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집에 왔다가 일요일 오후에는 다시 삼척으로 내려가야 했다.
일요일에 일이라도 있는 날이면 하는 수 없이 월요일 아침 일찍 서울에서 7시 첫 고속버스를 탔다. 삼척엔 11시 도착한다. 다시 삼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11시 반에 도계행 완행버스가 있다.
버스를 타면 학교가 있는 활기리까지 30분이 걸린다. 12시 전에 도착하지 못하면 결석처리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이 버스를 놓쳐서는 안 되었다.
그 시간에 출발하는 버스는 늘 초로의 노인이 운전을 했다.
그 이는 언제나 일분도 어김없이 정시에 출발한다.
그 시간 시골 버스에는 주로 노인들이나 부녀자가 많다. 그 이는 버스를 출발하기 전에 학교 교장선생님처럼 승객들에게 일장 훈시하는걸 잊지 않는다.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앞쪽에만 서있지 말고 저 뒷자리에 빈자리로 가 앉으세요.
그리고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다음에 천천히 내리세요.
버스가 정차 하기 전에는 미리 일어나면 안 됩니다.
내릴 때는 미리 큰소리로 내려 달라고 말하세요.”
승객들은 묵묵부답이다. 듣는지 마는지 먼산만 보고 반응들이 별로 없다. 늘 듣는 똑 같은 소리이기 때문일거다. 그래도 노 운전기사는 정류장 마다 새로 타는 손님들에게도 똑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운전기사의 신신당부도 잊은 듯 버스 뒤쪽에 앉아 있던 80도 더 되어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버스가 서기도 전에 무거운 짐을 끌고 앞으로 나오려고 하는 기색이 백미러에 비치자 이내 언성을 높였다.

“할머니! 지금 일어서지 마세요! 버스가 서면 나오세요”
서울 기사들은 빨리타라고 재촉이고 빨리 안 내린다고 재촉이다.
손님이 앉건 말건 급가속 급정차가 일쑤다. 그 때마다 젊은 사람들도 이리 저리 휘청거린다. 그런 것에 너무 익숙해 있는 나 같은 도시물이 든 사람에게는 그 운전기사는 별난 사람으로 비쳐졌다.
한번은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내가 그 이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서울서는 빨리 빨리 타고 내리라고 야단이던데 기사님은 왜 맨날 천천히 천천히 하십니까?”라고 묻자 그는 백미러로 날 언뜻 쳐다 보면서 “사람이 다치면 큰 일이 아닙니까? .....그리고 나도 살아야죠”라며 엷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
시골 버스길은 아직도 직선 길 보다 꾸불꾸불한 길이 많다.
옛날에는 차들이 자갈길을 먼지를 자욱이 일으키며 지나다녔었다. 시골 완행버스를 타고 가는 여행길은 그래서 더욱 낭만스러웠다. 지금은 가는 곳마다 길을 넓히고 굽은 길을 똑바로 고치는 공사가 한창이다. 길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 그대로 좋아한다.
지금도 시골 완행버스 풍경은 정겹다. 그러나 예전만큼의 낭만은 덜하다.
어느새 '느리고 고생스러움'이 '빠르고 편리한 것'에 밀려나 먼 옛날의 추억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마치 우리의 초가지붕이 형형색색의 스래트 지붕에 밀려나고 우리 전통 가옥이 불편하고 답답한 집으로 치부되어 슬래브 벽돌 양옥집으로 바뀌어 가듯이 ....
김용택 님의 '작고, 낮게, 느리게 살기'를 음미해 볼 일이다.
'느리고 고생스러움'에 대한 추억이 그립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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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낮게, 느리게 살기
우리들은 분명 문명의 혜택 속에서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지만
그 문명이 얼마나
야만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보려 하지 않는다.
느린 평화와 조촐한 행복,
끝없는 자유와 아름다운 창조,
따스한 사랑과 한없는 존경,
적막한 기다림과
오랜 그리움 같은 사람의 덕목들은
이제 자취를 감춰버린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모두 크고,
빠르고, 거대하고 화려한 것들을 찾아
바쁘게 헤맨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마법의 손의
조종에 홀린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무엇인가를
찾으며 쫓아다닌다.
이것인가 싶으면 이게 아니고,
저것인가 싶으면 저게 아니다.
모두 바쁘게 흘러다니므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져야 할
진정한 소통은 막혀 있다.
노래를 잃어버린 것이다.
어떨 때는 내가 왜
여기 이 자리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우린 분명 무엇인가
중요한 것들을 빼먹고 허둥지둥 살고 있다.
이 바쁜 때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흘끗거릴지 모르겠지만
우린 좀 천천히 세상과 나를
들여다보며 가고 싶다.
아니 살고 싶다.
무엇이 그리 바쁜가.
어디를, 어디로 왜
그리 부산하게들 달려가는가.
저기 있는 산도 좀 보자.
저기 가는 저 노인의 발걸음이라도
좀 가만히 앉아 바라보고,
저기 서 있는 나뭇가지에
수도 없이 피어나 작은 바람결에
흔들리는 이파리라도
좀 한가하게 앉아 바라보자.
마른 땅에 떨어지는 한 줄기 빗방울,
허공을 흘러오는 작은 눈송이들,
한적한 공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저 들 끝에 묻어오는 소낙비,
저물어 어두운 골목길
흐린 불빛 속에서 새어나오는 아내와
남편의 한가한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우리들은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챙기고 싶다.
좀 천천히 가고 싶다.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을 보이고 싶다.
사람들이 모여들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이 번잡하고 빠르고 거대한 세상에
한 그루의 느티나무 같은
한가한 그늘을 만들고 싶다.
사람들이 거기 와서 지친 몸들을 쉬게 하고 싶다.
수도 없이 많은 느티나무 이파리를 바라보며,
내가 사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그래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며 세상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곳이 되게 하고도 싶다.
작고 느리고 따사로운 것들이
세상을 천천히 오래오래
적시는 외로움을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이 불러오는 오만과 독선으로
인간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병들어 죽어간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인간과 자연에게 반문명적이다.
크고, 거대하고, 화려한 것들은 재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또 다른 얼굴을 하고 겁나게 달려온다.
작고, 낮고, 느린 것들은
이 세상에 사소하고 힘이 없는 것 같지만
인간들의 맨살에 천천히 가 닿고 깊숙이 스민다.
우린 그렇게 시대착오적이고 싶은 것이다.
- 김용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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