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02:30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든 듯한데 덕유산 휴게소다.
늦은 아침을 염려하며 저축하듯 새벽식사를 한다.
그동안 기대와 설레임, 걱정과 비장한 각오로 기다려왔던 2구간 산행이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군데군데 마을 가로등이 보이고 낯선 외지인들의 움직임을 모른 체
마을들은 고요히 잠들어 있다.
어두워 성삼재가 어떻게 생겼는지 파악도 되기 전에 우리는 랜턴도 켜지 못한 체
대장님의 지시에 따른다.
달도 별도 우릴 감추기 위한 배려인지 베일을 쓴 듯 뿌옇게 형체만 갖추고 있다.
왜 감추냐구요?
왜 우린 감추어져야만 했을까요? ㅎㅎㅎ
50년 3월에도 아마 이런 밤 이 길을 따라 이동하던 이들이 있지 않았을까.
산죽이 길을 막고, 진달래 나뭇가지가 옷깃을 부여잡는 좁은 길을 지나 우린 걸음을 재촉한다.
산죽 사이로 손이 나와 회원 중 누구하나 잡아간데도 이 어둠 속에서 눈치채는 이가 없을 것 만 같다.
남쪽에 만개한 꽃 소식과는 달리 북향의 얼어붙은 길을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우린 스스로 택한 이 길에 각각이 의미를 안고 행복한 고행을 택한다.
성삼재에서 만복대로, 만복대에서 정령치로 우린 그렇게 이 땅의 흙을 밟고, 스치고 ,
느끼고 끌어안으며 걷고 또 걷는다.
정령치 휴게소, 그 옛날 소달구지가 느릿하게 지나갔을 것 같은 길 옆에 작은 휴게소에서
아직도 새벽밥이 소화도 되기 전인데 아침을 먹는다.
백두대간에 맞는 몸 만들기란 이런 것인가.
먹을 수 있는 기회만 있으면 먹고,
잠 잘 시간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뒤척임 없이 곧장 잠들어야하고,
화장실을 만날 때까지 몸의 모든 기능은 알아서 조절이 되어야하고,
소탈함에 익숙해져야하고......
새벽에 헤어진 버스를 산행 중간에 만나다니 너무나 반갑다.
몸에 무리가 온 두 분의 회원님을 이곳에 남기고 우린 다시 고리봉으로 향한다.
날이 밝아오면서 북향의 땅을 완전히 덮은 하얀 눈과 나무의 아름다움이 자태를 드러낸다.
잡목이 전혀 섞이지 않은 듯 비슷한 이미지의 나무로만 이루어진 백설 위의 검은 나목의 그림,
잔설하나 남지 않은 남향과 능선을 사이로 완벽하게 다른 그림이다.
고리봉에서 곧장 가면 바래봉, 진달래 피는 계절 가족나들이로 좋은 곳이란다.
우린 직각 방향 고기 삼거리로 향한다. 이름이 재미있다.
하산길이 힘들 거라는 얘기를 미리 들어 걱정과 함께 호기심을 키워간다.
어떤 곳일까.
처음 북향의 가파른 내리막.
분명 조심했건만 발은 내딛던 곳을 이탈하면서 균형을 잃고 매끄러운 소재의 바지는
윤활유가 되고 겨우 나뭇가지에 의지해 멈춰지는가 싶었는데............
가파른 길을 지나자 마을 뒷산 같아 오히려 길을 잃을 거라던 염려와 달리
길을 잃을만한 곳에는 백두대간을 먼저 밟으신 님들이 리본으로 우릴 안내하고
우린 다시 뒤에 올 님들을 위해 리본을 남긴다.
오색리본의 하늘거림엔 먼저 밟으신 님들의 얘기가 가득하다.
단독산행, 부부산행, 아무개와 아무개, 어느 어느 산악회,
읽는 순간 그분들이 가까이 느껴진다.
내가 모르는 사이 이런 뜻을 가진 이들이 참 많았구나.
이런 마음으로 사시는 분들이 많구나.
고기삼거리 도착하니 큰 계곡 옆으로 작은 물길이 하나 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시냇물은 졸졸거리고,
버들강아지는 수줍은 솜털 사이로 노오란 술이 올라오고
수양버들은 연두빛 머리카락으로 봄바람을 유혹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시골 풍경에 지금껏 산행들에서 느끼지 못했던 느긋한 평화를 느끼며 주촌마을로 향한다.
백두대간이란 이런 거구나.
이렇게 들길도 걷고 시골길도 지나게 되는 거구나.
마을 입구에 이르니 농사준비가 한창이다.
소매 걷고 흙 묻은 손 분주한 그분들 앞으로 지나기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인다.
마을엔 시골의 현주소를 백두대간을 지나는 많은 이들에게 알리려는 듯
그 길목에 빈 집들이 많았다.
