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잘 맞춰 잘 좀 해보란 말이야...
“서로 눈을 쳐다봐야지, 딴 데를 보면 어떻게 해~~”
그러자 별이 예솔이가 대답한다.
“헤헤! 얼굴이 안 돌아가는 걸 어떡해요. 직접 해봐요. 얼마나 어려운가~~”
보다못해 구경하던 빛이가 말한다.
“야! 좀 야한 표정으로 쳐다볼 수 없냐?”
다들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열중하고 있는 이것은 바로 탱고춤 자세 흉내내보기이다.
탱고의 발상지라고 하는 항구 보카지역에 가니
광장 가운데서 우리를 반기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거리에 탱고를 추는 사람 모형을 나무판에 실제 크기로 만들어놓고
얼굴만 도려내어 그 안에 얼굴을 넣으면
영낙없이 탱고를 추고 있는 한쌍의 앙증맞은 남녀로 변신하게 해놓은 것이다.
파트너와 발이 착착 들어 맞는 탱고는 보기에도 현란하다
아이들이 흉내를 내보겠다고 별이와 예솔이가 얼굴을 집어넣었으나
눈이 서로 딴 데를 보고 있으니 상체와 다리는 비비 꼬인 탱고춤 자세인데 얼굴은 영 아니다.
영화나 TV 화면으로 탱고를 추는 사람들을 어쩌다 한번씩 보면
한쌍의 남녀가 몸을 밀착시켜 시종일관 상대를 갈구하는 듯한 강렬한 눈빛을 서로 교환하던데
몸과 얼굴이 아예 따로 노니 그 모양새가 우습기만 하다.
하긴 몸은 나무판 뒤에다 그대로 붙이고 고개만 앞으로 쑥 빼서
90도로 돌린채 상대의 시선을 바라보기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은가 보다.
아이들이 겨우 고개를 있는 대로 빼서 눈을 마주쳐보나
그 모양새가 어찌나 코믹한지 하는 아이들이나 거리의 구경꾼들이나 다같이 웃음보가 터졌다.
브라질의 삼바마냥 아르헨티나에는 탱고가 있다.
탱고(Tango)는 이곳 보카지역 부둣가에서 태어나 1900년대 초
바다건너 전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발생했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보카지역은 호기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막상 보카지역에 와 보니 아이들이 탱고춤 자세를 흉내내보았던 자그마한 광장 앞은
조금은 썰렁함마저 맴돈다.
탱고의 인기를 말해주듯 이미 퇴색되고 낡은 목조 가옥들이 즐비할 뿐
지금 눈 앞에 탱고를 느끼게 하는 특별한 것은 없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탱고가 정말로 보카에서조차 쇠퇴한 음악이 된 것일까.
열정의 탱고를 추고 있는 커플의 모습
탱고의 명곡 카미니토 (Caminito)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카미니토 골목을 중심으로
허름한 레스토랑과 까페들이 모여 있는 구불한 길을 걸어보았다.
원래 이 지역은 지저분하고 가난한 항구였다고 한다.
1900년을 전후로 주로 이탈리아 남부 지방에서 이민 온 저소득층 이탈리아계 주민들이 모여 살았는데
당시의 보카에는 조선공장이나 도살장의 백정들, 뱃사람들, 밀수꾼과 여인들이 살고 있었고
그러기에 이곳에는 쪼들린 삶과 그에 지친 인간들의 권태감과 고독감이 넘쳐 흘렀다고 한다.
이런 보카의 어두침침한 거리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생활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감정이 얽히고 설켜서
2/4박자의 격한 리듬과 선율에 실려나온 것이 탱고인 것이다.
탱고 무용수의 강렬한 눈빛을 보세요
골목길 레스토랑 앞 노상에서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두분이
아코디온으로 경쾌한 리듬의 탱고음악을 즉석에서 연주하고 있어
그나마 이곳이 탱고의 발상지임을 말해준다.
한쪽 귀퉁이에서는 탱고춤 공연이 있었나본데 이미 끝났나보다.
