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나무와 눈 내리는 달밤 이야기
경주 배광식裵珖植
올 겨울에 양평의 토굴에 사는 친지가 회화나무 화분을 하나 주었다. ‘사람 가까이 두고 사랑을 주어야 잘 자란다’는 당부와 함께였다. 그 회화나무는 길이가 20cm 정도이고 채 손가락 굵기도 되지 않는 두 갈래난 앙상한 나뭇가지일 뿐이었다.
2월말이 되니 생명이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로만 보이던 단단한 나무껍질에서 눈이 솟더니, 새싹이 트고 일주일도 안되어 푸른 새 가지의 키가 황토색 기존가지의 키를 넘었다. 새 가지는 위로 곧게 뻗어 오르는가 싶더니 수평으로 한 뼘쯤 되는 곁가지들을 엇갈려 내고 곁가지에는 나비가 나란히 줄 서서 앉아 있는 듯한 잎들이 생겼다. 이 잎들이 낮에는 날개를 폈다가, 밤이 되면 꽃대에 매달린 나비가 날개를 접듯, 마주보는 잎들끼리 서로 등을 맞대고 잠이 든다. 곁가지들은 사방사유(四方四維)를 제각각 가리키지만 닮은 꼴을 하고 있다.
부드러운 새싹이 단단한 나무껍질을 뚫고 나오는 것은 불성광명(佛性光明)의 힘이다. 상식으로 안되는 공능(功能)이 불성광명에는 내재되어 있다.
나무는 철을 안다. 따뜻함이 싹을 틔운다면, 겨울에 따뜻한 실내에서 싹이 터야 함에도 불구하고 굳게 문을 닫고 있다가, 봄이 되니 싹을 틔운다.
예전에 어느 봄눈이 몹시 내리던 날, 목계에 간 적이 있다. 앞산에 보이는 소로(小路)만이 하얗게 보일 뿐, 세상은 온통 회색 뿐이었다.
그 당시 설경(雪景)을 그린 동양화(東洋畵)가 온통 어두운 회색이어서 ‘무슨 설경이 하얗지 않고 회색이람. 검은 먹물로만 색을 표현하려니 흰색 표현이 어려워서 그런가?’라고 생각하며 화가의 솜씨를 의심한 적이 있던 나는, 그 순간 "눈은 항상 하얗다"라는 상식이 깨어지며, 하얀 소로(小路)가 있는 회색 설경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올해의 동안거 해제 다음날은 눈이 펄펄 내리는 달밤이었다.
친우에게 “눈내리는 ‘달밤’”이야기를 하니,“눈내리는 ‘밤’”이라고 정정을 해주며 이해를 못한다. 상식으로는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은 해나 달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여우가 시집가는 날, 해 뜬 채 비오는 날의 경험은 누구나 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식으로 ‘눈비가 오는 날은 해나 달을 볼 수 없다’라는 틀을 가지고 진실을 왜곡되게 재단한다.
위에서 사방사유(四方四維)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우리는 보통 공간을 구분 할 때 사방사유상하(四方四維上下)의 시방(十方)으로 구분한다. 여기에 이상한 점이 없는가?
꼼꼼히 살피면 땅이라는 평면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인간이 완전한 삼차원 공간을 누리지 못하고, 2차원 평면에서 겨우 삼차원으로 고개를 내밀고 살기 때문에 공간을 완전한 삼차원으로 표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2차 방정식을 그림으로 표시할 때 평면에 서로 직각으로 만나는 X축과 Y축을 그린다. 이것을 공간으로 확장하면 X축, Y축 모두와 수직인 Z축을 더 할 수 있다.
여기서 X축을 동서, Y축을 남북, Z축을 상하라 한다면, 사유(四維)인 간방(間方)은 X축과 Y축이 이루는 직각의 이등분선이다. 즉 X축과 Y축이 이루는 평면에서 4개의 간방을 표현한 것이다. 이것을 삼차원 공간을 형평있게 다룬다면, X축과 Z축이 이루는 평면에도 4개의 간방이 있고, Y축과 Z축이 이루는 평면에도 4개의 간방이 있어 동서남북상하 6방에 12간방을 더해 18방(十八方)이 된다.
