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반시>, 2007년 겨울호.
내 시의 키워드
맹문재
나는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을 가지고 있는데, 추구해온 키워드는 ‘노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각 시집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1996년에 출간한 첫 시집 『먼 길을 움직인다』에서의 키워드는 노동의 영역 중에서도 육체노동자였다. 이는 박노해, 백무산 등을 선두로 활화산처럼 타올랐던 1980년대의 노동시에 영향 받은 것이었다. 나는 20대 초반 포항의 제철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삶을 시로 쓰려고 했는데, 그 결과물이다. 1980년대에 들어 대기업 노동자 수와 도시에 소재한 공장의 노동자 수가 전체 노동자 수의 반을 넘어선 데서 볼 수 있듯이, 육체노동자들의 사회적 위치는 상당했다. 그들의 문제가 곧 전체 노동자의 문제로 인식될 정도였다. 나는 공장생활의 체험을 살려 그와 같은 상황을 담으려고 했던 것이다.
두 번째 시집 『물고기에게 배우다』는 2002년도에 발간했는데, 나는 노동문제를 좀더 넓게 인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으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도산했고, 그 바람에 온몸을 바쳐 일하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고 마는 모습을 보면서 노동문제를 한층 더 넓게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자’라는 키워드를 만들었다. 거대한 자본주의의 횡포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지는 노동자들을 이자에 의해 희생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이자의 키워드는 2005년에 발간한 세 번째 시집 『책이 무거운 이유』에서도 이어졌다. 아이엠에프의 고통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앞으로 내 시의 키워드는 역시 노동이겠지만, ‘시간’ 또한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마흔이라는 나이를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시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마흔을 넘겼다는 사실에 마음이 바빠지는데, 그러면서도 새로운 각오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시에 나타날 또 다른 키워드는 ‘공생’이다. 지금까지의 노동시가 지향한 것이 분배였다면, 생산을 위한 길은 없을까? 나는 노동시의 블루 오션 혹은 제3의 길을 생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래에 전태일문학상 수상자들의 모임이 있는데, 나는 그들과 연대해 공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 한국의 시단은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젊은 시인들이 대거 등장해 기성 시인들의 작품 세계와는 다른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창작 방향이 지극히 형식주의적이고 자족적인 것이어서 박수를 칠 수만은 없다. 나는 시의 사회적 의의를 끝내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점점 사회가 이기주의와 물신주의로 물들어가고 있는데, 시가 비판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소임을 저버린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나는 비판성을 갖춘 공생의 길을 추구해 가려는 것이다.
<대표작 읽기>
아름다운 얼굴
맹문재
언젠가 내가 떨어진다고 해도
그는 저 벚꽃처럼 피어 있겠지
저 벚꽃들 떨어진 뒤에도
그는 여전히 피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속에는 변함이 없네
수십 개의 얼굴을 가진 사장보다
수천 개의 얼굴을 가진 정치인보다
그는 더 많은 얼굴을 가질 수 있었지만
끝내 하나의 얼굴을 지켰네
네 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불이나
여섯 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대지만큼
아름다운 얼굴이 되었네
여덟 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공기나
스무 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물만큼
나를 움직이는 신화가 되었네
나는 오늘 벚꽃 구경 가듯 그의 얼굴을 보러
평화시장 바보회로 가네
맹문재
1963년 충북 단양 출생. 1991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 시론집 『한국 민중시 문학사』『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지식인 시의 대상애』『현대시의 성숙과 지향』 『시학의 변주』 등 있음.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