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다송(東茶頌)은 다신전을 초록한지 약 10년 후에 정조의 사위인 해거도인 (海居道人) 홍현주(洪顯周)가 진도 부사인 변지화(卞持和)로 하여금 초의선사에게 茶道에 대해 물어와 그 청을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동다송은 초의선사가 스스로 "고인소전지의근술(古人所傳之意謹述)" 이라고 말씀했듯이 당시 유행했던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송(頌)마다 고인(故人)들의 여러 문헌과 시구(詩句)를 인용하고 주(註)를 달고 있습니다.
제 1 송 南國嘉樹
后皇 嘉樹配橘德하니 受命不遷生南國이라
密葉鬪霰貫冬靑하고 素花濯霜發秋榮이로다
후황이 아름다운 나무를 귤의 덕과 짝지으시니
받은 명 변치 않아 남녘 땅에 자란다네
촘촘한 잎은 눈속에서도 겨우내 푸르고
하얀 꽃은 서리 맞아 가을에 꽃피우네
제 2 송 琴禽舌
姑射仙子粉肌潔하고 閻浮檀金芳心結이라 沆瀣 淸碧玉條요 朝霞含潤翠禽舌이로다
고야선인의 뽀얀 살결마냥 깨끗하고 염부단금 황금꽃술 아름답게 맺혔네 맑은 이슬 흠뻑 젖어 푸른 가지 벽옥같고 아침 안개 촉촉히 젖어 푸른 싹 새혀같네
차나무는 과로(瓜蘆)와 같고 잎은 치자(梔子)와 같으며 꽃은 흰 장미와 같고 꽃술은 황금 빛과 같다. 가을에 꽃 피니 맑은 향기가 은연하다고 한다. 이태백이 말하기를 "형주(호북성 강능현) 옥천사의 맑은 시냇가의 모든 산에 茶나무(茗艸)가 온 산에 널리 나 있는데 가지와 잎이 푸른 옥가지(碧玉條)와 같 다. 옥천사 진공(眞公)스님이 항상 그것을 따다가 茶로 마셨다."고 한다.
제 3 송 天人俱愛
天仙人鬼俱愛重하니 知爾爲物誠奇絶이라 炎帝會嘗載食經하고 醍 甘露舊傳名이로다
하늘, 신선, 사람, 귀신 모두 아껴 사랑하니
너의 됨됨이 참으로 기이하고 절묘하구나
옛날 염제신농씨가 너를 식경에 기재했고
제호라 감로라 예로부터 그 이름 전해왔네
염제(炎帝:神農)의 ≪식경(食經)≫에 이르기를 "茶를 오래 복용하면 사람에게 힘이 생기고 뜻(정신)이 빛난다."고 하였다.
왕자상(王子尙)이 팔공산(八公山)에 거처하는 운재도인(雲齋道人)을 예방하였 을 때, 도인이 茶를 끓여 주자 왕자상이 茶를 음미하고서 "이것이 바로 감로(甘 露)입니다."라고 하였다.
나대경(羅大經)의 '약탕시( 湯詩)'에
"솔바람 회(檜)나무비 불어 내릴 때
차단지(銅甁) 급히 당겨 죽로에서 물려 놓고
물소리 모두 잠잠해지길 기다린 뒤에
한사발 춘설차에 제호보다 더 좋구나."라고 하였다.
제 4 송 解醒少眼
解醒少眼證周聖하고 脫粟飮菜聞齊孀이라
虞洪薦 乞丹邱하고 毛仙示叢引秦精이로다
술깨우고 잠줄인다 주공이 증언했고
거친 밥 차 한잔, 제의 안영 그랬다네
우홍은 제물올려 단구자의 차를 얻고
털긴신선은 차밭을 보이려고 진영을 이끌었네
이아(爾雅)》에는 "가( )는 쓴 차〔苦茶〕"라 하였고, 《광아(廣雅)》에서 는 "형주(荊州)와 파주(巴州)지방에서는 그 잎을 채취해서 마시면 술이 깨고 잠 이 적어진다"라고 하였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안영(晏孀)이 제 경공(齊景公)때 재상을 지내는 동 안 '껍질만을 벗긴 좁쌀로 만든 거친 밥〔脫粟飯〕'에 구운 고기 세 꼬치, 계란 다섯 개, 茶와 채소만을 먹었다"고 하였다.
