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의 거점이 되는 곳은 괴레메이다. 그래서인지 괴레메는 작은 동네이지만, 게스트하우스와 여행사와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괴레메에서 주변에 산재해 있는 돌들의 향연을 보러 가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은 스쿠터를 빌려 돌아다니는 것이고, 빠른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보려면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린투어는 피죤 밸리, 데린쿠유의 지하도시와 으흘랄라 계곡, 셀리메 사원 등에 갔다가 아바노스의 도자기 공장을 들렀다 오는 투어로, 괴레메에서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든 으흘랄라 계곡이 포함되어 있는 투어라 신청했다.
나는 참 이상하다. 똑같이 몇 시간을 걸어도 혼자서 유유자적 또는 비질비질 땀을 흘리며 길을 헤매는 편이 훨씬 덜 피곤하다. 이렇게 가이드를 쫓아다니며 걸어다니다 보면 얼마 안가 몹시 피곤해진다.
그래도 처음 데린쿠유의 지하도시에서는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열심히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으흘랄라 계곡에 다다르자, 몹시 피곤해지고 말았다. 꼼짝도 하기 싫었다. 사람들이 가이드를 쫓아 계곡 아래쪽 계단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지만, 나는 조금 있다가 다시 올라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벤치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계곡 아래쪽을 내려다 보았지만, 구경하는 사람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이곳에선 대중교통으로 괴레메까지 돌아갈 수도 없는데, 나는 갑자기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으흘랄라 계곡의 티켓 매표소에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나는 가이드의 이름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티켓 매표소의 직원은 그들이 흐를랄라 계곡의 바위 속 교회들을 둘러보고 한 시간 가량을 걸어서 어느 마을에 도착한 후, 그곳에서 점심을 먹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곳으로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했다. 가이드 말을 안듣고 단독으로 행동했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나는 계곡 아래로 뻗어있는 긴 계단을 내려가 으흘랄라 계곡의 풍광을 바라보며 정신없이 걷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뒤처졌지만 그들은 교회 등을 구경하느라 시간을 보냈을테니 부지런히 뒤쫓으면 점심을 먹고 있을 때쯤 마을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발걸음이 부산해졌다. 에이, 다음부턴 이런 투어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뒤따랐다.
마을로 향하는 좁은 오솔길은 시냇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지고, 병풍처럼 바위들로 에워싸여 있었다. 사람들을 뒤쫓느라 한참을 걷고 뛰고를 반복했다. 8월의 햇살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가 어디선가 나타날 것만 같은 한낮의 풍경이었다.
30분쯤 그렇게 부지런히 사람들의 자취를 쫓아 걸었을 때, 속도가 느려 무리에서 뒤쳐진 몇 명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나와 같은 미니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마을에 도착해 야외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같은 숙소에 머무르고 있던 한국 아가씨 둘이 아는체를 하며 물었다.
"언니, 어디있다 이제 오신거예요?"
"조금 헤맸어요."
그린투어를 하다가 미아가 될 뻔 했지만, 혼자 걷던 으흘랄라 계곡은 너무나 좋았다. 역시 여행은 혼자 걸어야 제 맛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첫댓글 으흐흐랄라!!^^
ㅎㅎㅎㅎ 가이드투어 체질이 아니신거네요. 저도 무지 싫은데 님처럼 홀로헤쳐나갈 용기도없고 공부도 거의 안하고 가서 가이드의 설명없인 완전 수박겉핥기라.....에고.. 암튼 부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