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자주재배 농부들의 둥지 개마고원 원문보기 글쓴이: 개마고원
씨앗문제를 더 진지하게, 심각하게 들여다봐야할 것 같습니다.
여기 농부님들이야 모두 씨앗을 잘 갈무리하고 계시지만...
씨앗을 지키는 일이 진짜 전쟁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살림이야기>12호 기사입니다.
--------------------------------------------------------------------------------------------------
http://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499
종자 전쟁이 치열하다
글 김현경
전남 함평의 귀농 5년차 농부 박진선 씨는 올해 세 살배기 아들의 돌 반지를 팔기로 했다. 주저앉은 비닐하우스를 다시 세워 올려야 했고, 봄을 코앞에 두고 들어가야 할 돈이 이만저만이 아닌 터였다. 한 돈짜리 금반지 하나를 팔아 손에 쥔 돈은 19만원. 금값이 많이 올라 시세가 좋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박 씨는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돈으로는 그가 주력으로 재배하는 파프리카 종자를 한 줌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금값보다 씨앗값이 더 나가는 시대다. 현재 금의 실거래가는 1g당 5만 원 선. 반면 신품종이라는 파프리카 종자의 경우 1g당 11만 7천원, 토마토도 12만원 정도로 거래되고 있다. 새로운 품종이 나타날 때마다 치솟는 종자 값에 농사철을 앞두고 한숨부터 나오지만 반대로 종자 회사로서는 바닥나지 않는 금광을 채굴하듯이 고부가가치 미래 사업의 승자가 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국제종자연맹(International Seed Federation)에 따르면 2010년 국제 농작물 종자 시장의 규모는 약 420억 달러. 매년 4.3% 정도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바이오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유전자조작작물의 수요가 크게 늘었고, 기존에 자가 채종이나 재래 종자를 이용하던 개발도상국에서도 생산성이 높은 교배종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 상업용 종자 시장의 성장은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적게는 두 배, 많게는 수십 배까지 비싼 종자라 하더라도 병충해가 덜하고 상품성 좋은 작물을 더 많이 수확할 수 있다면 기꺼이 종자 회사로부터 씨앗을 사서 심겠다는 농부가 전 세계에 수억 명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자 사업의 가능성을 미국, 스위스, 프랑스, 일본 등 해외 선진국에서 먼저 발견하고 산업화에 앞장섰다. 이 결과 200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종자 시장은 매출 상위 10대 기업이 70% 정도 시장을 장악하면서 독과점 체제를 굳혀 왔다. 이들 종자 회사들은 품종보호권이라는 특허를 내세워 한 종자에 대해 최소 20년 이상의 배타적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이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종자도 있겠지만 개중에는 멕시코, 중국,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 채집한 재래 종자를 그대로 또는 약간 변형해 품종보호권을 등록한 것도 있다. 그 이전에는 자가 채종을 하거나 다양한 종자 회사의 종자를 골라서 심을 수 있었던 농부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이들 회사에 대가를 지불하고 씨앗을 사다 뿌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초대형 초국적 기업이 세계 시장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첨단 생명공학을 앞세운 유전자조작 종자의 개발과 보급 확산, 발 빠르게 법률 시스템을 활용한 것도 있지만, 국경을 넘나들며 무서운 기세로 다른 종자 회사들을 집어삼키는 인수 합병 전략이 먹혀들어간 탓도 있다. 글로벌 종자 회사들은 이와 같은 무차별 인수 합병을 통해 인수한 기업들이 가지고 있던 유전자원을 손쉽게 얻었고, 동시에 그 나라의 종자 시장도 장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10년 가까이 소요되는 종자 연구·개발 과정을 생략해 비용을 혁신적으로 절감할 수 있으며, 독과점을 통해 기존 상품의 수명을 극대화하고 가격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지위까지 얻게 됐다.
