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인 성당의 모체인 능다리 공소
정읍시를 시와 군으로 나눠볼 때 종전 정읍군 내의 유일한 본당이 바로 신태인 성당이다. 신태인 성당의 모체는 1929년 산내면 능교리(일명 능다리)에서 시작되었다. 그 본당이 1934년 태인면 태창리로 옮겼다가 한국 전쟁으로 본당이 소실되자 1954년 신태인 현재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산내면은 해발 250m인 산간 벽지로서 주로 1866년 병인박해 때 탄압을 피해, 순창, 정읍 등 산간 오지로 피신한 교우들이 박해가 끝난 후에 생계를 위해 이주한 곳이다. 그 연대는 정확히 알수 없으나 처음 전주 이씨가 터를 잡고, 이후 파평 윤씨와 강릉 최씨가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능교 공소가 있는 새터(신기)는 산내면 파출소 근처 마을로 정산중학교 바로 밑 산비탈에 공소가 위치하고 있다. 당시 칠보면, 산외면, 감곡면, 태인면 그리고 순창군 쌍치면 등지를 관할하는 본당이었다.
1929년 산내면 능교에 있었던 본당은 50여 평의 목조 성당과 초가 5칸의 사제관과 사무실로 출발하였다. 원래 능교 공소는 정읍 신성리 성당의 소속이었고 초대 신부로 1929년에 김창현(金昌鉉, 1902~1969, 바오로) 신부(1961년 몬시뇰이 됨)가 부임하였다. 당시 정읍군 산내면에는 능교, 새보안(일명 용암), 문수동, 평내, 매대[梅竹], 불당골, 옥천동, 백필리, 사적골, 이화동 용굴, 회문산 등지에 신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산외면과 칠보면에는 원바실[元田], 동막골[盤谷], 청당이[靑丹] 등이 있었다. 지금도 능교, 용암과 문수동 마을에 천주교 교우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은 주로 새터에서는 담배와 벼농사로, 용암은 대추나 감, 옥천동과 문수동, 백필리에서는 한봉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 나갔었다.
현재 25가구 전체가 신자들로 구성된 교우촌이며, 매주 일요일 8시에 공소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또한 산내면에는 1987년 1월 1일자로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임실군 강진면에 편입되었던 가리점[白如里] 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산길로 1km쯤 떨어진 회문산 자락에는 김대건(金大建, 보명 芝植, 1821~1846, 안드레아) 신부의 동생인 김난식(金蘭植, 프란치스코)과 조카(재당질) 김현채(金顯采, 토마스)의 묘가 있다. 이곳은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천주교 교우들이 정착한 곳이었다.
1982년 건립된 기존 공소 건물의 노후화에 따라 마련된 새 능교 공소 경당을 짓고 2008년 11월 15일 능교리 신기 마을 현지에서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 주례 및 지구 사제단 합동으로 능교 공소 신축 경당 축복식을 가졌다. 능교 공소는 현재 칠보 선교 본당 소속이다.
◆ 능교공소 신축 경당 축복
전주교구 칠보 선교본당(주임 이봉석 신부)은 2008년 11월 15일 오전 10시30분 전북 정읍시 산내면 능교리 신기마을 현지에서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 주례 및 지구사제단 합동으로 능교공소(회장 이동섭 마티아) 신축 경당 축복식을 가졌다. 1982년 건립된 기존 공소건물의 노후화에 따라 마련된 새 능교공소 경당은 대지 2128.5㎡에 건물면적 166.98㎡의 적벽돌조 건물로, 경당과 교육관 및 부속 건물로 이뤄져 있다. 외형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상징하는 세 개의 조형물과 종탑이 지붕 위로 높이 솟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1899년 전북 정읍 신성리 본당 산하에 설립된 능교 공소는 병인박해를 피해 순창과 정읍 등 산간오지로 피신했던 교우들이 박해가 끝난 후 모여 신앙공동체를 형성한 곳이다. 1905년 11월 뮈텔주교가 당시 능교 공소를 방문해 신자 337명에게 견진성사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1929년 능교본당으로 승격돼 산내, 산외, 칠보, 태인, 순창, 쌍치 지역을 관할한 후, 1934년 본당이 태인으로 이전할 때까지 현재 신태인본당의 전신 본당으로서 역할을 다했다.
■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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