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에 관한 이야기는 최고운에 관한 것보다 전승이 풍부하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된 자료를 대비하여 보아도 최고운 설화가 20편 정도라면 강감찬 설화는 60 편이 넘는다. 특히 경북 지역에는 강감찬 설화가 19 편으로서 다른 지역보다 풍부하게 전승된다. 설화의 제목도 ‘강감찬의 이적(異蹟)’이라든가 ‘이인 강감찬’이라는 것을 표방하고 있다. 강감찬은 사람들의 문제를 여러 모로 해결하는 역량을 지녔을 뿐 아니라, 개미에서 호랑이와 독수리까지 온갖 동물들과, 속새에서 칡덩쿨까지 온갖 식물들을 마음대로 다스리며, 둔갑한 여우나 뱀에서 귀신 등 초월적인 존재들도 퇴치한다. 그리고 자연 현상인 벼락을 칼로 쳐서 꺾는가 하면 염라대왕을 만나거나 편지로 의사소통을 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강감찬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시공간의 초월은 물론 인간계와 동식물계, 그리고 영계(靈界)까지 마음대로 넘나든다. 온전한 이인이라 해도 좋겠다.
강감찬이 도통하여 천년 묵은 여우가 둔갑을 하여 새신랑 행세를 하는 것을 처치하고, 길에 다니는 데 불편하다고 칡덤불을 못뻗어나가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개구리도 못울게 하였다고 한다.
강감찬이 어느 잔치집에 가보니 대례판에 들어선 신랑이 여우였다. 호령으로 신랑 행세를 하는 여우를 퇴치하고 진짜 신랑을 찾아내어 살려주었다.
강감찬이 도술로 삼척 구무소도 칼로 뚫어놓고, 상주 공검못의 억머구리도 못울게 조화를 부리고, 번개가 치는 것도 칼로 쳐서 아직도 번쩍번쩍 거린다. 그리고 강릉부사로 도임할 때 산신각을 불태우고 아들 삼형제가 차례로 죽자 염라대왕에게 편지를 써서 아들을 모두 살려냈다.
강감찬(948-1031)은 고려의 명신이자 장군이다. 거란의 침공시 상원수가 되어 냇물을 막았다가 터뜨리는 전략과 협공으로 대승을 거두며 뒤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의 벼슬에 오른 인물이다. 강감찬 설화는 ??고려사?? 열전과 ??세종실록?? 지리지. ??용재총화??, ??동국여지승람??, ??해동이적(海東異蹟)??,??기문총화(記聞叢話)?? 등에 널리 수록되어 있다. 강감찬은 문곡성(文曲星)의 화신으로서 그가 태어날 때 하늘의 큰 별이 집안으로 떨어졌다는 신이한 출생담이나, 부적을 사용하여 호랑이를 물리친 일화가 이들 문헌에 수록되어 있다. 구전되는 이야기 가운데에도 개구리를 울지 않게 했다든가, 모기를 없애고 개미를 퇴치했다든가, 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을 손으로 꺾었다든가 하는 등 그의 이인적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 많다. 이들 설화들은??강시�O전??이라는 고소설로 집대성되어 있다. 풍기에서 수집된 이야기들도 이러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의 행적의 어떤 면이 민중들로 하여금 이인으로 삼게 했는지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문헌 자료나 구전 자료에서 한결같이 그를 이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설화도 문헌과 구전 자료 양쪽 모두 가장 풍부하다. 고운은 이인다운 역량을 발휘하여 자신의 7대 후손을 살리는 일에 머물렀다. 그러나 강감찬은 사람들을 해치는 동식물과 영계의 존재들까지 다스렸다. 기대되는 이인의 모습은 아무래도 강감찬 쪽이다. 강감찬 설화가 특별히 많이 전승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이인적 역량은 사람마다 차이가 나지만, 역사적 인물들을 이인으로 이야기하는 까닭은 역사적 인물 가운데에도 많은 이인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졌듯이, 앞으로도 이인이 역사적 인물로 등장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반영한다. 풍기라고 하는 한정된 지역에서 짧은 기간 현지조사를 한 가운데에서 이인 설화가 많은 것은, 정감록에서 예언하는 정도령과 같은 이인이 등장할 가능성을 굳게 믿는 까닭이라 하겠다.
