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림은 정신 없이 날아갔다. 여러 병실들과 사무실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때문에 길이 막히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럴 때마다 그들을 쓰러뜨리며 인해가 치료를 받고 있던 무균실로 향했다. 혜림을 따라 나왔던 카트린 제나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찾고 있던 곳에 도착한 혜림은 자신을 제지하려는 비상사태 처리 반 한 명을 오른쪽 날개로 쳐서 쓰러뜨린 후 병실로 들어갔다. 평소의 그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지만, 강한 모성애가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현재의 혜림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병실안은 난장판이었다. 모든 기계들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폭음을 터뜨리
고 있었으며, 침대를 덮고 있던 삼각형의 유리는 반으로 갈라져 바닥에 떨
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누워있던 인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혜림
의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듬이를 최대한 곧게 새웠고,
꼬리뼈에 붙어 있는 한 쌍의 작은 돌기체를 곧게 긴장 시켜 공기 중의 미
세한 움직임을 포착하려고 했다. 또한, 인해와의 교감을 위해 페르몬을 대
기에 뿌려대며 정신을 집중 시켰다.
앞으로 2분 안에 모든 직원들과 환자들은 대피를 하시기 바랍니다. 경고
멘트가 병실 안의 스피커에서 빠르게 방송되었다. 어디지 어디에 있는 거
니 인해야. 혜림은 자신의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녀는 페르몬의 양을 두 배로 늘렸고, 이로 인해 혜림의 체력은 급격히 줄
어들었다. 혜림은 지금 쓰러져 누워있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찾았다!"
혜림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날개를 펴서 밖으로 날아갔다. 이마에서는
비 오듯이 땀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인해는 밖으로 나갔던 거야. 그런
데 왜 이렇게 이질 적인 느낌이 흘러 들어오는 거지. 그녀는 약간의 오한
을 느끼며 출구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쾅! 혜림은 갑작스럽게 들린 커다
란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 소리는 이 삼초 간격으로 들려 왔으
며 점점 혜림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폐쇄 이제 전 구간을 폐쇄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린 그녀의 귓속으로 컴퓨터로 만들어진 여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럼……. 스피커를 향해 있던 혜림의 눈이 다시 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았다. 그리고 오 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회색 빛을 띄고 있
는 커다란 차단 막이 복도의 바닥과 부딪치는 것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이런. 혜림의 날개가 더욱 커다랗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것에 호응이라
도 하듯이 차단 막이 내려오는 소리 또한 복도에 크게 울렸다. 그것은 혜
림이 방금 지나온 구간에서 내려온 차단 막이 복도의 틈새로 들어가는 소
리였다. 조금만 더 이제 이 코너만 돌면 출구야. 혜림은 병실 복도의 마지
막 코너를 벗어나 출구로 이어진 길에 들어섰다. 순간 많은 약품들이 담겨
져 있는 카터가 혜림의 눈앞에 나타났고, 그녀는 그것에 부딪히고 말았다.
혜림과 카터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쓰러졌다.
"으……."
혜림은 신음 소리를 내며 손으로 이마를 만졌고, 거기에서는 피가 흘러
내려 오고 있었다. 일어나야 돼. 혜림은 몸이 호소하고 있는 통증을 느끼
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위이잉. 천장에서 커다란 기계음이 혜림에
게 들려왔고, 그녀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가 나는 곳을 올려다보았다. 커다
란 차단 막이 혜림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질
끈 감았다.
몽고메리는 자신의 두 동료가 헤독제를 맞는 것을 본 후 응급실을 나왔
다. 그 둘은 5분 후면 정신을 차릴 것이다. 그녀는 텅 빈 병원의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원장을 만나야 돼. 몽고메리는 기계 제어실로 향
했다. 그곳에는 분명히 그녀 카트린 제나베가 있을 거라고 확신을 했기 때
문이었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좋다 하더라도 이런 방법으로 실험을 해서는
안돼. 몽고메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복도를 기계 제어실이 있는 복도
로 들어섰다.