즉 땅의 인력권에 근거한 지거천(地居天) 중생은 시방(十方)이라는 공간의식으로 살지만, 공거천(空居天) 중생은 적어도 십팔방(十八方) 이상의 공간의식으로 살 것이다.
이제 불성광명의 자리로 돌아가 보면, 해제 다음날의 눈내리는 달밤이 없었다면, 회화나무는 싹을 틔우지 못했을 것이다. 중중무진(重重無盡)의 법계연기(法界緣起)에 회통(會通)하였다면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오늘 일 천의 강에 천 개의 달이 떴다. 한조각 구름이 흐르다가 달을 가리니 천 개의 강에 일 천의 달이 사라졌다. 달의 빛이 전해오는 허공에 구름[밝지 않음:무명(無明)]이 가리니 달빛을 반연(攀緣)해 생겼던 일 천 개의 달이 사라졌다.
달이 사라지면 중생이란 이름을 붙이고, 달이 나타나면 부처란 이름을 붙인다.
해와 달과 조각구름과 그림자도 없는 끝도 가도 없는 허공과 같은 마음은 청정법신(淸淨法身)인 비로자나불이다. 여기에 해와 달의 빛을 뛰어넘는 찬란한 금빛 불성광명(佛性光明)을 띤 성품바다는 원만보신(圓滿報身)인 노사나불이다. 그러면 무수히 일어나고 스러지는 생각과, 기세간(器世間)의 뜻이 없는[무정(無情)] 삼라만상과, 육도(六道)를 헤매는 뜻이 있는[유정(有情)] 중생들은 무엇인가? 성품바다에 바람 한 점 없이 금빛 파도가 스스로 일어나매 부서지는 포말(泡沫)로서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인 석가모니불이다.
끝도 가도 없는 마음과 깨끗한 성품바다와 거품인 중생은, 곧 바꾸어 말하면 법신과 보신과 화신은 하나의 부처로서 그 이름이 아(화)미(보)타(법)부처님[阿(化)彌(報)陀(法)佛]이시니, 일어나고 스러지는 무수(無數)한 중생의 항상(恒常)하지 않은 모든 행태(行態)는 마음[법신(法身)]이 만가지 경계에 따라 구르는 것으로 미타(彌陀)의 큰 나툼[아(阿)]일 따름이다.
이 아미타부처님께 목숨바쳐 돌아가 의지하나이다!
나무화보법신(南無化報法身)!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나무중생(南無衆生)!
나무불(南無佛)!
나무심(南無心)!
이 염불(念佛)의 수행력(修行力)으로 모든 업장이 봄눈 녹듯이 사라지이다!
< 이 글은 월간 "해인海印" 2004년 4월호 "유마의 방" 란에 실린
경주거사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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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달도 띄우고 눈도 뿌렸습니다....가야금도 뜯으며....아....!....선생이 내준 숙제는 안하시고 도리어 선생에게 숙제를 주시는 학생님....ㅠ.ㅠ
^-^ 음악 감사합니다. 가끔은 이런 학생도 있어야 숙제를 잘하는 학생들이 더 기특하지 않을까요? 원하시면, 윤거사님께 해인 4월호 보내드릴께요..
ㅎㅎㅎ 원래 숙제를 많이 내주는 선생님은...늘~~~ 바쁘답니다^^ '예제'로 생각하겠습니다~~ 다음편지지 퍼오셨는데~~ㅎ 박원자님~~~ 호주에두 보내주세요~~~~라고 하고싶지만, 멜번도..다달이 구독한답니다^^ 너무도 귀한 한국의 내음이지요~~~~ 편안한밤 되세요 _()_
멜번님께서 해인지를 보신다니 반갑습니다.4월호는 아직 안받으셨겠네요? 경주거사님 글 읽으시고 독후감 말해주세요.^^^그럼 좋은 봄 보내세요...
아앙~~~ 숙제 내주시는선생님은~ 윤선생님 한분으로 충분해여~~~
순풍에 돛달고 노를 젓듯이 자력과 타력을 동시에 누리니, 자(自;심心)와 타(他; 불佛과 중생衆生)가 둘이 아닙니다.(자타불이自他不二) 나무아미타불!!! _()_
이 염불의 수행력으로 모든 업장이 봄눈 녹듯이 사라지이다! 사라지이다.!나무아미타불!
눈 내리는 달 밤의 개화!! 감사합니다._()_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