강감찬이 실제로 이적을 행한 고운보다 더 탁월한 이인으로 더 풍부하게 이야기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그가 장군으로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까닭이다. 진인에 더 가까운 자질을 갖춘 셈이다. 이인은 술법에 능하거나 예지가 특출하긴 해도 무예가 뛰어나거나 군사를 부리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진인은 신이한 능력을 지니고 어디 숨어서 군사를 거느리고 있다가, 민심이 흉흉하고 난리가 날 조짐이 보이면 마침내 나타나서 나라를 차지하기까지 할 것이라고 했다.” 강감찬이 기발한 전략으로 거란의 10만 대군을 섬멸했다는 것은 예사 이인과는 다른 진인다운 역량이 두드러진다. 진인의 출현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강감찬이 역사적인 이인이나 진인의 한 보기로서 널리 이야기될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고 하겠다. 역사적 인물의 이인화 못지 않게 이름없는 이인들의 이야기도 많다. 역사적 인물을 이인화한 이야기는 이인이나 진인의 출현 가능성을 역사적 사실 속에서 확인시켜 주는 구실을 한다면, 이름없는 이인들의 이야기는 이야기를 하고 듣는 예사사람들 사이에 이인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진다. 또는 스스로도 이인일 수 있다는 이인에 대한 주체적 각성의 자극을 준다. 널리 알려진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 우리가 곧 이인이라는 자각이야 말로 세상을 바꾸는 추동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대수롭지 않은 인물을 등장시켜 그 초월적 역량을 강조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수련을 하면 그런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들을 갈무리하고 있는 셈이다. 몇 가지 보기를 들어본다. 율곡이 산가지를 늘어놓고 임란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데, 어느 집 머슴이 심부름을 와서 전갈을 했으나 산가지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보다 못한 머슴이 “그까짓 산가지로 계산할 것 뭐 있노. 한강에다 관솔로 화석정이라는 정자나 지어 놓으라.”고 하였다. 율곡이 까닭을 자세하게 물어보려고 했으나 머슴은 벌써 간곳이 없었다. 한강에 관솔로 화석정을 지어두었다가 선조가 밤에 피난을 갈 때 화석정에 불을 질러서 길을 밝혀 준 덕분에 무사히 피난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출중한 인물을 이름없는 이인이 나타나 뒤집어 버리는 이야기이다. 이인 이야기의 한 전형을 이룰 만큼 흔한 유형에 속한다. 이웃집 머슴이 율곡보다 훨씬 탁월했다는 것이다. 이인은 도처에 있다는 뜻이자, 머슴처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사실은 고급 관료들의 궁색한 정책보다 훨씬 그럴듯한 정책을 세울 수 있다는 민중의식을 드러낸다. 이인에 대한 기대이면서 또한 스스로 이인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정치현실의 한계를 비판하는 것이다. 이인의 가능성은 누구든 수련하면 술법을 부릴 수 있으며 신이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연결된다. 예사 사람이 수련해서 이인의 역량을 발휘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아무개 김씨가 산에 들어가서 산공부를 많이 하고 나왔는데, 하루는 우리집에서 어른들이 모여 놀다가 산공부 했는 것을 보여달라고 조르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는 자세로 몸이 공중에 떠서 천장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걸 봤다. 일정때 순경이 이 사람은 잡아가질 못했다. 아무리 꽁꽁 묶어도 지서 문 앞에 가면 오라줄을 풀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제 갈대로 가버리는 까닭이다.
실화처럼 이야기했다. 자기 집에서 그러한 일을 겪었다는 것이다. 수련한 사람의 역량을 검증하기 위해 실제로 지켜보았다면 실화가 틀림없다. 요즘도 기(氣) 훈련을 한 사람들은 앉은 채로 공중을 날아다닌다고들 한다. 이야기 속의 이인은 친구들 앞에서 그러한 능력을 직접 보여주었던 것이다. 일정때 순경에게 붙잡혀 가다가도 지서 문 앞에서 오라줄을 풀어버리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하는 걸 보면, 이야기 속의 김씨 역시 일제에 항거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만일 지금도 이와 같은 수련을 하여 이인의 역량을 지닌다면 나라의 횡포에 맞서 싸울 수 있고, 관가에 사로잡혀 가더라도 쉽게 풀려날 수 있다. 김씨 이인의 활동을 실화처럼 이야기함으로써 진인 출현설의 가능성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김익수는 일제때 독립운동을 한 사람인데 워낙 힘이 세어서 차의 뒤를 잡고 있으면 차가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으며, 철창에 갇혀 있어도 철창을 뽑아내고 빠져나왔다. 