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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부터 내려오며 인터뷰하려던 게획을 일부 바꿔
조시현 (21기) 사무장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왜? 나를 인터뷰 해?"
"선배님부터 해 내려와야지."
선배님부터 인터뷰 하는것도 예의 이지만
후배들의 이야기도 곁드리는게 좋을것 같다고
겨우 설득했다.
"이엘로 캡 (노란색의택시) 이 있는집."
** 조시현씨 만나줘서 고마워요,,,
아이 왜 존대야 ? 형 !나 그러면 인터뷰 안할테야..
시현이라 불러 <댑다 공격이 돌아온다>
** 그러고 싶지만 그래도 인터뷰니까..
내가 닭살 돋아서 싫다니까… <동생이 형한테 대하듯이 말한다>
** 조시현씨..그렇지만 ,동우회 선,후배님 모두의 장이니까,
이해하고 지금부터 내가 물어 보는대로 이야기 해주세요..
그런가요? .알았읍니다.
나는 지금 마음 비우고 살고 있읍니다.
** 21기 이신데요?
네 , 우리 동기가 약 80명 입니다,.그런데 이름을 지금 다 기억 못하겠어요..
이곳에 , 김형철씨, 한의박사 허취웅씨, 그리고 진도용씨가 같이 살고 있어요.
** 비행을 얼마 안했지요?
그래도 78년 11월 부터 87년 까지 했으니까…많이 한겁니다.
형보다 먼저 그만 두었으니까 그렇게 보이는것 같은 거지요..
<<겔리에서 뭐가 그리 좋은지? >> << 필립핀 승객과>>
** 그럼 회사 퇴직 하고 하신 일은 무엇 인가요?
다음해인 88년 올림픽 끝나고 얼마 안되어서 ,
싸이판으로 우리가족이 여행갔는데, 그만 눌러 앉었어요.
그리고 조그만 비지니스 시작했습니다..
<가기전에 서울서 조그만 사업 하다가 손해좀 보고 때려 치웠단다>
** 가족이 어떻게 되지요?
채리 엄마하고 아들셋에 딸 (채리).모두 나까지 6명 입니다..
<<미국 들어오기 얼마전, 싸이판에서 백일이 안된 막내아들 안고서>>
** 애들 나이 차이가 좀 있어 보이는데요?
큰애 영상이가 지금 23살,둘째 영욱이가 20살,귀염둥이 딸 채리가 15살,
그리고 막내 영준이가 10 살이지요.
<채리하고 영준이는 싸이판에서 태어났단다,금술이 좋았나 보다>
** 그럼 싸이판에서 어떤 일 하고 있었습니까?
일년동안 자리 잡느라 고생 했습니다.
조그만 슈퍼마켓 인수 해서 밤잠 안자고 채리엄마 하고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여유가 생겨서 조금더 큰 슈퍼마켓 인수했었고요,
돈좀 버는가 싶었는데….
한국에 아이엠에프가 생기면서 관광객이 사이판에 안오면서…
사이판 경기가 꼬꾸라 지더군요…
망하는게 한순간 이란걸 알게 됬어요.
**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라고 어떻게 버틸수 있나요?
비지니스 처분했지요.
슈퍼할때 물건을 무역 하듯이 조금씩 들여 왔었거든요 ,,
그래서 일단 미국 본토로 직접 물건을 구입하러 들어와서 물건 사서
싸이판으로 보내면서 이곳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지요.
싸이판에 가족은 있었거든요.
** 그래서요?
뭐가 그래서야? 형? <<웃으면서....금방 존대가 없어진다.>>
미국 대륙으로 오기는 왔는데
맨손으로 어떻게 시작하겠어요.
상황을 판단해 볼 시간이 필요 했거든요,
아는사람 하나도 없이 이곳에 왔는데,
그래도
사이판 떠날때 아는분이 이곳 농장을 소개 시켜 주었기에,
일단 온타리오(엘에이동쪽 50마일 떨어진곳)에 있는 농장을
찾아가 보았지요.
반갑게 맞아 주더군요 .
아이들 다시 한국가서 교육 시킨다는것이 큰 부담이 되서,
가족들 도 이곳으로 오게 되었고.
