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영락2년(1404), 당시 황제였던 연왕은 북방원정을 단행하여 당시 맹촌일대에 살고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그 후 연왕은 안휘와 섬서성 등에서 사람들을 맹촌으로 이주시켰다. 현재 맹촌사람들의 선조는 그 때 이 땅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이것이 오씨개문팔극권과 깊은 관계가 있다.
영락 2년, 안휘성에서 오씨의 조상, 제 1대인 오작영이 창주로 옮겨왔다. 그는 한족이고, 창주의 운하 관리인이었다. 그리고 시대가 흘러 5대째가 되어 오빈현이라는 사람이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회족이었던 맹촌의 양씨 집안에서 아내를 맞이하였다. 그때까지 오씨는 한족이었지만 이 당시 개종하여 회족이 되었다.
7대 전인 오련지 노사는 오작영으로부터 19대째에 해당한다.
그리고 11대가 되어 오종이 탄생한다. 이 오종이 오씨개문팔극권을 창시하여 팔극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오종은 청나라 강희제 51년(1712)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아 8살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15세 무렵에는 무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날 오종이 밭에서 일하고 있을때 갑자기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 사람이 배가 고파하길래 오종은 식사와 음료를 대접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매우 기뻐하며 오종을 자신에게 무술을 배워도 좋은 사람으로 인정했다. 그때부터 오종은 무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옹정5년(1727), 이때까지 오종은 이 스승 밑에서 상당한 실력을 쌓았지만 자신을 지도해 주는 스승의 이름도, 태생도 전혀 몰랐다. 그래서 오종은 '지금까지 스승으로 모시고 지도를 받았습니다만 저는 스승의 출생도 성장도 전혀 모릅니다. 이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부디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라며 간절히 부탁하였다. 그러자 스승은 '범지나자내오도야' 즉, '나'라는 글자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나의 제자라고 대답하며 오종에게서 떠나려고 했다. 2년뒤, 오종에게 '벽'이라는 이름의 권사가 나타났다. 오종은 그 권사와 시합을 해, 권술과 무기 모두 패배했다. 시합 후 그 권사는 오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스승의 이름은 '나'이다. 오종아, 너에게 팔극의 비결과 육합대창을 전하도록 시켜 여기에 온 것이다' 2년뒤, 벽과 남방으로 여행을 갔다온 오종은 2명의 친구를 만나게 된다. 한 사람은 강대력, 다른 한 사람은 이장 이라는 무술가였다. 강대력은 권법이 뛰어났고, 이장은 도법이 뛰어난 권사였다. 거기에 신창 오종이 더해진 3명은 곧바로 의기투합해 의형제의 인연을 맺었다. 그 3명을 칭송하는 시가 지금도 남아있다. 오종의 소문은 북경까지 퍼져 강희제의 제14황태자였고 무술을 좋아했던 윤 의 궁궐로 오종을 불러 시합을 하게 되었다. 그 시합은 오종이 자신있는 창을 사용하는 것으로 창 앞에 흰 가루를 묻히고 사우는 것이었다. 오종은 윤 에게 상처를 입힐 처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눈썹에 가볍게 맞춰 '당신의 패배입니다'라고 시합을 끝내려고 했지만 윤은 자신이 당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패배를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에는 밀가루에 풀을 섞어 승부를 했다. 이전과 똑같이 눈썹에 가루를 묻어있는 증거가 남자 놀란 윤은 오종에게 입문하여 무술수행을 시작하였다.
그 후 오종은 옹정 40년이 되어 고향인 맹촌으로 돌아와 학생들에게 무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맹촌에서 팔극권을 하게 된 것은 이 때부터라고 한다.
* 개문팔극권의 계보 *
개문팔극권의 계보상에서 제 1대는 '나', 2대는 오종이다. '나'의 명을 받고 오종에게 육합대창을 가르친 벽도 권보상에서는 2대에 해당한다. 3대에는 오종육과 두 명의 오영이 있다. 이 중 한 오영은 오종의 외동딸이고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결혼한 상대는 대월일이라는 산동의 무술가 집안출신이었는데, 이 권사도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월일은 비호, 태종, 태조권 등을 배웠다고 알려져, 오영은 결혼 후 이런 권법을 남편에게 배워, 맹촌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러군데에서 영향을 받아, 현재 맹촌의 팔극권 투로는 상당히 많다. 그리고 같은 3대인 또 다른 오영은 오종의 친자식은 아니었으나 문무가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 기예는 물론, 처음으로 권보를 만들었다. 또, 24명의 제자를 두어 개문팔극권을 현대에 전하기 위한 주춧돌을 세웠다. 그 후 4대째가 되면 장극명, 이대중, 오개, 고명산 등 저명한 권사들이 출현한다.
현재 중국의 동북지방과 장춘지방에서 성행하는 팔극권의 선조는 이 장극명과 이대중이다. 그리고 이 계통에서 황사해, 이서문, 곽전각이 나왔다. 항사해가 5대, 이서문이 6대이다.
오씨개문팔국권의 전승은, 4대 오개로부터 5대인 오회청 선사에게, 그리고 근대 팔극권의 중조라고 할 수 있는 오수봉 노사에게 이어진다.
현재 7대 전인인 오련지 노사는 1947년 맹촌에서 태어났다. 자는 홍학이다. 어려서부터 6대 오수봉, 5대 오회청 노사에게 엄한 훈련을 받았다. 18세부터 지도를 시작하였으며 일본과 이탈리아 등에 많은 학생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