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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군
- 위치 : 동경 136도 55분 20초 , 북위 : 37도 33분 01초
- 면적 : 73.15km2
- 인구 : 약 10000명 (3700여가구)
행정 구역 : 울릉읍, 서면, 북면 (24개리)
▶연혁
- 512년 신라 진흥왕 13년 이사부 우산국 징벌
- 930년 고려 태조13년 우릉도
- 1416년 조선 태종16년 무릉도
- 1882년 조선 고종 19년 개칙령 반포 (도장제 실시)
- 1900 조선 광무 4년 강원도 울릉군(군제 실시)
- 1903 조선 광무 7년 군청 소재지 이전 (태하->도동)
- 1906년 남면의 5개동과 북면의 2개동을 병합 서면 설치
- 1907년 조선 융희원년 경상남도 관할
- 1914년 경상남도에서 경상북도 관할
- 1915년 울릉도 개칭 (도사제실시)
- 1917.10.1 면제 실시
- 1949년 울릉군 개칭(군제 실시)
- 1952.4.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른 구제 폐지
- 1960.8 서면 태하동을 1.2동으로 분할
- 1968.10 북면의 나리통을 나리동으로 개칭
- 1971.8 서면 태하 출장소 개설 태하 1,2동 관활
- 1979.5.1 남면을 울릉읍으로 승격
▶특색
- 울릉군화 : 동백꽃
- 울릉군목 : 후박나무
- 울릉군조 : 흑비둘기
- 3무 : 도둑 , 거지 , 뱀
- 5다 : 향나무 , 바람 , 미인 , 물 , 돌
▶자연
- 울릉도는 지질적으로 제 3기에서 4기초에 걸쳐 동해의 해중에 솟아난 거대한 화산의 정상부에 해당하며 현부암,조산암등의 화산암으로 되어 있다. 해안선이 단조롭고, 섬의 중앙부에는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이 솟아 있다. 울릉도는평지가 거의 없고 동서 길이 10Km, 남북거리 9.5Km , 해안선 56.5Km에 이르고 연평균 기온 12도의 온화한 날씨를 이룬다. 650여종의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39종의 특산식물과 6종의 천연기념물이 있다.
▶산업
울릉도 경지는 전체면적의 15%에 불과 , 그것도 산전이 대부분이므로 옥수수, 감자, 등을 많이 재배하였으나 , 지금은 산채(미역취,부지깽이 ),그리고 약초(천궁,더덕,작약,..)이 농업의 주산물, 주민의 절반가량 어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점차 관광산업도 그 비중을 높여 가고 있다.
☆울릉도의 관광명소☆
도동 중심지에서 300m 떨어진 산기슭에 위치한 곳으로
이곳은 토류탄산철천(土類炭酸鐵泉)의 농도 짙은 약수가 나오고 있으며 주위의 우거진
숲은 아늑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휴식처로 지방주민은 물론 곤광객이면 누구나
한 번씩은 찾아보는 곳이다. 약수의 맛은 철분이 많이 들어 있어 쇠 냄새가 난다.
자주 마시면 위장병을 낫게 하는 물이라고 하며, 나병환자가 몇달동안 목욕을 하여
완치되었다고도 한다.
입구에는 왜구로부터 울릉도를 지키고도 못된 관리들로부터 홀대를 받았던 안용복
장군의 충혼비가 1964년 가을에 건립되어 모셔져 있으며, 가까운 곳에 향토사료관이
있어 울릉도 개척전후의 유물 15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니 울릉도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저동에서 성인봉에 오르는 1.5km에 위치한 폭포로서 원폭의 높이는 25m이며 우거진 거목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의 주위는 여름에도 추위를 느끼게 하고 있다. 1일 수량(水量)은 약 26,000톤이며 이중 1,200톤의 물을 끌어들여 울릉읍 관내 유일한 상수도 식수원으로 사용되고 있어 폭포 아래로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특히 입구 길목에는 풍혈(風穴), 일명 천연에어콘이라는 바람구멍이 있는데 한여름에는 4도 정도 차가운 바람이 나와서 음료수나 참외, 수박 등을 넣어서 차게하여 먹기도 하고 음식물을 넣어두면 2~3일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냉장고이다. 또한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며 일기예보 구실도 하고 있다. 이굴에서 바람이 세게 불면 근해에 파도가 높고 바람이 거칠다고 한다. 이런굴이 천부동에도 한개가 있으나 관광개발용으로 공사를 하던중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렸으니 자연은 함부로 뜯어 고칠게 아니다.
이곳에는 현재 산림욕장이 만들어져 있어 무더운 여름철에 맑고 시원한 숲속에서 피로를 풀기에 적합하며 시원한 바람 속에 파전과 막걸리를 곁들일 수 있다.