기계 제어실의 문 앞에 도착한 몽고메리는 뒷짐을 지고 서 있는 경비원
둘에게 제지를 당했다. 둘을 흘겨보며 그녀는 신분증을 보여주었고, 경비
원은 경례를 하며 문을 열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몽고메리는 기계
제어실의 안으로 들어서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십 여명의 사람
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모두 손에는 기다랗게 연결된 프린트 용
지를 들고 있었다. 아마도 상황을 분석중인 거 같았다. 몽고메리는 곧 중
앙에 있는 커다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닥터 린! 할 말이 있어요."
몽고메리는 카트린 제나베의 애칭을 부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제 왔군요. 아무래도 인해는 밖으로 나간 것 같아요. 어떻게 그곳에
서 나올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병이 진행되는 상황……."
"닥터 린. 정말 이렇게 까지 해야 되나요?"
"무슨 뜻이죠. 닥터 몽고메리?"
몽고메리의 말에 카트린 제나베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몽고메리는 그런 그녀의 눈빛에 약간 어깨를 움츠렸다.
"우리가 하는 행동이 잘못 되었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닥터 린, 실험
은 인해의 혈액 샘플을 체취하는 것만으로도 되지 않나요? 굳이 아이를
희생시기면서 까지 일을 어렵게 만들지 않아도 되잖아요."
카트린 제나베는 잠시동안 말을 끝마친 몽고메리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중앙에 있는 커다란 모니터로 옮겼다. 그녀가 올려다보고 있는 모니터에는
여러 숫자들과 단어들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닥터 몽고메리!"
카트린 제나베는 지금까지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와는 달리 차갑게 힘
주어 몽고메리를 불렀다.
"당신은 현재 우리가 아니 우리 병원이 처한 상황을 아직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 정의에 불타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
고 생각되는군요."
"아니요! 전……."
"그냥 듣기만 하세요. 닥터 몽고메리도 아시다시피 병원은 현재 매우 어
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요. 낙후된 의료시설들과 턱없이 모자른 의사들의
수,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줄어들고 있는 환자들……. 환자들이 줄어들
면서 우리는 매 분기마다 많은 적자를 내고 있어요. 그래서 정부는 병원의
영업을 중지시킬 생각을 하고 있죠. 그런데 기회가 온 것이에요. 우리의
병원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카트린 제나베의 현실적인 이야기에 몽고메리는 대응할 말을 찾지 못하
고 있었고, 그것을 알아차린 카트린 제나베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 기회란 당신도 알고 있죠. 바로 방금 까지 STPR(특수응급환자실)의
무균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인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여자아이 라는
것을……. 우리가 그 아이 병의 원인을 밝혀내고 백신을 개발하게 된다면
학계와 국가로부터 많은 관심과 지지를 얻게 될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최초의 환자가 필요해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그렇게 되
면 병원에 대한 지원금 또한 지금의 몇 배는 되겠죠. 또, 당신과 나는 다
른 직장을 찾지 않아도 되고요."
몽고메리는 수긍의 표시로 고개를 바닥으로 숙였다. 카트린 제나베는 만
족스러운 미소를 띄우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넌 어쩔 수 없는 이류일
뿐이야 그러니 계속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거야 닥터 몽고메리씨. 카트린
제나베는 어느 새 입가에 비웃음을 띄고 있었고, 그런 그녀를 향해서 파란
색 제복을 입은 짧은 머리의 여자가 한 장의 서류를 들고 왔다. 그 서류를
받아든 카트린 제나베는 그녀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했고, 파란 색의 제복을
입은 여자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전산실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STPR의 비상사태 상황을 지금 이 시간 부로 해제한다! 또한 만일에
있을……."
자신의 지시사항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카트린 제나베는
몽고메리에게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몽고메리의 표정은 피로
에 물들여져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카트린 제나베는 조용히 속삭였다.
"벌써부터 지치면 안돼요. 이제부터가 시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