인수 합병에 사활을 걸고 단기간에 최대 규모로 성장한 회사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몬산토다. 농약 제조 회사로 출발한 몬산토는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종자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라운드업'이라는 강력한 제초제를 제조·판매하던 몬산토는 농약 부문에서의 저수익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자신들이 만들어 팔던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유전자조작 콩 종자 '라운드업 레디'를 개발해 미국에서부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종자 판매에서 재미를 본 몬산토는 벌어들인 자본과 기술을 앞세워 수많은 곡물과 과채류의 종자를 개발하거나 획득한 뒤 독점적 특허를 내세워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다른 종자 기업에 대한 인수 합병은 몬산토가 가장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품종특허권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었는데, 1996년부터 2008년까지 몬산토가 인수한 종자 회사는 50개가 넘는다. 채종을 해도 다음 해 발아하지 않는 불임종자를 만드는 기술, '터미네이터' 종자에 대한 특허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도 델타앤파인랜드(Delta & Pine Land)라는 회사를 인수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몬산토의 기업 사냥은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2008년 12월에는 브라질의 사탕수수 회사인 알리파르티시파코(Aly Participacoes)를 사들였고, 2009년 7월에는 미국의 밀 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웨스트브레드(West Bred)를 인수해 종자를 넘어 식품 시장을 지배하는 공룡으로 자라났다.
화학 기업인 듀폰이 종자 시장의 메이저로 등장하게 된 계기도 1999년 당시 세계 최대의 종자 기업이던 파이오니어(Pioneer)를 10조 원에 인수하면서부터다. 그러나 이후 듀폰은 몬산토와는 다르게 전 세계에 분포된 다른 종자 회사에 지분을 투자하거나 상호 간 특허를 공유하는 전략을 통해 판매할 수 있는 종자를 구비해 나가면서 세계 2위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의 일환으로 듀폰은 몬산토를 꾸준히 견제는 동시에 경쟁 관계에 있는 신젠타 등 다른 종자 회사들과는 협력 관계를 만들어 나갔다. 듀폰은 이러한 경영전략으로 상대적으로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전 세계 각지로 진출해 필요한 종자의 이용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이들 글로벌 종자 회사들은 이제 종자뿐만 아니라 카길과 같은 초국적 농산물 재배·유통 회사들과도 연대해 그 세력을 넓히고 세계 각국의 정부를 상대로 거침없는 로비를 벌이고 있다. 위키리크스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한 외교문서에는 2007년 프랑스가 몬산토의 유전자조작 옥수수 수입에 대한 금지 조치를 내리자 부시 행정부의 크레그 스테플튼 당시 주 프랑스 대사가 '프랑스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고 맹렬히 비난하며, '몬산토를 대신해 프랑스에게 고통스런 보복을 감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들 글로벌 종자 기업들이 한국을 그냥 지나쳤을 리 만무하다.
한국은 아시아 종자 시장 선점 위한 전초기지
한국에서 종자 산업은 일제 식민지의 영향이 남아있던 태동기를 지나 1961년 '농산종묘법', 1973년 '종묘관리법'을 거쳐 1997년 뒤늦게 종자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종자법'으로 관련법을 정비하면서 활성화되었다. 김치 문화가 뿌리 깊었던 한국은 무, 배추, 고추 등에 관한 상당한 육종 기술을 갖추고 있던 종자 회사들이 사업을 확장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1997년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면서 당시 매출액 1~3위의 국내 종자 기업들이 세미니스, 노바티스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에 팔려나갔다. IMF는 이들 글로벌 종자 기업이 한국에 진출하면 종자의 품질 향상은 물론, 선진 경영 기법이 도입되어 종자 산업이 더욱 발전할 것이라며 한국 정부로 하여금 이 같은 구조조정에 나서도록 독려했다.
글로벌 종자 회사들이 한국 종자 시장을 탐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종자 시장의 급격한 팽창이 예견되고 있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초기지가 필요했고, 사카다, 다키이 등 굴지의 종자회사들이 버티고 있었던 일본이나 종자 회사들은 많아도 산업화가 이뤄지지 않아 탐낼만한 종자 기술이 거의 없던 중국에 비해 한국의 종자 회사들은 인수하기에 적절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종자 회사들을 인수한 이들 회사 역시 뒤이어 또 다른 공룡 종자 기업에 팔려 나가고 마는데 신젠타가 노바티스를, 몬산토가 세미니스를 인수하고, 일본의 다키이 역시 한국에 진출하는가 하면, 씨덱스를 인수한 바이엘크롭사이언스까지 가세하면서 현재는 5개의 해외 종자 기업들이 한국의 종자 시장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다.