죽도는 울릉도의 부속 도서중에서 가장 큰 섬으로서 울릉읍 저동항에서 섬목 쪽으로 가다보면 4km 해상에 있는데 총면적 62,880평에 3세대가 살고 있으며 농경지는 15,900평이다. 해발 116m의 깎아 지른 듯한 절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며 서쪽 계단을 제외하고는 어느 한곳도 발붙일 곳이 없는 천연의 요새다.
일단 섬에 올라가면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땅은
비옥하여 옥수수, 감자, 마늘, 더덕 등 농작물이 잘 자라며 이곳의 수박과 참외는
그 맛이 달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3세대의 힘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일부만을
농토로 하고 나머지는 10여마리의 한우를 키우기 위한 초지로 사용하고 있다.
소는 송아지 때 사람의 등에 업혀 올라가서 다시 내려올 땐 죽어서야 내려올 수 있는
곳이며 원산인 섬바디(돼지풀)로써 비육되고 있어 그 고기맛이 일품이다.
이 섬의 결점은 빗물(천수)을 받아 정수시설을 거쳐 지하에 저장하여 사용하고 있는
점이나 최근 산 전체를 집수원으로 하는 상수시설을 하고 있어 이 시설이 완공되면
주민은 물론 관광객에 대하여도 식수를 공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옛 날엔 이곳에 환자가 발생하면 횃불로 신호하여
육지에 알렸지만 지금은 무선전화 시설이 설치되어 전국 어디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울릉군에서는 이곳을 특수 관광명소로 꾸미기 위하여 헬기장을 구축중에 있으며,
민자를 유치하여 향토 음식점, 전통식품점, 청소년 야영장 등을 유치할 계획으로
있어 머지 않아 한번 가보지 않을 수 없는 곳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울릉도의 주산인 성인봉은 높이가 해발 983.6m이며
북서쪽 바로 밑으로 나리분지를 끼고 있으며, 주위에 산능선을 이루면서 서면과 북면
경계선상에 미륵산(해발900.8m), 서달령, 초봉(해발 608.2m로 태하동과 현포동 경계)을
거느리고, 남면과 서면 경계선상에는 가두봉(해발 104.3m로 사동과 통구미 경계)을
거느리고 있다.
성인봉의 정상에 서면 가을철 청명한 날에는 서쪽을 향해 수평선을 건너다 보았을
때 강원도의 오대산이 은은하게 보이고, 동남쪽을 향해 수평선을 건너다보면 울릉도의
속도인 독도가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운좋고 눈좋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높은 산이라 시시각각으로 안개가 흩날려 깨끗한 시야를 확보하기가 무척 어려운
편이다.
성인봉을 오르는 길은 울릉도의 모든 동네들로 다 이어져 있지만 다소 수월하게 오르는
길이 도동이나 저동에서 오르는 길로서 약 3시간 (5.5㎞)정도기 소요된다. 그러나
성인봉에서 나리분지가 있는 쪽으로 나있는 험한 비탈길을 내려와 보아야만 울릉도의
원시림을 실감할 수 있다.
가을철이면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을 오르는 길목 구석구석에 산머루,다래, 마가목나무,
너도밤나무 등의 산열매들을 맛볼 수 있다.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는 성인봉 북편
등산로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백리향, 울릉국화등의 천연기념물과 너와집.투막집등
문화재를 동시에 관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백두산 천지를 닮은 남한 유일의 칼데라
화산 지형을 살펴볼 수 있다.
나리분지 마을에서 추산 쪽으로 150미터 정도를 가다보면 청소년 야영장 및 체육시설,
모험시설등이 설치되어 있어서, 1994년 3월 1일 이후 이용할수 있게 되었다. 총 면적은:
235,051 평방미터이며 약 100동의 텐트를 동시에 설치할 수 있다.
북면 선창(섬목) 앞에 약 100m 해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죽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이 섬의 뒷편 절벽에는 해식작용에 의해 수면에 잠긴 2개의
거대한 동굴이 뚫려 있어 주상절리 구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보여준다. 죽도와는
달리 섬 위로 올라가기가 수월치 않아서 한때는 이곳에 농사도 짓고 염소와 토끼도
키울 생각으로 간이 케이블 카를 설치한 적도 있었으나 현재는 철거되고 없다. 울릉도
개척 당시 많이 번식하고 있던 깍새가 모여 살았다고 하여 "깍새섬" 또는
"까낏섬"이라고 부른다.
섬 뒷편에 해식작용에 의하여 생긴 커다란 해상 동굴 2개가 나란히 있는데 유람선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다.
북면 선창(섬목) 앞 200m 해상에 삼선암이 있다.
