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길 웅
내가 교육청 출근을 대중교통수단에 맡기면서 12번 버스를 처음으로 탄 것은 지난 초겨울의 일이었다. 중앙로를 거쳐 신제주로 가는 것에 비해 인제 노선인 이 버스를 타면 직선거리라 그만큼 출근 시간이 빨라진다. 거리가 단축되는 때문이다. 그래서 나로서는 이 버스를 선호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매일 바쁜 출근 시간이라 닥치는 대로 차를 타다 보면 이 버스를 만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한데 나는 이 12번 버스를 몇 번타면서 뜻밖에도 인간사의 아름다운 장면과 목도하게 되었다. 이 일을 나는 일상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소득의 하나쯤으로 간주하게끔 되었다. 내겐, 버스에 오르면 으레 기사 뒷자리에 앉는 버릇이 있다. 버스 시발점이 한 마을 건너에 있어서 자리가 늘 비어있게 되니 그 선택은 거의 내 임의로 가능하다. 그 날도, 나는 첫 추위에 몸을 움츠리며 바로 그 자리에 몸을 놓았다. 그런데 나와 맞은편에 한 아주머니가 앉아 있는데 그냥 일반 승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분에게 눈길을 보내게 되었다. 가만 보아하니 그 아주머니는 정류소에서 버스가 멈춰 설 때마다 바깥을 살피면서 기사에게 가벼운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탈 손님이 없다든지, 저 만치서 손님이 달려오고 있는데 왜 그냥 출발하고 있느냐는 등. 그에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는 막 차에 오른 손님에게 뒤편에 자리가 있으니 그리로 가서 앉으라는 서비스까지 한다. 일반 손님으로서는 할 수 없는 배려일 것이다. 워낙 경황없이 쫓기는 시간대라 처음엔 무관심하게 지나쳤지만 세네 번 타게 되면서 그 아주머니가 여느 손님이 아닌 것이 보다 분명해졌다. 그분은 다름 아닌 운전 기사의 부인이었다. 그 사실이 명백해지면서 나도 모르는 새 그분에 대한 관심도 절로 고조되었다. 그리고 나의 관심은 자연히 그분의 차 중에서의 역할에 초점이 모아졌다.
그런데 몇 번의 승차에서 나의 궁금증은 전혀 딴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분의 몫은 차를 몰고 있는 기사를 대신해서 손님을 관리하는 것 외로, 한 아내로서 그 남편을 섬기는 지극한 정성이 그녀로 하여금 남편의 버스를 함께 타게 한 것임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어느 날, 겨울비가 추적이며 내리던 아침, 며칠만에 나는 또 12번 버스를 타게 되었다. 그 앞자리에 예의 그 부인이 앉아있었다. 그 날 따라 그녀의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매무새와 우아하게 빗어 넘긴 머리 모양이 교양미를 갖춘 분으로 다가왔다. 부인의 세련된 모습이 어쩌면 그 남편이 본시 사무직 같은 지적이 직종에 종사했을 것이라는 상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들의 말이 경상도 쪽의 억양인 것도 그렇다. 어쩌다 고향을 떠나 외딴 섬 제주에 오게 된 어떤 연유가 있을 법하다는 생각도 덩달아 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 버스도 필시 그들 소유일 것이고, 그들 부부는 움직이는 기업주 내외인 셈이 된다.
그 후 나는, 객지에서 남편의 버스 운행에 삶을 맡기고 살아가는 부부의 어떤 운명 같은 것을 발견했다는 나름의 생각에 골똘하게 되었다. 그 부인은 습관처럼 고개를 뒤로 돌려 차안을 돌아보곤 한다. 아마도 손님 수를 헤아리고 있거나, 차안의 분위기를 점검하고 있는 것일 테다.
겨울 들어 눈이 제법 내리던 날 아침이었다. 그 날도 12번 버스의 그 자리에 그 부인이 앉아있었다. 몇 번째의 대면으로 낯익게 된 내게 그분은 고개를 살짝 숙여가며 목례를 보내왔다. 나도 가볍게 답례를 보냈다. 나는 그 순간, 그 부인에 대하여 어떤 인간적인 신뢰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한 아내가 그 남편을 위함이 이쯤에 이르면 감동적일 수 있겠다 싶은 때문이다. 그 날 따라 그분은 더할 나위 없이 정숙하고 다소곳해 보였다. 또 며칠이 지났을까.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간에 나는 다시 12번 버스를 만나게 되었다. 밖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린 손을 비비며 버스에 오른 내 눈에 핸들을 돌리고 있는 유난히도 두툼한 손이 클로즈업되어 들어왔다. 그 부인, 손 시려 할 남편에게 이미 털이 보송보송한 장갑을 마련해주고 있었다. 핸들을 잡은 기사의 손놀림이 무척 가벼워 보였다.
한데 그 부인 대뜸 내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이 양반, 오늘 점심을 굶었어요. 밥 먹을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만 시간을 놓쳤지 뭡니까. 밥은 먹으면 서 일을 해야 하는 건데….”
일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남편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한 목소리였다. 내 눈이, 이내 그 부인의 손안에서 바스락거리는 빵 봉지에 가 멎는다.
“요기하느라 몇 조각 먹다 남은 거예요. 선생님, 좀 드실래요?”
고개를 내젓는 내게 그 부인, 사탕 두 알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하나를 받아서 입에다 넣었다. 대하기에 아주 편안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면 부인께서도 점심을 못 드셨겠네요.”
다시 말을 잇는 그 부인의 목소리엔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있고, 이쯤 되고 보니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일이라 위로의 말 한 마디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순간 운전석 쪽을 살폈다. 왠지 운전 기사가 무척 행복해 보였다. 행복한 사람은 그 뒷모습도 흐뭇하다.
겨울이 깊을 대로 깊었다. 그러니까 내가 다시 12번 버스에 탄 것은 한겨울의 이른 아침이었다. 스팀이 나오기는 했으나 승객들이 다들 토퍼 갚은 두터운 옷에 몸을 묻은 채 앉아 있었다. 그렇게 추웠다. 차에 오르자마자 나는 운전석으로 눈을 보냈다. 두텁지는 않으나 보온이 잘 될 법한 옷을 단단히 입고서 차를 몰고 있는 기사. 예의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그 부인. 은연중에 나는 재미있는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저 버스는 움직이는 집이고 가정’이라는….’
그들 부부는 이른 아침에 같이 집을 나와 밤늦게 집에 돌아간다. 하루 열 세네 시간, 벅찬 노동의 현장에 부부가 함께 있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부부가 또 있을까. 차를 운전하는 것은 남편이지만 그 부인도 차의 운행에 동참하여 같이 뛰고 있는 거나 진배없다. 그러니 12번 버스는 차가 아니라 그들의 집이다. 부부가 늘 같이 있으니 집이다. 그들 부부의 이동하는 가정이다. 늘 어깨너머로 대화가 오고간다. 핸들을 잡은 남편의 희끗한 머리를 쓸어 내리는 그 아내의 따뜻한 시선이 아름답다.
그것을 바라보는 쪽도 감동이다. 그래서 나는 이 12번 버스를 좋아한다.
오늘도 출근 시간, 아침 찻길에 섰다. 12번 버스가 와 주었으면 좋겠다. (2002. 3)
첫댓글 감동적인 글입니다. 지금은 12번 버스를 못본것 같은데 없어졌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