좀 기다려봤으나 더 이상은 하질 않는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거리공연이 좀더 활발하게 있는 듯 한데
우리가 간 날은 평일이라 그런지 몇몇 관광객이 거리를 기웃거릴 뿐 조용하고 한산했다.
대신 탱고춤 구경은 다른 지역에서 할 수 있었다.
얼마 전 포스두 이과수에 있는 민속공연장에서
브라질의 삼바와 아르헨티나의 탱고, 파라과이의 민속춤을
한데 묶어 보여주는 공연을 본 적이 있다.
또 어제 시내구경을 다니다 우리나라 명동거리마냥 쇼핑가인
플로리다 거리에서 즉석에서 탱고공연을 하는 팀을 만났다.
민속공연장에서 본 탱고는 섹시한 의상을 입은 선남선녀의 현란한 손, 발의 테크닉과
유혹적인 몸짓이 분위기 있는 우아한 조명과 어우러지며 어떤 강렬한 화려함을 느끼게 했다면,
거리에서 본 탱고는 가난한 민중의 애련한 향수를 더 생생하게 느끼게 했다.
애수어린 음악에 맞춰 30대쯤 돼보이는 여인과 함께 춤을 추는,
나이가 60은 족히 됐을 듯한 남자의 끈끈한 얼굴 표정과 몸짓이 삶의 역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탱고의 나라임을 과시하듯 거리공연 역시 손끝, 발끝 동작 하나하나가 박력있고 섬세함은 말할 것도 없다.
탱고의 발상지-부에노스의 보카지구
손을 잡은 채 대칭을 이루는 어깨선과 서로 엇갈린 다리,
한쪽이 길게 찢어진 여인의 스커트 사이로 스치는 관능적인 다리의 움직임,
그리고 맞닿을 듯 밀착된 가슴과 가슴으로 상대방을 응시하는 시선,
춤이 주는 긴장과 에로틱한 모습은
장소가 어디이건 간에 역시 탱고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인 듯 했다.
절도있는 춤 못지않게 탱고음악 또한 재미가 있다.
강한 악센트와 갑작스런 쉼표,
쥐고 흔드는 듯 끊어질듯한 고음 선율은 너무도 춤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것 같다.
탱고는 스페인 내지는 유럽 계통의 무곡과 아르헨티나의 아프리카 흑인 음악,
그리고 쿠바의 하바네라 무곡이 혼합되었다고 한다. 그
래서 그런지 탱고를 보고 있으면 스페인의 플라멩고춤이 생각이 난다.
현란한 발놀림과 타닥거리는 발뒷굼치 소리, 힘있는 동작들이 왠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보카지구의 한 음식점. 종업원 모양을 한 입간판
그리고 또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가릴 것이라고는 없는 밝은 햇빛 아래서
열정의 탱고를 추고 있는 커플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든 생각이다.
자칫하면 서로 코가 부딪힐 지경의 거리에서
남녀가 서로 뚫어질 듯 바라보고 있을려면 얼마나 어색할꺼나…그것 참!
보카 골목길에서 탱고를 연주하는 할아버지들의 연주를 듣고 섰는데
옆에 섰던 핸썸하게 생긴(제비족 같은) 한 젊은 남자가 갑자기 날더러 탱고를 추겠냐며
손을 내밀어온다. 왠만하면 한번 해보고 싶으나
정말 탱고는 보면 볼수록 어렵게 보이고 아예 엄두가 안난다.
보는 것은 좋으나 직접 추는 것은 엄청 어색하기도 하고...
놀라서 못한다고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과(남편은 그마저도 몸이 안따른다.)
발놀림을 연습해보나 자칫하면 앞 뒤로 콰당 넘어질려고만 한다.
탱고는 제대로 잘 추면 `예술’이나 대강 추면 영낙없는 `술예’가 될 것 같다. 술예?
(예술의 반댓말을 못찾아 아이들한테 물으니 예술의 반대는 `술예’라고 한다.)
알록달록하게 채색을 한 보카지구의 집들과 장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