해외 종자 기업이 한국에 직접 투자하며 시장에 진출한 지 13년이 흐른 지금 업계의 평가는 냉정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시장에서 한국산 무 종자는 한때 시장의 70%를 점유할 정도로 경쟁력이 있었지만, 토종 유전자원이 해외로 유출되고, 업체들 사이의 과당경쟁으로 1980년대에 비해 가격이 1/5로 하락하고 말았다고 한다. 또 한국이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일부 채소 종자들은 다국적 기업 진출한 뒤 변별력 없는 기술로 전락해 버렸다고 한다. 또한 이들 글로벌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구조조정과 사업 집중화를 실시하면서 아시아 거점을 중국, 인도로 옮겨가 한국 내에서는 연구개발 예산과 인력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 때문인지, 그나마 남아 있던 한국 종자 회사들이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회복하면서 농우바이오가 2010년 종자 부분에서 국내 매출 318억원을 달성하며 시장 점유율 23%로 1위를 차지했고, 역시 국내 자본인 동부한농이 2위, 미국의 몬산토와 신젠타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해 매출 113조원에 연구 비용만 1조 원을 지출하고 있는 몬산토가 연구 개발비를 고작 수억 원밖에 쓰지 않는 한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쳐졌다기보다는 이미 한국의 유효한 유전자원을 획득한 그들에게는 한국 내의 한정된 시장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기에 생긴 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수년간 계속됐던 구조조정으로 종자 기업 퇴직자들의 창업이 확대되면서 단순히 종자를 생산, 수입, 판매하는 업체까지 포함해 800여 개 이상의 크고 작은 종자 회사가 운영되고 있지만 자체 육종 시설과 연구 능력을 갖춘 회사는 극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종자 회사의 국적이 어떻든 농부들이 매년 지불해야 하는 종자 비용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특히 한국은 2002년 뒤늦게 국제신품종보호연맹(UPOV)에 가입하면서 식물 품종 육성자의 권리를 가맹국 간에 보장한다는 원칙에 따라 2012년부터 거래되는 모든 농작물 종자에 대해서 특허권자에게 로열티를 지불해야한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외국 품종의 점유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로열티 대응에 대해서는 방어적인 입장이다. 2000년에 들어서야 농촌진흥청이 처음으로 사과, 배, 복숭아, 오이 등에서 품종보호권을 설정했을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은 한국의 실정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일본의 딸기 종자인 '육보', '장희' 종자를 1998년 한국에서 등록하고 매년 등록비를 지출해 왔는데, 한국이 UPOV에 가입하자 뒤이어 이들 딸기 종자에 대해 로열티 60억 원을 요구했다.
정당한 단계를 거쳐 연구·개발된 품종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인정해주는 제도는 지켜져야 하겠지만, 사실 엄격한 품종 보호를 앞세운 종자 관리는 농민에게 적잖은 부담이 된다. 그럼에도 수십 년 동안 길러오던 작물에 대해 난데없이 외국 회사들이 특허권을 앞세워 로열티를 청구하는 일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로열티 지불액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우리나라가 UPOV에 가입한 이유도 있지만, 신품종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아지면 특허권자가 로열티를 인상하는 일이 빈번한 까닭도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농부들은 새송이와 팽이버섯의 포자를 이용하는 대가로 매년 46억원 가량을 일본에 지급하고 있고, 참다래도 뉴질랜드의 제스프리라는 회사에 매년 20억원 가량, 장미나 국화와 같은 화훼류도 네덜란드 등의 종자회사에 수십억 원을 지불하고 있는 실정이다. 뿌린 만큼 거두고 그 가운데 일부를 종자로 쓰던 농경사회의 오랜 관습은 시장에 의해 이렇게 통제되고 있다.
첫댓글 이글 전에 저도 어디선가 봤었는데, 아주 잘 정리된 글 입디다. 읽고 나면, 불안한 미래가 스멀거리면서 우리의 등을 타고 오는 듯 해서 두려웠었죠.
아. <살림이야기> 였죠.
아 진정 평화로운 노동의 공동체 생명과 믓사람들이 함께 하는 그런 세상은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