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과 이단의 갈림길
요즘 여기는 이단이고 저기는 정통이고 하는 시비들을 보면서 이단과 정통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교세가 크고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교단이라고 해서 과연 정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단과 정통신앙의 유일한 기준은 오로지 성경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어지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구약의 언약대로 오신 예수께서 말씀과 표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신 후에 물어 보시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것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로 생각했지만, 시몬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다.(마16:13~19)
이 말씀은 우리들이 성경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그리고 정통과 이단이 어떻게 갈라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 속에는 그동안 예수께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표적을 행하신 모든 이유가 담겨져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동안 나를 따라 다니면서 보고 듣고 배운 결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았느냐고 물으신 것이 아니었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를 알겠느냐?’는 것이었다.
‘예수의 교훈대로 살라고 가르치는 것’과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자가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야 구원이 있으며 그것이 올바른 기독교인이라고 믿게 하여 이단으로 나가도록 조장하는 가르침이라면, 후자는 베드로처럼 예수를 그리스도로 확실하게 믿는 것이 기독교인이며 이 믿음은 육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한 선물(마16:17, 엡2:8)인 것을 믿는 정통신앙의 가르침이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신앙의 선배들이 기꺼이 고난의 길을 가고 심지어 자신들의 목숨을 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고 그것을 전파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가 듣게 되는 대부분의 설교는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이 참된 신앙이며 그 행함으로 인해 더욱 의롭게 되어지고 부귀영화와 구원까지 보장된다고 하는 이단적인 가르침이 정통신앙인 것처럼 선포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강단에서는 성경을 통하여 철저히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언약대로 이루신 여호와’이심의 참된 의미가 바르게 증거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강단은 죽어있는 강단이다.
첫댓글 아멘! 덩치가 크다고 속까지 큰 줄로 착각하는 지도자나 성도들, 무엇이 옮고 그름의 잦대를 오로지 성경말씀에 두어야 꽉 찬 교회인줄로 압니다. 감사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니님의 아들이 라는것을 굳게믿는 우리들 되게 하옵소서.사람의 행위로 절대 구원 에 이르지 못한다는 진리를 새삼알게된것 같읍니다.감사함니다.
아멘..지나다 들른카페에서 참으로 바른 옳은 글을 적어두셨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죽은 강단이 너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