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반을 훌쩍 넘깁니다.
무심코 달력을 보다가 이 글을 적어 봅니다.
1. 어원
칼렌다의 라틴어 어원은 calendae(선포하다는 뜻임)입니다. 고대 로마의 제관(祭官)이 초승달을 보고 각적(角笛)을 불어 월초(月初)임을 선포한 데서 유래했다는 사실에서 유래하죠.
2. 주 7일제도의 기원
문헌상의 기록으로 볼 때 한 주를 7일로 나눈 것은 성서가 최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쉬었더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주를 구성하는 7일에 대해 ~요일이라는 말 대신에 첫째 날, 둘째 날, … 일곱째 날로 불렀고, 십계명을 따라 안식일인 일곱째 날을 신성하게 여겨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쉬었다. 칠일을 주기로 하여 제칠일에 쉬는 것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지켜져 내려왔다.
요일 이름이 구체적으로 붙은 것은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A.D. 321년 매주의 첫째 날을 휴일로 정하는 법령을 내리면서부터다. 일곱 요일의 명칭은 고대인들이 관찰할 수 있었던 태양과 달을 포함한 일곱 행성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유래한 점성술에서는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었는데 이들 일곱 행성이 돌아가며 매 시간을 지배하며, 매일의 첫째 시를 지배하는 행성이 그 날을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점성가들이 생각한 별들의 운행은 오늘날과 순서가 좀 달랐다. 그들의 우주관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과 같았는데, 토성이 지구에서 가장 멀다고 생각했으며, 그 다음이 목성, 화성, 태양, 금성, 수성, 달의 순서였다. 그러나 거리와 상관없이 일곱 행성 가운데서도 가장 계급이 높은 신은 태양신이었다.
3.*한 주의 첫째 날은 태양의 날이므로 휴업하라*
이러한 내용은 로마에까지 전파되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의 달력에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쓰고 있던 일주일을 도입했지만 바벨론의 점성술에 근간을 두고 요일의 이름을 붙였다. 황제는 첫째 날을 태양의 날로 선포하고 이 날을 예배일이자 공휴일로 정하는 칙령을 내렸다(A.D. 321년 3월 7일). 따라서 둘째 날은 월요일, 셋째 날은 화요일, … 일곱째 날은 토요일로 명명되었다.
요일제도는 분명히 기독교인들을 의식하여 시작되었으나 그들을 전적으로 배려한 것은 아니었다. 첫째 날(일요일)을 태양의 날이자 공휴일로 정한 것은 당시 로마에서 인기 있던 미트라(태양신)의 교도들을 배려한 색채가 짙었기 때문에 일곱째 날을 예배일로 지켜오던 유대인들과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에 반대했다. 그러나 로마 교회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과 미트라 교도 등 대다수 로마인들이 황제의 입장을 지지했기 때문에 일요일 휴업령은 제국 내에 서서히 정착되었다.
4. 태음력과 태음태양력, 태양력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에 따라 29일 또는 30일을 한 달로 정하고 열두 달을 1년으로 하는 태음력을 사용하였다. 태음력에 따르면 1년은 354일이 되기 때문에 계절의 순환이 해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어, 그들은 때때로 윤달을 끼워 넣어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고대 수메르인들과 바빌로니아인뿐 아니라 유대인, 그리스인, 중국인 등 세계의 많은 민족들이 이러한 태음태양력을 수천년간 전통적으로 사용해 왔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는 음력도 정확히 표현하자면 태음태양력이다. 그러나 이슬람권에서는 아직도 윤달을 인정치 않는 순 태음력을 사용하고 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 공전주기와 흡사하게 1년을 365일로 정한 태양력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들은 이집트인들이었다. 그들은 계절의 변화에 따른 나일 강의 수위에 초점을 맞추어 1년을 열두 달, 한 달을 30일로 정하고 여기에 다시 5일을 더했다. 이집트의 천문학자들은 4년에 1회씩 윤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신성한 달력을 고수하는 사제들 때문에 해마다 여섯 시간 가량의 착오가 나는 것을 방관할 수 밖에 없었다.
기원전 48년,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로마 영웅 줄리어스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만남은 세계 역사를 바꾸기도 했지만 달력의 역사에서도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시저는 이집트의 태양력을 받아들여 그간 태음태양력을 쓰면서 정치적인 이유로 제멋대로 바뀌던 로마력에 일대 개혁을 추구했다.
5. 율리우스력으로 시작된 달력의 개혁
기원전 46년, 시저는 당대의 가장 뛰어난 학자들을 불러모아 율리우스력을 만들었다. 율리우스력은 1년을 365일로 했으며 4년마다 1일을 더한 윤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간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다 보니 이 해는 무려 445일이나 되어버렸지만 이로써 어느 정도 과학적인 달력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율리우스력에도 문제가 있었으니 4년마다 윤년을 정할 경우 1년에 11분 14초 정도 앞서가게 되는 것이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율리우스력에 요일제도를 도입했다. 몇 년 후인 325년, 황제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부활절 날짜가 공식적으로 논의되었다. 마태, 마가, 누가의 3복음서에 따르면 부활절은 유월절이 지나고 돌아오는 첫째 날(일요일)이었는데, 유월절은 태음태양력인 유대력으로 니산월(1월) 14일이었다. 그러나 공의회에서는 유대인들이 쓰는 유대력을 무시하고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기로 결의했다. 태음태양력인 유대력을 따르지 않고 태양력인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로마에서 부활절을 올바로 지키기란 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회의에 관여하면서 정확한 날짜보다는 일치한 결론을 내리라고 요구했다. 토론 끝에 교회 지도자들은 춘분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뜨고 나서 첫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당시의 미비한 과학 수준으로 인해 춘분 날짜를 정확히 계산하는 것도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후 수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정한 기준에도 일치하지 못하는 부정확한 부활절을 지켜야 했다.
6. 그레고리력이 정착되기까지
오늘날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은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정한 것이다. 법률가 출신의 이 교황은 파리에서 벌어진 위그노(프랑스의 개신교도) 대학살 소식을 접했을 때 기쁨에 차서 신을 찬송했고, 화려함을 좋아하여 장엄한 교회 건물 축조를 위해 바티칸의 재정을 거의 파산 상태로 몰아넣는 등 악명이 높았지만, 달력의 개혁에 대해서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새 달력을 만들게 하고 그것을 카톨릭 국가에 보급하는 데에 꽤 추진력이 있었다.
그레고리력은 율리우스력의 문제를 보완하여, 100으로 나누어지지 않으면서 4로 나누어지는 해 96회와 400으로 나누어지는 해 1회를 합해 400년 동안 97회의 윤년을 두게 했다. 그리고 그간의 계절적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1582년 10월 4일(목요일) 다음날이 10월 15일(금요일)이 되게 했다. 요일상의 변화가 없었던 것은 예배일인 일요일이 바뀌는 것을 피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부활절 등의 날짜와 주요한 성인의 축제일들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날짜 변경으로 당대 사람들은 성자들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고 많은 혼란과 불편을 겪어야 했다.
그 후 2세기 가량 동안 카톨릭 지역에서는 그레고리력이, 신교 지역에서는 율리우스력이 쓰이며 같은 축제일도 다르게 지켜왔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서유럽지역은 그레고리력으로 통일되고 20세기에 접어들어서야 동유럽의 그리스 정교 국가들이 이 달력을 받아들였다. 꾸준히 세계로 전파된 그레고리력은 오늘날 만국 공통 달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