농장서 몇개월 우리 가족은 일했어요.
그런데 내가 무작정 온것만은 아니에요,
엘에이로 오기전에 싸이판 주위의 섬들도 다 둘러 보았고,
피지섬 까지 내려가 보았었거든요.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고.
그런데 경기가 말이 아니더군요.
<<사진 찍는다고 하는데도 아랑곳 하지않고 ,,,피자 파티,, 배들이 고팠나? >>
** 그래서 농사 시작했었나요?
한 6개월 지났는데,
영주권 해결이 안날것 같아서
다시 다운타운 엘에이로 올라왔어요.
** 그럼 다운타운으로 이사 온건가요?
조그만 방 한칸 집 겨우 찾아서 있으면서
나는 봉제공장에서 청소부터 시작해서 배달, 등등 거쳐서
공장장 까지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글쎄 공장도 문닫는 바람에……
<< 그당시 말하면서도 웃는다.>>
** 내가 처음 만났을때 음식점 메니저로 있었을때 이던데, 그렇지요?
그리고 나서 채리 엄마 친척 되는분의 음식점 메니저로 일하게 되었어요.
24시간 오픈 하는 진주곰탕집,
나는 밤 근무 하고는 아침에 집에 들어 갔어요.
여기 일하면서 우리 선,후배님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숨겨 있게끔 되지가 않더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 우리는 하정훈(11기) 사무장님 장례 입관 예배때 만났는데요?.
그때 나는 참 반가웠어요..형을 마주쳤는데. 형이 나를 보자 반갑게
시현아 하고 불렀어요.
나는 어 형…하고 대답했고..기억 나지요?
나는 형이 시현아 하고 불러 주었을때,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그 사실에 정말 고마웠어요 .
** 그후 (하정훈 선배님의 입관예배 참석후) 우리의 모임 ( 남가주 동우회라 명칭함) 이
실질적으로 활성화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모임이 있어서 정말 참 좋아요.
그리고 작년 송년 모임에서 우리 아들 장학금 주어서 눈물 났어요.
그 기쁨은 이민생활의 고통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순간 으로 느꼈어요.
나도 언제인가 일어서면 나도 도울께요.
우리 식구 모두가 고마워서 지금도 장학금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아들한테 아빠 회사 선후배의 관계를 보여 주게 되어서 더욱 더
나는 잊을수가 없어요.
선,후배님들도 다 어렵잖어요. 안 그런가요?
<< 우리의 장학금 돈은 피같은 돈 이라고 알고 있다고 한다>>
** 그럼 이제 화재를 재미있게 돌려볼까요?
채리엄마 하고는 어떻게 만났나요?
< 마침 채리와 영준이 데리고 외출했던 엄마가 들어와 옆에 함께 했다.
채리 엄마보고 이야기 하라고 한다.>
동네 이웃사이인 채리아빠 친척 소개로 만났어요.
처음 만나 영화를 보러 가던길에 신호등에서 기다리는데 느닷없이
내년 3월에 결혼 하자고 말 하더군요. 감짝 놀랐어요..그런데 정말로
그다음해 83년도 3월 25일 결혼식 올렸어요.
<<둘사이는 2년 차이다. 뱀띠와 양띠>>
<< 때때옷 입고 백말타고 신랑신부 신혼여행 즐기고 있네요….>>
시어머니께서 결혼한후 얼마후 제게 채리아빠는 토라지면
시어머님 본인하고도
한달 이상 말을 안한다고 그러시더군요.
그런데 그게 정말 이예요.
그래 제가 계속 따라 다니며 내가 잘못한것 말하라고 말해도 소용
없더라고요..
더더욱 미국와서 고생 하면서 그러는데 제가 더 속상해서 많이 울었어요.
잘 못하는 저 때문인가 싶어서요.
채리 아빠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 조시현 !!! 왜 그러니? 하고 물었다,
<< 순간 제수씨 마음씨에 나도 모르게.....
하지만 나는 이미 조시현 후배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형!
지금은 안그래요.
내가 몇년전 부터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하나님 찬양하며 살고 있잖아요.
