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 컸구나’ 모 광고에서 장성한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흐뭇한 미
소를 짓는 엄마가 건네는 한 마디다.
런던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한 무대에 오른 장영주를 보며 객석에서는 이
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통통한 볼살이 남아 있긴 했지만 자기 키의
반이 넘는 바이올린을 들고 나왔을 때의 앳된 얼굴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었다.
장영주는 영재 연주자들이 대성하려면 사춘기를 잘 넘겨야 한다는 충고
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연주 실력을 떠나서 꼬마가 파가니니
를 연주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목을 집중시키기에는 충분했고 장영주
역시 “데뷔 2~3년 동안이 가장 쉬웠다”고 이야기한다.
신동 탄생을 지켜보는 음악 애호가들이나 선배 연주자들은 장영주가 한
때 화제에 올랐다 금새 사라져버리는 깜짝 스타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었
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기우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공연을 성
공적으로 마쳤고 이번 내한에서 지휘를 맡은 쿠르트 마주어는 50살이나
어린 연주자에게 “최고의 연주 파트너”라는 찬사를 보냈다.
하버드 입학 미루고 당분간 연주에 매진
장영주가 보여주는 음악에의 열정은 최근 더욱 뜨거워졌다. 곡에 대한
충분한 해석을 하기 전까지는 대중 앞에 선보이지 않겠다며 아껴두었던
대곡들을 풀어 놓기 시작한 것. 열살 때 배웠던 브람스 협주곡은 지난해
무대에서 연주했고 베토벤 협주곡과 베르크 협주곡은 내년에 공개할 계
획이다.
실내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최근의 변화. 지난 4월, 베를린필하모
닉 단원들과 차이코프스키 ‘플로렌스의 추억’, 드보르작의 ‘현악6중
주’를 녹음했다.
“실내악 연주에서 저는 주인공이 아니었어요. 단지 6분의 1의 몫일 뿐
이었죠.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연주자들은 나이가 훨씬 많았지만 저를
평등하게 대우해주셨어요. 이번에 녹음한 음반은 내년 봄에 나오게 되고
베를린필하모닉 멤버들과는 3~4년 뒤에 다른 레퍼토리를 할 예정입니다.
”
실내악에 대한 매력에 한껏 빠져 있는 장영주는 자신만의 현악 사중주단
을 갖고 싶다는 바람도 밝힌다.
지난 6월에는 3장의 음반을 한꺼번에 녹음해 왕성한 의욕을 보였다. 그
중 하나가 테너 도밍고가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음반 ‘불
과 얼음’. 사라사테의 ‘칼멘 환상곡’과 ‘지고이네르바이젠’, 라벨
의 ‘치간느’, 드보르작의 ‘로망스’, ‘G선상의 아리아’ 등이 수록
됐다.
“이번 공동작업은 지금까지 제 인생에 알고 있었던 음악을 새롭고 특별
한 방법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제 생각에 음반을 듣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굉장한 무언가를 전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밍고는 모
든 종류의 음악을 그 근원, 즉 인간의 목소리로 거슬러 올라가 관련 맺
게 만드는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페라 무대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
는 진심으로 가슴 속에서 이런 음악을 이끌어 내는 열정과 스타일을 가
지고 있습니다.”
무대에서 만나는 선배 연주자들이나 세계적인 지휘자들과의 작업을 모두
배움의 과정이라고 여긴다는 그녀. “이제는 신동이라고 불러주지 않아
감사하다”는 말은 ‘나이나 국적, 이런 선입견을 떠나 음악인으로서의
장영주를 평가하고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는지 지켜봐달라’는 뜻일 것이
다.
일년에 100일이 넘는 연주여행 스케줄 때문에 하버드대학 입학을 미루는
등 음악적 숙성에 집착하는 장영주. 사춘기를 잘 넘기고 오르막길만을
달려와 거장의 대열에 선 장영주에게 ‘미완’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
은 이유는 그녀가 선사한 현재 무대에 대한 만족보다 앞으로의 행보에
거는 기대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