여러 사람이 구렁텅이에 밀어넣고 돌무더기를 쌓아도 부시시 털고 일어났다. 보통 무식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주역을 자유롭게 해명할 수 있을 만큼 공부도 많이 했으며, 머리칼을 뽑아서 목침을 꽂으면 그것이 목침 속을 뚫고 들어갔다고 할 만큼 신통력도 있었다. 그 아들이 우학도인 권태훈을 찾아갔더니, 김익수 아들임을 알아보고 아주 반겼다고 한다. 풍기읍 산법리에 살았던 강기종이라는 분은 도사는 아니지만 술객이었다. 소백산에 나물을 뜯으러 가서도 국수나 냉면이 먹고 싶다고 하면 산중에서 턱 불러다 주고, 마을에서 누가 아픈 사람이 오면 부작을 한 장 써서 바람에 부치면 약이 날라왔다. 일제때 왜경에게 붙들려가다가 영주 나무고개에서, 왜경이 재주를 한 번 부려보라 그래서 영주 어느 요리점의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지서에 가서 일경들이 그 분을 가두고서 문을 몇 겹씩 닫아 잠그고는 빠져나가면 살려준다고 하자, 유유히 빠져나와 달아나 버렸다. 위의 두 이야기는 모두 실제 인물의 이야기이다. 김익수는 우학도인 권태훈이 알아줄 만한 도인이었다. 남들은 무식한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주역에 통달했고 용력도 뛰어났으며 신통력도 대단했다. 나라에 등용되지 않았지만 일제에 맞서 싸우는 독립지사로서 옥에 갇히기까지 했다. 이인으로서 숨어지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했다. 다음 이야기의 강기종은 일종의 술객이었다. 부작을 써붙이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었다. 그러한 술법의 양상은 일경에게 붙잡혀 가면서 구체화된다. 일경이 강기종을 붙들어가는 길에 그 술법을 확인하기 위하여, 영주 어느 식당의 요리를 먹고 싶다고 하였더니, 과연 잠시 뒤에 그 식당 심부름꾼이 요리를 배달해 왔으며, 그 사실을 식당에서 확인까지 했는데 사실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실제 인물이 실제로 술법을 부렸다는 것을 강조한다. 강기종 또한 일제에 항거한 인물이다. 그러나 진인처럼 세상을 뒤집어 엎고 새로운 세상을 수립할 만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그러려면 군사를 기르고 나라를 차지하려는 뜻을 품어야 한다.
아기장수는 사정이 다르다. 힘이 장사일 뿐 아니라, 군사를 길러서 관군에게 맞설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아기장수를 태울 용마도 출현하며, 바위 속에 숨어서 병사들을 훈련시킨다. 바위 밑에 은거할 때 준비해 간 좁쌀이 모두 병사가 되고 지릅은 모두 화살이 되어 관군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어머니가 관군의 협박에 못이겨 아기장수의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써 거사를 실패한다. 더러는 아기장수의 비범한 능력을 알고 부모들이 역적으로 몰릴까봐 진작 죽여버리기까지 한다. 아기장수는 예사 이인과 달리 그 능력을 드러내면서 관군과 맞서 싸우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한층 진인과 가깝다. 따라서 아기장수 이야기는 이인 이상으로 진인출현설의 가능성을 다지는 이야기라 하겠다.
옹천 밑에 구장터 최씨네가 아기를 낳으니 눈동자가 세 개였다. 대인을 낳은 것이다. 부모가 생각해 보니, 나라에서 알면 필경 그 아이를 죽일 터이므로, 사흘간 젖을 먹이지 않고 자귀로 발 뒤꿈치의 힘줄을 끊어 버렸다. 그러고 나니 눈동자가 하나가 없어지고 힘도 약해졌다. 그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늘 다리를 절었다. 그래도 보통사람들보다 힘이 엄청나게 세었다. “그렇게 힘이 있었는데 그래 고마 글도 안 갈치고 고마 아무데 내세우지도 안하고 구장터 거 사다 죽었잖나.”
이야기꾼의 아버지가 실제로 겪은 목격담이라고 한다. 눈동자가 셋이라면 제3의 눈을 가지고 있는 이인이 틀림없다. 제3의 눈은 혜안(慧眼)이다. 사람의 마음과 정신 상태를 꿰뚫어볼 수 있는 깨달은 자의 눈이다. 게다가 장수로서 절륜의 힘을 지녔다. 그런데 부모들이 역적으로 몰릴까봐 겁을 집어먹고 아기 젖을 굶겼을 뿐 아니라 자귀로 아킬레스근을 끊어버림으로써 신이한 역량을 죽여버렸다. 예사 아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준 임춘원 할아버지는 “그렇기 힘이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부모네가 병신 만들었어. 그게 커가주 나라에 역적모의한다고, 나라가 알아놓으면 와서 쥑여분다고, 그래 부모네가 막았다는 말이다.” 하고서, 부모가 자식의 장래를 망쳤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진인의 출현을 기대해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왕권의 억압과 변혁에 따른 희생을 두려워 한 나머지 진인의 싹을 잘라버리는 오류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으면서, 앞으로 비범한 인물이 출생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진인으로 길러내야겠다는 다짐까지 서려 있는 이야기라 하겠다.