< 하정훈 선배님 장례식에서 처음 보았을때 옆구리에 성경책 포근히
감싸고 있는 모습이 아직도 떠 오른다>
** 지금 택시 하고 있는데요?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어요.
내 개인 사업 이 잖아요?
겨우 3년전에 노동허가서 받고,
지금 자본금 없이 즐겁게 일하고 있는 중 입니다..
내 차에 타신 손님 안전하게 모시게끔 기도하며,
손님들에게도 전도 하면서…
<<나는야 간다~ ...오늘도 힘찬 하루 시작하며 주님께 찬양 드릴세…..>>
** 생활 하는데 어렵지 않나요?
주일 하루 빼고선 매일 새벽 4~5시면 일하러 나갔다 저녁 8~9시면 들어와요.
처음엔 주일날도 일했었는데.
지금은 꼬박 예배보고는 식구들과 하루 보내고 있어요
<일 안하면 하루 입금 $100 번돈에서 입금 시켜야 되기 때문이었단다>
그리고,
채리엄마가 베이비 씨터 (4살짜리 어린애 돌보아줌)하며 살림에
보태주고 있고요,
큰아들 영상이가 칼 스테이트 롱비치 대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해서
학비 대고 자기 생활 하면서도 우리에게 조금씩 보태주고 있어요.
** 삶의 방식이랄까 ?
많이 변한것 같이 보이는군요?.
마음을 오픈하고 숨길것도 없고 편히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 끝으로 할말 있으면 한마디 해 주시죠?
웃으면서 …내가 무슨 말 더 할게 있나요?
물어 보는데로 대답 하는걸로 다 됬어요.
그래서
제수씨에게 대신 하라고 요청했다.
우리가족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생활 하면서 감사 드리고요,
네남매 모두 건강하게 어려운 환경에서 기쁨으로 믿음 생활 할수 있게끔
해주시는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크나큰 기쁨이라 봅니다.
이것이 우리 가정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지난 세월의 기쁨과 슬픔 돌보심에 정말로 하나님께 찬양 드립니다.
** 이제 인터뷰 끝냅니다.
제수씨 지난 야유회와 송년 모임 안오셨는데 이번에는 꼭 오셔야지요?
네, 이제는 갈겁니다. 기쁜 마음으로 가겠습니다.
우리 채리아빠도 더욱 기쁜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하는걸 옆에서 보니 참 친형제 같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식사도 못해 드리고 가셔서 죄송 합니다.
^^**
내가 인터뷰하러 온다는 말을 제수씨에게 부담 주는것 같아서
말을 안했다고 하면서 식사때가 되었는데도
제수씨가 오지않자 미안함이 드는가 보다.
큰 피자 한판 사갖고 온 제수씨를 보자 형이 인터뷰하러 왔다며
눈치를 살핀다.
그러면서 이메일 주소도 만들었고 우리카페도 가입했다면서
처음 인터넷을 한다면서 좋아하며 자랑한다.
배가 고팠던지, 피자를 입에 넣으며 형도 하나 먹어 하며 준다.
제수씨가 미안해 하며 콜라를 가져다 주면서 다음에 꼭 두분이
같이 오셔서 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고 한다.
조시현 후배는 내가 사는곳과 가까이 있어서 마음 든든하다고 까지
말해 주는데 선배로서 도움 하나 못해준 것에 미안함을 느꼈다.
고생한 이야기를 공개 한다는것은
성공했을때
본인의 과거를 부끄럼 없이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본다.
물론 모두가 주어진 일에
완전히 만족하며 살아 갈수만은
그리 쉽지 않지만서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후배 조시현 사무장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첫댓글 인터뷰 내내 너무 다정히 나눈 대화를 그대로 올렸다가 수정을 했습니다. 말끝 마다 형,형 하면서 모든걸 솔직히 말해 준 조시현 사무장님께 감사 거듭 드립니다.
조시현 사장님 지금도 하나님께서 보고 또 돌보고 계시잔아요,힘내세요.22기 제일 연장자 정태욱 입니다. 2006년 4월30일 정년하고 이곳 저곳 기웃 기웃하고 있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이번 성지순례를 다녀왔답니다.건강하시고 하나님의 은총이 항상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