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그 아름다운 이름
요즘 젊은 여자들은 발칙할 만큼 이기적이면서도 발랄하다. 그녀들은 이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희생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경제적 자립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언론과 정치권력의 핵심층위까지 진입하였다. 하지만 발칙한 그녀들에게도 사랑에 대한 기대와 그 의미는 여전히 중요한 코드다. 그들의 사랑에 대한 기대는 황홀하고 눈부시다. 사랑은 전혀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때로 그녀들의 저돌적인 사랑이 사회통념을 무너뜨리고 좌충우돌하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순간 그녀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존귀한 존재가 되고, 그녀는 온 우주 속에서 오직 하나뿐인 존재로 요요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삼손을 파멸시킨 데릴라나 카르멘급의 여성들을 사람들은 팜므파탈이라 한다. 남성들은 자신을 유혹하고 배반하고 굴욕을 주고 파멸시키는 여성을 비난하면서도 끌려든다. 여성들만이 가진 아름다운 환타지 때문이다. 오래 전 마광수교수가 사회적 수용성을 간과한 채 성에 대해 너무 대범하게 의견 개진을 하는 바람에 큰 곤욕을 치뤘던 일이 있었다. 나 또한 언론에서 다룬 그대로 그에 대한 이미지를 받아들였었는데 학교도서관에서 우연히 그의 저서 ‘성애론’을 읽고서 여성의 가진 의미와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의 대담한 성담론의 곁가지에서 여성에 대한 또 다른 실마리를 찾아내 본다.
햇살 아래 출렁이는 검은 머릿결, 반짝이는 검은 눈빛, 하얗게 부서지는 여인의 미소 뒤에서 출렁이는 여인의 관능미는 생의 고단한 항해 속에서 지쳐있는 이들에게 환상을 주고 위로를 준다.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창조의 역동성은 이 아름다운 매력에서 비롯된다.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형의 장자권을 계획적으로 빼앗은 아주 약아빠진 야곱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외삼촌의 집에서 갖가지 속임수를 당하면서도 오직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얻기 위해 14년 동안 머슴처럼 일한다. 그는 기꺼이 자신의 일생을 던질 만큼 라헬의 아름다움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한 사나이의 눈멀게 한 이 아름다운 여성성이야말로 인간사회를 이끌어온 에너지의 근원이라 말한다면 너무 과한 것일까.
역사의 주체자라 불리었던 남성을 조종하고 이끌었던 수많은 여성들. 생명과 파괴라는 상반되는 본질을 보여준 여성들의 이야기도 기억해보자, 아름다운 왕비의 자리에서 권력에 핵심이 되었던 하쳅수트, 남자 중의 남자였으며 로마의 천재 전략가였던 시저를 무너뜨린 클레오파트라, 현명했던 현종을 혼란에 빠지게 했던 양귀비, 조선최고의 여성지식인이자 예술가였던 황진이, 이사벨1세, 엘리자베스, 에카테리나, 이사도라 던컨, 코코샤넬, 심슨부인, 루 살로메… 그 싱싱하고도 주체적인 여성성이란 파괴적이면서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남성중심의 역사 속에서도 여성들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모성과 끝없는 인내심, 육체적인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파괴된 것들을 새롭게 회복시키는 치유력을 가진 그녀들에게 또 다른 강렬한 에너지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여성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힘이라 말하고 싶다. 아무리 덮어버리려 해도 꺼지지 않고 불길처럼 빛나는 아름다움이다.
여인의 아름다움과 사랑은 절망한 인간에게 구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의 고백이다.
지옥의 수용소에서 작업장으로 가는 진흙탕 길에서,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이 그의 등을 휘몰아치고 그가 걸친 누더기를 뚫고 지나갈 때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생각해냈다. 아름다운 검은 눈과 곱슬머리, 미소짓는 그녀의 시선을 느꼈을 때 그는 더 이상 발목을 에는 차가운 물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의 미소가 새벽의 분홍빛 지평선에서 흐려져 가는 별들 대신 하늘에 막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게 하였다. 생존의 벼랑 끝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사랑하는 아내의 아름다운 검은 눈과 곱슬머리는 그를 일으켜 세웠다. 여인에 대한 사랑이 절박한 현실 앞에서 생의 환타지를 만들어 냈다.
이번 호에 실은 사진은 조이스 테니슨(Joyce Tenneson)과 유섭카쉬(Yousuf Karsh)의 인물사진이다. 조이스 테니슨은 세계 전역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150회 이상의 전시회를 열었던 사진가로 예술과 상업사진에서 성공한 사진가다. 그녀는 평생 인물사진을 찍었다. 그가 담은 수많은 여성들은 감미로우면서도 아름답고 신비롭다. 그녀의 사진은 페미니스트였던 다이안 아버스, 바바라 크루거나 신디셔먼, 낸 골딘과는 또 다른, 여성의 내면을 보여준다. 유섭 카쉬는 작품 전시가 될 때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열광했던 너무나 유명한 사진가다. 그는 여인들의 내밀한 영혼과 마음을 눈과 손과 그들의 몸짓에서 보여준다. 현대무용가 마사그레이엄과 사진가 스티글리츠의 연인이며 화가였던 조지아 오키프의 모습은 노년임에도 텅빈 공간을 가득 채우는 단단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의 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녀에게서 때묻지 않은 순결한 관능미를 느껴본다.
여성,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그녀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눈부시게 웃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의 이름으로 아내의 이름으로 어머니의 이름으로.
첫댓글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잘 접하고 갑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