
뭐가 챙피해서 그런가?
모두들 다 가고 난 뒤에야 혼자 남아 목사님에게 매달린다. 목사님은 이 여자의 과제를 체크한다.
옆에 앉아 처다보는 여자의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정말 하나님 말씀이 서로 통하는 순간일까?
일주일에 한 번씩 먼 곳에서 새벽같이 달려와 일본 노숙자들을 만나는
목사님의 바램은 무엇일까?
비록 지금 그들 모두는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신앙심으로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굿굿하게 살아가 주기를 바라는 뜻이리라.......
- 뒷정리 하는 사람들 -
이제 아침이 밝아오고 노숙자들이 가버린 텅 빈 골목길에
몇 사람이 남아서 마지막 뒷정리를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오늘의 노숙자와의 만남은 또 다른 날을 기약하게 되는데....
뒷정리까지 해 주고 떠나는 일본 노숙자들
- 뒷정리하는 일본인 노숙자들 -
임마누엘 교회 옆 창고에다 다음 수요일 아침을 위해 의자들을 정리해 놓는다.
의자 정리하는 저 분들도 모두 조금전 그 노숙자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앉았던 의자들을 손수 정리해 놓고 휴지 한 장 남김 없이 청소까지 해놓고 돌아간다.
저기 안쪽에 모자 쓴 사람은 일본인이 아니고 서양 사람이었다.
어쩌다 일본에 와서 노숙자가 된 건지는 모르지만........
이 여자
아침밥을 이곳에서 해결하고
이제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어디로 떠나는 걸까 ?
그리고 점심은 어디서 어떻게 해결하는지.....경제대국 일본의 단면은 슬픈 곳도 있다.
어디로 가야 하나......
뒷모습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 뒷정리 마치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낯선 이방인 노숙자 -
모든 정리를 다 끝내고 맨 마지막까지 남았던 사람들도 돌아간다.
오늘 하루 이들이 가는 곳은 어딜까?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가야할 곳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데......
이 들은 어디로 발길을 옮겨가는 것일까.......?
모든 상황이 끝난 후 나는 방에 들어와 혼자 몰래 울었다. 아니, 그냥 눈물이 났다.
[글&사진} -봄날은 간 다 -
[에필로그] 일본 NHK 방송 연속 기획물 '워킹프어' 한국어판 출간하는데 위 사진 내용을 인용하고싶다는 요청을
받다. KBS2 희망릴레이 프로그램 PD로부터 이 내용을 제작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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