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지루하고 초초했던 여름과 가을이 지나가고 이제야 제42회 사법시험이 완전히 종료되었다. 합격을 확인한 그 순간의 기쁨이 아직도 생생한데, 우연히도 최연소의 영광이 함께 나에게 주어져 정신이 없을 정도다. 이제 이렇게 기회가 주어졌으니, 그 동안의 수험생활도 정리하고 특별한 공부방법은 없었으나 혹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참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지난 2년간의 수험생활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2. 수험생활의 시작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느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그다지 단기간의 수험공부만으로 합격한 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책을 손에 쥐게 된 것은 1학년 1학기 말 무렵 되니까 한 2년 정도 수험생활을 했다고 할 수 있고, 그다지 짧은 기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수험생활을 남들보다 빨리 시작하였기 때문에 그만큼 어린 나이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일찍 시험공부를 시작하였냐고 물어보는데, 나에게 시험공부를 시작한 무슨 특별한 계기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사법시험에 꼭 합격해야 하는데 그 시험이 매우 어렵다고 하더라 하는 등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왔기 때문에 졸업하기 전에 시험에 합격하려면 일찍 공부를 시작해야 하겠구나하는 생각을 막연하게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신입생이 으레 그러는 것처럼 정신없이 생활하면서 사법시험을 준비에 대한 생각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매일 정신없이 생활하는 내 자신에 대하여 반성하게 되고 무언가 생활의 목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무렵 내 친한 친구 한명도 나랑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듣고 그 다음 날부터 의기투합하여 같이 한번 열심히 공부해보기로 하였다. 그 날 큰 마음을 먹고 친구는 회계원리라는 책을 나는 양창수교수님의 민법입문이라는 책을 구입했다.
하지만 그러고도 수개월 동안은 소위 고시생이라고 불릴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아침에 한두시간 정도 공부하면 그날 공부는 다 한 것이었고, 민법입문을 읽는데 그해 여름방학을 거의 다 소비하였다. 그러다가 2학기가 시작되었고 이런식으로 공부하다가는 원서접수도 못해보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어 본격적인 수험생활에 돌입하게 되었다.
3. 1차시험 준비
본격적인 수험생활을 시작한 때로부터 1차시험날까지는 약 5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법학 과목을 어느 정도 수강한 사람에게는 충분한 시간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 1학년으로서 그 때까지 법학과목이라고는 한 과목도 들어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사법시험에 대하여는 아무런 지식이 없었던 상태이므로 무척 시간이 촉박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1차시험에 대하여는 효율을 가장 염두에 두고 공부계획을 세웠다.
우선은 선택과목부터 골라야 했다. 외국어과목은 이전부터 결정한 상태여서 선택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나머지 두 개의 선택과목들은 모두 이름조차 생소한 것들이어서 어떤 과목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친구와 같은 과목을 공부하면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에서 사람들이 거의 선택하지 않는 세법과 경제학을 선택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이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의심이 든다.
그리하여 시험을 치를 과목을 확정하고는 교재를 구입해야 했는데, 시간이 무척 촉박하였으므로 최소한의 교재만으로 시험에 대비하여야 하였다. 그리하여 나름대로 고민한 끝에 비중이 큰 기본과목 3개에 대하여는 교과서 하나와 문제집 하나를 구입하였고, 선택과목 3개에 대하여는 교과서 하나만 구입하였다. 나중에 판례집을 구입한 과목도 있지만 제대로 읽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1차시험은 위에 언급한 교재만으로 승부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는 주로 학교도서관에 했다. 집에서 통학하기에는 약간 먼 거리였기는 하지만, 학교에서는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었던 반면에 집에서는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학교도서관에는 수험생활을 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정신이 해이해질 때 나에게 자극이 되었고, 또한 도서관을 돌아다녀보면 요즘 사람들은 어떤 교재로 공부하는 지 등의 흐름을 파악할 수도 있어서 나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시험공부에 지칠 때에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8시까지는 학교에 도착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가끔식 너무 피곤하여 아침에 일어나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아침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인 학습을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같이 공부하는 친구와 늦게 등교한 사람이 얼마의 벌금을 내기로 약속하는 등 아침에 일찍 등교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학교에서 오후 10시에 집으로 갔으니까, 식사시간 등을 제외하고는 매일 12시간정도는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시간을 아침, 오후, 저녁으로 4시간씩 나누어 기본과목인 헌법, 민법, 형법을 매일 4시간 정도씩 공부하였다. 사람들 중에는 하루에 한과목씩만 보는 등, 시간배분은 다양할 수 있는데, 나는 하루에 한 과목만 읽는 것은 너무 지루한 것 같아서 이런 식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선택과목중에 외국어는 그냥 틈틈히 짜투리 시간이 생길 때 공부하고 나머지 과목은 등, 하교시 지하철에 있는 시간과 학교에서 집에 도착해서 잠잘때까지의 시간에 공부했다. 선택과목에 너무 시간을 적게 배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나, 그 당시는 기본 3법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1차시험을 볼 때까지 기본 3법은 교과서를 3번씩 읽고 문제집을 2번 반복하여 풀고 선택과목은 교과서를 2번 읽을 수 있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공부하였지만 막상 시험장에서 문제를 받아보니 긴장된 마음이 더욱 당황하여 어떻게 시험을 치루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시험을 보게 되었다.