《신이기(神異記)》에 이르기를, "여요(餘姚:浙江省 餘姚縣)땅 우홍(虞洪:茶 人)이 산에 들어가 茶를 따다가 우연히 도사를 만났는데, 세 마리의 푸른(靑) 소 를 이끌고 있었다. 우홍을 데리고 폭포산(瀑布山)에 다달아 말하기를, '나는 단 구자(丹丘子)라 하네. 듣자니 그대가 茶를 애음(愛飮)한다 하기에 항상 만나보 고 싶었네. 이 산중에 굵다란 茶나무(大茗)가 있으니 그대에게 주려고 하네. 부디 훗날 남은 茶가 있으면 나에게도 보내주기를 바라네'라고 하였다. 이로 인 하여 제사를 올린 후 산에 들어가면 항상 좋은 茶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선성(宣城:安徽省 宣城縣)사람 진정(秦精:茶人)이 무창(武昌) 산 속에서 茶를 따다가 머리털이 긴 한 신선을 만났는데, 머리털의 길이가 한 발쯤 되어 보였다.
신선이 진정을 이끌고 산 아래로 내려와 떨기진 茶나무를 가리켜 주고 떠났다가 얼마 후 다시 돌아와 주머니 속에서 귤을 꺼내어 진정에게 전해 주자, 진정이 놀 라서 茶를 등에 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제 5 송 開皇醫腦
潛壤不惜謝萬錢하고 鼎食獨稱冠六情이라 開皇醫腦傳異事하고 雷笑茸香取次生이로다
지하에 묻힌 혼령도 만금의 보답 안 아꼈고 벼슬아치 대감들도 모든 맛의 으뜸이라 하였네
수 문제 뇌골통증 고쳤다는 신기한 일 전해오고 뇌소차 용향차 차례차례 생겨났네
《이원(異苑)》에 섬현(剡縣) 진무(陳務)의 아내가 두 아들을 데리고 과부가 되었는데 茶를 즐겨 마셔왔다. 마침 집의 정원에 오래된 무덤이 하나 있어 茶를 마실 때마다 먼저 무덤에 茶를 올리곤 하였다. 부인의 두 아들이 이것을 마땅찮 게 여기어 "그까짓 다 허물어진 고총(古塚) 따위가 무엇을 안다고 헛수고를 하시 는지 모르겠네" 하고서 묘를 파헤쳐 버리려고 하였는데 어머니가 한사코 이를 만 류하였다. 그날 밤, 꿈에 한 사람이 나타나 "내가 이 고총(古塚)에 누운 지 3백 년이 넘는데, 얼마 전 그대의 아드님이 내 무덤을 파 버리고자 했을 때 부인께서 보호해 주었을 뿐 아니라, 도리어 茶까지 주시니 땅 속에 묻혀 있는 썩은 뼈일 망정 어찌 예상(峠桑)의 보은(報恩)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 다 음날 새벽 일어나보니 정원에 엽전 10만 냥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장맹양(張孟陽)의 '등루시(登樓詩)'에, "무시로 먹는 수많은 음식 중엔 온갖 요리 갖은 맛이 고루고루 있지만 아름다운 차 향기 육정(六情)에 으뜸이라 넘쳐 흐르는 그 맛은 누리에 가득하네"라고 하였다.
수 문제(隋 文帝)가 아직 임금이 되기 전에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신이 나타나 그의 뇌골을 바꾸어 버렸는데 그 후로 줄곧 두통을 앓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을 만났는데, 스님이 이르기를, "산중의 명초(茗草)로 치유할 수 있으니, 달여 마시면 효험이 있다."고 하였다. 이를 계기로 천하의 모든 사람들 이 茶를 처음으로 마실 줄 알게 되었다.
당나라 각림사(覺林寺)의 스님, 지숭(志崇)이 세 종류로 다를 만들었다. 경뢰 소(驚雷笑)는 자기가 애용하고 훤초대(萱草帶)는 부처님께 공양하고 시용향(柴茸 香)은 손님을 접대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