2개의 바위는 형제처럼 서있고 그 사이로 소형 선박이 지나다닐 수도 있으며 1개의
바위는 조금 떨어져 있는데 끝이 가위모양이라 가시게 바위라고도 한다. 달리 보면
이 바위는 경주에서 발견된 신라금관과도 많이 닮아 있다.
이 3개의 바위들을 합해 삼선암이라 부르는데 선녀들이 멱감으로 내려 왔다가 울릉도의
경치에 반해 시간을 어겨 못 올라가고 바위로 변해버린 것이라는 이야기가 보태어져
있다.
북면 죽암 앞바다에 있는 큰 바위이다. 딴바위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가 있는데 본인이 잘 찾아보지 못하였다.
용출소(수원지) - 송곳산
나리분지 마을에서 추산 쪽으로 약 1km 남짓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 꼴짜기에 용출소가 나타난다. 울릉도는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데 나리분지와
성인봉에 내린 눈들은 녹아서 지하수가 된다음 이곳 용출소의 틈새로 솟아 오른다.
물이 솟아오르는 틈새는 마치 경주 포석정의 물길처럼도랑이 파여 있는데 너무나
차갑고 맑으며 푸른 빛이 감돌기 때문에 으시시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곳에는
또 아주 큰 지네가 살고 있다는 전설이 있어 그 무서움을 더한다. 물의 온도는 약
4도 정도이며 한여름 오후에 그곳에 있으면 수면에 증기가 피어오름을 볼 수 있다.
본인은 이곳에 으시시한 추억을 갖고 있다. 1982년 여름에 이곳은 이미 댐 공사를
하여 둑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육지서 놀러온 친구들과 그 둑에서 점심 식사로 밥을
해먹으려고 가스버너를 켜다가 실수로 버너를 용출소 물속으로 빠뜨려서 벼라별 수를
쓰면서 끌어올리려고 애를 썼으나 역부족..
그래서 그 차가운 물속에 뛰어들어 잠수를 하여 그것을 건져 내었는데 수심이 수미터이고
본인은 시력도 안좋아서 여러번의 시도를 한끝에 한여름에 얼어 죽는 줄 알았다.
건져내고 나서 생각해보니 바로 근방에 발전소로 흘러들어가는 커다란 파이프 라인이
물을 빨아들이고 있었는데 그 뒤로 늘 아찔한 생각이 났다.
같이 온 중학생 녀석이 뛰어드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들어갔으나 평소 늘 무섭다는
생각에 - 더구나 지네 이야기도 있고 - 안 들어가려고 했는데..
만약 이곳에 가서 용출소를 구경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곳의 차가운 물을 보고 그곳에
어떤 인간 둘이 죽을 줄 모르고 가스버너 건진다고 목숨내건 상상을 해보시길..
이곳의 물은 예전에 비해서는 수량이 좀 줄었다 한다. 예전에는 아주 큰 바위덩이도
도랑쪽에 집어 던지면 솟구쳐 오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물의 양이 많아서
오래전부터 이 물을 바닷가로 뽑아낸 다음 낙차를 이용해 수력발전을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로 울릉도 전역의 전력을 해결했으나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여 현재 저동에 내연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다.
이곳의 아랫동네에는 논이 많이 있다. 그런데 물이 워낙 차갑게 때문에 바로 논에
대지를 못하고 저수지에서 데운 다음 논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지금은 논농사가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에 거의 약초 재배로 돌아 섰지만 여전히 물이 많이 필요하여 약초
농사에도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성인봉에서 하산하면서 이곳에 들리면 무척 시원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북면 현포 2동(평리) 앞의 1km 해상에 있고 바위의
구명이 마치 터널처럼 뚫려져 있어 공암이라고 하며 그 사이로 소형 선박이 지나다니기도
한다. 또한 코끼리가 코를 물속에 담그고 있는 것처럼 보여 코끼리바위라고도 하는데
실제로 동네사람들은 주로 "구멍섬"이라 부르고 있으며, 꼬끼리바위는
평리에서 천부로 가는 사이에 송곳산을 지나다보면 꼬끼리가 코를 바닷가에 늘어뜨린
형상을 한 관문을 지나게 되는데 이것을 꼬끼리바위라 부른다. 이 바위는 남양동의
비파산(국수산)과 마찬가지로 현무암의 주상절리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장작개비를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하여 자연의 신비를 만끽하게 된다.