이 밖에도 장수 전설이 많다. 한결같이 실화처럼 이야기된다는 점에서 다른 고장과 차별성을 지닌다. 몇 가지 보기를 들면, 영풍군 안정면 봉암동 내봉암에 장수가 하나 났는데, 힘이 얼마나 세었던지 멍석을 말아가지고 지게 작대기에 끼워서 말을 타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풍기읍 전구동 십리반석이라 하는 아주 너른 바위에 장수 발자욱이 있다. 장수가 출현했음을 말한다. 더 적극적으로는 “우리 매형이 차씬데, 그 집안에서 장수가 나가지고 집안 사람들이 모여서 어께 죽지의 힘줄을 끊었다.”는 이야기도 한다. 최씨네 집안에서도 아기장수가 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상을 개혁할 만한 장수가 곳곳에서 많이 났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공한 장수는 없다. 비범한 장수가 태어났으되 진인 구실을 못하고 말았다. 집안 사람들이 어께 죽지의 힘줄이나 아킬레스근을 끊어버려, 진인의 길을 막아버렸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진인을 허용하지 않는 강고한 체제의 억압을 비판하는 것이자, 체제에 길들여진 민중들의 한계를 함께 비판한다. 진인은 한 인간의 개인적 출생에 의해 생물학적으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모험을 무릅쓰고 집단적으로 양육하고 체제에 맞서면서 사회적으로 길러내야 한다는 뜻이다. 진인이 신화처럼 등장하리라는 믿음에서 벗어나 스스로 진인을 길러내는 주체로서 모험을 감당해야겠다는 의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정군자가 해인사 앞을 지나다가 해인사 절 앞에 손님을 환영한다는 표지를 보고 하루 쉬어가고자 들어갔다. 술과 고기 대접을 잘 받고 머무는데, 밤이 되니 중들이 하나 둘 없어졌다. 밥이 깊어지자 이쁜 여자가 나타나서 같이 자기를 원했다. 술을 취하게 한 뒤 자세히 보니 구미호였다. 묶어서 바랑에다 넣어 천정에 달아매어 두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절에 나타나서 중을 한 사람씩 잡아먹는 여우였으므로, 중들이 자기들 대신 잡아갈 사람을 염두에 두고서 손님을 청해 두었던 것이다. 여우는 자기를 살려주면 비방을 적은 문서를 주겠다고 하였다. 정군자는 여우굴로 따라가서 문서를 익히고 여우를 처치하였다. 정군자는 여우 구술을 먹고 도술을 익혀서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옥에 갇혔다. 그러나 배와 삿대를 그림으로 그려 타고는 사라져 버렸다.
정군자라고 하여 정감록의 정도령처럼 착각하기 쉬우나 정감록에서 말하는 정진인은 아니다. 이야기꾼이 이야기 도중에 주인공을 누구로 할까 하다가 정군자라는 이름을 부여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군자라고 한 것은 정감록을 어느 정도 믿고 있는 이야기꾼의 기대가 은연중에 반영되었다고 봐야 하겠다. 특히 정군자는 본디부터 술법을 익힌 사람으로서 이쁜 여자의 모습으로 둔갑한 구미호의 정체를 알아보고 결박하여 바랑 속에 넣었다. 그런데 구미호로부터 신비한 구술을 구하여 삼킨 까닭에 그러한 역량은 더욱 강화되었다. 자세한 원인은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지 않았으나, 옥에 갇혔다고 했다. 정부에 거스르는 일을 한 까닭이다. 적극적으로 말하면 반역을 도모했다고 할 수도 있다. 조선왕조를 뒤집어 엎고 새로 도읍을 정하는 것이 정진인의 과제이다. 나라의 차원에서 보면 반역이 틀림없다. 정군자도 반역을 도모하다 옥에 갇혔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상당히 진인다운 행동을 한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옥에 갇혔다는 사실보다 옥에서 탈출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간수에게 지필묵을 요청하고는 배를 그리더니 일렁일렁하다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림으로 그린 배를 타고 옥을 빠져나가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정군자는 어딘가에 살아 있다. 때가 되면 다시 등장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정감록에서 예언한대로 정진인으로서 출현하여 나라를 혁파하고 도읍을 계룡산 신도안으로 옮겨 새 세상을 건설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정군자 설화는 정감록의 정진인출현설의 가능성을 더욱 믿게 하는 힘을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