마을 뒷산에 올라 바라보니 저 멀리 비닐하우스가 자리하고,
이랑을 만들어둔 논이 보이고
집들은 옹기종기 이웃과 맞대어 있다.
뒷산 노송은 완벽한 거북등무늬로 나그네에게 신비함을 주며 마을을 굽어보고 있었다.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과 봉우리, 그리고 내리막.
이전 산과는 전혀 다르게 이곳은 봄이 와 있었다.
눈은 남아있지 않았고 군데군데 철쭉나무 이파리가 삐쭉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여원재는 어디란 말인가.
저 봉우리가 여원재인가,
아니 저 봉우리가 마지막 정상인가,
아니 저 봉우리는 또 뭐란 말인가.
작은 소나무가 빼곡한 길을 지나니 눈앞이 훤해진다.
도로에 내려서니 버스가 텅 비어있다.
후미그룹만 남기고 먼저 가서 고기를 굽고 있단다.
아하! 식당을 고기집으로 잡았나보구나.
"그럼 우리가 늦었으니 가면 구워놓은 고기만 먹으면 되겠네요"
정말 그리 되는 줄 알았다. 그때가 2시가 훨씬 넘었으니.
차가 도착하니 먼저 도착하신 분들이 반기며 서로 젓가락을 챙겨준다.
석쇠엔 고기살점도 아니고 부스러기가 몇 개 뒤집어주지 않아 말라지고 딱딱해져 있었다.
친절한 회원님들은 술도 권했다.
근데 왜 고기를 굽지 않지?
.....
이게 고기의 전부란다.
제게 많은 배려를 해 주셨던 윤희샘, 예쁜 두 여선생님들, 강영재부장님, 김명자샘.
수원갈비도 아니고, 꽃등심도 아니고, 삼겹살을
젓가락은 왜 그리 여러분들이 서로 챙겨줬으며
고기 드신 흔적은 왜 보여줬으며
고기 먹어 배부르단 얘기는 우리한테 왜 하냐구요.
수원에 제일 맛있는 삼겹살집에서 우리끼리 만나요.
3자 들어가는 날, 삼겹살 3인분씩 먹어요.
그리고 카페에 올려요.
삼겹살 껍질의 지글거리는 소리에 취하고
부딪히는 소주잔에 가슴을 덥히며 보낸 멋진 시간을 우리 그 날 밤 한꺼번에 까페에 올려요.
날 잡아 우리끼리 만나요.
한 많은 삼겹살 연기를 뒤로하고
그래도 매화마을 간다는 말에 삼겹살 그런 것은 깨끗이 잊고자 했었답니다.
어찌 삼겹살을 매화에 비유나 하겠습니까.
피곤함도 잊은 채 가슴이 두근거려왔습니다.
차가 밀리자 마음은 급해지고 기대는 더 커져만 갔습니다.
유명하거나, 차가 많아 북적대는 곳은 그만한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지요.
결국은 가지 못한 곳의 소개를 간단히 합니다.
그 날 우리는 멀리서 매화 숲을 보거나 버스 안에서 매화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우리가 스쳐 지난 청매실농원으로 올라가면 우리는 다른 모습을 보게됩니다.
아래에서 볼 때는 나뭇가지부터 보이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는 매화는 꽃구름입니다.
상상이 되시는지요.
발아래 꽃구름이요,
뒤를 보면 끝없이 이어지는 매화나무 사잇길로 산책하며 매향에 취해 가는 당신의 모습이.
눈을 들면 들녘 너머 섬진강이 흐르고,
강가엔 대나무숲이 바람에 쓸리고 있는 모습이.
여주인 홍쌍리 여사는 단정한 한복차림에 손수 매실차를 내 주시고
매실청을 넣은 산자 맛을보며 찻잔을 든 당신의 모습이.
매실을 담가둔 셀 수 없이 많고 커다란 항아리 장독대엔 매화가지가 뻗어 정취를 더합니다.
완벽한 조화를 이룬 다섯이파리 가운데 자리한 앙증맞은 꽃술을 보신적이 있으신지요.
이 모든 걸 뒤로하고 수원으로.
그런데 오늘도 제 머릿속을 맴도는 노랫가사가 있습니다.
'가도가도~'
그렇습니다.
가도가도 끝이 나타나지 않을 만큼 백두대간이 이어지려면 빨리 통일이 되어
백두까지 열심히 가봅시다.
그때 조규연샘 그 노래 다시 한번 더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피곤함 빨리 회복하시고 그 날의 산행이 활력소가 되시길 빕니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잘 읽었습니다. 근데 증말 언제 삼겹살 먹지요?크크크크윽 기대...
산행때 너무 아파 눈도 마음도 많이 닫혀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도 많이 희미하구요. 혹시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내일,모래 산행후 정말 막걸리, 흙돼지 있는건가요? 박사장님 또 구어 줄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