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ng Crimson ... !
킹 크림슨 (King Crimson) 은 1969년도에 기타 연주자인 로버트 프립 (Robert Fripp), 드럼 연주자 마이클 길스 (Micheal Giles, 드럼·보컬) 가 결성한 영국의 록 밴드이다.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킹 크림슨(King Crimson)" 은 기타와 멜로트론 (Mellotron, 컴퓨터로 프로그래밍한 전자 건반 악기) 의 명인인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을 중심으로 초기 5년 동안 팝이나 사이키델릭한 감성을 거부하면서 재즈와 클래식을 록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영국의 진보적인 밴드이다.
"마이클 길스 (Micheal Giles, 드럼·보컬)", "피터 길스 (Peter Giles, 베이스·보컬)" 그리고 "로버트 프립 (Robert Fripp)" 이 1967년 말 결성한 "길주, 길즈 앤 프립 (Giles, Giles & Fripp)" 이라는 트리오로 시작된 이들은 1968년 첫 싱글 "One in a Million" 을 커트한 뒤 1968년 데뷔 앨범 "The Cheerful Instanity of Giles, Giles & Fripp" 을 발표 했지만 그 앨범은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이들 트리오는 해체하게 된다.
이들 멤버는 "로버트 프립 (Robert Fripp)", "토니 레빈 (Tony Levin, 베이스)", "팻 스텔로토 (Pat Mastelotto, 드럼)", "아드리안 벨루 (Adrian Belew, 기타)", "게빈 해리슨 (Gavin Harrison, 드럼, 퍼커션)" 의 5인조 밴드이다. 그리고 이들의 데뷔는 1969년 1집 앨범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로 했다.
그 후, "마이클 길스 (Micheal Giles)" 와 "로버트 프립 (Robert Fripp)" 이 "이안 맥도날드 (Ian McDonald, 보컬·기타)" 와 "그렉 레이크(Gregg Lake, 보컬·베이스)" 를
밴드 결성후 이들은 1969년 7월 런던의 하이드 파크(Hyde Park)에서 열린 자선공연에 "롤링 스톤즈 (Rolling Stones)" 와 함께 출연해 65만 명 관중이 움집한 공영장에서의 연주로 명성을 얻게 되었고 이들은 곧 데뷔 앨범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을 발표하게 된다. 이들의 타이틀곡인 "Court of Crimson King" 은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프로그레시브 록" 에 있어 가장 도전적인 곡으로 평가받았으며 동시에 대중들을 사로잡아 UK 5위, US 28위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공교롭게도 앨범이 한창 성공가도를 달리는 시기에 해체 국면에 이르게 되는데 "이안 맥도날드 (Ian McDonald)" 와 "마이클 길스 (Micheal Giles)" 는 지속되는 공연에 따른 스트레스와 음악적 방향에 대한 불만으로 그룹을 탈퇴했고 "그렉 레이크(Gregg Lake" 또한 "로버트 프립 (Robert Fripp)" 과 "피터 신필드 (Peter Sinfield)" 와 트리오로 1970년에 발매한 두 번째 앨범 "In the Wake of Poseidon" 을 끝으로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 를 결성하기 위해 그룹을 떠나게 된다.
이 후, "킹 크림슨 (King Crimson)" 은 "로버트 프립 (Robert Fripp)" 을 중심으로 새로 영입된 "고든 해스켈(Gordon Haskell, 보컬·베이스)", "멜 콜린즈 (Mel Collins, 색소폰)", "앤디 맥쿨로 (Andy McCullough, 드럼)" 와 함께 작업을 지속해 1971년에 "Lizard" 를 발표했다. 그러나 다시 고든과 앤디가 탈퇴하고, 바즈 버렐(Boz Burrell, 보컬)과 이안 월러스(Ian Wallace, 드럼)가 가담해 1972년에는 "Islands" 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절대 안정세를 타지 못하는 이 불운한 그룹 "킹 크림슨 (King Crimson)" 은 미국
그렇게 표면적으로 "킹 크림슨 (King Crimson)" 의 역사는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로버트는 다시 이전 예스(Yes)의 드러머였던 빌 브루포드(Bill Bruford), 그룹 페밀리(Family)에서 베이스와 보컬을 맡았던 존 웨튼(John Wetton), 바이올린과 멜로트론을 연주하는 데이비드 크로스(David Cross), 퍼커션의 제이미 무어(Jamie Muir),
"Epitaph" 은 1969년 발표한 데뷔 앨범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에 수록된 곡이다. "킹 크림슨 (King Crimson)" 의 이 첫 앨범은 프로그레시브 락의 역사에 대해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명곡으로 알려져 있다. 음악의 분위기 자체가 웅장하면서도 무거운 반면 서정적이기도 한 이 곡은 곡이 풍기는 분위기답게 내용 또한 철학적인 면을 담고 있기도 하다.
"킹 크림슨 (King Crimson)" 은 당시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념적인 성향의 가사를 보여주었다. 포스트 모더니즘 (?) 이란 반관료주의로 객관주의인 "과학주의,합리주의" 에 대한 회의론으로 "다원주의, 상대주의" 를 지향하는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소개할 "Epitaph의 의미는 "비문 (묘비명), 즉 운문이나 산문으로 묘비위에 새긴 글" 을 의미한다.
1970년대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 "킹 크림슨 (King Crimson)" 의 이 곡 "Epitaph" 을 금지시킨 적이 있었다. 이 곡은 세계 4대 명곡에 꼽힐 정도이지만 미국의 기독교 단체들의 항의로 금지되었고 우리나라도 뒤이어 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이유는 이 곡은 비오는 날, 안개낀 날, 꿀꿀한 날 들으면 정말 삶의 허무, 인생 무상을 느끼면서 자살을
"Epitaph"은 훗날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Emerson, Lake & Palmer)" 를 결성하는 그렉 레이크(Greg Lake)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노래가 의외의 인기를 얻으면서 번안되어 불리기도 했다.
◎ 음반 목록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1969년)
■ 곡명 : Epitaph (King Crims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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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웹어스 (WebUs) 원문보기 글쓴이: 도시선비
첫댓글 써니님~~
도움을 또 요청드립니다~~
이 곡도 제가 엄청 좋아하는 곡인데,...
melon에 없어서 ㅠㅠ~~
anna vissi의 paramithi hehasmeno 처럼
mp3로 녹음하여 메일로로 보내주시면 황공하겠습니다~~
써니님~ 친구가 메일로 보내주어서 해결 되었습니다~~
보냈어요. 다른 버젼의 곡도 보냈어요.
친구가 보냈으면 되었네요.^^
메일 잘 받았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