시험 준비기간이 부족한 데다 시험도 잘 보지 못하였다고 생각하여서 다음 해를 대비하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얼떨떨했다. 그날부터 열심히 2차시험 공부를 했다. 합격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시험장의 분위기도 알아보고 경험도 쌓기 위해서 빠지지 않고 끝까지 그 해의 2차시험을 치렀다. 물론 불합격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1차시험 발표부터 그 해 2차 시험을 볼 때까지 소위 후4법이라고 불리는 과목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것이 다음 해의 2차시험을 준비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4. 2차시험 준비
41회 2차시험에 낙방한 후에 42회 시험을 대비하여 본격적인 수험 대비를 시작하였다. 어린나이에 합격하여 남들이 다 하는 스터디같은 것은 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같은 학년의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가 있어서 그를 통해 선배들도 많이 소개받고 해서 같이 스터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스터디에 대하여는 그 필요성에 대하여 논란이 많지만, 나는 수험기간동안의 심리적 안정과 정보 교환이라는 점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입한 스터디는 11명으로 이루어졌었는데 모두들 막강한 실력 지니고 있어서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가 없었다. 우리 스터디는 11월까지는 쟁점에 대한 토론과 정보교환 중심으로 스터디를 진행하다가 그 이후부터는 모의고사를 보고 각자의 답안을 돌려 보는 식으로 스터디 공부를 하였다. 처음에는 다른 스터디 구성원들이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보면 은근히 질투심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나, 점점 같이 공부해 가면서 배우는 자세로 스터디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훌륭하신 여러 선배님들과 뛰어난 친구와 같이 공부함으로써, 시험을 큰 어려움은 없이 준비할 수 있었다.
2차시험도 1차시험처럼 적은 양의 교재만 집중하여 읽고서 시험에 응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1차시험과는 달리 2차시험 때는 주어진 시간이 충분히 있었으나 그에 비례하여 공부할 양도 많고 그 깊이도 훨씬 깊어서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학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시험장에서 답안을 작성하는 경우에도 어짜피 핵심적인 내용을 쓸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교과서를 읽더라도 처음에는 차분한 마음으로 각주까지 전부 죽 읽어보고 두 번째는 읽으면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내가 외울 수 있는 부분만큼만 표시하였다. 그리고 시험이 가까워져서는 그 표시한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학습하였다.
문제집을 풀 때는 그 답안의 내용을 학습하는 것보다는 그 문장의 표현이나, 답안의 전체적인 구성 등과 같이 시험장에 들어가서 답안을 작성하기 위한 기술을 익히기 위하여 그 형식에 중점을 두고 학습하였다. 보통은 문제에 대한 초안만 작성하고 답안과 비교해보았지만 3일에 한번 정도는 답안을 전부 작성하여 문제집의 답안과 꼼꼼히 비교하면서 내 답안을 스스로 평가해보았다. 그리하여 마음에 드는 목차 구성, 소제목이나 문장의 표현 같은 것은 표시해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2차시험은 1차시험과는 달리 1년하고도 반이라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나에게 주어져서 오히려 열심히 공부할 수 없었다. 1차시험을 공부할 때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하루하루 조금이라도 더 공부를 하려고 노력하였지만, 막상 1년하고도 몇 개월의 시간이 나에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하니 좀 쉬고 나중에 공부해도 되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이럭저럭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한 것은 없이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수험생활을 하는 분은 시간은 정말로 화살같이 흘러간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수험공부를 하면서 책을 반복하여 읽다보니 공부하기가 정말 지루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가끔씩은 시내로 나가 영화를 보거나 맛있는 식사를 하는 등으로 기분을 전환하려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책을 잡곤 하였다.