전해오는 전설로는 구멍바위가 옛날에는 현포 앞바다에 있었다고 한다. 현포에는
대대로 살아오는 집안에 기운이 센 노인이 있었는데 큰바위가 자기 마을앞에 가리어
있는 것이 매우 못마땅하여 하루는 "저 바위를 어디에 가져다 버려야지"하고
배를 저어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바위가 하도 커서 밧줄로 묶었더니 잘 묶어지지도
않고 배를 저었으나 따라오지도 않는데 화가 난 노인은 내 힘을 업신여긴다 싶어
다른 바위들을 들어 그 바위를 향해 던졌다. 그바람에 바위는 구멍이 뚫렸으며 구멍이
뚫리자 바위는 배에 묶여서 따라오기 시작했다. 바위가 천부 앞바다까지 왔을 때
바위가 암초에 걸려 묶은 밧줄이 끊어지면서 풍덩하는 소리와 함께, 배도, 노인도
순식간에 물속으로 사라졌다. 다만 암초에 걸린 바위만이 지금 이자리에 남게 되었는데
천부에서는 밤사이에 큰 바위가 생겼으니 모두 놀라 이제 곧 천지개벽이 올 것이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이때부터 구멍바위 또는 공암(孔岩)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서면 태하와 북면 현포 사이의 경계에 바람을 기다린다는
이름의 대풍령이 있다. 이곳은 향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이곳 사람들은 "상나무재"라고
부른다. 대풍령은 사실 이 재의 해안쪽 절벽을 가리킨다.
절벽 위의 평지에는 자가발전을 하는 유인등대가 있어 뱃길을 안내하고 있으며 절벽
아래로 수심 수백미터의 바다가 바로 이어져 있다.
이곳의 절벽에는 홍합이 많이 자라고 있으며 군데군데 해식작용에 의한 해안동굴들이
있다.
대풍령을 바라보면 절벽 꼭대기의 군데군데에 구멍이 나 있는데 그 크기는 수십미터 이내의 큰 구멍이지만 통큰 옛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를 들어보면 옛날부터 배가 많이 드나들었는데 이 배를 메어두기 위해 이곳에 구멍을 뚫어 배를 메었고 또 돛단배이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야 하고 그 바람을 기다린다고 해서 대풍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유래는 아마 태하동에 있는 성하신당의 전설과 관련지어 볼 수 있다. 조선 태종때 이곳에 들른 안무사 김인우가 사람들을 실고 출항하려 할때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아서 출발을 못하고 있었는데 꿈에 산신령이 일러준대로 하니까 순풍이 불어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대풍령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
또 하나의 이야기는 초봉산 너머 진등대라는 곳에 큰 수직동굴이 있는데 여기에 빠진 염소가 대풍령 바닷가에 나타났다고 하여 아마 땅속으로 수km의 지하동굴이 있지 않을까 한다. 아무도 그 무서운 동굴 아래로 내려가본 사람이 없어 소문으로만 그치고 있다.
서면 태하에서 동남쪽으로 가파른 산길을 따라 남양 방면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나타난다. 이 길은 울릉도에서 가장 깊은 산중의 멋을 느끼게 하며 마치 전설의 고향처럼 으시시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걸어서 울릉도를 여행할 때는 꼭 이곳을 걸어보는 것이 좋다.
울릉군 서면 태하에서 학포에 이르는 해안은 기이한 바위절벽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는 위치에 따라 여러가지 모습을 보인다하여 만물상이라 한다.
서면 학포 해안에 있으며 아기곰이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남양에서 학포로 가는 사이에 있는 해안으로서 절벽 아래에 고운 자갈들이 깔려 있고 물이 몹시 맑다.
서면 남양동은 신라장군 이사부와 관련된 전설로
바위들의 이름을 남기고 있다.
바닷가에 위치한 사자암은 이사부가 썼던 목사자가 번개불에 맞으면서 돌로 화한
것이라 하고, 비파산은 당시의 우산국 왕이었던 우해왕이 타던 비파가 변한 것이며,
해안의 투구봉은 사자암 옆에 있는데 왕이 항복하면서 벗어놓은 투구라고 전한다.
한편 산중에는 나팔봉이라 하여 싸움을 독려하던 나팔을 생각나게 한다.
사자암은 원래 꼬리부분에 구멍이 뚫어진 형태였는데 파도로 잘려나갔다. 비파산은
남서과 남양을 가르는 경계를 이룬다. 주상절리가 발달하여 비파 또는 국수 가락처럼
보인다. 지방사람들은 국수산이라고 부른다.
서면 통구미 마을 앞바다에 거북이가 기어올라오다
만 형상으로 있다.
이 마을 옆의 해안 절벽에는 가잿굴이라는 해상 굴이 있다. 가재는 바다 표범을 말하는데
물개와 비슷한 종류이다. 울릉도,독도 근해에 요즈음도 간혹 얼굴을 내밀지만 예전에는
아주 많았다고 한다. 역시 몸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사라진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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