그리하여 2차시험을 볼 때까지 교과서는 정독 2번 속독 2번해서 4번 정도 반복하여 읽을 수 있었고, 문제집은 2권 정도 풀어보고 판례집도 2번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시간 있을 때 열심히 공부할 걸 하고 후회하고 있을 때쯤 어느 덧 2차시험이 시작되었다. 시험장에는 바로 뒤에서 내 친구가 자리하는 등 내가 시험본 교실에 스터디 구성원들이 많아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끝마칠 수 있었다. 시험장에서는 한 과목당 주어진 시간이 2시간밖에 없다는 점을 유념하고 시간에 맞추어 답안을 작성하는 것에 가장 주의했다. 한 문제에 1시간씩 배분하여 시험 시작 후 한 시간이 지나면 아직 첫 번째 답안에 대한 답안 작성이 완료되지 않았더라도 일단 다음 답안을 작성하고 다시 첫 번째 답안을 작성하는 등으로 하여 2번 문제에 대한 답안이 상대적으로 소홀해 지는 것을 막으려 하였다. 또한 최대한 줄을 맞추고 글씨를 또박또박 쓰는 등 답안의 형식적인 면도 갖추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시험 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긴장하는 바람에 손이 떨려 글씨가 망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험이 끝나고 나름대로 잘 쓴 과목도 있지만 쟁점사항을 많이 놓친 것 같은 과목도 있어서 시험 발표가 있을 때까지 많이 초초해하였다. 하지만 막상 성적을 확인해 보니 잘 못 보았다고 생각한 과목이 더 점수가 잘 나오는 등 내 생각대로 점수가 나오지는 않았다. 합격을 확인하고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들도 만나는 등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5. 마치며
지금까지 지난 2년간의 수험생활을 뒤돌아보았는데, 수험생활을 하면서 몇 가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을 적어보고자 한다. 우선 남들에 의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시험은 결국 누가 자신이 계획한 대로 끊임없이 공부하였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남들의 본 받을 만한 점을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겠으나, 이것은 단지 자신의 계획 수립에 참고가 되는 정도의 역할을 해야지, 자신의 계획을 남들의 계획에 맞추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즉 '누가 무슨 책을 읽고 있더라', '누구는 벌써 뭘 끝냈더라'하는 등의 얘기에 현혹되거나 좌절감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다. 시험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며, 자신의 계획을 착실히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다음으로 너무 많은 욕심을 갖지 않기를 권장하고 싶다. 1차시험도 그렇지만 특히 2차 시험에서는 출제 가능한 보든 부분을 완벽히 학습할 수는 없으며 어느 정도 압축하여 공부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모든 부분을 다 하려고 하면 모든 부분을 대충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맞추어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만큼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시험장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 1차시험도 1,2교시가 있고 2차시험은 7교시까지 있는데, 앞의 시험을 잘 못 봤다고 생각하고 다음 시험을 자포자기한 심정에서 치르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이 어려웠으면 다른 사람들도 다 어렵게 느꼈을 것이므로 앞의 일은 신경쓰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합격할 수 있도록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이 기회를 빌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우선 지금까지 저를 키워주시고 격려해주신 부모님과 형에게 기운을 북돋아 준 동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수험생활을 같이 시작하여 매일 얼굴 마주보며 공부하면서 지금까지 동고동락을 같이 해온 제35회 공인회계사시험 최연소 합격자 오명석학우에게는 그가 없으면 합격할 수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불과 수개월 차이로 최연소 합격을 놓쳤다고 농담하는 이번에 합격한 한철이에게도 정말 감사하고, 대학와서 만난 유일한친구인 정훈이와 내 삶의 정신적 지주인 상용이, 도서관에서 가끔 마주치며 밥도 자주 같이 먹는 현제, 호성, 연수, 현우, 기웅, 승구에게도 감사드린다. 또한 저를 같이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스터디 선배들과 그 외 저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끝으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행운이 찾아와 계획한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기원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